공급 물량 달리면서 ‘별 따기’ 된 연탄 구하기
공급 물량 달리면서 ‘별 따기’ 된 연탄 구하기
  • 참여와혁신
  • 승인 2006.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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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연료의 대명사에서 이제는 ‘귀하신 몸’으로

연탄 확보 전쟁 현장 속으로

김경아 기자 kakim@laborplus.co.kr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복고 열풍이 불어 닥치면서 도시 곳곳에 연탄구이집이 생겼다.
추억의 맛을 그리던 사람들이 그곳을 찾았다. 연탄은 어느새 ‘추억’의 코드가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올 겨울 연탄 소비량은 최근 10년 만에 ‘최고’라는 영예를 얻었다.


기름값이 하늘 모르고 치솟고, 경기는 여전히 얼어붙어있다. 그뿐인가. 이번 겨울은 유난히도 춥다. 그것이 연탄 인기순위가 최근 10년 중 최고가 된 이유이다.
하지만 연탄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연탄 수요가 급속하게 늘어나는 것과는 반대로 연탄 도·소매업자들은 연탄을 구하지 못해 전쟁이다. 연탄을 둘러싼 치열한 전쟁. 그 속은 연탄보다 더욱 뜨겁다.

 

새벽부터 연탄 찾아 삼만리
인천시 신흥동에 위치한 연탄 도매업체 K연탄에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시커먼 창고 바닥뿐이다.
연탄 창고 안에 연탄이 꽉 들어차있던 시절은 이미 지나가버린 모양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K연탄 사장 이광연(가명)씨는 새벽마다 연탄 확보 전쟁에 뛰어든다.


인천에 있던 주안 제1공장에서 필요한 연탄을 공급받기가 턱없이 부족해서, 서울이나 파주에 있는 연탄 공장으로 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이마저도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다른 도·소매업자보다 일찍 도착하지 못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새벽에 도착하는 순서로 연탄 받을 순서를 정해요. 탄가루가 없어서 연탄을 찍어내질 못하니 그렇게라도 해야 겨우 연탄을 구할 수 있어요. 어쩔 수 없어 가기는 하지만, 인천에서 서울, 파주까지 왔다갔다 하면 운송비 빼고 나면 뭐….” 라며 한숨짓는 이씨.
이렇게 구해오는 연탄이 하루 1만6000~2만4000장 정도. 물론 연탄 주문량은 이보다 훨씬 많다. 주문은 많은데 연탄 주문량을 따라갈 수 없으니 이것도 스트레스다.


K연탄에서 일하는 심종혁(가명·20) 씨는 “처음에 여기서 일할 때는 몸이 힘들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요즘은 오히려 연탄 구하는 문제로 민감한 사장님의 불편한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게 더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작년과 비교해서 매출은 30~40% 늘어나긴 했지만, 연탄 확보 전쟁은 그보다 훨씬 치열해진 게 사실이다.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은 2005년 말까지 연탄 소비량은 약 190만 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탄 약 5억2800만 장 분량이다. 

 

주문 엿새 만에 받은 연탄 100장
연탄 확보 전쟁은 연탄 도매업자에게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취급 규모가 작아질수록 연탄과 만나는 문은 점점 더 좁아진다. 동네 주민에게 100장, 200장씩 주문을 받아 배달하고 있는 정영자(가명·74)씨와 이수탁(가명·65)씨에게 오늘은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연탄을 주문한 지 엿새 만에 겨우 연탄 200장을 받았다.


우선 100장은 빨리 배달하고, 나머지 100장은 근처 외진 곳에 숨겨두기로 했다. 연탄 공장에 그냥 두게 되면 다른 업자가 가지고 가버리면 그만인 게다.
이수탁 씨는 리어카에 능수능란한 손놀림으로 연탄을 싣기 시작했다. 연탄 한 장의 무게는 약 3.6kg으로 건강한 신생아 무게와 맞먹는다. 신생아 넷을 한 팔에 안 듯이 약 14kg이나 되는 연탄 네 장을 착착 포개서 옮기는 손놀림은 가벼웠지만, 연탄을 구하지 못해 한숨쉬는 그의 어깨는 무거웠다.


윤기 나는 검은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주인을 찾아가는 연탄 리어카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인천항이 가까운 이 곳 대로에는 큰 트럭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연탄리어카는 아랑곳하지 않고 삼거리를 위태롭게 건너갔다.
오늘 처음 배달할 곳은 2층에 있는 가정집. 연탄 지게도 없이 연탄 4장을 안고 2층까지 오르락내리락 하는 이씨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이씨가 계단을 오르내리며 연탄을 나르면 정씨는 연탄을 차곡차곡 열 맞춰 쌓는다. 쓰러지지 않게 연탄을 쌓는 일도 기술이 필요하다.


아침부터 연탄 배달하느라 고생하신다며 커피를 건네는 집주인 박씨는 “원래 기름보일러로 겨울을 났는데, 올해는 기름이 너무 비싸서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어요. 2, 3층 같이 기름보일러를 돌리면 한 달에 60만원씩도 나간다니까. 그래서 좀 불편해도 연탄보일러를 설치했어요. 연탄은 하루 다섯 장이면 되니까” 라고 말했다.


기름값이 리터당 1000원 안팎이니 한 달 동안 기름보일러를 때면 대략 30만 원 이상 난방비가 나가지만, 연탄보일러는 하루 다섯 장이면 거뜬하니 한달 난방비가 6만원도 채 안되는 셈이다. 이것이 연탄의 인기가 상종가를 치는 이유이다.

 

겨울 한 철 연탄 배달도 시원찮아
2층집 배달을 마치고 빈 리어카는 숨겨놓은 연탄 100장이 있는 곳을 향한다.
다시 한 번 6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스릴 넘치게 길을 건너니 한 쓰레기차 옆에 다소곳이 연탄 100장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소규모로 연탄을 구해다 파는 이들에게는 연탄을 확보하는 일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이므로 손이 한 번 더 간다 해도 이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다. 이번 연탄은 중국집으로 배달했다.


이들이 바삐 연탄 배달하는 모습을 지나다 보는 한 이웃은 취재진에게 “겨울에는 저렇게 간간이 연탄배달하고, 평소에는 빈 박스를 모아서 돈벌이를 해서 생활해요. 아들, 딸이 전부 아파서 쓰러져 있거든. 그래도 저렇게 성실하게 산다구”라며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22년 동안 동네에서 연탄가게를 했다는 정씨는 “지금은 이게 벌이가 안 되지만, 예전엔 꽤 괜찮았어. 연탄 팔아서 우리 자식들 대학 다 보냈는걸”이라며 “연탄들을 많이 안 쓰니까 연탄가게를 정리했는데, 다시 연탄 찾는 사람이 많아서 집 앞에다 연탄 쌓아놓고 팔아볼까 했더니 연탄이 있어야 말이지. 지금은 이렇게 조금씩 떼다가 배달하는 것도 얼마 안돼” 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중국집으로 연탄 배달이 모두 끝났을 때는 이미 정오가 가까운 시간. 아침에 일찍 나와 연탄을 구하느라 식사도 하지 못했다면서 연탄 배달이 끝나자마자 중국집에 자리를 잡았다.
이씨와 정씨는 자장면으로 급하게 허기를 달래고는 자리를 뜨면서 말했다.


“리어카 바퀴에 바람이 빠졌나봐. 원래 뒤에서 안 밀어도 될 정도로 잘 나갔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차가 안나가네.”
리어카를 끌고 어디론가 향하는 뒷모습에서 삶을 향한 무거운 발걸음이 배어나왔다.

 

지게 지고 4층까지 오르락내리락
K연탄에는 정씨와 이씨처럼 리어카로 연탄을 떼다 파는 사람이 둘이고, 트럭으로 연탄을 떼어다 파는 소매업자가 셋 정도 된다. 리어카에 연탄을 가득 실어봤자 100장이 조금 넘는데, 이들에게 돌아가는 연탄은 겨우 각각 50~100장이다.


나머지는 직영으로 판매하거나, 트럭으로 연탄을 가져다 파는 업자들인데 이들은 보통 한번에 1000~2000 장 정도씩 가져다 판다.
정오가 지나 다시 연탄 창고를 찾았을 때 오후에 새로 들어온 연탄이 소매업자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트럭과 트럭 사이에 서서 빠른 손놀림으로 연탄을 나르는 이들에게 어려운 점은 없냐고 물었다. “일이야 늘 그렇지, 요즘은 연탄 구하는 일이 제일 힘들지, 뭐” 라고 단번에 대답한다.


1000장 가까운 연탄을 15분 남짓한 시간에 모두 옮기고는 떠나기 전 그는 “연탄 지게 지고, 얼굴 시커멓게 되서 4층까지 오르락내리락 해봐야 이 일에 대해서 알지, 그러기 전에는 모를걸?” 이라며 슬며시 어려움을 터놓았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안도현의 시처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고 되묻지 않아도 이제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찰 수 없게 되었다. 비록 한 장에 400원 남짓 하는 연탄이지만 이젠 귀하신 몸이다.

누구는 이 연탄 한 장을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연탄공장에 줄을 서고, 누구는 리어카를 끌고 연탄 창고에서 쪼그리고 앉아 기다린다.


생각보다 듬직한 무게를 가지고, 생각보다 따뜻한 겨울을 선사하는 연탄. 서민들의 벗, 연탄을 구하기 위한 치열한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영세할수록 연탄과는 더욱 멀어지고 있는 현실이 추운 겨울을 더욱 시리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