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약가제도 개편, 약인가 독인가?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 약인가 독인가?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1.11.0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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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업계 노사, 공식적으로는 한 목소리로 반대
노사정, 꿍꿍이가 다르다?…이해관계의 미묘한 지점들
[분석 2] 보건복지부 약가제도 개편 논란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 12일 개최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국민들의 약값 부담을 줄이고 연구개발 중심으로 제약 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 아래, ‘약가제도 개편 및 제약 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현재와 같은 ‘계단식 약가 산정 방식’을 개편해 일원화하고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기업에 특성화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보건복지부는 언론 보도자료 등을 통해 의약품 장기 복용 환자의 경우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나 비용이 절감될 수 있는지 등을 집중 홍보하면서 내년 1월 시행을 목표로 올 연말까지 각계 의견수렴과 심의를 거쳐 관련 법령을 정비한다는 계획이다.

ⓒ 한국노총 화학노련
보건복지부, “내년 1월 시행 목표로 추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방안에서 우선 약가 산정 방식 개편 부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큰 맥락에서는 그간 동일 성분 의약품임에도 건강보험에 등재한 순서에 따라 약품 가격을 차등 결정하던 계단식 약가 산정 방식을 폐지하고 동일한 상한 가격을 부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건강보험 등재 의약품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소화제나 두통약 등과 같은 일반의약품이 아닌 고혈압, 당뇨 등 만성 질환 치료에 쓰이는 전문의약품 중에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보험급여 의약품(등재 의약품)은 건강보험에서 상당 부분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에 환자의 입장에서는 경제적 부담을 덜게 된다. 따라서 아무래도 환자는 가격이 저렴한 쪽을 선택하기 마련이고, 제약사의 입장에서는 가능한 한 타사보다 먼저 등재하려고 애쓴다.

어떤 제약사가 신규 의약품을 개발해 생산하게 되면 특허를 보유하게 된다. 어떤 종류의 특허냐에 따라 기간이 조금씩 다르지만 통상 임상연구 기간을 포함해 10년의 기간 동안 해당 제약사는 독점 생산을 할 수 있다. 특허 기간 내 신규 의약품(오리지널)의 가격을 100%로 볼 때, 특허 만료 후 타 제약사가 복제 의약품(제네릭)을 생산할 경우 가격은 오리지널보다 낮게 책정된다.

현행 약가 산정 방식에선 특허 만료 후 오리지널이 첫 번째로 건강보험에 등재되는 경우 최대 80%까지 가격을 책정할 수 있게 돼 있다. 제네릭의 경우 1~5번째 등재 약품은 68%, 6번째는 61.2%, 7번째는 55.08%와 같은 식으로 가격 책정 범위의 상한선에 차등을 두고 있다. 그래서 ‘계단식’인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개편안은 첫 번째 등재 오리지널은 70%, 제네릭은 59.5%의 상한가를 적용하며 1년 후에는 모두 53.55%로 상한가를 일괄 인화하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류양지 약제과장은 “동일한 성분의 의약품인 경우 동일한 상한가를 부여해서 제약사들이 제네릭을 먼저 등록하려고 경쟁하던 행태에서 벗어나 품질 경쟁에 보다 주력하게 하기 위한 개편”이라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제약 산업에서 품질 경쟁이란 다름 아닌 연구개발을 통한 신약 개발 능력을 말하는 것인데, 이러한 역량을 갖춘 ‘혁신형 제약 기업’을 선정해 집중 지원한다는 계획도 아울러 갖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사항은 수립돼 있지 않지만, 혁신형 제약 기업은 약 30개 내외에서 선정될 것으로 보이며, 연 매출액 1,000억 원 미만 기업의 경우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가 10% 이상, 연 매출액 1,000억 원 이상 기업의 경우 7% 이상 등, 일정 규모 이상 신약 연구개발에 투자한 실적이 확인돼야 한다.

이러한 혁신형 제약 기업은 생산한 제네릭에 최초 1년 동안 현행과 동일한 수준인 68%의 상한가를 적용하게 해주는 약가 우대 조치를 받는 한편, 법인세가 감면되고 세액 공제비율이 상향 조정되는 등의 세제 지원도 받게 되며, 자본이 필요한 경우 각종 금융 지원도 주어진다.

가격 산정 개편으로 약값 내린다?

보건복지부가 이와 같은 방안을 마련한 것은 기본적으로 의약품 가격이 너무 높고, 그처럼 높은 약가에는 거품이 끼어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또한 국내에는 영세한 규모의 제약 기업이 난립하고 있는 실정이며, 따라서 기술개발보다는 판매나 영업에만 집중하는 후진적 경영구조를 보이면서 이는 다시 약가의 거품에 반영돼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논리이다. 쉽게 말해 다분히 제약 업계의 옥석(玉石)을 가려내자는 의도인 것이다.

이번 발표 이후 제약업체들을 비롯해 관련 산업 노동계 역시 술렁이고 있다. 제약사 노동조합이 다수 소속돼 있는 한국노총 화학노련(위원장 김동명)은 성명을 내고 제도 개편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요구했다. 제약업체들의 사용자단체인 한국제약협회(회장 이경호) 역시 성명을 내고 “무차별적이고 일방적인 약가 인하로 산업이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선 겉으로 봤을 때 제약 업계의 노사 모두 정부의 이와 같은 방침에 반발하는 모습이다. 보건복지부는 제도 개편 이후 약가의 국민 부담액은 약 6천억 원, 건강보험지출 1조 5천억 원 등 연간 2조 1천억 원의 약값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고 밝혔다. 이는 그만큼 제약 업계의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2010년 기준 건강보험등재 의약품 시장 규모가 약 12조8천억 원 규모인 것을 감안하면 적은 액수가 아니다.

한국노총 화학노련은 “이는 인건비, 광고홍보비, 기술개발 투자비 등 아무리 비용을 절감해도 해소가 불가능한 액수”라며 “필연적으로 구조조정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제도 개편이고, 대규모의 악성 실업자 1만9천여 명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제약 업계의 현 종사자 수는 2009년 말 기준으로 약 8만1천여 명인 것으로 집계된다. 대략 네 명 중 한 명은 정리해고될 것이란 의미이다.

한국제약협회 역시 ‘100만 국민서명운동 추진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올해 12월 30일까지 반대 서명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마찬가지로 약값 인하에 따른 영업이익 감소를 제약 업체가 감당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해당 서명운동은 협회 회원사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20여 일 만에 12만 명을 넘어섰다.

이와 같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내용과는 달리 제약부문 사용자들이 이번 제도 개편을 인력 구조조정의 기회로 삼으려고 한다는 주장도 일각에선 제기되고 있다. 한 제약사노조 대표자는 “사용자들은 경영상의 위기임을 내세워 합법적으로 정리해고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지 않겠냐”고 반문하며 “정리해고와 함께 노조의 힘도 약화시켜 ‘도랑치고 가재 잡으려는’ 곳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역시 “약가제도 개편 발표 이후 사용자단체가 제일 먼저 꺼낸 얘기가 정리해고였다”며 “노사가 힘을 합쳐 공동으로 대응을 해도 모자랄 판에 자해행위를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래서일까, 한국제약협회는 9월 22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제도 개편에 대한 항의와 반대의사를 밝히기 위해 전 회원사가 하루 동안 의약품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의했으나, 10월 26일 현재까지 일정이 잡히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논의된 ‘8만 제약인 총 궐기대회’ 역시 계획이 불투명하다. 한국제약협회 김선호 실장은 “해당 내용이 26일 열린 이사장단 회의에서 논의됐으나 구체적 계획은 향후 입안예고 내용을 본 후 다시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노동계는 “실질적으로 국민들의 약값에 대한 부담률이 낮아지는 것보다 건강보험의 재정이 절감되는 액수가 두 배 이상”이라며 “정부의 방만한 건강보험 재정 운영으로 인한 누적 적자의 책임을 제약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건강보험의 재정 악화는 실효성 높은 다양한 정책적 수단을 개발해 해결해야 하는데, 손쉽게 통제 가능한 제약사를 대상으로 일괄적 가격인하 형태로 해결하려는 꼼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제약계, “감당 안 된다”…대량 해고 발생도 우려

국내 제약 산업을 연구개발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취지 역시 제약 업계 노사의 반대 의견에 부딪치고 있다. 일동제약노조 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한 김동명 한국노총 화학노련 위원장은 “제약사의 투자여력을 크게 줄이면서 기술개발 비용을 늘려 국내 제약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논리는 앞뒤가 안 맞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또한 ‘제약 업체들이 기술개발보다는 판매나 영업 위주의 후진적 경영구조를 보인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일괄적으로 인하해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많다”고 주장했다. 한 제약업체노조 위원장은 “이미 나올만한 약들은 거의 개발된 상태이기 때문에 글로벌 규모의 대형 제약사들조차 신약 개발이 최근 상당히 정체돼 있는 상태”라며 “해외에 생산 공장을 두고 국내에는 영업조직만 갖고 있는 다국적 제약업체들의 경우 최악의 상황에서 판매망만 포기를 하고 철수하면 그만이지만, 토종 제약사들의 경우 타격이 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제약협회 임상개발위원회 김정우 위원장 역시 “급격한 일괄 약가인하는 장기적이고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신약 개발에 종전과 같이 지속적인 투자를 어렵게 한다”며 “국내 제약 산업이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임상 투자를 늘려야 하지만 투자여력이 일시에 사라지는 충격으로 해외 임상 등 R&D 여력 손실이 크다”고 밝혔다.

개발여건 죽이고 개발 늘려라?

취재 중 만난 한 노동조합 간부는 “정부의 이번 발표는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면서 “약가 부담을 줄이고, 건보 재정을 확충하고, 연구개발 능력을 육성한다는 취지가 그럴 듯하지만 사전 논의나 철저한 준비 없이 졸속으로 추진된 개편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날마다 치솟는 물가 때문에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갈수록 빠듯해져 가는 요즈음, ‘가격인하’라는 한 마디만 전면에 내세우면 여론이 온통 그 쪽으로 쏠리기 때문에 반대의사를 밝히기가 조심스럽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소비자(환자)의 입장에서는 맞는 이야기이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은 “전반적인 의약 부문 제도 개선 측면에서는 약가를 인하해 가는 정책이 바람직하다”면서도 “문제는 타격을 입게 될 제약사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고용이 불안정해진다는 부분인데, 노동조합으로서는 딜레마일 수밖에 없는 어려운 문제”라고 밝혔다. 이 단장은 “보건의료노조가 ‘무상의료’와 관련된 이슈를 계속 부각시키고 있는데, 사실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의 입장으로 보자면 환자들이 많이 와서 돈을 많이 버는 게 유리하다”며 “그럼에도 무상의료 주장을 계속하는 까닭은 사회 공공성 측면에서 바람직한 방향이고, 건강보험 개혁·강화를 통해 이를 실현하자고 하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다른 측면에서의 이야기도 들린다. 한 제약사노조의 간부는 모 제약업체의 유명 드링크제의 예를 들면서 해당 부처의 정책적 판단 없이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제도가 바뀌는 행태를 꼬집기도 했다. 결국은 국민들에게 최대한 생색만 낼 수 있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제약 업계 노사는 공청회 등 논의 공간을 충분히 갖는 한편, 공동 논의기구를 구성해 제도를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카스 얘기 아시죠? 과거에는 박카스가 소매점에서 판매됐다는 이유로 동아제약의 경우 세무조사를 받아 350억 이상 과징금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전 장관이 맞장구치고 합법으로 바뀐 거 아닙니까.”

ⓒ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환자 입장에선 약가 내려야

이처럼 이번 약가제도 개편 방안 발표를 두고 다양한 측면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실정이다. 제약사와 제약사노조 입장에서는 약가 인하의 폭과 시기를 재조정해 당분간 이를 유보하자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소비자의 입장과 공공성 확대 측면에서 보면 궁극적으로는 약값을 인하해야 한다는 시점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시각에 따라 논란이 일고 있고, 제도가 개편될 경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의 반발도 거세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하게 결정된 내용은 없다. 당초 보건복지부의 계획은 12월까지 관련 단체 및 업계의 의견수렴을 거쳐 내용을 수정하고 보완한다는 것이었다. 약가 산정이 변화되는 품목이나 그 조정 기준 등도 아직 고시되기 이전이다. 이에 따라 관련 업계와 노동계 등 이해당사자들은 섣불리 행동에 나서기보다는 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