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찍어 못 만들어내는 책 없다
30년 찍어 못 만들어내는 책 없다
  • 이순민 기자
  • 승인 2011.11.0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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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판에서 제본까지 인쇄소 훔쳐보기
6인 6색, 책 만드는 이들의 일과 삶
[삶의현장] 인쇄소 사람들

아침부터 빗방울이 떨어졌다. 모처럼 내리는 가을비였다. 인쇄소로 가는 길, 가을 정취를 기대했다. 높고 푸른 하늘, 낙엽 그리고 책. 독서의 계절, 가을에는 어울리지 않는 인사였다.

목적지는 파주. 10여 년 전, 조성된 출판단지가 있는 곳이다. ‘파주출판도시’에는 출판사, 인쇄소, 유통센터, 디자인 회사 등 300개 남짓한 출판 관련 업체가 몰려 있다. 말 그대로 ‘책 동네’다.

자유로에서 빠져 나온 지 5분가량 지났을 즈음, ‘갑우문화사’가 눈에 들어왔다. 깔끔한 외관의 4층 건물을 창고 혹은 공장처럼 보이는 것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인쇄소로 오며 상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규모가 컸다. 드나드는 차나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출판 산업이 불황이라는 얘기를 오래 전부터 들은 터였다. 인쇄소 경기도 안 좋으려니 생각했다. 인쇄소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제대로 담아갈 수 있을지 걱정됐다. 170여 명이, 여러 건물에서, 수많은 단계로 나눠진 공정을 24시간 이어가고 있음을 알게 된 건 인쇄소를 한 바퀴 돌고 난 후였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10년 전에는 부르는 게 값이었는데”

책이 사람들에게서 멀어진다. ‘2010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1년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을 나타내는 독서율은 65.4%에 그쳤다. 10년 전에 비해 10%p가량 줄어든 수치다.

진짜 위기는 ‘종이’책이다. 태블릿 PC 등 휴대기기의 보급으로 전자책 시장이 독서 인구를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성인의 전자책 이용률은 11.2%로 전년도에 비해 2배나 증가했다. 반면 신간 발행 부수는 1998년 1억 9053만부에서 작년 1억 630만부(대한출판문화협회 자료)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인쇄소에서 첫 번째로 만난 사람은 영업본부에서 일하는 김기철 과장(35)이었다. 출판 시장의 찬바람을 맨 앞에서 맞고 있는 이다. 요즘 어떠냐고 묻자 “말도 못한다”며 손을 내저었다. “출판사도 힘들고, 인쇄소도 힘들고. 10년 전 가격 그대로예요. 경쟁이 심해지면서 인쇄비를 서로 내리니까 시장도 많이 흐려졌어요. 그때는 부르는 게 값이었는데. 조그만 인쇄소들은 문 닫는 곳이 부지기수입니다.”

갑우문화사는 학습지, 제품 설명서 등에서 수익을 올리며 비교적 안정적으로 버티고 있다. 출판 시장이 요동치고 있지만 생산 기반도 든든히 갖췄다. 대량으로 인쇄하는 오프셋 인쇄기만 12대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출판이 음반 시장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했다. 90년대 호황을 누린 음반 시장은 2000년대 초반 MP3가 확산되면서 순식간에 무너졌다. 디지털 음원으로 시장이 재편됐지만 수익 배분에 있어선 아직도 말들이 많다. 몇몇 유통회사가 이익의 대부분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책이라고 다를 바 없다. 디지털이 출판 시장을 잠식하면 인쇄소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인쇄소는 찍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김 과장은 “출판사 사업설명회가 있다”며 급하게 자리를 떴다. 새로운 거래처를 뚫는 그의 발걸음에서 인쇄는 시작된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아래층으로 향했다. 서너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들 환한 불빛이 나오는 탁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인쇄판을 만들 수 있도록 필름을 맞추는 제판실이라고 했다. 제판은 인쇄 공정의 첫 번째 단계다.

흔히 책을 가리켜 저자와 독자의 만남이라고 한다. 둘의 만남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주선자가 필요하다. 인쇄소가 그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인쇄소는 단순히 ‘찍어내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저자가 쓴 글이 인쇄기로 들어가기까지, 인쇄기에서 나와 책의 형태로 독자 손에 쥐어지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이 숨어있다.

인쇄 공정은 크게 제판, 소부, 인쇄, 제본 단계로 나뉜다. 편집 디자인이 끝난 최종 원고가 필름으로 나와 제판실로 넘어오면 비로소 인쇄소가 돌아간다.

제판실의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눈부신 탁자 위에 놓인 필름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린이 책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필름은 먹, 청, 적, 황 색깔별로 출력돼요. 그 외의 색들은 4색의 아주 작은 점들의 조합으로 만들어 지고요. 4장의 필름이 하나로 모여야 비로소 한 면이 완성되는 셈이죠.” 최면철 차장(46)이 필름을 꺼내며 말했다.

필름 하나에는 여러 페이지가 찍혀 있다. 인쇄소에서는 프린터처럼 한 장씩 인쇄하진 않는다. 인쇄기를 돌리는 횟수를 줄이기 위해 ‘모아 찍기’한다. 제판실에선 인쇄의 마지막 단계인 제본에서 인쇄물을 접고, 자를 수 있게끔 페이지를 배치한다. 순서에 맞게 붙인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정해진 위치에서 약간만 벗어나거나 점들이 조금만 어긋나도 인쇄된 결과물을 모조리 버려야 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그들의 작업대는 군더더기 없이 말끔했다. 일에 필요한 테이프와 가위 등의 도구, 일정을 점검하기 위한 달력만이 놓여 있었다. 흰 바탕의 책상은 티끌 하나 허락하지 않아 보였다. 눈매는 매서웠고, 손놀림은 정교했다. 입도 거의 열지 않았다. 간간이 테이프를 뜯는 소리만 들렸다. 경력이 20년은 거뜬히 넘은 베테랑들이 일을 대하는 자세는 성스러웠다.

작업이 끝난 필름들은 바로 옆의 소부실로 보내진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로 요란했다. 소부실은 필름을 인쇄판에 현상하는 곳이다. 파란 알루미늄 판에 필름을 올려놓고 빛을 쬐면(소부), 여백은 날아가고 글자나 그림이 있는 부분에만 푸른 음영이 남는다.

필름을 치수에 맞춰 판 위에 배열하는 사람, 판을 옮기는 사람, 붓으로 이물질을 제거하는 사람, 기계를 작동하는 사람들로 소부실은 분주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제판실과는 분위기가 천양지차였다. 정갑성 차장(51)은 곳곳을 돌며 작업 과정을 하나하나 챙겼다. 인쇄판과 함께한 지도 어느덧 30년이다. 정 차장이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건 일을 시작했던 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그만큼 예전에는 ‘군기’도 셌다. 종로에서 파주까지 이어져온 지난 세월 동안 그에게 판은 곧 삶이었다.

소부실 한쪽에는 필름 보관소가 있다. 인쇄가 끝나도 필름은 따로 챙겨둔다. 증쇄를 위해서다. 인쇄판은 일회용이다. 인쇄기에 들어가면 잉크가 스며들기 때문에 한번 쓰면 버려야 한다. 반면 필름은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추가 인쇄가 필요하면 언제든 꺼내서 바로 인쇄판에 찍기만 하면 된다. 보관소는 필름이 들어있는 서랍들로 가득했다. 한약방의 약장이 떠올랐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디지털이 바꾼 인쇄소 풍경

인쇄 매체는 아날로그다. 불과 10여 년 사이 사람들은 인터넷과 전자기기에 익숙해졌다. 신문과 책을 들고 다니는 대신 네모난 화면을 들여다본다. 디지털은 인쇄소도 바꿨다. 활자로 시작된 인쇄술의 발전은 최근 들어 하루가 다르다. 필름 보관소를 지나 들어선 CTP(Computer to Plate)실이 단적인 예다.

CTP는 필름 출력과 제판, 소부를 전산으로 처리하는 기술이다. 1995년 독일에서 열린 ‘드루파’ 인쇄전시회에서 첫선을 보였다. CTP 공정에선 편집 디자이너로부터 받은 데이터를 컴퓨터로 조판해서 바로 인쇄판에 출력한다. 필름을 뽑고, 일일이 맞추고, 인쇄판에 현상하는 과정이 없다. CTP가 국내에 들어온 2000년대 초반부터 신기술에 뛰어든 조태호 과장(41)은 “출력, 제판, 소부 3가지 공정이 압축됐다”고 말했다. 수작업이 필요 없어서 속도는 빨라졌고, 연산으로 맞추기 때문에 일은 정확해졌다. 일반인들이 알아채기는 힘들 정도지만 질적인 측면에서의 장점도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아직 CTP가 필름 출력을 완전히 대체하진 못했다. 갑우문화사에서도 필름 출력을 더 많이 한다. CTP로 한 작업은 필름처럼 보관할 수가 없다. 바로 인쇄판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잡지처럼 한번 찍고 말면 상관이 없지만 증쇄를 해야 하는 단행본 같은 경우 비용이 많이 든다. 여전히 필름 출력의 비중이 훨씬 큰 이유다. 제판과 소부실에서 필름 사진을 만들어낸다면 CTP실에서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는 셈이다.

CTP실은 낯설지 않았다. 큼직한 인쇄판 출력기를 제외하면 여느 회사 사무실과 다를 바 없었다. 3명이 컴퓨터로 작업하는 모습은 처음 예상한 인쇄소 풍경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변화의 맨 앞에 서있는 이들이다. 당연히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기술을 수시로 익혀야 하는 고충이 따른다. 압박감도 크다. 3가지 공정이 합쳐져서다. 제판, 소부 등이 나뉘어 있으면 각 단계마다 담당자들이 점검하고 수정할 수 있다. 인쇄가 잘못될 가능성도 줄어든다. 반면 CTP는 한 번에 해내야 한다.

조 과장이 인쇄 일을 한 지는 15년이 조금 넘었다. 편집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필름 출력 쪽에서 일하다가 이곳으로 넘어왔다. “매개체가 필름이냐 아니냐의 문제지 필름 출력과 CTP가 별반 다르지는 않아요. 둘 다 인쇄에 들어가기 전에 판을 만들고, 매만지는 건 마찬가지거든요.” 필름과 CTP를 두루 거쳐본 그의 소감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칭찬은 장인도 춤추게 한다

밖으로 나와 옆 건물로 향했다. 종이에 글자들이 찍혀 나오는 순간을 보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인쇄소’다. 문을 열자 트럭만한 인쇄기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쪽에도 인쇄기, 저쪽에도 인쇄기, 인쇄기 너머에도 인쇄기가 있었다. 헤아리지 못할 만큼 쌓여있는 종이들도 보였다. 기계들이 돌아가며 내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바로 옆 사람이 하는 얘기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인쇄소에선 50여 명의 사람들이 주야 맞교대로 일한다. 굉음은 24시간 내내 계속된다. 인쇄는 기계가 하지만 인쇄판을 걸고, 종이와 잉크만 넣는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색상과 농도, 배열을 조정하고, 시험 인쇄를 2~3번 거친 후에야 인쇄기를 돌리기 시작한다. 초점이 제대로 맞았는지 촉각도 곤두세운다. 백지가 먹, 청, 적, 황 색깔별로 따로따로 칠해지고 나오면 글자와 사진들이 박혀 멋들어진 옷을 입는다.

김종찬 차장(51)은 1980년 8월 1일을 잊지 못한다. 인쇄소에 발을 들여놓은 날이다. 하루에 절반을 그곳에서 보냈다. 주말도 따로 없었다. 혈기왕성했던 때였다.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가족들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지금이야 이골이 났지만 집에 가면 녹초가 됐다.

인쇄소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란 말이 실감난다. 인쇄기는 물론이고, 종이와 잉크의 질도 많이 좋아졌다. 예전에는 종이와 잉크 상태가 안 좋아서 적잖이 골치를 썩였다. 먼지를 빼내는 설비와 대형 가습기도 들어섰다. 종이는 온도, 습도에 민감하다. 20도의 온도와 50% 정도의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 습기가 많으면 종이가 휘거나 주름이 잡혀서 이중인쇄가 될 수도 있다.

인쇄소에선 매번 똑같은 걸 찍어내지 않는다. 사이즈도 제각각,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난이도가 높은 인쇄를 할 때면 수고도 배로 든다. 김 차장은 인쇄가 끝나면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색상을 잘 나오게 해서 완벽한 인쇄물을 뽑아야 하는데”라며 욕심을 내다보면 끝이 없다. 그래서 고객들의 반응에 끊임없이 귀 기울인다. 30년의 장인도 “잘 나왔다”는 한 마디에 어린아이처럼 들뜬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제본은 맛있다

귀가 먹먹했다. 인쇄소를 나오자 온 세상이 고요했다. 마지막 단계인 제본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시 소음이 밀려왔다. 갖가지 모양의 기계들은 여전했지만 높은 천장과 탁 트인 광경이 방금 전 인쇄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제본소에선 인쇄된 종이들이 넘어오면 책의 형태로 만들어낸다. 제본소만 해도 작업이 여러 단계로 나뉜다. 자르고, 접고, 붙이고, 표지를 입히고, 포장하는 과정을 거친다. 자동화가 됐지만 전문적인 일들이라서 25명이 각자 맡은 분야에만 매달린다. 인쇄처럼 2교대를 하지는 않지만 야근을 하는 경우가 잦다.

인쇄소가 모두 제본 시설을 갖추고 있진 않다. 갑우문화사도 4년 전에야 제본을 직접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생산성이 높아진 대신 단가는 떨어졌다. 제본만 독자적으로 하던 회사들이 많이 없어졌다. 지속적으로 하락 추세인 출판시장의 경기도 한몫했다.

박향준 부장(50)은 제본소에서만 30년 동안 일했다. 지금 기계가 하는 일들을 일일이 손으로 하던 시절이었다. “이 정도 시설을 돌리려면 당시에는 100명 정도가 필요했어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죠. 그때는 손재주가 좋아야했지만 지금은 눈과 머리를 많이 쓰는 편입니다.”

술도 참 많이 마셨다. 몸으로 때웠던 시절이라 제본 일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술을 좋아했다고 한다. 서울역 뒤쪽 만리동에 인쇄소들이 몰려 있었다. 퇴근하면 자연스럽게 동료들과 어울려 술 한 잔씩 마시며 노곤함을 풀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책과 살아온 그는 책 만드는 일에 ‘맛’이 있다고 했다. 내 손에서 탄생한 책을 사람들이 읽고, 공부한다는 자긍심이다. 낮은 단가 때문에 경력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해서 수준이 높아지고, 보기 좋은 결과물들을 접할 때면 맛 또한 깊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인쇄의 모든 과정을 한 바퀴 돌았다. 점심 무렵이었다. 비로소 트럭들이 드나들고, 사람들이 짐을 싣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 도착했을 때 인쇄소는 을씨년스러울 만큼 무미건조했다. 인쇄소 사람들과 일하는 모습을 마주하고 나자 그곳은 ‘삶의 현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구내식당에서 그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갓 들어온 신입부터 30년이 훌쩍 넘은 장인들로 식당은 꽉 들어찼다. 각자의 일터에서 나름의 색을 내던 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기에 꼼꼼함을 숙명으로 안고 살아온 이들이다. 밥을 먹는 순간 비로소 긴장을 풀어놓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