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페덱스지회
<93>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페덱스지회
  • 김정경 기자
  • 승인 2011.11.3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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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 뭉친 힘, 작지만 강하다
사무실·전임자 없지만 믿음·사명감으로 지켜온 노조
파업 후폭풍 극복하고 굳건히 뿌리 내려

페더럴 익스프레스(이하 페덱스, FedEx)는 통합 글로벌 특송망을 기반으로 한 세계 최대의 항공특송 업체다. 세계 211개 국가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약 640여 대의 자사 화물기를 가지고, 매일 600만 파운드(약 2,722t) 이상의 화물과 330만 건 이상의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사인 페덱스코리아가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페덱스지회(지회장 김창남)는 조합원들이 활동할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도, 전임자도 없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록 노동조합을 잘 꾸려오고 있다.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이 일은 조합원 서로에 대한 믿음과 지도부의 투철한 사명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페덱스 지회
타는 목마름, 노조를 만들다

민주노총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페덱스지회는 2001년 설립됐다. 노조설립에 불을 댕긴 것은 사측의 불합리하고 불투명한 인사와 급여 시스템이었다.

미국계 기업인 페덱스는 국내에서 직영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해 2000년 (주)프라이엑스를 인수하여 페덱스코리아라는 자회사를 세운다. 직원들은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다. 페덱스라는 글로벌 기업에 직접 통합되는 만큼 근로환경과 복지가 상향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심리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페덱스코리아와 페덱스는 같은 회사이며 따라서 동일수준의 근로조건을 제공한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간극 역시 마찰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페덱스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명목 하에 국내에서는 낯선 ‘직무등급제’와 ‘총액임금상한제’를 그대로 적용시켰다. 그러다 보니 오래 일한 사람들이 너무 낮게 책정된 급여에 반발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또한 1년 동안의 개인별 활동을 1~20단계로 평가하는 인사고과제도 역시 정해진 규칙 없이 불투명하게 운영되는 문제점을 함께 드러냈다.

김창남 지회장은 “인사고과점수가 어떤 계산방법에 의해서 산출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회사는 하후상박만을 이야기 했다”면서 “상대평가이다 보니 조직 내 갈등과 경쟁이 증폭 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이런 불합리함을 막아내고, 직원들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2001년 8월 18일 페덱스지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노조활동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는지, 설립 두 달 만에 210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허울만 좋은 외투기업의 실상을 고발하다

외국인투자기업의 고용조건이나 노사관계는 막연히 긍정적일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페덱스가 기치로 내건 ‘사람중심의 건강한 일터’는 이런 편견을 더 공고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외투기업이 노조에 가하는 압력이나, 협상과정에 있어서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내에서 페덱스지회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불법서클’이다. 사측은 노조의 물리적 존재만 인정할 뿐, 그 외의 활동과 권한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김창남 지회장은 “유니온 가입소개조차도 회사가 하며, 그 내용도 여기에 노동조합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끝난다”며 “노동조합이 직접 나서서 이야기할 수 있는 채널 자체가 아예 무시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미국계 기업이다 보니 교섭을 할 때 통역의 어려움이 따르고, 명문화된 단체협약이나 사규 역시도 영문본으로 존재해서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점도 노조활동의 큰 어려움 중 하나다.

ⓒ 페덱스 지회
우린 아직 살아있다

현재 페덱스지회의 조직률은 전체 직원의 1/5 정도다. 2001년 여름, 페덱스지회는 노동조합을 결성한 직후 파업을 진행했다.

파업이 70여 일간 진행되면서 물리적 마찰이 일어나기도 했다. 절차와 정당성을 갖춘 합법파업이었지만, 과정 중 있었던 일부 폭력성으로 인해 집행부에 10억 원에 가까운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떨어졌다. 2심 끝에 금액은 1억4,000만 원선에서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7명의 해고자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파업의 여파와 첫 도전의 실패에서 오는 상실감으로 조직은 뿌리째 흔들릴 만큼의 큰 타격을 받았다. 파업 이후 210명에 달하던 조합원 수는 현재 그 절반 수준인 110명으로 줄었다.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페덱스지회는 부단히 노력했고, 지금까지 굳건히 살아 있다.

물론 아직까지 변변한 노동조합 사무실도, 전임자도 없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꿋꿋이 참아내며 서로 믿고 의지하는 조합원들이 있고, 휴가를 반납하고서라도 조합원을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지도부의 사명감이 있었기에 페덱스지회는 더 큰 꿈을 품을 수 있었다.

현재 페덱스지회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이를 통해 3년째 결렬 중인 단협 문제를 해결함은 물론, 사측에 압력을 가해 변화를 이끌어 낼 계획이다. 또한 조직률을 높이기 위한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벽을 깨고, 서울 중심의 활동이 아니라 전국에 산재해 있는 직원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노동조합이 되겠다는 생각이다. 이를 통해 1/5의 목소리가 더 큰 힘과 호소력을 가진 ‘소통의 중심’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오늘도 페덱스 지회는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달려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