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테리아 균형 맞추면 살 뺄 수 있다
박테리아 균형 맞추면 살 뺄 수 있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11.11.3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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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함께 살기’의 달인, 박테리아
박테리아가 무조건 나쁘다는 편견 버려!
동아사이언스 기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테리아(세균)’를 나쁘다고 생각하다. 병을 옮길 것 같고 더러운 환경을 만들 것 같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박테리아만큼 ‘함께 살기’를 잘하는 존재도 없다. 우리 주변에 사는 착한 박테리아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되면 박테리아가 무조건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박테리아는 억울하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채 이름만 듣고도 ‘나쁜 녀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이 더럽고 위험하다고 생각은 박테리아 중 몇몇 때문에 나왔을 것이다. 배탈을 일으키는 대장균이나 결핵균이나 콜레라균처럼 전염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가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박테리아가 이렇게 나쁜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콩 뿌리의 착한 박테리아

대표적인 착한 박테리아를 꼽자면 ‘뿌리혹박테리아’를 이야기할 수 있다. 이 녀석은 콩의 뿌리에 난 혹에서 살면서 콩에게 도움을 준다. 뿌리혹박테리아가 하는 역할은 공기 속에 있는 질소를 모아 콩이 흡수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질소는 식물의 생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흡수된 질소는 단백질로 만들어져 동물과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영양분이 된다.

하지만 공기 중 78%나 차지하는 질소를 콩 등의 식물이 흡수할 방법이 마땅찮다. 뿌리혹박테리아는 바로 이 부분을 도와주는 것이다. 공기 중에 있는 질소를 합성해 콩이 흡수하도록 만들어주고, 그 대가로 영양소와 산소를 얻는 것이다. 이렇게 콩과 뿌리혹박테리아는 서로 도우면서 함께 사는 ‘공생 관계’에 있다.

착한 박테리아는 콩 속에만 사는 게 아니다. 우리 인간의 몸속도 자세히 살펴보면 착한 박테리아를 많이 찾을 수 있다. 우리 몸에는 100조~1,000조 개 정도의 박테리아가 살고 있는데, 이는 사람의 세포보다 훨씬 많은 어마어마한 숫자다. 사람의 세포는 약 60조 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몸속에 사는 박테리아의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사람의 피부에 사는 박테리아는 약 150종, 장 속에 사는 박테리아는 약 400종이나 되는 것이다. 물론 이중에는 앞서 언급했던 대장균 등처럼 질병을 일으키는 나쁜 박테리아도 있다. 하지만 뿌리혹박테리아처럼 사람과 공생하는 착한 박테리아도 많다.

▲ 뿌리혹박테리아 ⓒ 박태진 기자
우리 몸속에도 착한 박테리아가?

우선 피부에 사는 착한 박테리아는 피부에 해로운 병원균이 살지 못하게 쫓아낸다. 또 피부에서 나오는 지방을 분해해서 피부를 촉촉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샤워를 너무 자주 하면 오히려 착한 박테리아를 해쳐서 피부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우리 몸에 있는 소화기관 중 하나인 대장 속에 사는 박테리아는 ‘제3의 장기’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한 일들을 한다. 사람에게 꼭 필요한 비타민을 만들어 주고, 사람이 소화시킬 수 없는 탄수화물이나 단백질도 소화시킬 수 있게 돕기 때문이다. 사람이 음식을 먹고 얻는 에너지의 10~15%는 장 속 박테리아가 소화시켜 준 것이다.

장 속 박테리아는 면역작용에도 한 몫 한다. 이들은 탄수화물을 발효시켜 ‘짧은 사슬 지방산’을 만드는데, 이 물질은 대장세포를 튼튼하게 만들어 암 같은 병에 잘 걸리지 않게 해준다. 또 핏속에 있는 나쁜 지방인 콜레스테롤도 낮춰 준다. 나쁜 박테리아들이 우리 몸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도 장 속 착한 박테리아다.

장 속 박테리아는 비만에도 영향을 준다. 장 속 박테리아의 98%는 ‘펄미큐티스’라는 박테리아와 ‘박테로이데티스’ 박테리아로 나눌 수 있는데, 미국 워싱턴대학교의 제프리 고든 박사팀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비만 생쥐에게 펄미큐티스 박테리아가 많았다.

정상 생쥐의 장에 펄미큐티스 박테리아를 넣었더니 비만 생쥐가 됐는데, 이는 펄미큐티스 박테리아가 소화가 잘 안 되는 음식을 잘게 부숴서 소장에서 흡수되기 쉬운 당과 지방산으로 바꾸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장 속에 사는 펄미큐티스 박테리아를 조절하면 살을 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초파리의 경우는 장 속 박테리아가 성장 속도와 몸 크기에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서울대 이원재 교수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장 속 박테리아를 모두 없앤 초파리 유충과 보통 유충의 몸 크기를 비교했는데, 박테리아가 없는 유충의 성장 속도가 느리고 몸 크기도 작았다. 초파리 유충에 장 속 박테리아를 다시 넣어줬더니 성장 속도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박테리아로 병을 치료한 연구 결과도 있다. 뉴욕 몬테피오레 병원에서 한 환자가 항생제를 너무 많이 처방받아 장 속 박테리아들의 균형이 무너졌다. 의사는 환자의 장에 남편의 똥을 넣는 치료를 했고, 똥 속에 있는 박테리아들이 장 속 박테리아의 균형을 되찾아 줬다.

이렇게 자세히 살펴보면 더럽고 해롭다고 생각했던 박테리아도 다양한 일을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제는 박테리아에 대해 덮어놓고 나쁘다고 생각하는 걸 버려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우리와 함께 사는 박테리아에게 고마움을 가져야 할지 모르겠다.

‘맹장’은 장 속 박테리아를 위한 공간?

우리 몸에는 장 속 박테리아를 위한 비밀 장소도 마련돼 있다. 우리가 흔히 맹장이라고 부르는 ‘충수’다. 대장 끝에 달린 조그만 꼬리 같은 기관인 충수는 오랫동안 필요 없는 기관이라고 생각돼 왔다. 그런데 미국 듀크대 연구팀의 실험결과, 이곳이 착한 박테리아가 숨는 공간이라는 게 밝혀졌다. 설사 같은 병이 나서 장 속의 박테리아가 모두 비워질 때, 착한 박테리아들이 충수에 숨다가 병이 나으면 나와서 나쁜 박테리아들보다 먼저 장 속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