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메이커에 끼지도 못한 양대 노총
뉴스메이커에 끼지도 못한 양대 노총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1.11.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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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노조운동 향한 반란 일어나다
2011년 최대 이슈는 한진중공업과 희망의 버스
키워드로 본 2011년 노동뉴스

2011년 노동뉴스의 시작과 끝은 부산 영도였다.

<참여와혁신>은 2011년 노동계를 장식한 키워드를 들고 마이크를 내밀었다. 블랙홀이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할 것 없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을 첫 손가락으로 꼽았다. 노동계가 연초에 핵심 사안으로 지목했던 복수노조, 타임오프와 관련한 노조법 전면 재개정 투쟁은 후순위로 밀렸다. 양대 노총이 시민사회와 손을 잡고 야심차게 준비했던 ‘국민 임투’는 소리만 요란했을 뿐 그 결과는 초라했다.

희망노총의 등장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없는 세상, 85호 크레인, 김진숙은 ‘노동’의 키워드를 넘어섰다. 거기에는 듣도 보도 못한 버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희망의 버스’ 절망의 시절에 시동을 건 이 버스는 차선이 필요 없었다. 운전사도 없었다. 경유인지 천연가스인지 연료도 불분명했다. 승객도 정체불명이었다.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총사령탑을 자부했던 민주노총도, 최대의 전투력을 자랑했던 금속노조도 이 버스를 탈 때는 깃발을 내렸다.

박원순, 안철수가 뒤흔든 한국의 정치지형 변화는 그렇게 뜬금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희망의 버스가 보여준 노동계 지형의 변화는 아이티 지진을 능가할 정도의 파괴력을 지녔다. 일부에서는 “민주노총이 있냐? 난 희망노총만 안다”는 말이 터져 나왔고, 오랜 노동운동의 활동가나 위원장의 이름 대신 시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고장 난 자본주의’에 맞서 월가를 시작으로 전 세계가 요동쳤다. 한국에서는 ‘고장 난 노동조합운동’에 맞선 반란이 일어난 셈이다.

노동운동의 양대 산맥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뉴스메이커가 되지 못했다. 지난여름 민주노총의 한 간부가 물었다. 지금 위원장이 대한문 앞에서 단식을 하고 있는데 왜 이리 언론에서 다뤄주지 않느냐고 한탄을 하였다. 고액의 임금과 높은 회전의자를 팽개치고 두 주먹 불끈 쥐고 돌아온 투사 위원장을 뽑은 한국노총은 지난 11월 16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힘(?) 있게 개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정말 기자들은 쓰고 싶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노조법 전면 재개정 투쟁과 일천칠백만 노동자를 위해 헌신하는 위원장들의 진실성을. 하지만 슬그머니 사라지는 구호를 쓰자니 알갱이가 없고, 때리자니 애처로울 뿐이다.

희망에 감춰진 절망들

‘희망의 버스’ 뒤에는 숱한 절망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 절망은 ‘희망’의 쏠림 때문에 더 초라했다. ‘우리는 올빼미가 아니다’ ‘밤에 잠 좀 자자’며 주간연속2교대제를 요구했던 유성기업 노동자의 이야기는 보수라 지칭되는 언론에서조차 요란하게 이슈로 등장시켰지만, 그 결과는 언론에서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개다!”를 복창하며 파업을 접고 공장에 들어간 노동자의 이야기는 너무 황당하고 거짓 같은 ‘팩트’라서 그런지 눈길을 잡지 못했다.

지성의 상아탑 대학에서 저임금 청소노동자에게 청구한 수억 원의 돈은 수십억 수백억의 뇌물에 단련되고 세뇌된 한국 사회에서는 바닥에 버려져 달라붙은 껌처럼 무심코 짓밟고 스쳐지나가고 있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은 쌍용자동차 노동자 및 가족들의 죽음 소식이다. 잠 든 엄마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어린 아이는 쌍용자동차에서 구조조정 된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는 전화기가 고장이 나 애달픈 아이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엄마를 애타게 부르며 아이는 아빠를 기다렸다. 이미 엄마의 몸은 차가웠는데 말이다. 그 밤과 낮을 보낸 아이의 얼굴과 마음이 한동안 눈앞에 맴돌았다. 쌍용자동차 열아홉 번째 죽음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지만 누구도 그 해결책은 알지 못한다.

노동조합 활동가보다는 정치인, 연예인, 문화예술인의 활동이 돋보였던 2011년 노동운동. 운동의 폭을 넓혔다고 평가하자니 자판 위의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의 집안 문제를 자기 식구들의 힘과 지혜로 풀지 못할 수는 있다. 하지만 연대의 손길이 있는데, 이 손길마저 애써 외면하고 집을 비운 꼴이 된 형국을 뭐라 표현할까. 변혁의 주력부대임을 자랑하던 그 위대한 계급의 지도자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노동부에 항복문서를 쓰는가 하면, 정치인과 악수하는 길이 노동자의 행복을 위해 빠른 길이라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지금의 분노는 삭히고 내년에 의사당의 좌우 의석수를 바꾸는 게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그 의사당에 내 자리의 위치를 미리 점찍으려는 발걸음에 집중하는 걸까.

변신과 삽질에는 이유가 있다

노조법 전면 재개정 투쟁을 이명박 정부 아래서는 결코 하지 않겠다는 한국노총의 변신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갈라진 진보정당을 통합하려고 다른 노동현안을 뒤로 한 채 올인한 민주노총의 노력이 헛된 삽질에 불과했다고 비아냥거리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이미 2011 노동키워드는 여의도의 한국노총, 정동의 민주노총에서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양대 노총의 조합원들은 한진중공업 희망의 버스와 함께 홍대 청소노동자의 투쟁을 비롯한 저임금 노동자의 최저임금투쟁과 비정규직문제를 올해의 주요 노동뉴스로 뽑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노조법 전면 재개정과 관련한 복수노조, 타임오프 제도는 총연맹이나 산별노조의 활동가들이 주목하였다.

한국노총에서는 합법의 모든 ABC를 동원해 파업을 진행한 SC제일은행 투쟁과 신입직원 초임삭감에 맞선 공공기업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이밖에도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연쇄 죽음과 유성기업 사태, 공무원 정치기본권, 의료 민영화,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의 타계, 건설업계의 유보임금 등이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