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교보핫트랙스노동조합
<94> 교보핫트랙스노동조합
  • 이순민 기자
  • 승인 2011.11.3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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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그들의 무한도전
평균연령 28.5세…성추행·연장근무에 노출
단체행동 41%만이 찬성…“교육이 가장 중요”

▲ 2010년 창립2주년 기념행사 ⓒ 교보핫트랙스노조
교보핫트랙스는 ‘복합 문화 쇼핑공간’을 표방하는 문구, 음반 유통회사다. 전국에 걸쳐 있는 15개의 ‘핫트랙스’ 매장을 운영한다. 이 중 14개의 매장이 교보문고 내에 있다. 1991년에 ‘교보문보장’이라는 사명으로 시작했다가 2005년 교보문고에 인수됐으며, 2007년부터 지금의 사명을 쓰고 있다. 교보핫트랙스의 모든 지분은 교보문고가 가지고 있다. 김성룡 교보문고 대표이사가 교보핫트랙스 대표이사다.

교보핫트랙스노동조합(위원장 이민욱)은 2008년 7월에 설립됐다. 노동조합 설립을 주도했던 이들이 1기에 이어 현재의 2기 집행부를 이끌고 있다. 교보핫트랙스에는 오랫동안 노동조합 없이 노사협의회만 운영되고 있었다. 노조를 설립한 ‘문제의 80년생’들은 2007년 노사협의회에서 만났다.

▲ 이민욱 위원장 ⓒ 교보핫트랙스노조
겁 없는 80년생들 “욱해서 만들었다”

사실 교보핫트랙스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건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2004년에 노조가 꾸려져 설립신고까지 마쳤다. 하지만 이후 노조는 유야무야됐다.

문제의 80년생들이 모인 2007년 노사협의회에서는 퇴직금 누진제가 폐지됐다. 도입된 지 불과 3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민욱 위원장을 비롯해 각 영업점에서 모인 젊은 노사협의회 위원들은 반발했다. 제대로 시행되기도 전에 없애는 건 잘못됐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돌아온 대답은 억울하면 노조 만들라는 말이었다.

겁 없는 80년생들은 결국 ‘사고’를 쳤다. 부당한 현실을 참지 못한 5명이 모여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했다.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의 상담을 받으며 4개월간 준비했다. 그리고 2008년 대구에 내려가 설립신고를 하고,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에 가입했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데 흔히 따르는 불이익이 두려울 법도 하지만 이 위원장의 대답은 의외로 시원했다.

“제 이름에 ‘욱’자가 들어가잖아요. 그야말로 욱한 거죠. 다행히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도 있었고.”

예전부터 노동조합에 관심을 가져왔거나 별다른 ‘의식’이 있었던 건 아니다. 일을 하며,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며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몸으로 배웠다. “회사에서 회유가 들어올지 몰라 한동안 잠적”까지 하면서도 ‘헌법에 보장된 정당한 권리 찾기’에 나선 이유다.

▲ 2011년 1차 임시대의원대회 및 수련대회 ⓒ 교보핫트랙스노조
‘무방비 매장’엔 직원은 없고 고객님만 있다

교보핫트랙스노조의 조합원 중 70~80%는 매장에서 일한다. 1년 중 매장이 쉬는 날은 설날과 추석 당일 이틀뿐이고, 나머지 363일을 교대로 근무한다. 작년 추석에는 회사에서 단체협약에 명시된 ‘추석 휴무’ 규정을 어기고 문을 열려고 했다. 결국 광화문점은 지방의 관리자들을 투입해 영업을 강행했지만 노조에서 단체로 피켓 시위에 나선 결과 올해부터는 1년 중 2일 휴무가 지켜지고 있다.

근무시간은 오전 9시 반에서 오후 6시 반, 오후 1시에서 10시까지의 2개 조로 나뉜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손님이 많은 오후 시간에 주로 배치된다. 영업시간 외의 업무도 많아 근로기준법이 규정한 연장근로 한도(주 12시간)를 넘어서는 건 예사다. 휴게시간은커녕 일이 바쁠 땐 화장실 갈 틈도 없다. 근무시간 내내 서서 일해야 하는 고충도 있다.

특히 여성 조합원들은 성추행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몸을 더듬거나 ‘몰래 카메라’를 찍는 사람들이 많지만 보호 장치는 전혀 없다. 부산에서 일하는 조합원의 경우, 성추행을 당했지만 관리자로부터 “잠재 고객이니 참으라”는 말만 들었다. 회사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개인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문구류를 판매하기 때문에 도난이 일어날 확률도 크다. 감시와 수습은 온전히 조합원들의 몫이다. 이 위원장에게도 아픈 기억이 있다. “강남점에서 일할 때예요. 협력업체 직원(핫트랙스의 만년필, 다이어리 등 브랜드 상품 판매 코너는 해당업체가 관리한다)이 절도범으로 추정되는 학생을 잡아와서 확인을 했어요. 근데 그 학생 부모가 찾아와 따지는 바람에 무릎까지 꿇으면서 통사정했습니다.”

미스터리 쇼퍼를 통한 서비스 평가 또한 수시로 이뤄진다. 결과가 인사 고과에도 반영되지만 객관성이 없다.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펜 끝에 그들의 삶이 좌우된다.

▲ 2009년 3차 임시대의원대회 ⓒ 교보핫트랙스노조
젊음의 행진은 계속된다

교보핫트랙스노조는 얼마 전 조합원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평균 연령 28.5세의 젊은 조합원들은 ‘단체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41%만이 찬성한다고 답했다. 그래서 집행부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터에서의 억울함을 노동조합 활동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다. 분기마다 전국에 퍼져 있는 조합원들을 만나면 한 달이 꼬박 지나가지만 교육에 가장 많은 노력을 투자하는 이유다. 제도, 법 같은 딱딱한 내용은 일부러 제쳐둔다. 쉽게 지나치지만 정당한 권리들을 깨우칠 수 있는 사례들과 동영상 위주로 진행해서 노조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자 한다.

성과는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교보핫트랙스노조는 올해 3월부터 6월까지 진행된 단체협약 및 임금협약 교섭 과정에서 전국 동시다발 1인 시위를 벌였다. 조합원들은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일군 영업이익 56억은 어디로?’, ‘교통지원비는 노동부도 인정한 평균임금이다’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자발적인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얼마 전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조합원 10여 명이 모였어요. 적은 숫자로 보일 수도 있지만 설립 초창기에는 집행부만 참가했었거든요. 조합원들이 전국에 나뉜 데다 교대 근무하는 걸 고려하면 큰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요즘 젊은 층은 무기력하다’고 말한다. 노동조합에 대한 무관심을 개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시대, 취업이 어렵고 결혼도 하기 힘든 불안정한 삶을 치열하게 산다. 노동운동도 마찬가지다. ‘젊음’이 궁금하다면 교보핫트랙스노조의 행보를 주목할 일이다. 여기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