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Win의 노사관계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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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여와혁신
  • 승인 2012.02.0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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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배려의 철학이 빚어낸 노·사 하모니
노사, 서로의 문제 해결해주는 ‘동반자’
[노무쟁이가 들려주는 노사관계이야기] 전 YNCC 김형태 관리총괄임원

여천산업단지 내에서 YNCC는 사고 사업장으로 불린다. 그런 YNCC가 2011년 ‘올해의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이 같은 성과는 하루아침에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니라 노사간 끊임없는 노력으로 맺은 결실이다. 당시 노무관리를 담당했던 김형태(58) 관리총괄임원(상무)을 만나 노사 모두 Win-Win 할 수 있는 비법과 노무쟁이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노무관리, 끊임없는 노력이 필수

여천NCC는 1999년 대림산업(주) 석유화학사업부와 한화석유화학(주)(현 한화케미칼)의 NCC부문을 합쳐 국내 최초의 민간 자율 빅딜로 탄생하게 됐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이뤄진 합병이었지만 사사·노사·노노간 갈등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전면파업이 두 차례나 발생할 만큼 불안한 노사관계였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2011년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그리고 이런 성과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노무담당자의 노력이 있었다.

우리사회에서 노무 담당 업무는 대표적인 ‘3D직종’에다 비전 없는 ‘한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노사관계가 안정적인 기업이라면 아예 관심 밖이고, 불안한 기업에서는 ‘잘해야 본전’인 게 바로 노무다. 그러나 노사관계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은 고스란히 ‘노무담당자’의 몫이다. 김 상무는 이런 노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시대가 왔고, 그러기 위해선 노무담당자의 끊임없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한다.

“노사가 서로를 무의미한 존재로 인식하던 것을 끝내야 할 때가 된 듯합니다. 세계적인 초우량기업에서 노사관계가 나쁜 회사는 한 곳도 없습니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무한경쟁시대에 잘해줬다 못 해줬다가 아니라, 한 차원 높여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해결해주고 부족한 점은 보완해주는 ‘동반자’라는 생각을 가져야합니다. 동반자가 되려면 우선 있는 그대로 허심탄회한 소통을 많이 해야겠죠. 그리고 안됐을 때는 경영자도 정직하게 책임을 져야합니다. 어려울 때만 우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잘 될 때도 우리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합니다.”

회사마다 사정은 달라도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이를 수행하는 노무의 역할 또한 시대적 산물일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의 간판만 존재하던 초창기에는 노무관리에 기술이나 이론적 지식은 요구되지 않았다. 그 시기 노무에 입문한 김 상무의 성장기는 한국노사관계 발전사와 맥을 같이 한다.

“당시는 원칙을 갖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노동자 대투쟁이 지나고 노동조합과 회사 모두 준비되지 않은 채 석유화학 공장 가동을 처음으로 중단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돌이켜 보면 1991년도 이전까지 합병반대 투쟁도 있었고 87년 노동자대투쟁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회사가 일반적인 관리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봅니다. 회사가 win-lose 게임을 한 거죠. 늘 승리해왔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노사는 입장이 바뀌게 됐습니다. 회사가 노사관계 싸움에서 완패를 하게 됩니다.”

IMF 경제위기는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들어 놓았다. IMF체제 아래 금융뿐 아니라 경영 일반에 대해서도 체질 개선 요구가 일어났고, 노사관계 역시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10여 년 이상 양보하고 밀려서 미봉책으로 타협하지만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노사 분야에도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하게 됩니다. 현장 노무관계자들이 원칙을 세우고 현실에 맞는 인사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현장에 접목시키는 과정을 통해 서서히 변화하게 되죠. 노무쟁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늘 안타까운 게 뭐냐면 뻔히 예측하고 예견하지만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결국 소통과 공감의 문제인데, 노사관계 전체 흐름으로 볼 때 처음엔 아주 일방적인 관리였죠. 노사관계가 말이 노사관계지 대등한 관계가 유지되지 않은 가운데서 어떤 사건이 촉발되고, 노동계가 투쟁을 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서서히 바뀌어 가는 것 같습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노사관계, 정답 아니라 최상의 방안 모색하는 과정

노사관계와 관련된 업무를 잘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김 상무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일을 잘하려면’이라는 것에 더하기를 하자면,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질문을 많이 하라는 겁니다. 자기 자신한테도 그렇고 어떤 회의나 미팅이든 입체적인 생각을 하면서 자기가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해요. 질문에서 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질문을 하는 것은 사실 자기하고의 약속이고 새로운 출발점이기 때문이죠. 나는 협상에서도 질문을 많이 합니다. 회의에서 리더는 직급이 높은 사람이 아니고 질문하는 사람이 결국 리더가 된다고 생각해요.”

노무담당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술과 담배다. 실제로 많은 노무담당자들이 술에 ‘쩔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의 시스템 상 많은 노무담당자들은 경영의 일관성과 흐름을 읽고 업무에 임하기보다는 주어진 미션에 도달하기 위해 단기적인 접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들은 본의 아니게 ‘거짓말쟁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 ‘술로 사람을 구워삶는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술을 마시지 않는 노무쟁이 김 상무는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것일까?

“사람관계에는 서로 깊이 배려하는 게 있어야 합니다. 저는 늘 경영의 흐름과 상대방에 대한 생각을 하고, 한 번 던진 이야기도 그냥 흘려듣지 않습니다. 불편하니까 잊어버린 체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더라도 해결하려 노력하고 그것이 오랜 시간 축적 되면서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노사관계는 고도의 신뢰게임입니다. 게임을 하기 전, 평상시에 신뢰를 축적해야 임·단협 시 서로간의 믿음이 결실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저는 술은 못 마시지만 대화하는 건 참 좋아합니다. 역량은 안 되지만 노력은 좀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신뢰의 밑바탕에는 전문성 있어야

사실 소통을 하려면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 상무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시도를 줄기차게 해오고 있었다.

“상대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폭넓게 공부해야 합니다. 신뢰를 가져오려면 자기 분야에 대해 충분한, 그리고 깊이가 있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실천력이 따를 때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감이 생깁니다. 대부분 ‘상사가 날 신뢰하지 못해’라고 푸념하곤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구성원이 상사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본인이 신뢰를 얻고 싶다면, 평소에 이론적 배경이나 지식을 키우고 현실을 고려해 실행에 옮기는 지혜를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조직생활을 하는 사람은 본인 스스로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노사관계도 이와 똑같습니다.”

한동안은 국내에 미국식 인사관리가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경영의 측면에서 노동조합 운영에 따른 비용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김 상무는 미국식 인사관리 방식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요즘 섬기는 리더십 얘기가 나오는데 앞으로는 그런 쪽으로 굉장히 발전돼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선 사람에 대해서 더 이해하는 게 바탕이 돼야 하는데, 이걸 전부 관리 대상으로 보고 더 확장해서 인간을 다스리려고 하는 데서 노사문제가 촉발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뷰가 있던 지난해 12월 27일은 김형태 상무가 임원계약 해지를 통보받은 날이기도 했다. 김 상무는 늘 “언젠가는 떠날 것이고 떠날 땐 떠나더라도 할 일은 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그런 그도 30년 넘게 지켜온 회사를 떠난다는 사실에 사뭇 상기된 얼굴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웃는 얼굴로 인터뷰에 임하는 프로다운 모습에서 새롭게 펼쳐갈 그의 내일 역시 밝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김 상무의 노무철학 엿보기

‘창의력은 훈련을 통해 키워지는 것’  
평생의 나침반을 만나다

#1 1988년 호남에틸렌 노무계장 시절. 아주 우연한 기회에 신문을 통해 창의력 개발과정을 접하고 강의를 신청했다. 남쪽 끝에서 기차를 타고 왔는데 수강생 미달로 강의가 취소된 지도 모른 채 강의실에 갔더니, 삼성전자의 교육담당 계장이 먼저 와있고 자신하고 둘만 강의실을 채운 것. 조르고 졸라 어렵사리 강의를 받았단다. 김형태 상무에게 평생의 길잡이 노릇을 해준 에드워드 드 보노의 ‘여섯 색깔 생각 모자’ 등 생각하는 훈련이었다.
김 상무는 “생각과 창의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고 훈련을 통해서 저렇게 이루어지는 거구나.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 천재는 떨어지는 게 아니고 연습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걸 실감을 하게 됐다”고한다. 강의를 듣고 난 후부터 김 상무는 “노사관계 풀어내는 것도 윈-윈 하도록 서로 간에 달리 생각해서 접근해보자 하는 것을 그때부터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얘기했다”고 한다.

임금에 철학의 옷을 입히다

#2
1985년 노무계장으로 일을 시작하던 시절, 승진을 먼저 한 사람이 한 1~2년 지나면 임금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행하고 있었다. 당사자들이 문제제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인 분석보다는 하후상박의 결과 때문에 그런 거라고 둘러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승진을 하면 적용되는 임금체계가 달라지는데, 임금체계를 잘못 디자인한 문제였던 것. 당시에는 ‘이 사람이 먼저 왔고 먼저 승진했으니 그에 맞는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철학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소급분을 모두 줄 수는 없더라도 임금체계를 수정해서 보상을 하려 애썼다고 한다.

조삼모사 소급분 적용을 정기 승급 시에 적용하다

#3 국내 기업들은 일정한 기준을 정해 급여 승급을 한다. 하지만 임금협상을 해야 하는 경우 노사합의 결과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합의 이후 승급분을 보전하는 것이 관례다. YNCC 노사는 임금협상이 빨리 끝날수록 이익이 되는 구조로 패러다임을 바꿔보는 시도를 하게 됐다.

소급제도의 폐지와 함께 정기 승급하는 날짜를 7월 1일로 당겨서 임금인상효과를 누리고, 노사합의 과정을 명분세우기와 비효율적인 낭비로만 볼게 아니라 효율적이지 못한 부분에서 생산성을 높여보자는 공감대를 노사가 형성한 것이다. 이제는 노사가 조기협상과 타결의 효과를 알기 때문에 서둘러 12월에 교섭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