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부루벨코리아노동조합
<96> 부루벨코리아노동조합
  • 김주도 기자
  • 승인 2012.02.0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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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만들기 참 잘했다”
모집 사흘 만에 가입률 80% 기록
면세사업 에이전시 최초의 노동조합

면세사업 에이전시 업체인 부루벨은 1940년대 말 프랑스에서 설립된 외국계 기업이다. 한국에는 1960년에 부루벨코리아를 설립하고 영업 중에 있다.

지난 2010년 10월, 부루벨코리아노동조합은 면세사업 업계에서 에이전시 업체로는 국내 최초로 설립됐다. 이후 단체협약을 통해 감정노동 수당을 쟁취하는 등 뚜렷한 활동과 성과를 보이고 있다.

ⓒ부루벨코리아노동조합
우리를 소중히 대해 달라

김성원 위원장은 노동조합을 설립하기로 결의한 이유로 열악한 임금, 근무시간, 감정노동의 스트레스 등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직원을 대하는 사측의 태도였다고 했다. 면세점 업계에서는 당시 “부루벨만 아니면 된다, 그래도 우리는 부루벨보다는 낫지 않냐”는 이야기까지 떠돌 정도로 사측의 대우는 열악했다.

열악한 대우만큼 그 반작용으로 노동조합 설립은 빠르게 진행됐다. 2010년 6월, 노동조합 설립 준비를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고, 처음에는 20명 내외가 모여 논의를 시작했다. 이후 3~4회에 걸쳐 모임을 가진 후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회사에 질려’ 노동조합 설립을 포기하고 퇴사한 직원들도 있는 등 쉽지만은 않았다.

이후 노조는 전국의 매장에 팩스로 설립을 알리는 소식과 가입원서를 보냈는데, 이 때 사흘 만에 가입률 80%(약 640명)를 기록했다.

김 위원장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가 직원들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태도 부분이 더 크다”고 한다. 다른 면세점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런 부분에 실망해 부루벨코리아에서 이직한 직원들이 ‘수두룩하게’ 보인다고 했다.

그 여파로, 현재 28세 전후인 업계 평균 연령에 비해 부루벨코리아의 평균 연령은 그보다 높은 31~33세가량이라고 한다. 새로 입사한 젊은 직원들은 채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나갔고, ‘남는 사람만 남는’ 현상이 계속 됐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인력 수급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업무 숙련도에 있어서도 중간급 직원이 없기에 그로 인한 현장에서의 어려움이 크다.

ⓒ부루벨코리아노동조합
감정수당, 돈이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사정이 있다 보니 노조는 사측과의 단체교섭에서 감정노동 수당을 쟁취하는 데 중점을 뒀다. 김 위원장은 면세업계 최초의 사례라며 감정노동 수당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감정노동 수당은 단순히 몇 만 원의 수당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회사가 인식하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또한 조합원들로 하여금 “우리가 그렇게 힘들다는 걸 회사도 알고 있다고 믿게 하고 싶다”는 이유도 있다.

조합은 감정노동 수당 외에도 조합원들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각종 소모임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향후에는 회사와 협의를 거쳐 전문적인 감정 해소 프로그램도 도입할 계획이다. 또한 앞으로는 건강검진에 우울증 진단 항목을 추가해 조합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해 사측과 함께 해결해 나가는 길을 모색하려 한다.

에이전시 업체라는 특성상, 조합원들은 여러 현장에 흩어져 각기 다른 노동환경에서 근무 중이다. 이 때문에 노조는 잦은 현장 방문을 통해 조합원들을 만남으로써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려 노력 중이다. 입점해 있는 각 업체의 특성상 노동조건 또한 상이하기 때문에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소통하는 것이 조합의 현안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 지름길이라는 판단에서다.

ⓒ부루벨코리아노동조합
“노조 만든 것 자체가 잘 한 것 같다”

김성원 위원장은 지난 1년여의 활동을 돌아보며 노동조합 결성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저도 언젠간 이 회사 그만둘 텐데, 그 이후에 들어오는 다른 사람은 적어도 내가 받던 그런 불합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해야겠다 싶어 결성한 것 자체가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향후 과제를 묻자 사측과의 소통 관계를 꼽았다. “노동조건에 있어서 싸울 때는 싸워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신뢰를 갖고 나가는 게 맞다”던 김 위원장은 면세사업 에이전시 최초로 노동조합이 설립되다 보니 “회사가 굉장히 긴장하고 두려워했던 것 같다”며 그러한 갈등을 해소하고 싶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근무 시간 개선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현재 12시간 가까이 근무하는 면세업계 관행에서는 “아이들 얼굴 볼 시간도 없을 정도로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가 없다”고 한다.

또한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면세점의 관행을 바꿔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휴무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개인적인 휴무일이더라도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매장에 일이 생긴다면 처리를 하고 쉬어야 하는 현행 체계에서는 제대로 된 휴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노동조합 활동에 있어 “항상 모자라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가는 게 옳다”고 한다. 부족하다고 생각해야 현장에 대해 더 많이 알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조합원들이 원하는 부분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