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간 노동자, 점령인가 투항인가
여의도에 간 노동자, 점령인가 투항인가
  • 참여와혁신
  • 승인 2012.02.0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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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OCCUPY! 여의도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들의 행보

ⓒ 참여와혁신 포토DB
정치의 회오리가 몰려오고 있다. 2012년은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함께 맞물린 해이다. 애써 무시하든 말든 이 회오리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양대 노총의 정치 발걸음도 분주하다. 한국노총 위원장은 민주통합당의 최고위원이 되었고, 민주노총 위원장은 통합진보당 배타적 지지를 조합원한테 승인받으려고 분주하다. 노동자의 국회 진출, 지난 8년의 역사를 돌아본다. 17대 국회에 진입했던 단병호, 배일도 전 의원과 18대 국회에서 활동 중인 김성태, 홍희덕, 홍영표 의원의 발자취를 추적한다. 그들의 행보에서 19대 국회에 도전하는 노동자들의 미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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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구팽 당했으나 재기 노리는
배일도

비정규직 안정 위해 노력했지만
당도 노동계도 버렸다

지난해 10월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일 유권자들은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 무소속 박원순 후보 외에 투표용지에 인쇄된 또 한 명의 후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선거운동기간 내내 출마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그 후보는 배일도 전 의원이었다.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초대 위원장과 9, 10, 11대 위원장을 역임한 배일도 전 의원은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17대 국회에서 활동했다. 배 전 의원은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노동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18대 국회 재입성에 실패한 이후 사회발전전략연구원을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당시 배일도 전 의원을 보좌하던 한 보좌관은 “한나라당 소속이면서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등 한나라당에 개혁적 이미지를 심는 데 기여했다”고 배 전 의원을 평가했다. 배 전 의원은 17대 국회에서 근로기준법,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 보좌관의 설명에 따르면 “비정규직 등 개별화 된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개정안의 핵심이었다.

이 보좌관은 이어 “당시 노동유연성을 강조하던 한나라당 내에서 유연성에 안정성을 가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한나라)당이 당혹스러워했다”며 “배 의원은 미흡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정성 확대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다른 한편으로 배 전 의원은 더 이상 호소할 데 없이 궁지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국회의원이기도 했다. 배 전 의원의 도움을 받았던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17대 국회에 배일도 의원이 있어서 우리 문제가 알려질 수 있었다”는 말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하지만 성과보다는 좌절이 더 컸다. 한나라당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성향의 배 전 의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환경노동위원회 한나라당 간사를 맡기도 했지만, 노동계 출신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대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노동계와 대립하고 있던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라는 이유로 노동계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다.

배 전 의원의 보좌관은 “노조활동만으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오라는 곳이 없었다”면서 “노사평화선언 등으로 인해 민주노총으로부터 징계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당시 열린우리당에는 노동계 출신 인사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노동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에 뛰어든’ 배 전 의원을 받아준 곳은 이미지 쇄신이 필요했던 한나라당이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에서 필요한 것은 개혁적이라는 이미지였을 뿐, 노동문제의 해결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게다가 ‘필요에 의해서’ 영입했지만, 당시의 관행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돌출행동’을 자주 보여준 배 전 의원은 한나라당으로서도 달갑지 않았다.

돌출행동의 결과는 공천 탈락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현재 배 전 의원은 몇몇 전직 국회의원들과 함께 중도보수를 표방한 신당 ‘국민생각’에 합류해 재기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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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눈물 많이 흘린 단병호

노동자 대변해야 노동자 국회의원

한 ‘노동자’가 17대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당선증을 받기 위해 국회에 들어서려다 경비에게 가로막혔다.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는 ‘잠바’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단병호 전 의원이다. 단병호 전 의원의 이름에는 항상 ‘노동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비록 국회 경비에게 제지당하기도 했지만, 국회의원 시절 그는 항상 잠바 차림이었다.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그의 옆을 지켰던 한 보좌관은 단 전 의원을 가리켜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이 아니라 ‘노동자 국회의원’”이라고 부른다.

이 보좌관은 “노동자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의 Model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며 “‘노동자를 대변하는 국회의원’, ‘공부하는 국회의원’, ‘발로 뛰는 국회의원’ 등 노동자 국회의원의 활동 Model을 제시했다”고 단 전 의원을 평가했다.

그의 말처럼 단 전 의원은 어느 곳에서든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는 곳이라면 때를 가리지 않고 달려갔다. 뿐만 아니라 단 전 의원은 공부하고 준비하는 국회의원이었다. “세상을 바꾸려면 노동자 국회의원은 제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보좌관의 말처럼, 단 전 의원은 철저히 공부하고 준비했다. 국감 때는 보좌관들과 함께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단 전 의원이 당시 반대하던 여야 국회의원들을 설득해 건설노동자의 임금보호를 내용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공부와 준비 덕분이었다.

단 전 의원은 유독 눈물을 자주 보였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아플 때도 단 전 의원은 눈물을 흘렸다. 2005년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 기념식에선 감격과 기쁨의 눈물을, 2006년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됐을 땐 통한과 노동자에 대한 사죄의 눈물을, 2007년 이랜드 노동자들의 농성현장이 공권력에 짓밟히던 땐 처절한 고통의 눈물을 흘렸다.

이 같은 노력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단 전 의원은 2008년 분당 사태가 발생하자 민주노동당을 탈퇴하면서 “당 위기의 본질은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실패”라며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당원을 당의 중심에 세우기 위한 재조직화 노력을 게을리했다”고 비판했다.

그동안의 노동자정치세력화 노력이 “노동자 대중을 행사와 선거 때, 그리고 재정을 조달하는 데 필요한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자 자성이었다. 단 전 의원은 민주노동당 탈당으로 의원직을 내놓은 이후, 정치무대에서 모습을 감췄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단 전 의원의 보좌관은 “노동자 국회의원은 노동자 ‘출신’의 국회의원이 아니라 노동자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이어야 한다”며 “노동자 국회의원이 대변해야 할 노동자가 누구인지, 노동문제, 산업문제, 사회문제와 같은 현안에 어떻게 접근하고 의정활동에 반영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해답과 설계도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4년 내내 집중해서 파고 들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해 6월 노동자 교육기관인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을 설립한 단 전 의원은 ‘위기를 극복할 역량을 재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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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에서 박한 대접받은 김성태

비정규직 대책 마련에 의의
노조법 개정 과정은 글쎄?

18대 국회에 진출한 한국노총 출신 인사들은 모두 네 명이다. 환경노동위 소속의 강성천 의원은 비례대표로 당선됐으며, 지식경제위 소속 이화수 의원은 경기도 안산에서, 국토해양위 소속의 김성태 의원과 현기환 의원은 각각 서울 강서와 부산 사하에서 당선됐다. 이들은 모두 한국노총과 한나라당 간의 정책연대의 산물로 정계에 진출했다.

이중 노동부문 문제를 비롯해 지역, 당내 현안 등 안팎으로 인상적인 활동을 보여준 정치인으로 꼽히는 김성태 의원은 정보통신연맹(현 IT사무서비스노련) 위원장을 거쳐 한국노총 사무총장과 상임부위원장을 지냈다. 김 의원은 “22년간 노동운동을 해 오면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현실에 반영하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정치참여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아직도 정치권에서는 노동계 출신이라는 선입견이 존재하며 처음에는 어떤 벽 같은 게 느껴졌다”면서도 “노동계 출신은 깨끗하고 성실하며 일 추진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주민들과 함께하는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국토해양위원회 소속이지만, 당내 비정규직특위 위원장으로서 지난해 9월 비정규직 대책 당정협의를 이끌어낸 것을 가장 의미 깊게 평가했다. 김 의원은 “이는 사업장 단위의 임금 차별 개선을 위한 단초를 제시한 것이며, 비정규직 대책의 기조에 따라 11월에는 공공부문부터 무기계약직 전환과 처우개선을 위한 방안이 발표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국정감사 당시 김 의원은 인천공항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도로공사 등 공기업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정규직 자녀만 입학을 허용하는 실태를 고발하기도 했다. ‘정규직 자식만 자식이고, 비정규직 자식은 자식이 아니냐’는 일갈은 국감기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에 반해 지난 2009년 노조법 개정 과정에 대해선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친정 격인 한국노총 내에서도 김 의원의 활동에 대해 박하게 평가 받는 부분이다.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김 의원의 18대 의정활동에 대해 “관심이 없다”며 “노조법 개정 당시부터 노총과는 전혀 주파수가 맞지 않는 활동을 해 왔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김 의원이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노조법 개정 과정에서는 역할이나 목소리가 미흡했다”며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를 파기하고 민주통합당과 지분을 나누는 한국노총의 정치행태의 변화도 노조법 개정이 그 출발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 의원 역시 “결론적으로 전임자 활동이 위축되고 현장의 노조 활동이 어려워진 점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여야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 법 개정 현실상 반대나 저항의 움직임이 쉽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현 지역구인 강서(을)에서 출마하겠다고 의향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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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차 파업 노동자 대표 홍영표

현안 꿈쩍 않는 관계기관·여당 절망스럽다

1985년 4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우자동차 파업사태는 김우중 회장이 노동자 대표와의 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적으로 각인됐던 건 김우중 회장과 담판을 짓고 걸어 나오는 노동자 대표의 당당한 모습이었다. 당시만 해도 노동자는 감히 그룹 총수의 얼굴도 쳐다볼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그런 노동자가 그룹 총수와 담판을 통해 임금인상을 이뤄냈으니 일대 사건으로 기록될 만했다.

당시 담판의 주인공이었던 노동자 대표가 현재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인 홍영표 의원이다. 대우자동차(현 한국지엠) 노동자 출신의 홍영표 의원은 18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1년여 만에 치러진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홍영표 의원은 18대 국회에 진출한 뒤 줄곧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다. 홍영표 의원 보좌관은 “지난해 한진중공업 사태 당시 매주 빈번하게 부산을 오가면서 노사 양측을 설득해 협상 테이블에 앉혔다”면서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던 한진중공업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도록 했다”는 점을 성과로 꼽았다.

한진중공업 사태에서도 보이듯이 홍 의원은 민주통합당과 노동계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국무총리실 시민사회비서관 등을 거치면서 특정 사업장 노조나 특정 단체에 치우치지 않고 폭넓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보좌관은 홍 의원이 “아직 해결되지 못한 수많은 투쟁사업장을 일일이 지원해주지 못하는 점을 안타까워하고 있다”면서 “그런 안타까움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노동자를 지원하고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여러 법안을 발의했다”고 덧붙였다.

홍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노동 관련 법안 10건 등 모두 24건이다. ‘고용상 학력차별금지법’,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 등 홍 의원이 발의한 법안들은 주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해 정리해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해고자를 지원하는 한편, 근로시간특례제도 적용 요건을 강화하려 노력하는 등 노동자의 편에서 의정활동을 수행하려 애썼다.

그러나 이런 법안들은 번번이 여당의 반대에 부딪혀 통과되지 못했다. 홍 의원 보좌관은 “산적해 있는 노동 현안에 대해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을 때나 노동자를 위한 법안에 반대하는 여당 의원들을 대할 때마다 홍 의원은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듯한 절망을 느낀다”며 “19대 총선에서 여소야대의 구도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은 진정으로 노동자들을 위하는 법안을 만들고자 하는 홍 의원의 의지가 표현된 것”이라고 전했다.

홍 의원은 현재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 비서실장으로, 2달 앞으로 다가온 19대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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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출신이지만 국정감사 우수상 홍희덕

소수정당 한계 … 법 개악 막는 데에도 역부족

통합진보당 홍희덕 의원은 익히 알려진 대로 환경미화원 출신이다. 2008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당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했다. 국회의원이 된 후 줄곧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홍희덕 의원은 4년 내내 노동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등 전국적인 이슈가 됐던 사업장은 물론, 투쟁하는 노동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는 사업장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국회에서는 노동 관련법 개악을 막아내는 데 앞장섰다. 또 최저임금 현실화,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고용불안 해소, 불법 직업거래소 적발, 정리해고 방지, 산재예방정책 실현 등 홍 의원의 의정활동은 상대적 약자의 노동권 보호와 노동조건 개선에 집중됐다.

홍희덕 의원실에서 일하고 있는 한 보좌관은 “홍희덕 의원은 ‘국회가 배우고 잘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줬다”면서 “석학들이 즐비한 국회에서 초등학교만 마친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이 3년 연속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18대 국회는 홍희덕 의원이 ‘노동자의 정치’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투쟁’의 공간에 더 가까웠다. 여소야대 또는 보수 일색의 국회 구성에서 민주노동당이라는 소수정당의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홍 의원 보좌관은 “쉴 틈 없이 밀려오는 노동 관련법 개악안을 막아내는 데에도 힘이 부쳤고, 치열한 토론을 통해 ‘노동자의 대안’을 만들었지만 미처 꺼내보지도 못한 게 많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홍 의원은 추가예산을 최소화하면서도 최저임금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법안을 제시했으나 4년째 토론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홍 의원은 기본적으로 ‘민주노총에서 파견한 국회의원’이라는 생각으로 의정활동에 임했다. 하지만 국회의원과 민주노총이 조직 대 조직으로 손발을 맞추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홍 의원 보좌관은 “기본적인 입장과 원칙에 차이가 거의 없었기에 일을 진행하는 데 특별한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행정적이고 실무적인 차원에서 의원실과 민주노총이 좀 더 유기적으로 움직였더라면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이제 신뢰가 쌓이고 함께 일을 도모해볼 만하니 18대가 끝나간다”고 아쉬워했다.

이 보좌관은 이어 “또 다른 노동자 국회의원이 나타났을 때, 민주노총이라는 조직과 일사분란하게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체계와 준비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내기도 했다.

홍희덕 의원은 의정부(을)에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19대 국회에 재입성을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