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여름 작업복 입고 덜덜 떨다
한겨울에 여름 작업복 입고 덜덜 떨다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2.02.1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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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이 쓴다 ․ 12] 재능교육에서 쌍용자동차까지, 뚜벅이 열 이틀째 날

▲ 장안공단에 들어선 한국3M 공장. 김문수 도지사가 열심히 뛰어다니며 만든 ‘기업하기 좋은 경기도’는 노동자에게는 고통의 그늘을 짙게 드리웠다. ⓒ 오도엽 객원기자 dyoh@laborplus.co.kr
희망 발걸음 열 이틀째인 2월 10일 뚜벅이들이 붕붕이가 되었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 수원 장안공단과 충남 아산의 유성기업을 간다. 장안공단은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자랑거리인 ‘외국인 투자 기업단지’가 있는 곳이다. 세금 감면과 같은 숱한 특혜를 주고 ‘기업하기 좋은 경기도’를 만들려고 뛰어다녔던 김문수 도지사의 치적이 노동자에게는 고통의 그늘로 짙게 내려앉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있는 한국3M, 포레시아, 파카한일유압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든 ‘죄’로 징계를 받고 정리해고를 당했다.

한국3M은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으로 100% 외국투자기업이다. 연간 1조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한국3M의 1인당 매출액은 연간 8억 원에 달한다. 2009년 한국3M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엄청난 이익금이 배당금으로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임금동결과 삭감, 그리고 구조조정을 당했다”고 한다.

▲ 비용절감 한다고 제때 작업복을 지급하지 않아 한겨울에도 여름 작업복을 입고 덜덜 떨어야 하던 것에 비하면 비록 영하의 날씨이지만 지금이 훨씬 따뜻한지도 모른다. ⓒ 오도엽 객원기자 dyoh@laborplus.co.kr
“육아휴직을 쓴다는 이유나 산재를 당했다는 이유로 최하위 근무평점을 받아 월급이 깎이고 승진에 불이익을 당했다. 비용을 절감한답시고 작업복조차 제때 지급하지 않아 한겨울에 하복을 입고 일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한국3M 노동자 박근서는 노동조합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노동조합을 만들자 돌아온 것은 불이익이었다. 단지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부서를 전환배치해서 하루 종일 풀 뽑기와 청소만 시켰다. 지난 2011년 4월에는 비조합원은 임금을 인상시키고 조합원들에게는 임금인상분을 지급하지 않았단다.

▲ 오늘 한국3M지회는 하루 총파업을 벌인 채 조합원들과 함께 뚜벅이 일정에 결합했다. ⓒ 오도엽 객원기자 dyoh@laborplus.co.kr
박근서는 어젯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오늘 한국3M 조합원들은 1일 총파업을 하고, 희망 뚜벅이들과 결합해서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로 했다. 박근서의 목소리는 상기됐다. 한국3M 화성공장 앞에 파업 대오를 이끌고 온 그는 끈질기게 싸우겠다고 한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2년 넘게 싸웠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어처구니없는 탄압뿐이다. 초등학교도 6년은 다녀야 한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면 초중고 12년을 다닌다. 좋은 일터를 만들려고 최소 6년, 아니 고등학교까지 다니듯 12년은 싸워야 하지 않겠는가.”

법으로 보장된 노동조합 활동을 하려고 12년은 해고 생활을 인내하며 열심히 노력하겠다니, 슬픈 대한민국의 현실에 절망한다.

▲ 장안공단에 입주해 있는 파카한일유압과 포레시아 역시 한국3M과 다를 바 없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뚜벅이의 발걸음이 장안공단을 울린다. ⓒ 오도엽 객원기자 dyoh@laborplus.co.kr
장안공단 한국3M에서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투쟁 결의대회’를 마친 뚜벅이들은 파카한일유압과 포레시아를 행진하며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이어갔다.

점심식사를 마친 뚜벅이들은 다시 붕붕이가 되어 충남 아산 유성기업으로 향했다. 둔포면에 도착하자 상여와 만장이 등장한다.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기업인들의 영정을 앞장세우고 상여소리를 울리며 4.4㎞를 뚜벅뚜벅 걸어 유성기업으로 향한다.

▲ 유성기업 앞에 도착하자 상여와 만장이 등장한다. 상여는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기업인들의 영정을 앞세웠다. 상여와 함께 노동조합 탄압도 사라지기를…. ⓒ 오도엽 객원기자 dyoh@laborplus.co.kr
유성기업에 도착하니 희망 뚜벅이들은 300명을 넘어섰다. 공장 앞에 차려진 무대에서 노조탄압을 규탄하는 집회를 5시 30분부터 개최한다. 뚜벅이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해고가 있고, 노동조합 탄압이 있다. 그래서 절망이고, 그래서 뚜벅뚜벅 걷는 것이고, 그래서 절망을 죽음이 아닌 희망으로 맞이하려고 한다.

오늘부터 새로 뚜벅이 행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뚜벅이들이 두 줄로 길게 늘어서서 포옹을 하거나 하이파이브를 하며 맞이하기로 했다. 단 한 시간을 걷든 열흘을 함께 걷든 꽃분홍 몸자보를 하는 순간 한 식구가 되고 오랜 친구가 되는 듯하다.

▲ 유성기업으로 향하는 뚜벅이는 어느새 300명을 훌쩍 넘겼다. 뚜벅이의 발걸음이 닿는 곳에 정리해고가 있고 노동조합 탄압이 있고 절망이 있다. 뚜벅이는 그 절망을 희망으로 맞이하기 위해 오늘을 걷는다. ⓒ 오도엽 객원기자 dyoh@laborplus.co.kr
한신대학교를 출발하기 전 잠깐 뚜벅이들의 조별 토론이 있었다.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가 희망 뚜벅이를 받아 안아야 하는 거 아니냐. 희망버스 때도 그렇고 뭔가 될 듯하면 뒤늦게 숟가락만 놓으려다 욕 얻어먹고 하는 것 아니냐. 싸울 때는 싸우지 않고 교섭장에서만 (상급단체가) 앞장선다. 당사자 의견 뒤로 한 채 교섭한 뒤에 ‘요거(교섭결과) 받을래 안 받을래’ 협박하듯 말한다. 이제 (상급단체) 못하는 것 일침을 놓아야 한다.”

11일 쌍용자동차 3차 포위의 날 행사 진행을 두고 날 선 목소리들이 나왔다. 총선, 대선으로 정권을 바꾸면 노동자들의 고통이 사라질 듯한 노동조합 상급단체의 최근 행보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일침을 놓는다.

소통이 막힌 대한민국과 함께 동맥경화가 걸린 듯 피가 돌지 않는 노동조합운동의 정체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내일이면 희망 뚜벅이의 발걸음도 멈춘다. 아니 더 널리 전국 방방곡곡에서 새로운 뚜벅이의 행진이 시작될 지도 모른다. 지난 열흘 넘는 행진의 함성이 내일 절망의 공장으로 불리는 평택 쌍용자동차 앞에서 희망으로 터져 나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