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법’ 논란에 멍드는 ‘사학 구성원’
‘사학법’ 논란에 멍드는 ‘사학 구성원’
  • 승인 2006.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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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정치’만 있고 ‘사학’은 없다

학생·교사·학부모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니라 ‘수금원’이 되고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교무실 한쪽 벽에는 급식비를 비롯해서 행사비 등 각종 그래프와 수금 현황이 붙어 있고 그것이 평가가 되는 학교. 무엇을 위해 우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인지 허망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사학법 개정에 대한 찬반여부를 떠나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언론이 이 문제를 다루면서 ‘학생들’은 그저 들러리 정도로 다룰 뿐이었습니다. 사립고등학교에 다니는 많은 학생들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사립학교의 문제나 (문제가 있는 학교의 경우) 재단에 대한 불만도 있습니다”


‘교사’와 ‘학생’이 아닌 ‘스승’과 ‘제자’로의 만남을 꿈꾸는 사람들.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싼 공방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가운데, 정작 그 목소리는 묻혀버린 ‘사립학교’의 구성원들이 있다.

 

사립학교, 무엇이 문제인가
땅에 떨어진 ‘사학’ 줍기
‘사학’의 문제는 무엇이며 우리나라 ‘사학’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사학법’ 논란 속에서 정작 ‘사학’은 소외되어 있다. 실태를 외면한 논란 속에서 멍들어가고 있는 것은 대립하고 있는 ‘그들’이 아니다.


한국의 사립학교는 갑오개혁 이후 ‘선교’를 목적으로, 혹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교육구국운동’이라는 민족적 열의에 의해 설립되었다.
‘숭고’했던 사학 이념은 이후 정치활동이 불가능했던 현실 속에서 자주독립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자 열악한 공교육 환경을 대신해 교육발전에 기여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학이념은 그 자체로도 추앙받아 마땅했던 것이다.


이렇듯 열악한 교육 환경 와중에 사립학교는 우리 교육의 큰 몫을 차지했으며 그 유구한 역사 속에 쌓아온 노하우를 통해 교육발전에 이바지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학이념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체 사립학교의 비중이 고등학교는 절반 이상, 전문대학의 경우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04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사립학교의 지난 10년간 재산 증가액은 20조8483억원에 달했지만, 이 중 사학 법인의 기여 비율은 8.8%에 불과하다.
또한 지난 2005년 하반기에만 3개 대학에서 11건의 사학비리가 적발됐다.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대학의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과 족벌경영을 둘러싼 해프닝은 이제 더 이상 학교 내부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회계장부를 조작하고 물품 구매에 따른 리베이트, 무상증여를 가장한 매매, 특기 적성비나 실기 지도비 횡령과 찬조금 모금 등은 거의 ‘정석’처럼 여겨진다. 지금에 와서는 ‘죽은 이사’의 발언 내용이 적혀 있는 엉터리 이사회 기록과 같은 방만한 경영, 또 경영권을 둘러싸고 부모가 자식을 고발하는 해프닝이 바로 사립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런 구조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 사학을 운영하고 있는 이사진이 친인척으로 구성되어 있는 비율이 20%를 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수많은 일들이 ‘교육’ 혹은 ‘사립’학교라는 이유로 성역화되고 묻히면서 교육의 근본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신뢰받지 못하는 학교와 스승, 누구의 책임인가
숭고했던 이념은 사라지고 말았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학교’가 신뢰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학원으로, 과외로 내몰리는 아이들은 ‘학습’만이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교육현장에서는 선생님을 고발하는 학생의 사례가 더 이상 낯설지 않고, 교사를 무시하는 학부모들의 행태도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점점 ‘부패’해 가는 사립학교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참교육학부모회 장은숙 사무국장은 “(사립학교 교사 임용을 위해서는) 아는 사람은 800(만원), 모르는 사람은 2000이라는 이야기가 그냥 나왔겠느냐”며 “비리를 제보한 것이 밝혀지면 교사는 해직되고, 학교는 벌금을 내거나 반환만 하면 되는 현실 속에서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선생님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농담으로 던지는 ‘우리학교 선생님들은 유난히 같은 성씨가 많다’는 어떤 사립학교 학생의 이야기가 대변하듯 문제는 아이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교사라 할지라도 이미 변질되어버린 ‘교사’의 개념 속에서 아이들의 믿음을 상실한 선생님들은 이미 지식을 전달하는 전달자 역할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사립학교인 D여고에서 일하고 있는 한 교사는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힘든 현실을 토로한다.


“학교의 비리에 대해 항의라도 하면, 담임을 주지 않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곳에서 담임을 맡은 경우가 다섯 번이 안 되는 것은 비단 제 능력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너 말고도 들어오려는 사람들 줄 쫙 서 있다는 이야기부터 입에 담을 수 없는 인격적인 비하 발언까지 듣는 선생님들을 아이들이 존경할 수 있을까요?”

 

사학(死學)이 되고 있는 사학(私學)
“그대로 둘 수 없다” 목소리 높아져
아이들은 학교를 선택할 권리도, 선생님을 고를 권리도 없다. 받고 싶은 교육을 받을 권리도 아직 우리 교육 현실에서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학생들의 목소리를 보면 불합리한 매점의 행태나 불친절한 식당운영에서부터 각종 ‘모금’에 대한 토로까지 다양하다. 교장 퇴임식 때 전교생으로부터 걷은 상당한 액수의 돈이 어디로 사라졌는지에 대한 불만부터 매점의 운영자가 이사장의 사돈의 팔촌이더라는 이야기까지 망라하고 있다.


카페로 개설된 사립고등학교 학생회연합(http://cafe.daum.net/
saripstudent)에는 학생들에게서 나오는 자정의 목소리가 응집되어 있다.
정제되지 않은 비난만이 아닌, 제대로 된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단체를 구성하자는 이야기부터 이런 한심한 논쟁을 마무리하고 제대로 된 교육 현실을 보고 싶다는 의젓한 내용까지 다양하다.


결국 이런 암담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갖는 것은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다.
참교육학부모회 장은숙 사무국장은 “이제 지속적으로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참여해 부패사학에 대한 감시를 계속 해 나갈 것”이라며 “현재는 미흡하지만 사학법 개정을 통해 하나씩 차근히 이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립고등학교 학생회연합을 운영하고 있는 M양(C여고 3학년)은 “지금 대다수의 고등학생들은 입시나 수능, 연예인 사생활, 남자친구나 여자친구에 대한 관심이 우선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모여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고 토로하고 “하지만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학생도 많은 것이 확인됐고 그래서 목소리를 내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학부모뿐만 아니라 학생들조차 사립학교를 바로 세우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지 찾고 있는 것이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창시절’이라고 대답한다. 그 소중한 시절이 얼룩진 기억만으로 남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자라나고 있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어떤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지 단지 ‘운’으로만 정해지는 교육 현실은 많은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사학들의 숭고한 건학이념이 이 땅에 바로 서는 날, 우리의 교육 역시 바로 서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사립학교 내부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진정으로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가 무엇인지도 분명해지고 있다.
정치권의 험악한 사립학교 논쟁보다는, 지금 그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 그리고 그런 학교에 아이들을 보낸 부모들, 교사의 양심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 많은 ‘선생님’의 목소리부터 먼저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학교의 주인이라고 말하는 학생들과 학부모와 교사들은 이어지는 ‘사학법 논란’이 불안하기만 하다고 말한다.
목적을 상실한 채 내달리고 있는 학교 재단과 정치권의 논란이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고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한 자정의 목소리를 내는 성숙한 모습을 기대한다.                                

 

 사학법 논란, 언론은 책임 없나?
전형적인 ‘한쪽 편들기’ 행태 이어져
언론, 자성 목소리“이대로는 안 된다”
지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두 가지 화두는 바로 ‘황우석’과 ‘사학법’이다. 그런데 이 두 사안을 다루는 언론보도의 행태가 닮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에서 주최한 <사립학교법 개정관련 언론보도의 바람직한 방향> 토론회에서는 이같은 닮은 꼴 논란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졌다.

이른바 ‘린치 저널리즘’과 ‘치어리더 저널리즘’으로 표현되는 편들어주기.

발제를 맡은 양문석 EBS 정책위원은 “‘친북반미세력을 양성하고 종국에는 열린우리당의 장기집권을 획책하게 한다’는 언론보도와 ‘한나라당의 투쟁방식과 강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웰빙정당’이라고 비난하는 언론보도가 결국 황우석 논란의 언론보도 행태와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근 사학법과 관련해 보도된 각종 언론의 4300여 건의 기사 중 ‘언론이 어느 쪽에서 엉덩이를 흔드는가’만이 다를 뿐 이러한 언론들의 행태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변죽만 울리는 정치권의 논쟁과 ‘논쟁’ 속에 노른자를 빼 먹은 언론이 ‘사립학교법’ 논란 속에 ‘사립학교’를 빼먹은 주범이 아닐까.


언론이 정치적 공세를 벗겨내고 정확한 내용의 ‘사립학교법 개정 논쟁’을 전달할 때 국민들의 판단에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