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대한다! 당신의 빈자리
나는 반대한다! 당신의 빈자리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2.04.2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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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 앞두고 시민추모위 발족
노동자 생명에 대한 기업 책임과 정부 지도·감독 강화 촉구

▲ 23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2012 4·28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시민추모위원회’가 발족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부터 28일까지를 ‘산재사망노동자 시민추모주간’으로 선포했다. ⓒ 박석모 기자 smpark@laborplus.co.kr
#1. 2008년 1월,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냉동창고 공사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40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에 대해 회사의 책임은 벌금 2천만 원에 그쳤다. 3년이 지난 지금, 40명의 노동자를 기억하는 이들은 없다.

#2. 2006년 5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1년 6개월간, 한국타이어 노동자 15명이 돌연사, 폐암, 작업 중 안전사고 등으로 사망했다. 특히 7명의 노동자의 돌연사와 관련해 한국타이어는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받았고, 1,39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183건의 산재 은폐가 적발됐다. 하지만 지난 1월 한국타이어는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노동자의 건강악화와 돌연사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물어 벌금 1천만 원을 선고했던 1심을 뒤집은 결과였다. 한국타이어는 여전히 국내 타이어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한국타이어의 책임을 묻는 곳은 없다.

#3. 2005년 10월, GS건설이 맡았던 경기도 이천시 물류센터 신축 공사현장에서 건물이 붕괴돼 노동자 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중상을 입었다. 시공사였던 삼성물산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시행사였던 GS건설은 벌금 7백만 원을 선고받았다. 안전기준을 지키지 않고 공사를 진행해 사고를 일으킨 책임은 벌금 7백만 원이 고작이었다.

#4. 2010년 9월, 환영철강 용광로에 한 노동자가 떨어져 사망했다. 10만 원짜리 안전펜스 하나만 있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 이에 대해 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환영철강에 5백만 원, 사업주에게 5백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사업주가 항소한다면 벌금은 더욱 깎일지도 모른다.

오는 28일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앞두고 노동자의 건강권을 고민하는 시민사회단체와 개인들이 모여 ‘2012 4·28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시민추모위원회’가 발족했다. 시민추모위원회는 23일 오전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부터 28일까지를 ‘산재사망노동자 시민추모주간’으로 선포했다.

시민추모위원회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세계에서 매년 220만 명, 하루 5,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기업의 이윤추구 행위로 희생되고 있다”며 “한국은 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인 나라로, 2011년 한 해에도 고용노동부 통계상 2,114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죽었다”고 밝혔다. 휴일까지 포함해도 매일 5.8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한 셈이다.

하지만 산재와 관련 기업과 사업주에 대한 책임추궁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고 산재로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아도 기업과 사업주에게는 몇 백만 원에서 몇 천만 원의 벌금이 부과되는 게 고작이다.

시민추모위원회는 “기업이 자신의 책임을 제대로 이행한다면, 정부가 기업을 철저히 규제하고 법을 어긴 기업을 엄하게 처벌한다면, 막을 수 있는 죽음이 산재사망”이라며 ▲ 기업은 이윤보다 노동자의 생명과 소중히 여길 것 ▲ 정부는 기업이 노동자 생명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지 엄격하게 지도·감독할 것 ▲ 국회는 원청기업이 하청기업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도록,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기업은 엄히 처벌하도록 관련 법·제도를 정비할 것을 각각 요구했다.

시민추모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24일부터 26일까지 ‘당신의 건강과 정의’라는 주제로 교양특강을 마련하고, 산재사망노동자 추모 릴레이 문화제를 개최하며, 온라인 소셜펀딩과 ‘나는 반대합니다. 당신의 빈자리’ 캠페인을 벌이는 등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산재사망노동자를 추모하고 산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계획이다.

한편, 오는 26일에는 양대 노총 등이 주관하는 ‘2012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이 청계광장 소라탑에서 진행되며, 27일 저녁에는 녹색병원에서 ‘삼성직업병피해자 후원음악회’가 열리는 등, 28일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앞두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