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꾼들의 수다
데모꾼들의 수다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2.06.0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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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하는 이가 춤이 보고 싶다 그런다. 한번 와라
현장에서 나오는 즉자적 예술을 따라 잡을 수 없다
[분석] 노동자 집회를 헤집다 2

ⓒ 참여와혁신 포토DB
기획자들에게 감동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집회는 무얼까?
사십일 넘게 단식하는 이를 등지고 엉덩이를 흔들어야 하는 몸짓.
공장에 고립된 노동자를 만나려고 담을 타고 넘어가 음향도 없이 진행한 공연.
등 뒤 냉동차에는 시신이 있고, 눈앞에는 상복을 입은 유족이 있는데, 불나비의 경쾌한 리듬에 맞춰 춤을 췄던 기막힌 이야기.
경찰에 쫓기다 고가도로에 갇힌 시위대오가 고가 난간 쇠파이프를 두들길 때 울리던 묘한 소리가 만든 즉자적인 집체 예술의 감동.
만드는 사람이 신나면 집회도 절로 신이 난다는 기획자들의 수다.
그 수다 사이사이의 벅찬 숨소리에 새로운 집회문화의 열쇳말이 숨겨져 있다.

▲ 희망버스 기획단 신유아 ⓒ 신유아
만드는 사람이 신나면 집회도 신난다

집회는 놀이인데, 집회를 준비하는 일은 노동이야. 놀이와 노동, 이게 충돌하는 거야. 즐거운 놀이판을 만드는데 내게는 노동으로 다가오는 거지.

나는 사실은 즐겁게 일을 했어. 그래서 과정 자체를 대개 즐기면서 해. 그런데 그 과정이 즐겁지 않을 때가 가끔 있어. 그러면 하기가 싫어. 그러면 같이 기획하는 사람들한테 “하기 싫다”고 이야기를 해. 만들어가는 과정이 신이 안 나면 사실 (집회) 판 자체가 재미가 없어지니까. 그거는 정확해. 만드는 사람들이 즐겁게 준비를 안 하면 판도 재미없고, 즐겁지 않거든. 그런데 만드는 사람들이 굉장히 즐겁게 판을 만들면 판이 대개 신나. 희망버스 때는 대개 신났거든. 판 만드는 과정도 너무 신났었어. 그니까 내부 사람들이 잠 못 자고, 찌들고, 육체적인 피로감은 너무 심했는데, 서로 뭔가를 하고 있다는 즐거움이 있었거든. 그 즐거움이 그대로 희망버스 판으로 만들어진 거야.

용산 때도 마찬가지야. 판을 짜는 사람들이 (용산참사 때문에) 굉장히 우울했지만 모인 사람들이 굉장히 신나게 판을 만들어 나갔어. 즐거운 공간은 아니지만 그 우울한 공간에서 신나고 힘차게, 하여튼 에너지가 넘치게 일을 했어.

물론 즐겁지만은 않아. 노동이 된다, 일이다, 그런 거 느낄 때도 대개 많아 활동가가 활동을 해야 되는데, 일을 해야 된다고 느낄 때가 있거든. 나도 그런 거 느낄 때가 대개 많아. 내가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일에 치여서 일을 하고 있구나.

_ 희망버스 기획단 신유아


술자리 농담이 멋진 기획으로 나올 때

내가 신이 나면 같이 하는 사람들도 신이 나 하더라고. 그리고 술자리 미학이라는 게 있잖아. (웃음) 뒤풀이에서 나오는 많은 아이디어들이 실행이 되지 않아서 썩히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 거기서 나오는 각종의 아이디어를 실행하려는 노력하는 과정이 새로운 집회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거든. 희망버스도 술자리에서 나왔잖아. “아, 우리 그런 거 한번 해보자.” 근데 대개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농담처럼 이야기하잖아. “이런 거하면 진짜 재밌겠다.”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그게 (불가능하다고 여기며 농담처럼 나온 아이디어가) 진짜 실행됐을 때, 그때는 진짜 성취감을 느끼는 거지. 안 되는 게 아니구나. 우리가 하려고 하지 않았던 거지.

_ 희망버스 기획단 신유아 

▲ 노동예술단 선언 박현욱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사십 일 단식자 앞에서 뭐 좋다고 춤?

이천년대 초인가, 구로 천지산업 투쟁할 때 같은데, 하여튼 기억도 안 나는데, 거기의 한 동지(강준희 노조 위원장)가 단식을 육십 며칠인가를 했는데, 사십삼일찬가 될 때에요. 이렇게 공장 정문 있으면, 공장 정문 진입로가 약간 경사가 지잖아요. 요기에서 천막도 하나 못치고, 우산 하나로 햇빛만 가리고 누워서 단식을 하고 있었어요. 그 공장 정문 안쪽은 용역이 점령을 한 상태고, 그 앞에 누워서 단식을 하는데, 정문 밖에 단식하는 이가 있지 못하도록 (용역이 정문) 안에서 물 뿌리고 이러는 상황인데, 거기서 우산 하나로 햇빛만 가려놓고 누워서 단식을 사십삼 일을 하는 거예요.

천지산업 동지들이 단식하는 동지에게 “원하는 게 뭐냐? 뭐 해줄까?” 물었더니, 단식하는 동지가 그랬다는 거예요. “선언 동지들 춤이 보고 싶다.” 그래서 (선언한테) 전화해서, “야 단식하는 동지가 니네 춤이 보고 싶다고 그런다. 한번 와라.” 그래서 집회 때 갔는데, (공장 정문 앞) 경사가 이렇게 있으면 단식자가 누워있고, (경사 아래로) 집회 대오가 여기 있고, 우리가 여기서(단식자와 집회 대오 사이에서) 춤을 추는 거예요. 집회대오를 보고 춤을 추다가 뒤로 도는 동작을 하게 되면 누워 있는 단식자가 있는 거예요. 누워있는 동지가 힘이 없으니까 똑바로 누워서 고개만 요렇게 돌리는 거예요. (단식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아, 마음이 참….

전화 왔을 때는 “아이 씨, 사십일 넘게 굶는 사람 앞에서 뭐 좋다고 춤추냐”고, 막 그러긴 했는데….

(공연 다니며) 가장 기분이 좋은 건, 투쟁하는 동지들이 “집회 나가 선언 동지 춤 봤으니까 일주일치 싸울 힘 얻었다.” 말할 때. 그게 무슨 말이냐면, 오늘 집회 때 선언 동지 춤 공연 본 게 내가 일주일 더 싸워나갈 동력을 충전했다는 말이에요. 그 말이 그 굉장히 송구스럽기도 하고, 그러죠. 

_ 노동예술단 선언 박현욱

유족 앞에서 불나비를 추다

대우자동차 판매직 동지 가운데 대기발령 받아가지고 싸우고 계신 노동조합 간부 동지한분이 있는데, 이분이 돌아가셨어요. 스트레스죠. 회사 측에서 노동조합 탄압하고 투쟁이 너무 힘들고, 심리적 압박으로 돌아가셨는데, 사인이 심장 쪽인가 돌연사에요. 그분 시신을 냉동차에 넣어가지고, 그 본사 앞에 투쟁을 했던 적이 있어요.

이분 추모제 및 항의 집회를 하러, 전국에서 판매동지들 다 올라온다고 문선 공연 해달라는 거예요. 그런(추모) 게 참 힘들어요. 쌍용자동차도 마찬가지고. 아무튼 대우자동차판매로 갔는데, ‘열사가 전사에게’ 라든가 추모에 맞는 이런 공연을 해야지 생각하고 갔는데, ‘불나비’를 해달라는 거예요. 불나비는 신나는 노래잖아요. 웃으면서 부르죠. 물론 노래가사는 신나지 않지만 편곡이 신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추모제 성격에 맞지 않아요. “여기서 불나비를 추란 이야기냐.” 따졌죠.

거기 유가족이 앞에 앉아 있었어요. 부인하고 애들이 상복을 입고 앉아 있는데, “눈앞에서 어떻게 불나비를 추느냐.” 그러니 유가족 분들이 불나비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물었더니, ‘아빠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가 불나비’라고, 애들이 불나비라는 노래를 안대요. 다 부른 대요. 왜냐면 아빠 차를 타서 시동을 딱 켜면 불나비라는 노래가 나오니까, 늘 들어왔던 노래래요. 아버지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고, 술 한 잔 마시면 불렀던 노래가 불나비라서 아이들도 노래 다 알고 있어요.

(공연자) 뒤에 냉동차에 시신이 있고, 눈앞에는 유가족이 있고, 여기 대자 판매 동지들이 있고. 불나비라는 노래 전주가 딱 나오는 순간, 유가족이 통곡을 하는 거예요. 그 전주가 나오는 순간부터. 조합원 동지들도 박수를 치는데, 다 울면서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는 거예요. 그런 거는 참, 잘 안 잊히죠.

_ 노동예술단 선언 박현욱

▲ 2010년 전태일 40주기 추모문화제 ⓒ 참여와혁신 포토DB
봉쇄를 뚫고 고립된 동지 앞에서 공연하다

이천일 년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싸움할 때, 전경들이 공장 봉쇄했을 때, 봉쇄망을 뚫고 담을 뛰어넘어, 막 뛰어 들어가 동지들 만나서 율동 공연했을 때, 쌍용자동차 칠칠일 싸움(옥쇄파업)할 때, 어떻게 틈 봐서 공장 안에 들어가서 앰프도 없는 상황에서 현장에서 공연했을 때. 잊히지 않죠.

지지난해 현자 비정규지회 싸움할 때, 그때도 공장을 못 들어가는 상태인데, 저희(선언)는 공장을 들어갔어요. 그때 공장은 봉쇄되어 가지고 다 밖에서 집회를 했어요. “울산까지 왔는데 (농성장) 안에 들어가서 꼭 좀 만나고 싶다.” 그래서 알음알음 해가지고, 거기 (현대자동차)동지에게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뭐 있냐?” 물었더니, “현재로선 없다. 방법을 찾아보자.” 그래요. 기다렸어요.

그래가지고 공장 안을 굉장히 잘 아는 정규직 대의원이 한 분 있어가지고, 그 동지 차를 타고 공장에 들어갔는데, 농성장 쪽으로 차가 가면 안 되잖아요. 그러면 용역들이 바로 막으니까. 그래서 그 동지가 들어가자마자 라이트를 꺼버렸어요. 라이트를 끄고, 차도 조용히 소리도 안 나게 몰고. 깜깜한데, 공장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 그 동지가 길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라이트를 끄고 가는 거예요. 살살살살, 이렇게.

그렇게 공장 안에 딱 들어가니까, 농성장에 있던 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이 어떻게 들어왔냐는 거예요. 거기서 문선 공연을 하고 나왔죠. 나왔더니, 그때 조승수 의원이 공장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름 자랑했지. 우린 (농성장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그렇게 봉쇄를 뚫고, 고립된 동지들을 만나서 그 앞에서 문선 공연을 한 것은 가장 뿌듯하다고 그래야 되나. 가장 기분이 좋죠. 

_ 노동예술단 선언 박현욱

▲ 민주노총 이준용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가두투쟁에서 즉자적으로 만든 예술

가두투쟁이나 현장 속에서 나오는 예술을 따라 잡을 수 없어요. 나는 아직도 눈보단 귀에 아삼삼한 게 남아 있어요. 가두투쟁을 하다 이렇게 저렇게 쫓겼지요. 아마 퇴계로에서 을지로, 이렇게 갔을 적에 경찰에 밀려, 거기 고가도로까지 밀려, 고가 위를 점거하고 대치했어요. 밑에는 사람들이 다니고, 전경들이 짝 깔리고. 고가도로 난간이 파이프로 되어 있잖아요. 거기서 난간을 두드리니까, “경찰들이 쳐들어온다. 빨리 피해라!” 이 소리가 묘한 공명으로, ‘왜엥 외엥’ 여기서 치면, 또 저쪽에서 치고 그러니까, 어떤 말소리 같기도 하고, 어떤 음악소리 같기도 한 이런 예술적 감동이 밀려오는 거예요.

이처럼 투쟁의 현장 속에서 집단이 만들어내는 즉흥적인 것이 그 어떤 음악 예술들보다도 뛰어나고, 더 묘한 울림을 전달하지요. 아직 그 소리가 선한데, 눈에 말고 귀에 아삼삼한데, 그런 것들을 다시 만들어볼 수 있다면 좋겠어요.

 _ 민주노총 이준용

구호도 없이 쓰러져 있는 사람들

문화연대가 주로 콘서트 이런 거 하잖아. 촛불집회 때 시청광장에서 콘서트, 일박이일 콘서트 잡았거든. 그때 네티즌한테 욕, 진짜 먹었어. 싸우러가야 하는데 광장에서 왜 노래하고 있냐고. 와서 선 끊어버리겠다고 하고. 장난이 아니었어. 저쪽(광화문 쪽) 가서 안 싸우고 (광장에서) 노래나 하고 있냐고. 그때 너무 긴장을 많이 해가지고. 아저씨들이 너무 위협적이었거든. 우리 식군데, 우리를 욕하는 거야.

아, 내가 제일 기억에 남는 것 하나 있어. 집회는 아닌데 쌍용자동차, 쌍차 남매 문제가 터지고 나서 쌍차 사람들과 문화연대 사람들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보신각에서 매주 목요일인가 저녁에 문화제를 했어. 거기는 사회를 두지도 않고, 뭐 판의 형식도 없고. 뭐 그렇게 만들기로 약속을 하고 판을 만들었는데, 그 중에 하루가 뭐였냐면,  사진 찍기 놀이하는 날이었어. 쓰러지는 사람 옆에서 사진 찍는 거. 또 하루는 뭐였냐면, 그냥 바닥에 다 누워 있는 거였어. (참가자들이) 바닥에 다 누워 있어. 뮤지션이 와서 공연하면, 앉아서 보는 게 아니라 누워서 감상하는 거야. 근데 음악은 나오고, 아저씨들 다 누워서 있으니까,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쳐다보잖아.

그 판 만들 때, 보통은 ‘여기서 뭐하고 있습니다’ 같은 (집회를 알리는) 현수막 같은 거 걸잖아. 이 판에서는 이미지 하나만 보면 뭐하는지 알 수 있게 하자. 그래서 ‘해고는 살인이다’ 윤엽이(판화가 이윤엽) 형의 ‘쓰러지는 사람’ 큰 거 딱 해놓고, 아무 것도 걸지 않았거든. 지금 뭐하는 거고, 이런 거 하나도 안 걸어놨어.

나는 이 기획 자체가 조금 확대시켰으면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해. 그러고 그 거기에 계셨던 분들도 대개 기억에 남고, 좋았대. 바닥에 누워, 나는 언젠가 한번은 누워서 하는 거(문화행사) 한번 해보고 싶었거든. 그날 딱 하니까 좋더라고.

_ 희망버스 기획단 신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