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건 노동자의 단결된 투쟁
세상을 바꾸는 건 노동자의 단결된 투쟁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2.07.0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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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투쟁 속에서 혁신 방안 찾겠다
새정치특위서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 방안 논의
[창간특집 인터뷰 2]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난 4.11 총선 이후, 잠시 주춤했던 민주노총의 발걸음이 다시 빨라지고 있다. 6월 28일 경고파업에 이어 오는 8월 말 정치총파업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총파업이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지만, 김영훈 위원장은 현재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당면한 현실이 결코 녹록치 않기 때문에 총파업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경고파업을 1주일 여 앞둔 지난 6월 20일, 김영훈 위원장을 만나 총파업과 하반기 주요 과제를 들어봤다.

총파업 가능하다!

민주노총이 6월 28일 경고파업, 8월 정치총파업을 앞두고 있다. 현재 준비상황을 설명해 달라.

“일단 우리가 왜 6월 경고파업과 8월 총파업을 계획했는지부터 말씀드릴 필요가 있다. 올해는 특히 87년 7·8·9 노동자대투쟁이 진행된 25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많은 사람들이 올해를 6월 항쟁 25주년으로 기억하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7·8·9 노동자대투쟁이 민주노총의 출발이자 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중요성이 대중적으로 분출된 해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또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맞물려 있는 해라는 점에서 노조법과 비정규직법을 비롯한 노동관련법 전면 제·개정에 대한 조합원들의 요구가 높다. 그래서 총선에서 변화를 이끌어내고 대선으로 가기 전 국면에서 이런 노동관련법의 전면 제·개정을 요구하고 투쟁을 전개하는 건 대단히 중요하다.

6월 국회는 사실 개원도 못했고, 실질적으로 국회에서 법안 논의가 시작되는 건 8월 임시국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8월에 맞춰서 총파업을 계획했다. 그 전에라도 6월 국회가 개원되면 우리 요구가 이런 것이고, 관철되지 않으면 총파업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 6월 경고파업을 계획했다.

준비정도와 관련해서 8월 총파업이 성사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할 거라고 보고 있고, 과연 가능할 거냐고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결코 불가능한 계획은 아니라고 본다.

87년 노동자대투쟁, 96~97년 노동법 개악에 맞선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과 지금을 비교하면 여건이 변화됐다. 87년 노동자대투쟁 때는 민주노총이 아예 없었다. 96~97년이 총파업 투쟁이 최초의 총파업이자 유일한 총파업으로 남아있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은, 그때는 산별연맹이 완전히 정립되지 못한 상황이었고, 지금은 이제 형식적으로는 16개 산별연맹이 민주노총에 가맹하고 운영하고 있는 중요한 단위로서 명실상부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맹조직 16개 산별연맹의 준비 정도를 보면, 16개 산별연맹 중에 실질적으로 가장 조합원 수가 많은 4개의 큰 단위가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연맹, 공무원노조, 전교조다. 금속노조 15만, 공공운수노조·연맹 14만, 공무원노조 14만, 전교조 7만, 민주노총의 거의 50~60만 명이 이 4개 단위 조합원이다. 이 4개 단위 중 절반 정도는 아예 파업권이 없는 조직이다.

이 4개가 10만 명에 육박하거나 넘는 단위들이고, 보건의료노조나 사무금융연맹, 건설산업연맹 등 4~5만 단위의 연맹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작은 연맹으로는 교수노조나 비정규교수노조, 여성연맹, 정보경제연맹이 있다.

이런 식으로 10만에 육박하는 연맹과 4~5만 정도 되는 연맹과 1만 단위 이하인 연맹으로 구성돼 있는데, 크기나 파업권의 유무와는 무관하게 16개 산별연맹 지도부가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함께하겠다는 결의와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어느 때 이런 적이 있었는가 할 정도로 민주노총이 계획하는 노동자대투쟁을 복원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 연맹들이 그 계획에 맞추려고 대단히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왜 이걸 높이 평가하느냐면, 산별연맹이 정립되면서부터 산별연맹 중심의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현안이 없는 연맹이 하나도 없다. 공무원노조는 공무원노조대로, 전교조는 전교조대로,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연맹, 공공운수노조·연맹 내에서도 얼마나 많은 현안들이 있는지 셀 수 없을 정도이고, 보건의료노조, 사무금융연맹, 건설산업연맹, 민간서비스연맹 등 각연맹들에 자신들의 요구가 다 있다. 이걸 노동관련법 전면 제·개정,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철폐라는 3대 요구로 압축하기가 대단히 어렵고, 실질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각 연맹을 구성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비정규직 관련한 이해와 요구가 얼마나 있는가? 이런 걸 전반적으로 검토할 때 산별연맹들이 자기 요구를 앞세우지 않더라도 민주노총 전체의 투쟁에 복무하겠다는 자세는 대단히 중요하다.

더 나아가서 자신들의 조합원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싸우자는 데 모든 연맹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 점을 대단히 낙관하면서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믿을 건 투쟁뿐

민주노총의 올해 사업계획에는 국회에서 노동관련법 제·개정이 주요하게 올라와 있었고, 그 수단으로 총선을 통한 여소야대 국면의 창출이 있었다. 이 부분이 어그러진 상태에서 노동관련법 제·개정 문제는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일단 민주노총이 상반기에 총선에 올인한 거 아니냐, 너무 매몰된 거 아니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매몰이란 표현과 관련해서 선거에만 매몰됐다는 비판은 받을 수 있지만, 반대로 선거에 열심히 안 해서 결과가 이렇게 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정확한 평가는 민주노총이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실현하지 못했고 실패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진보정치 대통합을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오늘의 비극이 시작됐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진보 통합에 소극적이었던 옛 민주노동당 지도부에 문제가 있다. 그러나 그들만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엔 우리 실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이루지 못한 민주노총의 실패보다는 진보정치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 실패에 대해서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 특위도 구성했지만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여소야대가 안 된 상황에서 어떻게 법 개정이 가능할까. 앞에서 길게 상황을 설명했는데,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8월 총파업 투쟁의 중요성이나 필요성은 더욱 높아졌다고 본다.

만약 여소야대가 되고 압도적으로 야당이 많이 당선됐다고 하면 법 개정도 손쉽게 될 수 있었을 것인가? 여소야대가 됐다고 해서 민주통합당이 곧바로 법 개정에 나섰겠는가 싶다. 이미 열린우리당 시절에 과반을 획득했고, 민주노동당과 합하면 절대적인 다수를 획득했던 야권이 국가보안법 한 줄도 고치지 못하고 넘어갔던 사례가 있다. 여소야대만 가지고 자동적으로 법 개정이 됐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다만 총파업 투쟁에 유리한 국면은 조성됐을 것이다.

여소야대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가? 의회권력의 교체라고 하는 대단히 중요한 객관적 의미도 있지만,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는 주체적 조건에서의 좋은 조건을 마련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게 안 됐다. 주체적 조건에서 자신감 회복이라는 목표는커녕 총선 이후에 엉망진창이 됐다. 따라서 그런 차원에서 믿을 건 우리들의 투쟁밖에 없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새누리당 역시도 비정규직 문제나 이런 것을 언급을 하면서 당선됐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법 개정이 가능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1-10-100 운동을 했지만 새누리당에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시에 ‘국민행복 5가지 100일 약속’을 이야기했다.

100일 내에 하겠다는 그 중에 노동과 관련된 게 두 가지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사내하도급법 제정. 여당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진검승부를 해보자. 새누리당이 이야기하는 그 대책이, 사내하도급법이 과연 비정규직의 양산을 막아내고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법안인지, 아니면 민주노총과 야당이 공동으로 발의하는 법안들이 비정규직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알리고 총파업 투쟁으로 돌파한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노동자를 투표장으로 이끌겠다

올해 상반기에 민주노총은 너무 정치에 매몰된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총선 대응에 많은 힘을 기울였지만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대선을 앞두고 대응 방식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가?

“총선에서 실제로는 한마디로 정리하면 노동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민주통합당도 마찬가지고 통합진보당도 마찬가지고 진보신당도 마찬가지고 모든 야권의 정당들이 노동자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 그 이유는 뭐냐? 집권하면 무엇을 할 것인지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콘텐츠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반MB, 야권연대, 되지도 않는 연립정부 구성론, 이런 것만 가지고 총선에 임하다 보니까 ‘되면 뭐가 바뀌는데?’ 이런 거다.

오히려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국민행복 5가지 100일 약속을 이야기하면서 민생국회를 구성하겠다고 구체적으로 다가갔다. 그에 비해서 야권은 그러지 못했다.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할 것 없이 야권연대만 외치면 되는 줄 알았다. 노동자들은 되면 뭘 할 건데, 어떻게 하자는 건데, 어떤 세상을 만들 건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투표율이 낮고, 울산 북구와 창원을의 패배, 이건 전통적 지지기반의 패배라는 점도 있지만, 전통적 지지기반의 투표율 제고를 위해서 조직된 노동자는 물론이거니와 미조직 노동자들, 비정규 노동자들을 투표장으로 데리고 오는 게 그만큼 어려웠다는 거다. 이번에 또 한 번 확인한 거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사실상 투표권이 봉쇄돼 있다. 우리가 캠페인도 했지만, 이런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투표율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적극적인 투표 의사를 발동해 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노동계의 실패요인이었다고 본다.

노동자들이 어떻게든 투표장에 오면 새누리당 찍겠나? 절대 아니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노동자라면, 투표장으로 나오기만 한다면 절대 박근혜나 새누리당으로 표가 가지 않을 거다.

그렇지만 투표장으로 나오게끔 할 만한 강력한 그 무엇이 있었던가? 예를 들어 2004년 민주노동당처럼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 신설, 민주노동당, 이런 강력한 메시지들이 조직된 노동자든 미조직된 노동자든 투표장으로 나오게 이끌었던가?

대선 전략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될 거다. 중요한 민주노총의 대선방침 중의 하나는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을 투표장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실질적으로 투표권을 봉쇄하고 있는 법·제도에 맞서서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울산 동구의 경우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투표장에 못 나오게끔 하는 원청의 엄청난 압박이 있었다.

보궐선거보다 더 낮은 투표율이 왜 나왔는지 아는가? 보궐선거일은 휴일이 아니어서 8시까지 투표한다. 그나마 퇴근 후에 투표할 수 있다. 총선, 대선은 법정공휴일이지만 실제로는 쉬지 못하고 투표가 6시에 끝나기 때문에 사실상 투표권이 봉쇄돼 있다.

민주노총 대선 선거방침은 미조직된 노동자들을 나오도록 하는 대대적 캠페인과 투쟁을 벌여나가는 것이 첫 번째다. 여기에 조직된 노동자들이 어떤 후보에게 투표할 건지 정책과 노선에 대해서 노동존중과 민중복지라는 민주노총 요구를 실현하는 후보를 발굴하고, 그것을 통한 투표행위가 이뤄지도록 하는 게 현재 구상중인 대선 선거방침이다.”

투쟁 속에 혁신과제 드러날 것

민주노총 지도부의 이야기가 현장 조합원들에게까지 전달되지 못하고, 민주노총 조합원이면서도 민주노총을 내 조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조합원들도 있다고 들었다. 총파업을 앞두고 현장 조합원들과는 어떻게 소통하고 있나? 총파업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응은 어떤가?

“총파업뿐만 아니라 조직이 커지면서 현장의 목소리가 중앙까지 수렴되고 중앙의 결정이 현장까지 시달되는 것은 어느 조직이나 조직이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구분하는 중요한 지표다. 실제로 민주노총도 그것이 원활하게 되고 있는가,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예를 들어 지역 간담회를 한다든지, 순회 간담회를 한다든지, 특보를 발행한다든지, 조직사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한다든지, 이런 여러 가지 계획들을 세우고 있지만, 현재까지 만족스럽지 못한 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원망한다. 현장은 왜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냐고 한다. 총파업 결정되고 나서 수차례 이상 지역본부 순회 간담회를 했는데 놀랐던 건, 현장 가서 들어보면 민주노총 8월 총파업이 있다는 걸 현장간부들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게 언제 결정됐나? 1월 31일 결정된 사항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이런 물음을 서로에게 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현장은 현장을 알기나 알고 그런 총파업 계획을 세우고 있느냐,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계획을 세우는 거냐, 이런 질문을 하고, 나는 속으로 그게 언제 결정 난 건데 결정조차 모른 채 이러고 있느냐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총파업을 통해 첫 번째 달성하고자 하는 게 바로 이거다. 투쟁을 통해 법을 한 줄 바꾸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단 한 줄, 단 한 자의 법을 바꾸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이걸 만드는 큰 투쟁의 과정에서 우리 민주노총 내부의 혁신의 과제들이 고스란히 나타날 것이고 투쟁 속에서 개선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큰 투쟁을 기획하지 못하면 우리 속에 있는 질병,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 어떻게 소통이 가능하고 어떤 방식으로 현장과 같이 눈높이를 맞출 것인가? 현장은 지도부의 고민을 어떻게 이해하게 할 것인가? 이런 과정을 어떻게 민주노총을 새롭게 거듭나게 할 것인가 하는 대단히 중요한 과정으로 보고 있다. 총파업을 통해서 얻어야 할 우리의 구체적 목표도 있지만, 내가 더 주목하는 건 이 과정에서의 일치성이다.

내가 처음 위원장 되면서 이야기했던 ‘여러분이 민주노총입니다’라고 하는 것을 마무리하는 그런 사업으로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총파업 이전과 이후의 민주노총은 모든 사업을 풀어나가는 방향에서 분명히 다를 것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총연맹 핵심은 전략수립

민주노총이 소속 사업장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종종 듣는다. 반면에 단위사업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민주노총의 역할이냐는 정반대의 비판도 존재한다. 위원장님은 민주노총이라는 총연맹의 역할이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가? 그 속에서 총연맹과 산별노조 또는 산별연맹, 그리고 단위사업장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가?

“취임하면서부터 대단히 중요하게 얘기한 거고 민주노총이 어려워진 건 거기서부터 시작된 거다. 산별노조 시대로 접어들면서 민주노총의 위상이 혼돈되기 시작했다. 96~97년 노개투 때와 같이 민주노총이 하나의 노조처럼 역할 했던 때도 있었다. 직선제는 그 혼돈, 혼돈이라기보다는 혼란 속에서 민주노총을 혁신할 수 있는 방안 중의 하나로 제시된 것이다.

이건 명백히 조직의 위상과 내용이 다른 불일치의 문제다. 다시 말해서 민주노총이 어려워진 건 민주노총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인데, 민주노총이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평가가 상반된다. 한편에선 투쟁 현장에 민주노총 위원장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하고, 다른 한편에선 투쟁 현장만 쫓아다니는 게 민주노총 위원장의 역할이냐고 한다.

명백하게 민주노총의 역할은 내셔널센터로서 노동운동의 전략을 수립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거다. 국가적 의제를 제시하는 거다. 거기에 맞춰야 한다. 물론 투쟁하는 현장을 소홀히 할 순 없다. 그런데 투쟁하는 현장만 쫓아다니는 건, 마치 선 따라 두는 바둑처럼 포석 없이 두다가 백전백패하는 것과 비슷한 거다.

이 고민이 계속된다. 투쟁하는 현장에 안 나타나고 뭐했나, 쌍용차 분향소에 얼굴 한 번 안 보였다, 아니면 희망버스 안 탔다, 위원장이 파파라치도 아니고 어디 나타나느냐 안 나타나느냐에 따라서 투쟁이 달라지는 게 아니다. 이런 비판에 일희일비하진 않는다.

다만 민주노총이 더 중점적으로 가야 할 것은 민주노총의 발전전략과 운동의 전략을 수립해 비전으로 제시하고, 가맹·산하조직이 거기에 맞춰서 어떻게 복무할지를 지도해야 한다. 그걸 못했다. 단병호 위원장 때 그걸 시도했는데 정세가 변화되면서, IMF와가 전면적으로 들어오고 신자유주의의 공세가 전면화 된 노동운동의 퇴조기에,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지 논의는 했지만 조직 내 소통과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거기서부터 운동이 표류했다.

그 뒤로 비리나 성폭력 사태 같은 안 좋은 일들로 인해 지도부들을 안정화시키지 못했다. 그렇게 표류하면서 혼선은 가중됐다. 민주노총이 내셔널센터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욕을 먹더라도 극복해야 한다.
내셔널센터로서의 전략적 홍보기능, 대국민 홍보기능을 강화해야 하고, 정치방침이나 산별 전략,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지도력을 높여야 한다. 물론 투쟁이 대단히 중요하고 투쟁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전제 위에서 투쟁이 가능하고 힘이 발휘될 수 있다. 지난해 30일 이상 단식농성을 했던 이유도 그런 것들을 복원하고 대국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지 한 사업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했던 건 아니다.

민주토총의 역할은 분명한 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전략과 노선을 세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임기 동안 그런 전략이나 비전을 수립하지는 못했지만, 민주노총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은 어떤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이걸 구현하는 지도력이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 노선 수립만큼 중요한 통합적 지도력을 만들어내는 데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서 가장 정파적인 집행부라고 하는데 이건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끝까지 임기 마치는 날까지 고질적인 정파구도를 깨고 민주노총이 다시 거듭나도록 하는 그런 역할을 할 것이다.

이번 투쟁을 통해 제시하는 우리의 요구는 민주노총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을 여는 초초안의 성격으로 제출되는 것이다. 투쟁 이후에 7·8·9 노동자대투쟁 25주년 기념 심포지움을 9월로 예정하고 있다. 7가지 섹션으로 얘기하려고 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민주노총이 내거는 총체적 비전을 대중에 공표하고 합의를 이루어내, 합의된 내용을 누가 당선되는지와 무관하게 차기 지도부에서 민주노총의 전략적 방침으로 수립할 수 있도록 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게 임기 중에 해야 할 대단히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위탁·대리정치 벗어나겠다

위원장님은 지난 기자간담회에서 87년 체제를 넘어서 노동기본권이 보장되는 새로운 2013년 체제를 올해 만들자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 구체적인 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민주노총’이라고 했는데, 민주노총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이 뭐냐, 지금 세상은 어떤 세상이고 바꾸고자 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냐를 정리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이걸 이론적으로 정리하자면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자본 천국의 세상에서, 노동이 존중받는, 민중이 행복한, 조국이 평화로운 그런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뛰어 넘어 뭘 하자는 거냐, 케인즈주의 정도냐, 사민주의를 하자는 거냐, 아니면 민주노총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이 사회주의 국가냐,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아직까지 정돈되진 않았지만 정리하자면, 우리가 사는 현 사회는 모든 가치를 자본의 이익에 복속시키는, 그야말로 신자유주의 정책이 온 사회의 정치와 사회,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야만의 사회다. 무한경쟁과 야만의 사회.

이렇게 규정한다면 민주노총이 염원하는 새로운 세상은 가장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서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고 평등과 평화, 환경과 생태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과 경로를 통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번 투쟁 거친 이후, 9월에 계획하고 있는 7·8·9 노동자대투쟁 25주년 기념 심포지움을 통해서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모아 민주노총의 보고서로 나오지 않겠나 기대한다.”

민주노총은 아직 정치방침을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5월 17일 중집에서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 추진을 결정하고 이를 위한 특별기구를 설치한 바도 있는데,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내셔널센터 역할 중에 또 하나 대단히 중요한 것은 정치방침이다. 전 세계 내셔널센터는 각각의 고유의 정치방침을 다 가지고 있다. 정치방침 없는 내셔널센터는 없다. 그만큼 정치방침을 결정하는 총연맹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한데, 우린 아직 정치방침을 정하지 못한 채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한 특위, 줄여서 새정치특위를 가동하려고 하고 있다.

구체적인 건 토론을 통해 조직 내 합의를 이뤄가야 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대강은, 기존의 제1기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당을 창당하고 그 당에 의거해서 정치세력화를 이룬다는, 달리 표현하면 위탁 또는 대리정치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공과 과가 다 있다. 제1기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사실상 실패했다고 보는 견해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성과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완벽하게 성공했느냐, 그렇게 보기에는 현재 상황이 절망적이다.

우리가 논의해야 할 정치방침이 어떤 당에 의거해서, 어떤 당을 지지할 건가 말 건가, 그 당에 대해 배타적 지지를 할 건가 아닌가, 이런 정치방침은 아니다. 과연 우리가 당을 창당하고 나서도 골간조직에 정치담당 국을 둔 조직이 얼마나 있었는가, 여전히 골간사업에서 벗어나 있는, 선거 때만 매몰되는 정치방침은 이제 끝내야 한다.

오히려 총연맹의 정치사업이 부족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는 지금, 우리가 매몰됐다고 비판받는 지점이 어딘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평상시엔 정치사업이나 정치교육 잘 안 하다가 선거 때만 몸 대고 돈 대고 이러니까 매몰됐다는 비판에서 못 벗어나는 것 아닌가. 그 점을 뼈저리게 성찰해야 한다.

조합원들이 ‘평상시에 좀 오지’라고 하는 그 말에 대해 지도부는 뼈저리게 반성하고 거기에 기초해서 새정치특위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사업을 골간사업의 중요한 사업으로 배치하고, 일상적으로 조합원들의 정치의식을 고양할 수 있는 사업들을 다양하게 제기하고 전개해야만 노동자들이 진정한 정치의 주인이 된다.

선거 때만 동원되는 대상이 아니라 노동자가 진정한 정치의 주인으로 서야만 선거 때 자기의 권리를 자연스럽게 행사하는 것으로 나간다. 선거 때만 동원되는 대상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그 방법을 찾는 게 새정치특위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최임투쟁, 법·제도 개선으로 가야

지난해에는 ‘국민임투’를 슬로건으로 최저임금투쟁을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올해는 최저임금투쟁이 당사자인 저임금노동자들에 국한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민주노총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

“최저임금, 대단히 중요하다. 작년에는 국민임투 내걸고 투쟁이라도 했는데 올해는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지난해 국민임투를 마감하면서 최저임금투쟁은 분명하게 법·제도 개선으로 나가야 한다고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국민임투의 한계를 명확히 평가했다.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조합원들 동원해서 집회도 했지만 이 구조로는 최저임금의 실질적인 인상을 이끌어 내거나, 사회양극화를 해소하는 유력한 방법으로서의 최저임금 확보는 당분간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마지막에 법·제도 개선으로 가야 한다는 게 최저임금 당사자들과도 합의가 됐다. 그리고 야당에 의해서 법안 발의도 이미 돼 있다.

최저임금투쟁의 방향은 명확히 법·제도 개선으로 가야 한다. 시혜적 차원에서 얼마 올리고 말고 하는 게 아니라 제도적으로 우리 사회에 최저임금이 자리하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같은 경우는 정부의 도발에 의해서 최저임금위원회가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더 이상 최저임금위원회에 기대할 건 없다.

그렇다고 투쟁 안 하는 건 아니다. 민주노총은 일관되게 최저임금제도 개선을 위한 투쟁을 해왔다. 우리가 파업기금으로 대국민 홍보를 위한 라디오 광고를 했을 때에도 첫 번째로 한 달간 냈던 게 최저임금이다. 최저임금제도는 복지국가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려내는 광고를 다른 비정규직이나 정리해고 문제에 우선해서 진행했다. 이걸 가지고 무마될 거라고 하는 게 아니고 그만큼 중요성을 가지고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6월 28일 경고파업 때도 나머지 대오들이 다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분명한 입장을 가져갈 거라고 하는 것은 민주노총의 주요한 사업으로 여전히 유효하게 상정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다만 그 방식이 법·제도 개선으로 분명하게 가야 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10원 올리느냐 20원 올리느냐, 이런 밀고 당기기는 이제 벗어나야 한다.”

마지막으로 8월 총파업을 앞두고 조합원들과 국민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민주노총은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특히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에 민주노총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진보운동 역시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에 주어진 역할과 책무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우리를 둘러싼 조건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그래서 더 총파업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어렵지만 해보겠다고 한다는 점을 지금 분명하게 확인하고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민주노총은 저력이 있다는 것을 이번 과정에서 분명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이 이번 투쟁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결국 역사를 바꾸는 주체는 노동자라는 사실이다. 그게 있으면 과연 총파업을 통해서 뭘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의심을 뛰어 넘어서, 세상을 한 발이라도 더 진전시키는 것은 노동자들의 단결된 투쟁이라고 역사는 분명히 그렇게 기록할 것이다. 조합원들도 적극적으로 화답할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