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 김정경 기자
  • 승인 2012.07.30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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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승무 부담, 과도한 징계 공황장애로 이어져
실태조사, 재발방지대책마련 시급
[분석 1] 기관사 공황장애

전국적으로 하루 평균 이용객이 1,100만 명에 이르는 지하철은 시민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이다. 그만큼 지하철 안전 문제에 대한 관심 또한 높다. 하지만 안전 문제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건 비단 승객에 국한될 뿐, 좁고 어두운 기관실에서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며 열차를 운행하고 있는 기관사들의 안전과 건강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런 무관심 속에서 평소 공황장애를 호소해오던 기관사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비슷한 유형의 죽음이 반복해서 일어 난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왜 유독 기관사들에게서 공항장애 발병률이 높게 나타나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되짚어 올라가자, 궤도노동자들이 안전궤도 밖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이 자리하고 있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늘도 기관사들이 죽어간다

지난 3월 12일 서울도시철도공사 소속 이 모 기관사가 5호선 왕십리역 승강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기관사는 지난 1995년 전자직으로 입사한 후 기관사 면허를 취득해 2006년부터는 승무직으로 일해 왔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 따르면, 전직할 당시만 해도 양호한 건강상태를 유지했었지만, 작년부터 열차를 운전할 때마다 어지럼증과 메스꺼움 등 정신이상 증세를 호소해왔다고 한다. 특히 지난 4월 자신이 운행하는 열차 출입문에 승객이 끼어 하차하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한 후부터는 증세가 심각해져 병원을 찾았고, 주치의로부터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한편, 6월 11일과 23일에는 한국철도공사 소속 박 모 기관사와 최 모 기관사가 자살했다. 박 모 기관사는 남영역에서 달려오는 전동차에 스스로 몸을 던졌으며, 이 사건이 발생한지 불과 12일 뒤엔 최 모 기관사가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최 모 기관사의 유족에 따르면 최 기관사는 “신장 180cm의 건장한 체격에 입사 후 병가 한번 내보지 않은 건강한 몸”이었다고 말한다. 최 기관사는 17년 간 수도권 1호선 기관사로 일해 왔다. 사상 사고를 경험하고 오랜 기간 힘들어 했으며, 최근 정지위치 어김 사고로 징계를 받고는 운전 업무에 대한 심한 정신적 압박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최 기관사는 ‘직무부적응에 의한 스트레스성 장애’ 판정을 받았고, 치료를 받던 중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게 된 것이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지만 이들의 자살을 그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이들의 죽음에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세 기관사 모두 죽기 직전까지 공황장애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해왔던 것이다.

공황장애는 특별한 이유 없이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극단적인 불안 증상이 주요 특징인 질환이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고 땀이 나는 등의 신체증상이 동반되며 때로는 죽음에 이를 것 같은 극도의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공황장애는 심리사회적 요인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는데 공황장애를 겪는 많은 사람들이 이전에 스트레스 상황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 이 모 기관사의 생전 정신과 치료를 담당했던 경희대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조성훈 주치의는 “공황장애는 자살률이 높은 정신질환 중 하나로 직무스트레스가 공황장애를 유발하였으며, 이에 자살의 인과관계가 있을 수 있다”며 업무상 사유로 인한 발병임을 인정하는 의학적 소견을 낸 바 있다.

결국 입사 당시만 해도 건강했던 기관사들은 업무 과정에서 심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 불안을 경험했고, 근본적인 치료나 해결을 위한 대안은 마련되지 않은 채 방치되다보니 공항장애등의 정신질환으로 심화됐던 것이다. 공황장애를 앓던 이들의 자살은 어찌보면 이미 예고된 죽음이었고, 그래서 막을 수도 있었던 안타까운 죽음이었던 것이다.

공황장애, 원인은 있다

2007년 노사합의로 도시철도공사 기관사 8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특별건강검진 결과를 살펴보면 기관사들의 정신 건강권 실태를 알 수 있다. 일반인 남성과 비교해 유독 기관사들의 정신질환 유병률이 높게 나타난 것을 확인 할 수 있는데, 이는 정신질환이 단순한 개인의 성향 문제를 넘어 근로 조건과 환경에 기인한 문제라는 사실에 힘을 실어준다.

기관사들은 일반적인 교대근무와 달리 출퇴근 시간 및 업무시간이 매일 매일 다르다. 이 때문에 많은 기관사들이 불규칙한 스케줄로 수면장애를 겪거나,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는 경우가 많다. 도시철도공사의 경우는 최근 사측이 효율성을 강조하며 탄력운영을 실시한 탓에 출근 시간은 빨라지고, 퇴근 시간은 늦어졌다.

도시철도공사 승무본부 김태훈 본부장은 기관사들이 겪고 있는 공황장애의 가장 큰 원인으로 1인 승무제와 수동운전 실적 강요로 인한 부담감 그리고 장시간 지하운전에 따른 피로감을 꼽는다.

김 본부장은 “1인 승무제의 경우 혼자서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열차를 운전하면서, 안내방송도 하고 출입문과 스크린도어까지 신경 써야하니 부담이 크고, 실수가 발생할 여지가 많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1인 승무는 자동열차운전장치가 도입되고, 스크린도어가 설치되는 등 자동화 설비가 갖춰지면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기관사가 단독으로 승무할 경우 열차운전을 비롯해 선로감시, 출입문 취급, 승객안내방송, 민원처리 등의 업무를 혼자서 수행해야 한다. 고도의 집중을 요구하다보니 노동 강도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혼자서 책임을 지고 수습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 실수나 사고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주는 스트레스 또한 크다.

최근에는 이에 더해 공사 차원에서 에너지 절약 운동의 일환으로 수동운전 실시를 권장해 오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기관사들은 “수동운전을 업무실적에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권장이라기보다는 강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문제는 이 같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환경뿐 만이 아니다. 전국철도노동조합 지영근 조직강화특위장은 업무상 작은 실수가 있을 때마다 받는 과도한 징계 역시 기관사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주요한 요인이라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최 모 기관사의 경우 정지위치를 어기는 작은 실수를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가는 2개월에 걸친 직위해제와 3개월의 감봉이었다. 더욱이 직위해제 기간 중에는 특별자격심의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인들에 따르면 고인은 이로 인해 심한 정신적 압박과 인간적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지 조직강화특위장은 “현재 사장이 들어오면서부터 작은 실수에도 무자비한 징계를 내리고 있다”며 “기관사들은 이런 징계에 대한 압박 때문에 ‘또 사고를 내면 어쩌나?’ 하는 긴장감과 ‘징계를 받고, 해고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며 운전 업무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일로 정신질환을 겪게 되더라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실정이다. 어려움을 이야기하거나, 전직을 신청할 경우 인사상 부당한 처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앞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기관사들도 전직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거나, 몸이 아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부당한 처우를 받게 될까 두려워 병명을 숨기고 열차 운전을 계속 할 수 밖에 없었다.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

서울도시철도노조와 전국철도노조는 기관사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근본 원인을 밝혀내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수립해줄 것을 사측과 서울시에 요구하고 있다. 또한 기관사들의 현장운전업무와 정신건강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를 실시해 줄 것과 기관사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정신과 상담 실시를 의무화 할 것도 촉구했다.

철도공사는 이런 노조의 요구에 직무스트레스 측정의 일환으로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심층면담을 실시했고, 희망자를 포함해 치유가 필요한 30여 명을 선정했다. 하지만 철도노조는 현장 관리자들이 업무부적응자를 선별해낸 것뿐이라며 제대로 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김태훈 서울도시철도공사 승무본부장은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고 2인 승무 실시, 과도한 현장 통제를 완화해야 할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기관사의 근무환경 자체가 개선돼야 할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김 승무본부장은 “기관사를 천대시 하는 경우가 많고, 승무직에서 다른 직종으로 전직을 신청하는 기관사들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중요한 업무를 하는 만큼 기관사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인식 개선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공공운수노조 이상무 위원장은 “기관사들이 회사로부터 어떤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매년 받는 건강검진조차 두려워하고 있다”며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일터, 건강했던 몸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 일터”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4년 2월 공황장애로 인해 사망한 기관사에 대한 첫 산재인정이 이뤄졌다. 기관사들의 육체적 건강권 못지않게 정신적 건강권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판결이다.

공황장애로 인한 기관사들의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사후 수습에만 급급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게 될 경우 앞으로도 똑같은 죽음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열차 운행을 책임지는 기관사의 건강은 곧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의 안전과도 직결된다. 안전한 일터에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 기관사들의 소박하지만 중요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