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는 대한민국 직장인 목숨 값
숫자로 보는 대한민국 직장인 목숨 값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2.07.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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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직장인에 비해 30배 헐한 대한민국 직장인
과로로 숨진 직장인 10명 가운데 2명만 산재 인정
[분석 2] 일은 생명이다

오늘도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일으키고 일터로 향하는 당신.
세계 최장 노동시간 기록을 보유한 대한민국에서 불철주야 일하는 당신.
당신이 일하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 참여와혁신 포토DB
어느 날 날아온 친구의 부고에 가슴이 뜨끔한 적은 없었나요. 이제 마흔인데, 아직 아이들이 어린데, 잠을 자다, 양치질을 하다 돌연사를 했다는 말에 뒷골이 당긴 적은 없나요. 새벽에 가슴이 콱 막혀 잠에서 깬 적은 없나요.

살려고 일하는지 죽으려고 일하는지? 아둥바둥 잡고 있는 삶의 동아줄이 어느 순간 당신을 펄펄 끓는 용광로로, 수십 미터 낭떠러지로 내몰지 모릅니다.

세계 경제규모 11위의 대한민국 직장인은 더 이상 전쟁터에 나선 군인이 아닙니다. 소중한 생명을 지닌 누군가의 아들딸이고, 누군가의 어머니아버지이고, 내 벗이고 이웃이며, ‘나’입니다.

숫자로 대한민국 직장인의 목숨 값을 살핍니다.

산업재해 통계를 내는 방식이 나라마다 달라 비교 수치를 드러내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여러 발표에서 한국의 산재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0만 명 당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을 측정하는 ‘10만인율’ 통계자료가 있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국가별 사고사망 10만인율에서 한국은 32.9로 가장 높았습니다. 10만 명이 일하면 이 가운데 33명이 숨진다는 말입니다. 다음이 멕시코인데 10.0으로 한국의 1/3에 불과합니다. 3위 캐나다는 5.90, 4위 슬로바키아는 5.0입니다.

가장 낮은 국가는 노르웨이로 1.31, 그 다음이 스위스로 1.40 수준입니다. 노르웨이 노동자에 비해 한국 노동자가 일하다 숨질 확률이 30배 가까이 높다는 뜻입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일하다 숨진 사람이 한 해에 얼마나 될까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2,114명이 숨졌다. 노동자 만 명 가운데 1.47명, 하루에 자그마치 6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1년 전체 재해자는 93,292명이고, 이 가운데 일을 하다 질병을 얻은 사람은 7,247명에 달한다.

이 통계를 보면 가슴 아픈 결과를 찾을 수 있다. 사업장 규모가 작은 곳에서 일할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산재 노동자가 많다는 것이다.

산재를 당하는 노동자 가운데 50~54세 연령대가 15,694명으로 16.8%로 가장 높다. 사망한 노동자 중에서는 60세 이상이 317명으로 22.9%를 차지해 가장 높다. 이처럼 연령대가 높을수록 다칠 위험이 높고,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정년 연장이나 노인 일자리 창출, 임금 피크제를 통한 고용보장이 때론 ‘산업전사’에게 일할 기회가 아닌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산업전사자’를 만들 위험을 품고 있다.

사업장 규모별로 산업재해를 비교한 수치도 있다. 산재 노동자 93,292명 가운데 76,885명(82%)이 50인 미만 사업장에 다니고 있었다. 산재 노동자 10명 가운데 8명은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에 다닌다는 말이다. 사망자의 경우에도 50인 미만 사업장이 1,314명으로 62.15%를 차지해 가장 높다.

이 숫자는 저임금과 열악한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한다는 결과다. 임금의 차별은 생명 차별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최근 대기업 조선소에서 일어나는 사망 사고의 대부분은 하청협력업체 소속이었다. 임금이 절반이라고 목숨마저 반 토막 나서야 되겠는가?

ⓒ 참여와혁신 포토DB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산재를 당할까

업무상 사고 재해자나 질병을 얻은 노동자의 비율은 제조업이 높다. 하지만 사고 사망자는 건설업 노동자가 577명(41.7%)으로 그 비중이 가장 크다.

유독 건설업이 사고나 질병에 비해 사망률이 높은 까닭은 뭘까? 건설노동자는 죽지 않으면 웬만한 사고나 질병은 산업재해 신청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건설노동자의 불안정한 취업 형태와 관련이 있다.

산재 사망자 가운데 32.7%인 452명이 추락 사고로 숨졌다. 발판이 튼튼히 고정되거나 안전대나 안전망이 있었으면 막을 수 있는 사고들이다. 이런 사고에 대해 많은 이들이 ‘작업자의 부주의나 안전불감증으로 산업재해가 일어났다’며 재해 당사자의 책임으로 돌린다.

산업재해 발생 원인을 ‘근로자의 피로, 근로자의 작업상의 부주의나 실수, 근로자의 작업상의 숙련미달’로 미루는 생각은 안전한 일터의 걸림돌이다.

‘작업자의 부주의’는 사업주의 책임을 회피하는 데 사용된다. ‘작업자의 피로나 실수’도 장시간 노동, 야간 노동 때문인 경우가 많다. 주간에 일할 때보다 야간에 일할 때 산재가 많이 일어나고, 야간 근무 때 일어나는 사고는 중대 사고로 이어지기가 쉽다. 노동환경을 바꾸려는 사업주의 적극적인 의지가 없이는 산재공화국의 오명을 씻기 힘들 것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쉼 없는 일터, 과로 공화국

2011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해마다 평균 314명의 노동자가 과로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 2006년부터 5년간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과로사 사망자는 1,572명이다. 이 가운데 남성이 1,412명이고, 여성은 162명이다. 연령별로는 40대가 603명으로 가장 많았고, 50대 420명, 30대 265명, 60대 205명 순이다. 20대도 53명이 과로로 숨졌다.

과로사한 남성의 경우 고위임직원 및 관리자가 전체의 25%인 353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단순노동자 323명, 장치 기계조작 및 노동자 185명, 기능원 및 기능 노동자 164명, 사무노동자 135명 순이다. 여성은 단순 업무 노동자가 전체의 30%인 49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서비스 종사자가 45명이었다.

이처럼 과로는 직종과 직무, 그리고 직위를 구분하지 않고 직장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과중한 노동으로 숨지고 있다. 위자료는 산재보험 대상자 가운데 뇌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해 유족급여나 장의비가 지급된 사망자만을 나타낸 것이다. 과로로 숨졌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는 제외됐다는 뜻이다. 더불어 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나 특수고용노동자, 자영업자 가운데 장시간 노동으로 사망한 이의 숫자도 빠졌다. 이를 더한다면 과로사로 숨진 사람의 수는 월등히 늘어날 것이다.

장시간 노동과 주야 교대로 과로가 일상화된 택시 노동자의 경우는 뇌심혈관계 질환을 앓는 이가 1만 명 당 3~6명에 이른다. 이는 전체 노동자 뇌심혈관계 질환 발생자 1.3~1.6명에 비해 3~4배 높은 수치다. 이처럼 과중한 노동은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자 산업재해를 조장하는 배후세력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일하다 죽어도 ‘입증 책임’ 업무만 남는다

직업병을 얻으면 산재 당사자가 일을 하다 얻은 병임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일만 하던 노동자가 의학적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비용과 시간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2012년 6월 19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노동자가 일을 하다 질병에 걸린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업무와 질병의 연관성을 근로자가 모두 입증하도록 한 현행 제도를 개선하라’고 고용노동부에 권고 했다. 일하다 다치고도 자신이 입증해야 하는 것은 곧 인권과 생명권을 해치는 것으로 귀결되기 마련이어서 인권위가 이런 권고를 했을 터이다. 하지만 이는 강제가 아닌 권고사항에 불과하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일하다 다쳐도 산재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비율(불승인율)이 2007년에는 54.6%였는데, 2010년에는 63.9%로 9.3%포인트가 증가했다. 뇌심혈관 질환의 불승인율은 2007년 59.8%에서 2010년 85.6%로 25.8%포인트나 늘었다. 산재로 보상을 받기는커녕 갈수록 직업병으로 인정받는 것조차 힘들다는 이야기다.

삼성전자를 산업재해로 날리다

안전을 지키는 비용보다 지키지 않았을 때의 손실이 훨씬 큰 걸로 알려지고 있다.

2010년에 산업재해 보상금으로 지급된 비용이 3조5천억 원에 달했다. 2009년에는 3조4천억 원이었으니, 1년 새 1.75%가 증가한 것이다.

보상금 말고 직간접적인 경제적 손실까지 합치면 2010년 산업재해로 입은 손실액은 17조6천억 원이 넘는다.

한국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한 해 영업이익이 20조 원이니, 산업재해로 삼성전자의 이익에 맞먹는 비용을 날린 셈이다. 열심히 스마트폰을 팔고 자동차를 수출하는 일보다 안전이 더 큰 이익을 남긴다.

솜방망이로는 지킬 수 없는 직장인 목숨

산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노동자의 집단 사망이 일어나면 경영진을 사법처리 하기도 한다. 캐나다, 호주에서는 회사의 최고경영진을 살인죄에 준해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법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예방이다. 지켜지지 않으면 강력히 규제하는 게 최선의 예방법이다.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려면 법을 어겨 처벌을 받는 것보다 준수하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야 한다. 처벌이 솜방망이에 불과하니, 안전 설비를 갖추고 일하는 것보다 벌금을 내는 게 비용이 덜 든다는 생각을 한다. 생명을 대차대조표의 이윤과 바꾸는 것이다.

현재 법원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예방법으로 취급하여 형량을 낮게 선고한다. 사망과 같은 중대재해가 일어나도 사업주에게 과실치사죄가 적용되는 게 아니어서, 큰 사업장의 사업주나 법인이 빠져나갈 곳이 있다. 이에 대한 법과 제도의 보완이 필요한 때이다.

노동자 사망과 같은 중대재해에 대해서는 사업주를 형사 처벌할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드는 것과 같은 대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예방을 위한 법으로 생각하기보다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살인죄처럼 징벌적 처벌이 필요하다.

산업재해 예방조치는 법 때문에 지키는 게 아니다. 누구나 알아야 하는 상식이자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산업재해는 교통사고처럼 의도하지 않고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의도가 개입된 사고나 사건이라고도 한다. 자연재해처럼 불가피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산업재해를 ‘산업인재’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답은 분명하다. 목숨보다 우선해서 소중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