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삶이 위급할 땐 헌법 119
서민의 삶이 위급할 땐 헌법 119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2.07.3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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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기업은 부모 잃은 고아 신세인가
헌법은 자유 시장경제질서만을 원칙으로 하는가
[기획 연재] 경제민주화를 진단한다(1)

‘경제민주화’가 대세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뭐 길래 이리들 난리일까?

요즘 대기업은 “부모 양쪽에서 버림받은 고아 같은 느낌”이라고 한탄한다.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대기업 때리기’는 반격도 있다.
재벌과 타협해 복지국가로 가자는가 하면 재벌을 수천 개로 조각내어 해체하자는 주장도 있다.

재벌 기업 입사가 청춘의 유일한 꿈인 나라. 삼성이나 현대와 마주치지 않고서는 하루도 살아가기 힘든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어찌된 판국인가. 재벌이 무슨 큰 죄라도 지었단 말인가.

나 홀로 잘 살자

재벌에 대한 비판이나 규제에 대한 주장이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광범위한 공감을 얻은 적은 없다. 그 바탕에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반감이 깔려 있다. 이참에 손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분노도 자리 잡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재벌이 시민들에게 보여준 모습은 ‘함께 살자’가 아니라 ‘나 홀로 잘 살자’였다. 경제위기를 들먹이면 곧바로 먹혔던 면죄부도 이제 ‘약발’이 받지 않는다. 함께 허리띠를 졸라맨 줄 알았더니, 재벌들의 곳간에는 금융위기 이전보다 더 많은 현찰이 쌓여 있었다. 그도 모자라 재벌의 2세, 3세들이 골목 구멍가게까지 들어와 영세 상인의 밥그릇마저 독차지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게 권력과 재벌의 돈독한 우정이다. 한때는 ‘정경유착’이 경제를 이끄는 마력을 나타내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우정은 정권의 ‘내리사랑’으로 바뀌었다. 특혜를 주어도 더 달라고 손을 내밀 뿐 도대체 정권유지를 위해 도와주는 게 없다. 내밀한 사랑을 이어가다가는 정권은 쪽박 찰 지경에 빠질 처지다. 현 정권이 목 놓아 구걸한 청년 일자리 ‘청탁’을 재벌들은 모르쇠 했다.

경제 살리기 VS 경제 민주화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생산적이지 못한 논쟁이라는 비판이 있다. 투항을 했느니 좌파 신자유주의니 하며 서로에게 변절 낙인찍기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경제를 두고 벌어진 이 논쟁은 이제껏 벌어진 어떤 논쟁보다도 긍정의 힘을 발휘했다.

정재원 서울대 강사는 말한다.

“논의를 재벌 체제로 국한하더라도 현재 지배블록의 반동에 의해서 엄청나게 후퇴한 정치적,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복원 및 전진을 위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어떤 명칭을 붙이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쟁 역시 일정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는 ‘747 공약’을 앞세운 ‘경제 살리기’의 압승이었다. 성장 위주의 경제 논리에 시민들은 표를 던졌다. 하지만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의 화두는 이미 경제민주화가 자리 잡았다. 이 자체로도 값진 결과를 얻은 셈이다.

경제 살리기의 주체는 재벌(대기업)이고, 시민은 대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는 시민을 중심에 두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재벌이 대상이 되었다. 1987년 시민들의 힘으로 정치 민주주의를 쟁취한 이래로 25년 만에 경제 민주주의를 이룬 거다.

야당이 주장하는 재벌에 대한 사전 규제가 되었든, 여당의 사후규제가 되었든 한국 사회의 걸림돌로 재벌이 지목되었다. 성장의 신화가 평등이나 분배의 문제로 바뀌었으니, 결과를 떠나 이미 큰 성과를 거두었다.

진보 경제학자들의 재벌과 국제 금융자본을 두고 벌어졌던 논쟁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공감이 일정정도 형성되며 정리되는 듯하다. 그렇다고 경제민주화 논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구체적 당사자들의 힘겨루기로 나타나 더욱 치열해질 듯하다.

혁명이 아닌 이상 타협

재계에서 순순히 개혁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경제민주화를 규정한 헌법 제119조 2항을 삭제하자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0년 만에 30대 기업이 참석한 긴급 임원회의를 열며 대책에 나섰다. 경제민주화 흐름을 막아내고 반격을 준비하겠다는 자세다.

물론 이 싸움은 어느 한 쪽의 완승으로 결론 나지는 않을 것이다. 김영호 동국대 교수는 말한다.

“혁명이 아닌 이상, 정부 이상의 힘을 가졌다고도 하는 재벌과 타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먼저 강렬하게 부딪치지만 그것도 타협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개혁하며 타협하고, 타협하며 개혁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경제민주화 관련 전초전이 있었다. 2011년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제’를 말하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나섰다.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사회주의 국가 말인지, 자본주의 국간지, 공산주의에서 쓰는 말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다”며, 이 회장은 이념 문제로 반박했다. 경제학 교수 출신인 정 위원장에게 “경제학 책에서 들어본 적도 없다”는 모독에 가까운 말도 내뱉었다.

이 싸움의 승자는 이건희 회장처럼 보였다. 정운찬 위원장만 경제학 교과서도 읽지 않은 경제학자가 되었다.

하지만 2012년 불거진 경제민주화는 재계에 버거운 문제로 다가왔다. 길거리의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이곳저곳에서 발로 차이기 시작했다.

경제 자유 VS 경제 민주

그냥 맞고만 있을 수 없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싱크 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이 ‘경제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정책 토론회를 열며 논쟁에 뛰어 들었다. 경제민주화로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짓밟으려 하지 말라는 재계의 경고였다.

한국경제연구원 신석훈 박사는 “지금까지는 우리 사회가 시장을 통제하는 경제민주화에만 관심을 가져왔다면 앞으로는 경제민주화를 통제하는 법치국가원리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임”을 주장했다.

여기서 말하는 법치국가원리(법치주의 원칙)란 “경제적 평등과 분배를 이유로 자유 시장 질서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국가권력을 통제하기 위한 원칙”으로 ‘과잉규제금지 원칙’ 등을 말한다.

경제민주화란 명분으로 재벌을 규제하거나 해체하려는 행위는 대한민국 헌법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거다.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는 2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19조 ①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1항은 경제 자유의 원칙이고, 2항은 경제 민주의 원칙을 말한다.

신 박사는 “헌법 제119조 2항에서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국가의 규제와 조정을 인정하고 있으나, 이것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의 근간인 사유재산제도와 사적 자치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며, “기업 활동에 대한 국가개입이 정당하려면 개입의 목적이 정당해야 하고, 개입의 방법이 적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119조에서 1항의 경제 자유는 원칙규정이고, 2항은 보완규정으로 보았다.

“경제민주화는 자유 시장경제 질서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한도 내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므로 이것의 적극적인 정책 기능을 강조할 경우 오히려 경제정책을 혼란시킬 수” 있으니, “혼란만 가중시키는 경제민주화 조항을 삭제해도 무방하다”고, 신 박사는 말한다.

이참에 경제민주화 규정한 119조 2항을 삭제하자는 주장이다.

자유기업원 최승노 사무총장의 주장을 듣자.

“난 (대기업이) 문어발을 안 하는 게 문제라고 본다. 삼성그룹이 어떻게 만들어졌나? 제일모직, 삼성중공업, 삼성전자 식으로 전혀 관련 없는 것들을 연이어 만들면서 운영했다. 관련 없는 분야에 더 공격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유 시장경제 체제에서 힘을 지닌 세력이 살아남는 게 당연한 이치라는 말이다. 이는 자유롭게 시장에 맡겨 소비자가 선택하는 게 옳다는 주장이다. ‘소비자가 왕’이며, 경제 질서의 선택권을 쥐고 있다는 최승노 사무총장의 말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 예전에는 통닭집이 많았다. 지금은 프랜차이즈 치킨 집으로 다 바뀌었다. 누가 사업을 하는지는 바뀌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동네 소비자들이 중요한 것이다.”

민주주의 VS 자유시장

이에 대해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은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민주주의가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의미”라며, “자유 시장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경제민주화를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시장의 자유를 말할 수” 있다고 신 박사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또한 “정치권력이 집중되면 독재의 폐해가, 시장 점유율이 집중되면 독점의 폐해”가 나타난다며 경제민주화의 선결 조건으로 “재벌개혁”을 주장했다. 경제민주화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작동되지 못하게 하는 재벌의 문제점을 고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김병권 부원장은 “대부분의 법학자들은 우리헌법이 ‘순수한 자유 시장경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주의적 통제 경제는 더더욱 아닌, 그 사이의 다양한 혼합경제의 하나로서 ‘사회적 시장경제 질서’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한다.

정신적 자유와 달리 경제 영역에서 자유는 역사적으로 볼 때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미 현실에서 강력한 경제력을 갖는 기업에 대한 독과점의 폐해는 관련 법률을 통하여 규제해야 할 정도로 경제에 있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시장에 참가하는 경제주체는 한정된 재화를 둘러싸고 상이한 이해관계에 의하여 서로 얽혀 있어서, 특정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타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경제영역에서 사회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이를 조정하고 규제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개입은 전체 경제 주체의 자유 실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경제 영역에서 특정 주체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기본권을 보장하는 기능을 가진다. 
                                    - 김상겸, ‘한국 경제질서와 헌법상의 경제조항에 관한 연구’, 2009

헌법 제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는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위해서라도 보완규정이나 부수적 조항으로 취급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김병권 부원장은 “헌법 전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라는 대목은 제헌헌법부터 내려오는 항목인데, 우리나라가 정치적 민주주의와 아울러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를 건국의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김 부원장은 경제민주화 조항 삭제를 요구하는 전경련에 대해, 먼저 기업이 받는 특혜부터 폐지를 요구하라고 주장한다.

“전경련이 진정 경제의 자유와 규제 폐지를 요구하려면 우선 연구개발 세액감면 등 온갖 특혜의 폐지를 먼저 자청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인 ‘규제가 없으면 구제도 없다’는 것처럼 한국의 재벌은 ‘규제가 없으면 특혜도 없다’는 원칙을 받아들여야 한다.”

논쟁이 아닌 생존의 문제

김기덕 변호사는 현재 이야기되는 경제민주화에 대해 불편해 한다. 헌법 제119조 2항에서 말하는 경제주체에서 노동자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 내에서 주주들끼리의 민주주의, 기업들끼리의 경제민주화,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노동자를 떠나서 외쳐지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자본의 문제이거나 기껏해야 권력의 자본에 대한 통제의 문제일 뿐이다. 주주가 기업을 지배하는 주주민주주의가 아니라 기업의 조직과 운영에 대한 노동의 참여 문제로, 기업들끼리의 경제민주화는 국가단위에서 자본에 대한 노동의 개입 문제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노동에 대한 기업의 책임으로 노동운동은 경제민주화를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실현된다고 해도 단체화된 노동으로서의 경제민주화에 불과하다. 복종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체로서 설 수 있을 때에야 노동자는 경제민주화를 자신의 것으로 말하게 될 것이다.”

사실 시장경제질서가 우선이냐 경제민주화가 먼저냐를 두고 이야기 할 때는 이미 넘어섰다. 헌법을 고쳐 경제민주화 조항을 없애자는 주장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때이다. 지금껏 경제민주화 조항이 없어서 사회의 불평등이 만연된 것이 아니다. 경제민주화 조항 때문에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것도 아니다. 이제껏 헌법 제119조 2항은 죽은 조항과 다르지 않았다. 헌법 제119조 2항의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을 언제 하였던가.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였던 적은 있었던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려고 국가가 제대로 나선 적이 있었던가. ‘경제주체 간의 조화’는 글자로 밖에 익힌 적이 없다.

이 말에 불편한 기업인이나 경제 관료, 정치인이 있을지 모른다. 출자총액을 제한하지 않았냐고 반문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민들의 마음, 영세 상인의 심정이 현재 그렇다는 거다. 그래서 여도 야도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오는 것이다. 이 민심을 읽는 게 헌법의 정신이고, 법치국가를 지키는 일이다.

법이라 쓰고 밥이라 읽다

‘법’을 가끔 ‘밥’이라 읽는다. 법이란 시민이 살아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밥이 될 때 존재의 이유를 가지기 때문이다. 밥을 무시한 법이 있을 때,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세계적인 법학자 독일의 루돌프 폰 예링은 인류 법학사에서 최고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권리를 위한 투쟁’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다. 법이 부당하게 침해되고 있는 한 법은 이러한 투쟁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법의 생명은 투쟁이다. 즉 민족과 국가 권력, 계층과 개인의 투쟁이다.

이 세상의 모든 권리는 투쟁에 의해 쟁취되며, 중요한 모든 법규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법규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맞서 투쟁함으로써 쟁취된 것이다. 또한 모든 권리는, 민족의 권리든 개인의 권리든, 그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할 준비를 전제로 한다. 권리는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