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만의 총파업 투쟁, 무엇을 요구하나?
13만의 총파업 투쟁, 무엇을 요구하나?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2.07.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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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보다 마음 알아 달라” 호소에도 파업 이유에는 무관심
민주노총 총파업으로 이어질까 … 절박함 다르지 않아
[현장 3] 금속노조 총파업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난 7월 13일, 역사적인 금속노조 총파업이 진행됐다. 이날 총파업은 주야 각각 4시간씩의 부분파업으로 진행됐다. 지난 2008년 8월 27일, 당시 금속노조 위원장이었던 정갑득 위원장의 연행에 항의하며 9만6천여 명이 총파업을 진행한 이래 4년 만의 총파업이었다. 게다가 이날 총파업에 참가한 조합원 수는 130여 사업장 12만8천여 명(금속노조 집계)에 달해, 지난 2006년 ‘15만 금속노조’가 출범한 이래 최대 규모의 총파업이었다.

고소득 노조만 파업하나?

금속노조 총파업이 있기 하루 전, 경총은 성명을 통해 “금속노조의 총파업은 민주노총의 투쟁지침에 따라 이뤄지는 정치파업으로 명백한 불법파업에 해당한다”며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대처해 하반기 노동계의 불법투쟁이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금속노조 총파업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지난 3년 동안 찾아보기 어려웠던 자동차의 생산차질 대수와 손실액도 다시 지면을 장식했다. 13일의 1차 총파업으로 현대차 4,300여 대(880억 원), 기아차 2,700여 대(470억 원)의 생산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는 것이었다. 13일 총파업 이전에도 이미 부분파업을 진행했던 한국지엠의 경우 총 20시간의 파업으로 모두 3,800여 대의 생산차질이 빚어지는 것으로 추산됐다.

금속노조 총파업은 13일에 그치지 않았다. 1차 총파업으로부터 1주일이 흐른 지난 7월 20일, 금속노조는 또다시 주야 각각 4시간씩 2차 총파업이 진행됐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2차 총파업에는 1차 총파업에 참가한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현대제철당진지회 조합원 2천여 명도 힘을 보탰고, 지난 7월 18일 산별노조로 전환한 현대비앤지스틸지회도 동참했다. 이로써 파업참가 조합원 수는 13만 명을 넘겨, 1주일 만에 최대 규모를 갱신했다. 자동차 생산차질 대수는 1차 파업 당시와 비슷한 규모로 추산된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이번 파업으로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지난해까지 3년간 지속해왔던 무쟁의 기록을 깨고 4년 만에 파업에 나섰다. 기아차지부 역시 지난 2년간의 무쟁의 기록을 깼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재계뿐만 아니라 대통령까지 나섰다. 2차 총파업을 하루 앞둔 지난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온 세계가 당면한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고소득 노조의 파업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말 어려운 계층은 파업도 못 한다”고 덧붙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19일에는 전북에 있는 타타대우상용차에서 ‘2년 연속 무분규 임·단협 타결’이라는 보도자료가 흘러나왔다. ▲ 기본급 6만5천 원 인상 ▲ 성과급 150% 및 무분규 격려금 1백만 원 지급 ▲ 비정규직의 정규직 발탁채용 확대(15%→ 20%) 등을 내용으로 잠정합의에 이르렀으며,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78%의 찬성률로 가결됐다는 보도자료였다. 보도자료 내용보다 더 관심을 끌었던 것은 타타대우상용차지회가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이는 잘못된 보도자료로 드러났다. 임금협상은 잠정합의에 이르렀지만 단체협상은 아직 진행 중이었고, 조합원 찬반투표를 한 일도 없었다. 또 타타대우상용차지회는 1차 총파업 당시 4시간 부분파업에 참가했던 사업장이며, 더구나 무분규 격려금 1백만 원도 전혀 근거 없는 내용이었다.

사안은 달라도 절박함은 하나

이렇듯 금속노조의 1, 2차 총파업을 두고 갖가지 말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정작 금속노조가 왜 파업에 나섰고 사상 최대 규모의 조합원이 파업에 동참했는지는 가려지고 말았다. 1차 총파업에 앞서 금속노조가 기자회견을 통해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혔지만, 그보다는 몇 명이나 파업에 참가했으며 얼마나 생산차질이 빚어졌는지가 관심거리였다.

김지희 금속노조 대변인이 “숫자보다 마음을 알아 달라”고 호소했지만, 언론의 관심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금속노조가 파업의 이유로 내건 ▲ 심야노동 철폐 및 근무형태 변경 ▲ 비정규직 정규직화 ▲ 원·하청 불공정거래 근절 ▲ 노동기본권 쟁취라는 4대 요구가 매년 반복되는 요구여서인지, 왜 같은 요구를 다시 내걸고 파업에 나서야 했는지는 묻혔다. 요구뿐만 아니라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조합원들이 파업을 통해서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관심 밖이었다.

금속노조 2차 총파업이 진행됐던 지난 20일, 인천 부평역 광장에서는 금속노조 인천지부와 한국지엠지부,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가 함께 주최한 ‘2012 임·단투 파업투쟁 승리 결의대회’가 열렸다. 태풍이 지나간 직후의 습기를 머금은 공기에 내리쬐는 뙤약볕이 더해져,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였건만, 부평역 광장에 모인 조합원들의 눈은 파업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난해 말 한국지엠지부에 통합된 이후 올해 처음으로 함께 임·단협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지엠지부 사무지회의 한 조합원은 “그동안 억눌렸어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면서 “이번에 한꺼번에 요구안이 관철되지 않더라도 함께 싸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힘이 된다”고 말했다. 올해 임·단협에서 한국지엠지부는 ‘사무직 차별철폐’를 핵심 요구안의 하나로 요구하고 있다.

지난 4월 금속노조로 조직전환을 마친 현대제철지회 조합원은 “자본의 갈라치기로 인해 인천과 포항, 당진이 그동안 흩어져 있었기에 하나가 돼야 한다는 열망이 강했다”면서 “처음 금속노조의 투쟁에 복무하는 만큼 아직 이질감이 있고 요구안도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15만이 하나가 되어 싸우는 만큼 반드시 요구안을 쟁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조합원들이 가지게 됐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붉은 색 투쟁조끼를 입고 나온 대우자동차판매지회 조합원은 “영안모자 측이 여전히 고용승계를 거부하며 20여 년 일해 온 노동자들을 헌신짝처럼 내치려 한다”면서 “그동안 힘든 싸움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뒤에 15만 금속노조가 있었기 때문인 만큼, 이번 총파업을 통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현재 대우자동차판매지회 조합원들은 정리해고 된 상태로, 대우자동차판매 차량판매 부문을 인수한 영안모자 측이 이들에 대한 고용승계를 거부해 갈등을 겪고 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금속노조 조합원뿐만 아니라 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도 깃발을 앞세우고 참가했다. 학교비정규직노조 인천지부 한 조합원은 “우리나라의 내일을 이끌어갈 아이들을 교육하는 학교현장에서 차별이 없어지고 노동이 존중돼야 한다”면서 “강원교육청 등이 교섭에 응한 만큼 인천교육청도 사용자로서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사항을 설명했다.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공공운수노조 전회련본부,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전국여성노조)는 지난 19일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월 27일부터 7월 18일까지 각 조직별로 현장투표와 온라인투표 등의 방식으로 진행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84.9% 투표율에 92.6%의 압도적인 찬성률로 쟁의행위를 가결했다”면서 호봉제 도입, 전 직종의 무기계약 전환, 교육감 직접고용 등을 요구안을 내걸고 각 시도교육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한 바 있다.

우리 사회 노동의 현주소는?

올해 금속노조 총파업은 사상 최대 규모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그토록 많은 조합원들이 총파업에 나섰느냐 하는 점이다. 그것도 대기업인 완성차지부 조합원부터 조합원 100명도 채 안 되는 조그만 사업장 조합원까지 동일한 요구를 내걸고 파업에 동참했다.

이 같은 조합원들의 참가를 단지 금속노조 지도부가 총파업 일정을 잡아 놓고 조합원들을 동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현대·기아차지부 조합원들은 지난 2~3년간의 경험을 통해 파업을 하지 않으면 무상주라는 달콤한 열매가 돌아온다는 점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런 조합원들이 올해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는 현대차지부 77.85%, 기아차지부 75%의 높은 찬성률로 쟁의행위를 가결시켰다. 금속노조 전체로 보면 82.1%로 찬성률은 더욱 높아진다. 완성차지부 소속이 아닌 지역지부 소속 조합원들의 찬성률은 더욱 높다는 뜻이다.

앞서 부평역 광장에서 열린 파업투쟁 승리 결의대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의 목소리에서 이 같은 높은 찬성률이 무엇 때문인지 짐작할 수 있다. 사업장마다 그 요구사항은 다를지라도 그 절박함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같은 절박함을 금속노조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다수의 노동자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현주소가 어디인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금속노조는 1, 2차 총파업을 마치고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하지만 금속노조는 8월 들어서도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더 큰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 현대차지부는 8월에 특근거부 방침을 정한 상황이다. 나아가 오는 28일에는 민주노총 차원의 총파업이 예고돼 있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이 같은 노동계의 요구와 투쟁을 ‘배부른 귀족노조의 이기주의’라고만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타협점을 찾을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