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를 걷는 딱정벌레 ‘발’엔 특별한 게 있다
물 위를 걷는 딱정벌레 ‘발’엔 특별한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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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9.0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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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었다 뗐다’ 자유자재로…
접착력 강한 동물 발의 비밀
[과학칼럼]동물 발의 비밀

 

▲ 동아사이언스 박태진 기자

더워서 창문을 열어뒀더니 그새 파리 한 마리가 들어왔다. 내버려두면 하루 종일 방 안을 돌아다니며 귀찮게 굴 게 분명하다. 얼른 잡으려고 파리채를 들고 나섰다. 그런데 녀석은 손이 닿지 않는 천장에 달라붙어 버렸다. 지구가 잡아당기는 힘을 이기고 천장에서 떨어질 생각을 않는 파리 녀석…. 대체 파리는 어떻게 천장이나 벽에 잘 붙어 있는 걸까?

파리를 비롯한 곤충들은 벽이나 천장 같은 곳에 잘 붙는다. 이뿐만 아니라 기어오르거나 거꾸로 매달리기도 한다. 과학자들이 곤충의 이런 능력에 관심을 가진 지는 오래됐지만 맨눈으로 곤충의 발을 관찰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현미경이 발명된 17세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연구됐다. 물론 아직까지도 ‘곤충의 부착능력’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몇몇 생물의 신비한 비밀이 하나 둘씩 벗겨지고 있다. 어떤 자연구조물이든 척척 달라붙는 곤충의 부착능력은 아직까지 사람이 따라잡을 수 없는 기술이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곤충을 비롯해 부착능력이 뛰어난 생물을 연구해 우리 생활에 필요한 기술로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곤충의 발엔 ‘치약 같은 액체’가 나온다

곤충이 어딘가에 붙을 때 필요한 신체 기관은 ‘발’이다. 곤충의 발바닥은 ‘털 있는 발바닥’과 ‘매끄러운 발바닥’ 두 종류인데, 두 경우 모두 표면에 잘 달라붙는다. 털 있는 발바닥을 가진 곤충은 파리나 딱정벌레 등이다. 거미나 게코도마뱀처럼 부착능력이 뛰어난 다른 생물의 발바닥에도 미세한 털이 나 있다. 개미와 벌, 메뚜기, 바퀴벌레 같은 곤충은 매끄러운 발바닥을 가지고 있다. 이들 발끝에는 쿠션처럼 생긴 부드러운 기관인 ‘욕반(arolium)’이 있다.

두 종류의 발바닥은 모두 표면에 잘 달라붙기 위해 나노미터(nm, 1nm=10억분의 1m) 두께의 얇은 액체막을 이용한다. 미국 캠브리지대의 페델레 박사와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패트릭 드레히슬러 박사가 이 액체를 조사한 결과 기름 성분과 물 성분 액체가 미세하게 퍼져있는 일종의 ‘에멀젼(emulsion)’이라는 걸 알아냈다.

곤충들은 에멀젼을 분비해 마찰력을 만드는데, 연구진이 실험한 결과 휘발성 성분(미세한 물방울)이 없을 경우 마찰력이 눈에 띄게 적어지는 걸 확인했다. 기름 성분만 남을 경우 곤충들을 부착 능력을 잃고 미끄러지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곤충이 분비하는 액체가 ‘빙햄유체(Bingham fluid)’라고 설명했다. 빙햄유체는 치약처럼 가만히 놔두면 고체처럼 모양을 유지하지만, 힘을 주면 액체처럼 흐른다. 액체에 있는 작은 입자가 약하게 연결돼 있어 힘을 주지 않으면 형태를 유지하지만, 외부에서 힘을 주면 입자 간의 연결이 깨져 액체가 되는 것이다.

곤충의 발에서 나오는 두 종류 액체 중 물 성분의 작은 방울이 작은 입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파리는 가만히 있을 때는 액체가 고체화돼 벽에 붙지만 날려고 벽 반대쪽으로 힘을 주는 순간 액체가 돼 쉽게 떨어진다.

 
물 속에서 걸을 수 있는 비밀은 ‘발바닥 공기방울’ 덕분

게코(gecko) 도마뱀과 딱정벌레 등은 천장이나 벽에 찰싹 달라붙을 뿐 아니라 비가 내린 젖은 숲에서도 잘 기어오른다. 일반적으로 물이 있으면 접착 성분이 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이들은 어째서 젖은 곳에서도 잘 다니는 걸까.

잎 딱정벌레(Gastrophysa viridula)는 발바닥에 있는 미세한 털을 이용해 천장이나 다른 물체에 매달린다. 이들은 발바닥에서 나오는 액체를 이용해 달라붙지만 물이 있으면 접착력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런데 잎 딱정벌레는 축축한 나뭇가지는 물론이고, 물에 빠진 잎에서도 아주 잘 기어간다. 이 곤충의 발바닥에는 한 가지 비밀이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공기방울’이다.

일본 국립재료연구소의 호소다 나오에 박사와 독일 키엘대의 스타니슬라브 고브 교수 공동연구팀은 물속을 기어가는 딱정벌레의 발바닥에 공기방울이 잔뜩 매달려 있는 걸 발견했다. 잎 딱정벌레의 발바닥에 있는 미세한 털 사이에 공기방울이 있어 물을 막아준 것이다. 덕분에 발바닥에서 나오는 액체가 물의 방해를 받지 않고 접착력을 유지할 수 있다.

곤충은 아니지만 게코 도마뱀의 발바닥도 접착력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이들의 발바닥에는 수백 만개의 미세한 털이 있어 딱딱한 물체에 닿으면 전기적으로 잡아당기는 힘을 발휘한다. 전기적으로 중성인 분자들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을 때 서로를 잡아당기는 ‘반데르 발스 힘’이 생겨서다. 이 힘은 건조할 때만 작용하지만 게코 도마뱀은 축축한 열대우림에서도 잘 달라붙는다.

미국 아르콘대학 연구진의 연구 결과, 게코 도마뱀 역시 공기방울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게코 도마뱀의 발바닥에는 털뿐 아니라 미세한 돌기가 있다. 이는 연잎에 있는 미세한 돌기처럼 물을 바깥쪽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한다. 결국 게코 도마뱀 발바닥은 미세돌기 사이에는 물 대신 공기방울이 차지해 건조한 상태가 되므로 반데르 발스 힘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곤충들의 접착력을 연구해 더 잘 달라붙는 접착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기방울을 이용해 축축한 상태에서도 접착력을 유지하는 딱정벌레와 게코 도마뱀 덕분에 이제는 물속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로봇 등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지구가 만들어져 오늘까지 생존한 자연은 언제나 우리에게 배울 거리를 가득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