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주치의가 생겼다
나도 주치의가 생겼다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2.09.04 13:54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약도 주사도 주지 않는 병원
진료실이 아닌 맥줏집에서 만난 의사
[기획 2] 의료생활협동조합, 왜 필요하지?

ⓒ 함께걸음 의료생협

우리 집 부근에 병원이 둘 있다. ㅅ의원과 ㅇ내과. 애가 감기라도 걸리면 집사람은 애를 데리고 ㅇ내과로 간다. 손님이 없어 늘 조용하다. 진료를 끝낸 의사선생님은 먼저 애 어머니를 야단친다. 애를 어떻게 돌보았길래 이 모양이냐고. 그리고는 웬만한 경우는 그냥 데리고 가라고 내쫓는다. 따뜻한 물로 자주 씻기고 잘 때 이부자리 차지 않도록 주의하고 푹 쉬게 하면 며칠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하면서. 집사람은 안타까운 마음에 “선생님 보세요. 애가 콧물을 자주 흘리잖아요. 약이라도 좀 주세요” 하며 사정하면 “아니 당신은 자랄 때 코 안 흘렸어요. 애들이야 다 코 흘리며 크는 게 아녜요. 그리고 약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약 자꾸 써서 좋을 거 하나 없어요” 하고는 돌아보지도 않는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도 어릴 때 무척 코를 훌쩍거리며 옷소매로 닦던 생각이 나고 그때 그것을 병으로 생각했던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ㅅ의원은 다르다. 애를 데리고 가면 “아이구 좀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하고 겁부터 주고는 아기 팔뚝만한주사기로 아이의 핏줄에다 뭔가를 주사한다. 그러면 시들해 있던 아기가 금방 방글방글 웃는다. 참 용하다. 그리고는 선생님은 병이란 뿌리를 뽑아야 하니까 며칠 계속 다니라고 주의를 준다. 나는 치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데 웬지 독립건물을 갖고 으리으리하게 잘 차린 진료실의 그 혈색 좋은, 정신없이 바쁜 ㅅ의원 의사보다는 남의 2층 한 칸 빌어 간호원 한 사람 데리고 조용히 책이나 보며 가끔 오는 손님을 쫓기나 하는 그 ㅇ의원 의사가 마음에 드니 이상한 일이다. 그 의사의 성함은 모르지만 이박사님이다.

어떤 이가 쓴 산문이다. 난 어떤 병원을 찾아갈까?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내가 세운 병원, 내가 고용한 의사

몸이 아프면 어떻게 할까? 당연히 병원을 찾고, 의사를 만나야 한다. 하지만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는 곳이 병원이다. 의사에게 자신의 증상을 말하기에 앞서 친구들과 먼저 상담한다. 그리고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버티고 버티다 결국 병원으로 실려 간다. 왜 그럴까? 집 밖만 나서면 버스정류장보다 병원들이 즐비한데 말이다.

만약 당신이 병원을 운영하는 주인이라면 어떨까? 친구처럼 생활 속에서 만나는 의사가 있다면. 당신이 증상을 말하기 전에 평소 당신의 생활습관을 관찰하며 조언을 해주는 의사가 곁에 있다면 좋을 거다.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해?’ 꿈같은 이야기 하지 말라고 나무라기엔 이르다.

주민들이 병원을 세우고 의사를 고용해 운영하는 곳이 있다. 우리 동네 병원, 우리 마을 주치의. 바로 의료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이다. 주민과 함께 공도 차고, 함께 맥줏집에서 사는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는 의사. 약이나 주사보다는 운동을 먼저, 때론 강제로 시키는 의사. 진료실에 들어서면 하고픈 말을 다하고, 듣고 싶은 말 다 들어도 지겹지 않게 들어주는 의사. 자신이 왜 아픈지, 어떻게 해야 아프지 않고 살 수 있는지 말해주기 보다 처방전 건네기에 바쁜 병원에 길들여진 이들에겐 잠꼬대 같은 이야기로 들릴 거다.

치료에 앞서 예방

1960년부터 2000년까지 40년 동안 OECD 회원국들의 평균 수명은 10년 남짓 늘었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은 23.1년이 늘어 평균 수명 상승폭이 가장 크다. 고령인구의 증가 폭에 비해 한국의 의료체계의 발전은 더디다. 아직도 예방보다는 치료 중심의 의료체계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는 사람이 아픈 다음에 치료를 하는 게 우선이 아니라 아프지 않도록 예방 활동을 먼저 해야 한다. 의사의 역할도 치료에 앞서 예방이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체계는 예방활동에 대한 대가는 없고, 치료를 해야만 병원과 의사가 먹고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 ‘행위별 수가제(fee for service)’ 때문이다.

행위별 수가제는 환자에게 진료를 많이 해 약과 주사를 처방을 많이 할수록 건강보험에서 제공하는 진료비가 늘어난다.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를 자주 찾아오게 하고, 될 수 있으면 많은 약을 처방할수록 수입이 늘어난다. 성인병의 대부분은 운동과 식생활 습관을 올바로 하면 예방하고 치료될 수 있지만 의사의 운동, 식생활 처방에 대한 보상은 없다. 현 건강보험 수가 제도에서 과잉 처방하는 병원을 나무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병원들의 과잉진료와 과도한 약제 처방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있다. 2007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의 항생제 사용률이 평균 55%였다. 주민의 의사를 고용해 운영하는 의료생협의 경우는 항생제 처방률은 10~17% 수준이다.

무더위가 한창인 지난 8월 9일, 서울 노원구에 있는 ‘함께걸음 의료생협’을 찾아갔다. 평일 늦은 4시건만 의료생협에서 운영하는 한의원은 벌써 진료가 끝났다. ‘찾아가는 진료’를 하는 날이란다. 매주 목요일에는 지역 상인회나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을 찾아가 건강 교육 및 무료 상담과 진료를 한다. 오늘은 의료생협 사무실에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비만 예방 교육 및 상담이 있다. 상계동 중앙시장 한 가운데에 있는 한의원을 나와 백 미터 남짓 떨어진 의료생협 사무실로 갔다. 교육은 끝나고 장애인들과 이런 저런 건강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함께걸음 의료생협

혜택은 없다, 대신 건강하게 산다


주민들이 돈을 출자해 의료생협을 꾸려 병원을 운영한다고 해서 특별한 혜택이 돌아가는 건 없다. 의료생협을 하는 조합원에게 의료생협에 가입하면 어떤 이익이 있냐고 물어도 눈에 보이는 물질적 이익은 보이지 않는다. 건강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걸음 의료생협에서 한의사로 일하는 이상재 원장은 말한다.

“한국은 의료 쇼핑이 많아요. 이 병원 갔다, 저 병원 갔다. 돈은 돈대로 쓰며 중복 검사하죠. 보험 수가도 낭비가 되고. 의사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이 의사 못 믿겠다, 저 병원 가보자. 서로 불신하다 보니 국가의 의료 예산은 더 나가는 악순환이 되죠. 생협 조합원들은 저한테 약을 먹고, 침을 맞질 않더라도 일단 많이 물어보죠. 제가 필요하면 어디 병원에 가시라, 이렇게 해드리고. 아는 의사 만나는 게 쉽지가 않잖아요. 의사가 주변에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아는 의사가 한 명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보면 굉장히 든든해지거든요.”

아플 때 홀로 속앓이 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찾아갈 수 있는 ‘주치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료생협은 건강의 큰 도우미가 될 수 있다.

이상재 원장은 지역과 주민이 주인되는 의료 체계를 말한다.

“제가 생각하는 건강의 주체는 지역이 되는 거죠. 의사가 내 몸의 주체가 되는 게 아니라 나의 이웃들과 함께 내 건강을 지켜나간다라는 거예요. 의사의 역할은 사실 보조 역할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의료인들이 건강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의료생협은 자신의 건강을 의사나 국가에 맡기는 게 아니라 이웃들과 건강의 주체가 되어 의사들과 함께 몸을 지켜나가는 거예요.”

강봉심 조합원은 “평범한 주부였다가 의료생협을 만들고 나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고 한다.

“원장님이 조합원 만나잖아요. 제가 환자가 아니라 ‘수빈이 엄마(강봉심)’가 되는 거예요. 나랑 술도 먹었고, 밥도 먹었고, 산행도 같이 가고, 체육대회에서도 만났으니 단순히 환자로 보지 않고 나와 관계 안에서 수빈이 엄마로 보는 거잖아요. 나도 이 사람이 원장님이 아니라 나랑 너무나 친한 가족 같은 관계기 때문에 의사를 신뢰하고요. 일단 의사를 신뢰해야 치료도 잘 되요. 병원 진료실에서 몇 분 만나는 거로는 한계가 있어요. 제가 의사한테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의사는 저의 생활습관을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 약을 처방하는 게 아니라 밤에 술 좀 그만 먹으라고 해요. 저희 생협에 걷기 소모임이 있거든요. 거기에 나가 삼십 분씩 걸으라고 하며, 약을 안 주고 돌려보내는 거죠. 생활 처방을 해요. 소모임 대표한테 전화 걸어, 우리 조합원 가운데 아무개 연락처 드릴 테니 다음부터 걷기 모임에 꼭 데리고 나가세요, 하고. 그러면 약은 받질 않았지만 의무적으로 걷기 소모임에 끌려가서 자기 건강을 관리하게 되는 거죠. 약을 주고 아픈 다음에 사후 처리하는 게 아니라 사전에 생활습관을 관리해 생활처방을 하고, 생활 처방이 혼자하기 어려우니 이웃끼리 협동의 방식으로 하는 거죠.”

그런데 누구나 이런 처방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강봉심 조합원의 말이다.

“약 안 주고 돌려보내면 짜증을 내고, 다른 병원 가서 약을 하세요.”

행위수가제에서 생활 처방을 할 경우 병원과 의료생협을 운영하는데 재정적 어려움이 닥친다. 앞에서 말한 ‘찾아가는 진료’도 환자를 받질 않고 예방이나 무료 진료를 하기 때문에 매출에 커다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예방을 하는 게 건강에 이롭다는 믿음이 있기에 의료생협은 기꺼이 이런 일에 더 많은 힘을 기울인다.


ⓒ 함께걸음 의료생협
1차 의료가 필요한 때다

의료생협의 출발은 경기도 안성에서 이미 20년 전에 출발했다. 1980년 중후반 의과대학 학생들이 주말 진료를 시작하며 농촌청년회와 관계를 맺은 게 한국 의료생협의 출발이었다. 1994년 4월에 250명의 조합원과 1억2천만 원의 출자금으로 안성농민의원, 안성한의원을 열며 안성의료생협 창립총회를 갖았다.

이어 노동자들이 많은 경기도 안산과 인천, 협동조합의 메카라고 불리는 원주에서도 의료생협이 만들어졌다. 일본에는 이미 50년의 역사가 있고, 180개가 넘는 의료생협과 3백만 명의 조합원이 활동하고 있다.
의료생협 조합원이 2천 가구가 넘으면 자립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올해로 10년째를 맞이한 원주 의료생협은 지난 4월 2,300가구가 넘어섰고, 지난해부터 흑자 운영을 하고 있다. 2000년에 세워진 안산 의료생협은 300가구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5,300가구가 조합원으로 참여한다. 한 달에 의원, 한의원, 치과를 이용하는 사람이 3,500 명에 이른다. 2011년 매출 27억 6천만 원에 당기 순이익 6천5백만 원을 기록하고 있다.

의료생협에서는 1차 진료보다는 1차 의료에 중심을 둔다. 1차 의료란 건강을 위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보건의료를 뜻한다. 환자의 가족과 지역사회를 잘 알고 있는 주치의가 환자와 의사 관계를 유지한다.

이재호 카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시민참여와 일차의료의 미래’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는 예방이나 건강증진 보다는 진단과 치료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반일차의료적이다. 지구상에서 1,000병상이 넘는 대형병원의 수가 우리나라만큼 많은 나라는 드물다. 주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건강문제나 의료진과의 전화 상담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강문제로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것이 현실이다. 의료서비스가 지역주민 중심적이 아니라 의료기관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사회가 일차의료 중심적이지 못하고, 치료 위주의 대형병원에서 건강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또한 1차 의료기관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개인의원은 해당 지역사회와는 아무 관계도 형성하지 못하고 진료실 업무만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민의 자주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자신의 건강에 책임의식을 가지며 지역사회 일차의료 기관에 종사하는 의료진과 함께 지역사회 내에서 건강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 오늘날 한국 의료체계에서 의료생협이 신선하게 비추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이웃과 동료를 지키는 의료체계


뜻하지 않게 돌연사를 한 이를 만날 수 있을 거다. 아직 젊은데 심혈관 질환으로 생명을 잃었다는 부고를 받고 충격에 빠진 적도 있을 거다. 건강이 남의 일 같지 않은데,  극한점에 오지 않으면 챙기지 않은 것도 건강이다. 한 회사에 있는 사람이 비슷한 질환을 앓으며 수십 명이 숨지는 경우도 있다. 그 질환을 직무와 연관성을 밝히는 일은 전문가도 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평소에 일터와 지역에 관심을 갖고 진료를 하고 연구를 하는 의사가 있을 때 가능하다. 과로사로 숨진 이 가운데 산업재해 판정을 받는 경우는 열 명 가운데 두 명도 되지 않는 실정이 아닌가.

만약 우리 동네 주치의가 있고, 우리 일터 주치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정리해고가 있는 사업장이 있으면 곧바로 그들의 정신 건강을 챙겨 줄 주치의를 준비했더라면 스물두 명이 목숨을 끊는 일이 생겼을까? 최소한 서울 한복판에 스물두명의 얼굴 없는 영정을 두고 뒤늦게 슬퍼하고 분노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거다.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이익을 지키는데 어떤 복지보다 앞서 생명을 내세워야 한다.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졸린 눈을 부비며 일터에 나가는 이유도, 2급 발암물질인 걸 알면서도 심야노동을 하는 까닭도 ‘살기 남기’ 위해서다. 국가가 책임져주지 않고, 나를 고용한 기업주가 책임져주지 않는 건강, 의료 공공성이 실현되는 날만을 기다리며 외면할 수 없다. 이제 직장인이 스스로 나서 내 동료와 자신의 건강을 지켜줄 주치의 정도는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건강은 생활에서 비롯한다. 노동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하는 건강검진으로 찾을 수 없는 질환이 허다하다. 아픈 뒤에 치료비를 보장받는 것보다 아프지 않는 게 우선이다. 그게 꼭 의료생협일 필요는 없다. 다른 무엇이라도 좋다. 하지만 사후 처방 방식이 아니라 일과 노동 속에서 늘 관심을 가지고 예방할 수 있는 의료체계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