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는 직장인 일중독
숫자로 보는 직장인 일중독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2.09.0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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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없는 삶, 대한민국은 과로 공화국
법정 노동시간 지키면 완전 고용이룬다
[분석 2] 일은 생명이다

ⓒ 참여와혁신 DB

2010년 OECD 31개 나라의 평균노동시간은 1,749시간이다. 알다시피 한국은 최장노동시간을 기록했는데, 한해에 2,193시간, 주당 55.2시간을 일했다. OECD 평균보다 무려 444시간이 많다. 네덜란드 1,377시간, 독일 1,419시간과는 비교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업종을 불문하고 장시간 노동

정부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금융보험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2010년 평균 주당 노동시간은 41.2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국노동연구원에서 금융업 노동자를 만나 조사한 결과는 큰 차이가 났다. 은행의 중간관리직급 이하 노동자들의 1일 평균 노동시간이 11.23시간에 달했다. 남성은 11.54시간, 여성은 10.9시간으로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56시간에 이른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한다는 노동자도 20% 정도다.

은행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업종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조선소의 경우에는 연간 총 노동시간이 2,880~3,120시간에 달한다. 월 평균 240~260시간, 주 60시간가량을 일한다. OECD 국가 평균 노동시간보다 1,000시간 이상 일한다는 결과다.

대기업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 사내하청 노동자는 절반이 넘는 61.3%에 이른다. 한 조선소의 하청업체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월 평균 290~300시간을 일한다고 한다. 이 정도의 노동시간이라면 한 달에 한 번도 제대로 쉬지 않고 잔업과 특근을 날마다 한다는 말이다. 임금을 벌려고, 잠 잘 때를 뺀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쓴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쉼 없는 삶이다.

노동귀족이라고 손가락 받는 대기업 노동자들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과연 귀족인가  의심이 든다. 현대자동차 3공장의 경우는 2,400~2,800시간 일하는 노동자가 68.7%다. 한국 평균 노동시간보다 400시간이 높다.

법정 근로시간인 주40시간만 일하는 노동자는 열 명 가운데 두 명도 되지 않는다. 한국 노동자의 82%가 법정 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다.

문제는 실제 노동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통계를 잡기도 쉽지 않다는데 있다. 포괄임금제를 받는 노동자는 자신이 회사와 계약한 초과노동 시간보다 더 많이 일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실 노동시간을 따지지 않고 매월 일정액의 초과 근로수당을 지급하거나 기본임금에 모든 수당(연장, 야간, 특근 수당)을 포함해 지급하는 임금제도다. 보통 법정 노동시간을 넘겨 초과노동이 거의 날마다 이루어진  곳에서 포괄임금제를 시행한다. 이렇게 일하는 노동자가 전체 임금노동자의 40.6%다.

포괄임금제는 임금을 적게 주면서 노동시간을 자유롭게 연장하여 일을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실 노동시간을 파악하기가 힘들고,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포괄임금제를 적용받으며 일하는 사무직, 판매직, 서비스직 노동자들은 자신이 받는 고정연장수당보다 훨씬 길게 일한다고 말한다.

ⓒ 참여와혁신 DB

죽어라 일하는 까닭


법에 따르면 잔업이나 특근은 강제가 아니라 본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생계를 유지하려면 연장이나 특근을 하지 않고서는 힘든 조건이다. 법정 시간만 일할 때 받는 월 급여가 100~150만원인 저임금 노동자일수록 초과노동시간이 월등히 높다. 정액급여가 올라갈수록 초과노동시간은 줄어드는데, 저임금 구조가 장시간 노동으로 내모는 주 원인임을 알 수 있다.

2012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53시간 이상을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는 8.3%다. 반면 비정규직은 17.5%가 53시간 이상 일한다. 49~52시간을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는 5.1%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7.8%다. 이처럼 장시간 노동은 낮은 임금에서 비롯한다.

한 정보통신 관련 벤처회사에 입사한 노동자가 출근을 했더니 사무실에 침대가 있더란다. 사무실에 웬 침대냐고 묻자 기업주가 가족적인 분위기라 쉬고 싶을 때는 침대에 푹 쉬라고 갖다놨다고 했다. 언뜻 멋진 사장님이라고 보일지 모르지만 침대는 밤샘 일을 밥 먹듯이 하는 회사가 집에 가지 말고 일하라는 끔찍한 ‘배려’였다.

첨단 산업이라는 정보통신 노동자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57.8시간에 이른다는 조사가 있다. 6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가 절반에 가까운 43.4%이고, 80시간 일하는 노동자도 7.6%에 달했다.

한국이 유독 노동시간이 긴 까닭은 뭘까. 남성 중심의 경제구조가 장시간 노동을 하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가 힘든 한국 사회에서는 남성의 수입에 의존해 가계를 꾸린다. 홀로 벌어 가족이 살아야 하니, 노동시간을 연장해 부족한 생계비를 충당하는 거다.

상대적으로 급여가 높은 노동자들도 장시간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물가와 주택, 교육비 문제 때문이다. OECD 국가의 식품물가지수 평균 상승률은 2.8%인데, 한국은 4.4%에 이른다. 당장 먹을거리를 위해 더 많은 노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교육비와 주거비도 장시간 노동에 한 몫을 한다. 주거비와 교육비 상승률은 2.6%로, OECD 평균 2.1%보다 높다. 교육기관에 지출하는 비용이 국내총생산의 7%를 차지해, OECD 평균 5.7%보다 월등히 높다. 주거비는 국내총생산의 10.04%를 차지한다. 아파트 임대료는 OECD 국가 가운데 두 번째로 높다.

기업에서는 정규직 노동자 고용을 최소화하려고 이미 채용된 노동자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기도 한다. 물량이 늘어나면 채용 대신 기존 노동자에게 연장 노동을 시켜 해결한다.


쉼 없는 노동의 반복


이처럼 장시간 노동을 하며 휴가는 제대로 쓰는 걸까?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휴가 날짜도 적다. 그나마 휴가도 다 쓰지 못하고 있다. 연차 휴가를 실제 쓰는 비율은 61.2~63.5%라고 한다. 열흘의 휴가를 쓸 수 있는데, 엿새만 쉰다는 말이다. 휴가를 쓰지 않을 경우 수당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생계비를 보충하려고 휴가를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휴가를 가면 그 기간의 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도 많다. 이처럼 휴가 대신 일을 선택하는 이유도 임금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업의 장시간 노동체제는 여성 노동자에게 두터운 취업의 장벽을 쌓는 결과를 낳는다. 여성노동자는 생산만이 아니라 집에 돌아가면 양육과 가사도 책임을 진다. 장시간 노동이 만연되면 여성이 직장을 갖기를 두려워한다. 기업도 장시간 노동이 힘든 여성 노동자는 채용을 기피하기도 한다.

이처럼 장시간 노동은 긍정보다는 부정을 낳는다. 요즘 일자리 만들기를 다투어 말한다. 일자리 만들기는 법정시간을 초과하는 노동만 강제해도 충분히 늘어날 수 있다. 연간 노동시간이 100시간이 줄면 고용률이 1.8%가량 늘어난다. 한국의 노동시간을 OECD 평균에 맞추면 444시간이 줄어든다. 그럴 경우 고용률이 8% 높아진다는 자료가 있다. 약 190만 명의 일자리가 창출되는데, 실업자들이 모두 취업을 하고도 일자리가 남는다는 말이다. 2011년 8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실업자가 76만 명 정도다.

문제는 생명이다. 2011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해마다 평균 314명의 노동자가 과로로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지난 2006년부터 5년간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과로사 사망자는1,572명이다. 이 가운데 남성이 1,412명이고, 여성은 162명이다. 연령별로는 40대가 603명으로 가장 많았고, 50대 420명, 30대 265명, 60대 205명 순이다. 놀라운 것은 20대도 53명이 과로로 숨졌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과중한 노동으로 숨지고 있다. 위 자료는 산재보험 대상자 가운데 뇌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해 유족급여나 장의비가 지급된 사망자만을 나타낸 것이다. 과로로 숨졌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는 제외되었다. 여기에 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나 특수고용노동자, 자영업자를 포함한다면 장시간 노동으로 사망한 이의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 참여와혁신 DB

장시간 노동에서 헤어날 길은 쉽다


어떡하면 세계 최장노동시간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쉽다. 근로기준법의 법정 노동시간 및 연장노동 시간이 지켜지도록 정부가 단속에 나서도 큰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법정 연장 근로시간을 초과해 일을 시키면 강력한 법적 제재를 가하도록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연장근로는 12시간까지만 가능하지만 휴일 근무 시간을 빼고 산정한다. 법대로 휴일을 포함한 연장근로시간이 1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정해진 시간만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는 포괄임금제도도 고쳐야 할 것이다. 정해진 시간 이상 일을 할 경우도 연장수당을 지급하도록 해야 한다. 초과노동을 시키는 것보다 채용을 늘이는 게 이익이라면 기업 스스로 노동시간 단축에 나설 것이다.

자꾸 돈의 유혹에 빠지게 만드는 수당 중심의 임금제도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40시간을 일하고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월급제가 정착되어야 한다.

양성평등을 비롯한 사회 평등 정도가 높아지면 장시간 노동이 줄어들 거라는 주장도 있다. 가사와 양육을 남녀가 분담하려면 남성들도 노동시간을 줄이고 집으로 일찍 들어갈 거라는 말이다.
또한 휴식을 위한 충분한 연차휴가를 지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연차휴가의 경우는 수당이 아닌 직접 쉬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대책이 자리 잡으려면 법정 노동시간을 일하면 최소한의 생활 이상이 보장될 수 있도록 생활임금을 지급하는 제도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은 밀접히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비 중독이 노동 중독을 만든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 투쟁의 역사라고 한다. 18세기 산업혁명 당시 영국에서는 하루 12~20시간까지 강제 노동을 했다. 근로자의 날, 노동절, 메이데이라고 불리는 5월 1일은 미국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맞서 8시간 노동제 쟁취 투쟁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지금의 주5일제도 노동자가 저항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거다.

강수돌 교수는 ‘소비중독이 노동중독을 재촉하고, 노동중독자는 소비중독 속에서 (금방 공허해질) 일시적 위로를 얻는다’고 말한다. 노동자가 돈에 길들여져 돈을 벌려고 목숨을 담보로 일에 빠져든다는 말이다.
생활에서 화폐의존도가 낮으면 굳이 임금을 벌려고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을 거다. 아파트 대출이나 자동차 할부 등 꾸준히 돈을 넣어야 할 곳이 많아질수록 노동자 스스로 노동시간에 길들여진다. 또한 그 빚(대출금)에서 헤어나려고 더 많은 노동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사회의 발전 정도는 국민소득이나 국민총생산에 있지 않고, 그 사회의 노동시간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자본과 기술이 부족할 때는 노동시간에 의존하는 게 불가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 경제 10위권을 오르내리는 한국이 노동시간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려고 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