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학교의 당당한 주체
우리도 학교의 당당한 주체
  • 김정경 기자
  • 승인 2012.09.0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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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비정규직, 시도교육청 단체교섭 이끌어 내
교육감 직고용, 호봉제 도입, 정규직 전환 쟁취할 것
[현장 1]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단체교섭

ⓒ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교직원하면 으레 학생들의 수업을 지도하는 교사만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학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숨은 노력으로 운영된다. 급식실의 조리사·영양사, 도서관 사서, 행정업무를 보조하는 교무·행정보조, 과학실험보조, 특수보조, 방과 후 교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학교회계직'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교장이 바뀔 때마다 고용불안에 떨어야 하고, 경력 인정이 안 돼 10년을 일해도 똑같은 월급을 받는다. 각 분야의 전문가라 자부하며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지만, 선생님이란 호칭은 이들에겐 '언감생심'이다.

정규직교직원, 학생, 학부모 앞에만 서면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드디어 학교의 당당한 주체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그동안 학교장이 사용자라며 책임을 회피해오던 시·도 교육청과 첫 단체교섭을 하게됐기 때문이다.    

ⓒ 김정경 기자 jkkim@laborplus.co.kr
뭉쳐라, 학교비정규직!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때는 일용잡급직으로 불리다 지난 2004년 교과부의 '학교회계직원 계약관리지침'에서 학교회계직원이란 용어로 지칭되기 시작했다. 학교회계직원은 현재 교내 80여 개 직종에서 일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그 규모는 약 15만 명에 이른다. 전체교직원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지만, 모두 비정규직 신분이다.

전국여성노동조합 최순임 조직발전위원장은 "고용은 개별 학교장 재량에 따르고 있어 상시적인 구조조정의 위협에 시달리며, 임금은 연봉제로 경력은 인정되지 않고 있다. 또한 유급병가나, 연차휴가 역시 대체인력이 없고, 관리자의 눈치가 보여서 대부분 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며 차별받고 있는 학교회계직의 노동 실태를 이야기 한다. 

이처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학교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소속돼 있는 세 노조가 연대회의체를 조직해 교과부를 상대로 ‘2012년 공동 임단협 투쟁’에 나섰다.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위원장 박금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회련본부(본부장 이태의), 전국여성노동조합(위원장 황영미)은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이하 학비연대회의)를 구성했다.

학비연대회의는 시도교육청과의 단체교섭을 통해 ▲ 개별 학교장에서 교육감 직고용으로 ▲ 급여체계를 연봉제에서 호봉제로 ▲ 기간제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것을 주요 요구안으로 내걸었다. 

학비연대회의는 지난 4월, 16개 시도교육청을 상대로 교섭 요청 공문을 보냈다. 그 결과 진보적 성향의 교육감이 있는 강원, 서울, 경기를 비롯한 광주, 전남, 전북 6개 교육청은 교섭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강원, 서울은 이미 교섭 중 

이들 중 가장 먼저 실무교섭이 진행된 건 강원도다. 지난 7월 25일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을 비롯한 사측교섭위원과 공공운수노조 이상무 위원장, 전국학비노조 박금자 위원장 등으로 구성된 강원학비연대회의 노측 교섭위원은 상견례를 갖고 본격적인 교섭에 들어갔다.

전국학비노조 강원지부 우형음 지부장은 "그동안 학교에서 존재감없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오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교육감과 동등한 위치에서 앉아 단체교섭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이미 성과“라며, ”강원이 첫 시작인 만큼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성과를 보이겠다"고 전했다.

한편 서울교육청과는 26일 오전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2012년 제1차 본교섭위원회'를 열었다. 학비연대회의 뿐만아니라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까지 4개의 노조가 공동교섭단을 꾸려 현재 교섭을 진행 중이다. 이 자리에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은 "노동조합 가입과 노조 조직 확대가 경제민주화의 시작이며, 교섭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학비연대회의측은 강원과 서울을 비롯한 6개 시도교육청과의 교섭을 통해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처우 개선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회련 이태의 본부장은 “이번 임단협을 통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용자성은 정부와 교육감에 있음을 분명히 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단체교섭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지난 2월 고용노동부는 교육감이 사용자이기 때문에 교섭권자는 교육감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교섭에 응한 6개 교육청을 제외한 나머지 10개 교육청은 지난 4월 충남교육청이 중앙노동위원회에 제기한 행정소송의 결과를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 내비치며, 학비연대회의와의 단체교섭에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학비연대회의는 8월말까지 단체교섭에 집중하면서, 교섭에 참여하지 않는 시도교육청과 교섭에 임하더라도 연대회의의 요구안이 수용되지 않을 시에는 쟁의행위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이다.학비연대회의는 이미 지난 6월 27일부터 7월 18일까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학비연대회의에 소속된 3만 여명의 투표인단 중 2만5,519명이 투표에 참여, 2만 3,628명이 찬성해 92.6%의 찬성률로 쟁의행위가 가결됐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박금자 위원장은 “교섭에 불응하는 교과부와 교육청을 상대로는 모든 행정, 법적인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향후 투쟁 계획을 밝혔다.


ⓒ 전국여성노조
교육공무원직으로   

한편 학비연대회의는 단체교섭과 함께 궁극적으로 학교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한 입법 활동도 전개해왔다. 그동안의 성과로 19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유기홍 간사와 정진후 의원이 「교육 공무직원의 채용 및 처우에 관한 볍률안」(이하, 교육공무직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학비연대회의는 이와 관련한 내부 1차 국회 토론회를 열었고, 법제화에 대한 현장 조합원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지난 8월 13일 교육공무직 신설관련 국회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유기홍 간사는 “교육공무직의 핵심은 상시·지속 업무에 종사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신분을 ‘공무직’이라는 새로운 직제를 신설하여 교육감이 직접 고용하는데 있다”며 “교육공무직이 신설될 경우 정원관리부터, 호봉제 전환, 각종 수당 지급이 가능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비연대회의는 “교육공무직특별법이 제정되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통해 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노동자들이 공교육 종사자로서의 사명감을 느끼며 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규직화 법제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