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노조 운동 선봉 ‘만도’ 무너지다
산별노조 운동 선봉 ‘만도’ 무너지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2.09.0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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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 치밀한 시나리오 … 노조는 뭐했나?
조건 불리할수록 스스로부터 성찰해야
[분석 1] 만도사태, 무엇을 남길까?

지난 7월 27일, 금속노조 만도지부가 전면파업을 단행하고 공장을 비운 사이, 회사는 전격적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용역을 투입해 공장을 봉쇄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채 1주일도 지나기 전에, 2천 명이 넘는 만도지부 조합원 중 85% 가량이 새로 설립된 기업별노조에 가입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만도지부의 몰락

지난 7월 27일 오후, 금속노조는 긴급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발송했다. SJM에 이어 만도 역시 당일 오후 3시부로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용역을 투입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보다 앞서 당일 새벽에는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SJM이 직장폐쇄와 용역투입을 단행한 데 이어, 농성 중이던 조합원을 공장 밖으로 밀어내는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해 많은 조합원들이 심한 부상을 당한 바 있었다.

하지만 만도에서는 우려했던 용역과 조합원 사이의 충돌은 없었다. 금속노조 만도지부는 당일 하루 전면파업을 선언한 채 공장을 비운 상태였다. 다음 날인 28일부터는 하기휴가가 예정돼 있었고, 조합원들은 파업과 동시에 휴가를 떠난 상태였다. 휴가를 틈타 전격적인 직장폐쇄를 단행한 셈이었다.

이틀 뒤인 7월 29일 오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국회에서 공격적 직장폐쇄와 용역의 폭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김창한 만도지부장과 김영호 SJM지회장도 참석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오진수 평택지회장과 김일수 문막지회장은 “김창한 지부장의 독선과 오만이 작금의 노사관계를 파탄시켰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만도지부는 이날 오후 긴급 쟁의대책위원회를 열어 “평택과 문막지회가 동의 없이 28~29일 사퇴하여 지부 쟁대위는 사실상 지도 집행력을 상실해 더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며 “현 상황에서 지도부 사퇴(깁스 제외)와 조기선거로써 새 지도부를 세워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사태는 그 정도 선에서 끝나지 않았다. 지부 집행부가 사퇴를 발표한 이튿날, 전 지부장을 역임했던 공병옥을 위원장으로 한 기업별노조인 만도노동조합(이하 기업별노조)이 고용노동부 평택지청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한 것이다. 기업별노조는 당장 7월 31일부터 조합원 모집에 들어가 휴가가 끝나기 전 85%에 이르는 조합원들의 가입원서를 받았다.

이로써 지난 2001년 금속노조 설립 이래 항상 맨 앞에서 산별노조 운동을 이끌어오던 만도지부는 일거에 소수노조로 전락했다.

ⓒ 금속노동자 ilabor.org

민주노조 파괴 vs 불법 쟁의행위

이 같은 사태는 만도지부의 입장에서 보면 말 그대로 몰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JM과 만도의 직장폐쇄 이후, 금속노조는 이를 “7월 13일과 20일 역대 최대 총파업 성사 뒤 수세에 몰린 정권과 자본이 여름휴가라는 공백기를 이용해 금속노조를 침탈한 사건”이며 “금속노조 주요 사업장에 대한 동시 용역침탈은 금속노조 8월 파업 동력을 질식시키기 위한 기회침탈”이라고 공식적으로 규정했다.

이런 규정에 따라 금속노조는 “용역깡패의 현장 침탈과 정권의 방관 및 비호에 대해 단호하고 시급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휴가 직후인 8월 8일 만도가 속해 있는 한라그룹 본사 앞과 안산 SJM 공장 앞에서 전 지부 확대간부가 참여하는 규탄집회를 연이어 열었다. 또 당초 계획보다 1주 앞당겨 8월 10일 3차 총파업을 단행했고, 17일에도 4차 총파업을 이어갔다.

이뿐만 아니라 이른바 ‘공격적 직장폐쇄’와 ‘용역투입’의 문제점을 여론화하기 위한 토론회도 잇따랐다.

이들 토론회에서는 만도사태가 ‘기습적인 직장폐쇄 - 용역투입 및 공장 봉쇄 - 임시직 채용 및 대체인력 투입 - 노조간부에 대한 가압류, 고소고발 - 선별 복귀 - 기업별노조 건설과 어용집행부 구성 - 노조간부 징계와 단협해지’로 이어지는 ‘민주노조 파괴’ 수순을 따르고 있다고 성토했다. 과거 금속노조 소속 지회들이 소수노조로 전락하거나 무력화됐던 발레오만도, 상신브레이크, KEC, 유성기업 등에서 나타났던 ‘자본의 매뉴얼’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사측은 만도지부의 쟁의행위 자체가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교섭대상이 아닌 ‘깁스코리아 인수’, ‘평택공장 외주화 철회’, ‘창구단일화 절차 없이 개별교섭 진행’ 등을 요구했고, 쟁의행위 조정신청(6.18) 이전인 6월 14일부터 잔업과 특근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사측은 잔업·특근 거부, 40여 일간 지속된 2시간 부분파업 등 만도지부의 ‘불법’ 쟁의행위로 인해 7월 23일을 기준으로 1,057억 원에 이르는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만도지부의 이른바 ‘고품질 투쟁’은 생산량을 평상시의 50%만 유지하게 하는 것으로 사실상 태업이라며, 이를 통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재고물량을 소진시키려는 의도였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7월 27일‘부터’ 만도지부가 전면파업에 돌입한다는 계획이어서 회사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직장폐쇄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깁스 인수 둘러싼 갈등?

이처럼 양 당사자의 주장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와 관련 만도지부는 지난 8월 8일 사측을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한 바 있어, 어느 쪽 주장이 사실인지는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다. 하지만 법정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현재 기업별노조가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 조합원 수의 구성은 변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만도지부가 소송에서 승소한다 하더라도 기업별노조로 대거 이동한 조합원을 되돌릴 방법은 마땅치 않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기업별노조 위원장이 일체의 연락을 받지 않아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만도지부의 주장을 토대로 현재까지의 경과를 재구성해보자.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부도에 처한 만도기계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겪었다. 당시 분할매각이 이뤄진 주조사업부문이 이번 사태에서 문제가 된 깁스코리아다. 한라그룹으로부터 분리된 만도기계에는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그렇게 해서 자동차 부품업체로 회생한 것이 오늘날의 만도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혹독했던 구조조정의 아픔을 뼈 속 깊이 새기게 됐다. 만도는 지난 2008년 매각을 거쳐 다시 한라그룹의 품에 안기게 됐다.

한라그룹에 인수된 후 한동안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던 만도의 노사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드러난 것은 지난 5월이다. 5월 23일, 한라그룹 정몽원 회장은 이른바 ‘신출사표’라는 메시지를 통해 만도의 모든 부분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그 속에는 노사관계도 포함됐다.

사측이 노사관계를 재편하려는 의도로 올해 임·단협에 임했기 때문에 교섭이 지연됐다는 것이 만도지부의 분석이다. 특히, 임·단협 안건이 아닌 고용안정위원회 안건이었던, 그것도 단 한 차례밖에 언급되지 않았던 깁스코리아 인수 문제가 만도사태의 키워드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측의 이 같은 의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미국계 깁스 자본이 철수하면서 폐업 위기에 처한 깁스코리아지회 조합원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만도가 인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이야기한 것이고, ‘깁스 문제 해결 없이 임·단협 타결 없다’고 했던 김창한 지부장의 언급은 조합원들의 고용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지부장의 의지의 표현이었다는 것이 만도지부의 주장이다. 깁스 문제와 관련해서는 고용안정위원회에서 한 차례 이야기한 이후 쟁점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측은 지부장의 언급을 꼬투리 삼아 마치 만도지부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난데없이 지난 7월 29일 평택지회장과 문막지회장은 깁스인수 요구를 임·단협 교섭의 핵심쟁점으로 삼지 말 것을 요구하는 간부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쟁점화 한 “김창한 지부장의 독선과 오만이 작금의 노사관계를 파탄시켰다”고 주장하며 사퇴하기에 이르렀다고 만도지부는 주장한다.

이런 정황을 종합할 때, 결국 사측은 처음부터 만도지부 무력화와 기업별노조 설립을 통한 회사 주도의 노사관계로의 재편을 의도하고 있었고, 기업별노조 주동세력은 사측의 이 같은 의도에 부화뇌동했다는 것이 만도지부의 결론이다.

특히 만도지부는 평택지회장과 문막지회장이 사퇴하면서 발표한 성명서의 내용이 알려진 것은 사측 홍보팀의 보도자료를 통해서였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또 사퇴한 평택지회장과 문막지회장이 곧바로 기업별노조에 가입한 것을 봐도, 만도지부 무력화가 사측의 치밀한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됐다고 주장한다.

이후의 진행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별노조가 출범한 이후 사측은 조합원들에게 개별적으로 문자메시지 등을 보내 업무복귀를 종용하면서, 동시에 기업별노조에 가입하도록 ‘강요’했다고 만도지부는 주장한다. 만도지부 탈퇴와 기업별노조 가입을 업무복귀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이는 복수노조 아래서 특정 노조의 편을 들어주는 부당노동행위일뿐더러, 새로 출범한 기업별노조가 ‘회사노조’라는 결정적인 증거라는 것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복수노조 설립 5일 만에 조합원 85% 이동

이 같은 만도지부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남는다. 우선 만도지부의 주장처럼 이번 사태가 사측의 치밀한 준비 아래 진행된 것이라고 한다면, 만도지부, 나아가 금속노조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만도지부도 인정하듯이, 사측이 직장폐쇄에서 만도지부 무력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계획했던 조짐은 정몽원 회장의 지난 5월 23일자 메시지에서도 이미 드러나고 있는 바다.

나아가 만도지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평택지회장과 문막지회장 등 기업별노조 주동세력은 지부 쟁의대책위원회를 통해 전면파업을 하도록 유도한 뒤, 그 같은 전면파업에 따른 직장폐쇄가 이뤄지자마자 무모한 정치파업이라는 이유로 파업을 비난하며 대열에서 이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지부장을 비롯한 만도지부 지도부가 이 같은 움직임을 제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지도부의 지도력이 조합원에게 미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부 쟁대위원들이 지부와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더라도 조합원에게 지도력이 관철된다면 그런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을 수 있다.

다른 한편, 기업별노조가 조합원 모집을 시작한 7월 31일 이후 불과 5일 만에 전체 조합원 2,264명 중 1,936명이 기업별노조에 가입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전에 복수노조가 설립된 사업장 중 어느 곳에서도 이처럼 빠르게 조합원이 이동한 경우는 없었다.

김창한 지부장은 이와 관련 “조합원들에게는 지난 1998년의 정리해고의 경험이 각인돼 있는 데다 회사가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장해서 잘못하면 이번에는 내 차례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면서도 “기본적으로 만도지부가 조합원의 마음을 잡는 데 실패해 왔던 것은 사실”이라고 분석한다.

김 지부장은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조합원들의 결합력은 지속적으로 약화돼 왔기 때문에, 올해야말로 결합력을 높이기 위해 투쟁이 필요했던 시기”라면서 “다만 이 과정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조직했어야 했는데, 만도지부가 거기에 실패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투쟁을 배치하지 않았다면 이번처럼 급격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조합원들이 노조에서 더욱 멀어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 측면에서 보더라도 문제는 그동안 조합활동 그 자체가 조합원들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진행됐다고 할 수 있다. 김 지부장이 표현한 대로 조합원의 마음을 잡는 데 실패한 것은 그런 조합활동의 결과일 것이며, 이런 상태라면 조합원들에게 지도력이 미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이번 만도사태는 조건을 탓하기 전에 노조 스스로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외부적인 요인이나 객관적인 정세가 아무리 유리하다 하더라도 이를 활용할 주체가 스스로 준비돼 있지 않다면 기회를 잡을 수 없을 터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도 있듯이, 외부 요인과 객관적 정세가 불리할수록 스스로의 성찰이 더더욱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