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건 스스로 결정해야 고용안정 보장된다
노동조건 스스로 결정해야 고용안정 보장된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2.09.0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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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안정 책임 외면…ING도 먹튀자본
"반드시 이겨야 한다"…적극적인 조합원
[현장 2]ING생명보험지부 파업

지난 7월 31일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ING생명보험지부가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으로 인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ING생명보험의 매각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보도들이 줄을 이었다. ING생명보험지부 역시 이를 모르지 않을 터였다. 그럼에도 파업을 강행한 ING생명보험지부는 무엇을 고민하고 있을까?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ING생명 매각된다

지난 8월 13일, 파업 중인 ING생명보험지부 조합원들은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위치한 KBS 88체육관으로 출근했다. 이날부터 88체육관은 ING생명보험지부의 파업 거점이 됐다. 이에 앞서 파업 직후부터 2주 동안 ING생명보험지부 조합원들은 강원도 평창과 속리산에서 합숙을 하며 이번 파업의 의미를 되새기고 각오를 다졌다.

ING생명보험은 네덜란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ING그룹의 보험 계열사로 한국법인이 따로 독립돼 있다. 현재 국내 생명보험업계에서는 5위로 평가되고 있다. 한때 보험설계사가 1만여 명에 육박하고 지원인력이 6천여 명에 이른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영업조직이나 지원인력 규모가 크게 축소된 상황이다.

이 같은 ING생명보험이 올해 M&A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ING생명보험이 기대하고 있는 매각 금액이 3조5천억 원에 이를 정도로 대형 매물이다. ING생명보험의 규모가 줄어든 상태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매각을 결정하게 된 것은 영업의 어려움이나 부실 때문은 아니다.

ING생명보험 매각의 배경에는 지난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놓여 있다. 금융위기 당시 ING그룹의 계열사였던 ING뱅크에 부실이 발생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100억 유로에 이르는 구제금융을 받았다. 이 구제금융을 상환하기 위해 ING그룹은 보험 계열사를 매각하기로 했고, 한국법인과 동남아법인이 매물로 나온 것이다.

인수자 태도가 중요한 변수

이번에 파업에 들어간 ING생명보험지부의 핵심 요구는 이 같은 매각과정에서 고용안정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협정근무자 60여 명과 출산 및 육아휴직 중인 이들을 제외한 전 조합원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협정근무자는 공공사업장에 적용되는 필수유지업무 근무자와 유사한 개념으로 전산과 일부 고객창구 인원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계약 심사에는 이 같은 협정근무자가 없다. 그래서 ING생명보험지부의 파업이 발생하자 사측은 계약을 심사 없이 ‘자동승낙’하고 있다. ING생명보험지부는 이 같은 자동승낙이 차후에 엄청난 부실로 이어질 수도 있고, 부실이 발생하면 그 피해가 고객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 M&A가 진행됐거나 진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들에서 고용안정은 핵심적인 노사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기업 간의 M&A에서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매각하려는 기업은 더 빨리, 더 많은 매각대금을 받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인수하려는 기업은 매각대금을 낮추는 데에만 관심을 보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 노조가 있는 사업장들마저 노조와의 협의는 무시되거나 형식적인 절차에 그쳤을 뿐이다.

ING생명보험 역시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학력위조 사건 이후 규모가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ING생명보험의 오늘이 있기까지 영업조직과 본사 지원인력의 노력과 고객이 바탕이 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NG생명보험은 매각과정에서 이들 주체들을 배제하고 있다.

이미 매각절차를 개시했고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곳도 있지만, ING생명보험지부가 이를 인지한 것은 언론보도를 통해서였다. 사측으로부터는 어떠한 협의도 없었고, 심지어 통보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용과 직결된 중요한 사안임에도 당사자인 노조는 매각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ING생명보험지부가 매각과정에 노조의 참여를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기철 지부장은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마저 외면한 채 매각대금만 챙겨서 빠져나가려고 하는 ING는 ‘먹튀자본’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매각되는 기업에서 노동자들의 고용은 어떻게 해야 보장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노사간의 입장은 엇갈린다.

사측은 “매각 완료 시점부터 2년간 강제적인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고용안정협약서 초안을 ING생명보험지부에 제시했다. 여기에 매각위로금과 2012년 성과급도 함께 제시됐다.

사측은 “기존의 노사간 단협은 오는 9월 말로 유효기간이 만료된 만큼, 매각이 완료된 9월 이후 ING생명보험의 새 주인이 나타나면 노조는 새 경영진과 단협을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ING생명보험이 제시한 2년 고용보장과 매각위로금은 사회적 관행상 상식 이상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ING생명보험지부의 입장은 강경하다. “협약서에 단 한 줄 더 명기한다고 해서 고용이 보장되는 게 아니다”면서 “조합원들은 위로금 얼마를 더 원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회사를 꾸려온 조합원들의 고용은 보장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문제는 고용안정협약서를 체결하고 ‘고용을 보장한다’는 문구를 명기한다고 해서 고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ING생명보험은 이마저도 2년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이와 관련 이기철 지부장은 “실질적인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지금처럼 노동조건이 자본의 일방적인 선택과 내용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주체적인 참여 속에서 수평적으로 결정돼야 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또 하나, 사측이 의도하고 있는 아웃소싱 등 비정규직의 확대 문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측의 주장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매각 이후의 고용보장 문제는 인수자와 협의해야 할 사안이지 ING생명보험이 책임질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ING생명보험지부는 “올 초부터 노조가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정리하자고 요구했음에도 경영진이 이를 무시하고 일방독주를 한 만큼 그 책임은 반드시 져야 한다”면서도 “고용안정은 새로운 인수자와 논의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새로운 인수자가 누가 되든 얼마나 노조의 고민을 존중하는지 태도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현 경영진과는 같이 갈 수 없다

ING생명보험의 노사관계는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에는 성과급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파업 직전까지 상황이 악화되기도 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해 성과급을 사측이 일방적으로 지급한 데 있다. ING생명보험 단협에는 성과급을 노사가 합의해 지급한다고 돼 있다. 이 같은 단협에 따라 지난해 임·단협에서 2010년 성과급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임·단협이 진행되는 도중에 사측은 단협을 뒤집고 노사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성과급을 지급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ING생명보험지부 조합원들의 반응이었다. 이기철 지부장은 “당초 사측은 ‘돈이라는 게 한 번 받으면 쓸 수밖에 없을 텐데 노조라고 해서 별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겠지만, 조합원들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지급된 성과급을 전부 노조로 반납했다”면서 “결국 노조는 이 같은 조합원들의 열망을 받아 안고 사측으로부터 성과급 추가지급을 따냈고, 더불어 이 같은 일을 주도했던 인사담당 임원의 공개사과까지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성과급 문제와 관련해 인사담당 임원의 사과를 받아낸 게 지난해 5월 말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나 대형 악재가 터졌다.

사측이 이른바 ‘HR BCP’ 프로그램을 가동하다가 적발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BCP는 전시나 천재지변 같은 상황에서 업무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백업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 등의 프로그램을 말한다.

그런데 ING생명보험에서 가동한 HR BCP는 노조의 파업에 대비해서 비정규직 인력을 사용하거나 아웃소싱 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는 결국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노조를 파괴하겠다는 것이라며 ING생명보험지부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ING생명보험지부는 “한국 경영진이 그동안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권리는 지키려고 하는 탐욕을 부려왔다”면서 “그런 탐욕으로 온갖 ‘악행’을 저질러 온 현재의 경영진과는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다는 인식을 조합원들이 하고 있는 만큼 현 경영진은 반드시 사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ING생명보험지부는 8월 안에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고, 인수자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사측도 더 이상 무책임하게 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실제로 8월 말 현재 KB금융지주의 ING생명보험 인수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ING생명보험의 매각과 맞물린 ING생명보험지부의 고용안정을 위한 투쟁이 어떤 결과를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