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둘러싼 대권주자 손익계산서
경제민주화 둘러싼 대권주자 손익계산서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2.09.2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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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_ 손해 볼 것 없는 당내 경제민주화 다툼
민주당_ 경제민주화를 말하기에는 첩첩산중
안철수_ CEO 출신이 기업집단을 손볼 수 있을까
[기획 연재] 경제민주화를 진단한다 5

석 달에 걸쳐 경제민주화를 진단했다.
이번호에는 기획연재 마지막으로 대권후보들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짚어본다.
경제민주화를 부정하는 후보는 없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같은 말을 쓰지만 달리 해결책을 내세우는 경제민주화. 빌공자의 공약이 아닌
서민 살림의 주름살을 펼 경제민주화가 절실한 계절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경제민주화를 장악한 박근혜

아이러니하게 경제민주화 논쟁의 중심지가 새누리당이 되었다.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날 선 입씨름 때문이다. 이 원내대표는 경제민주화를 ‘경제교과서에도 없는 개념’으로 ‘정체불명’이라고 쏘아 붙였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이 대표를 ‘정서적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며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맞섰다.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은 새누리당 안에서 경제민주화 정책을 두고 갈등이 심화된다거나 당내 영역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말한다.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해 경제민주화 논쟁을 새누리당으로 끌어들인 박근혜 후보는 두 사람의 논쟁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여유롭게 관망을 한다.

일찍 감치 대선 주자로 자리를 잡은 박근혜 후보는 야당의 몫으로 흘러갈 경제민주화를 당내로 끌어들였으니 ‘영역다툼’이든 ‘갈등’이든 상관없이 대선 이슈를 선점한 셈이다. 문제는 김종인 위원장과 이한구 원내대표 중심으로 경제민주화가 갇히는 것은 경제민주화를 열망하던 시민들에게 결코 좋은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박근혜 후보가 의도한 일일수도 있다. 김종인 위원장을 당내로 끌어들여 경제민주화의 화두를 장악하여 떠나버린 서민들의 맘을 새누리당 안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이한구 원내대표의 반발은 ‘당연’하고 예측가능한 일이었다. 기존의 지지층을 흩어지지 않게 하는데 이 원내대표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집토끼와 함께 산토끼를 잡는데, ‘경제민주화’가 톡톡한 노릇을 한 셈이다.

여당과 야당이 대립하는 ‘경제민주화’ 논쟁은 요즘처럼 양극화가 심화된 상황에서 박근혜 후보에게는 절대적 수세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이명박 정부와 선을 그으려고 해도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다. 후보 자신이 70년대 ‘개발독재’ 시절의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신공격에 가까운 설전이 새누리당의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벌어질 때는 달라진다. 경제민주화 정책이 어찌됐든 새누리당 수준에 머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권후보들의 재벌개혁 입장

경제민주화의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가 재벌개혁이다. 이에 대한 여당과 야당의 입장은 선명하게 갈라선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경우는 재벌을 인정하는 가운데 경제력 남용을 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유력한 대선 후보 가운데 한 명인 안철수 전 원장 측은 재벌의 지배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는 출자총액제한제 부활을 반대하는 박근혜 후보와 찬성하는 문재인 후보, 안철수 교수의 입장에서 정면충돌을 한다.

출자총액제한제는 1986년에 만들어졌다.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을 막으려는 조치로 모그룹이 자회사에 출자할 수 있는 한도를 정한 것이다. 처음 만들어질 때는 출자총액 한도가 순자산액 대비 40%였다. 이에 불구하고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력이 심해지자 1994년에는 25%로 조정이 됐다. 1998년 외환위기 뒤, 구조조정을 위해 출자총액제한제는 폐지되었다가 2001년 다시 제도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9년 이 제도는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2001~2010년) 삼성과 현대차의 자산규모가 3배 이상 늘어나는 등 전체적으로 3배 정도의 자산이 팽창했고 삼성은 70조 원에서 230조 원으로, 5대 재벌집단은 230조 원에서 620조 원 규모로 팽창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200조 원이 늘어나서 가장 속도가 빨랐다’고 한다. 또한 매출규모도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세계적 총 수요가 위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규모가 230조 원이’ 더 늘어났다.

경제민주화가 대선 이슈가 된 까닭은 단순히 재벌의 성장 때문이 아니다. 대기업의 이런 성장이 서민들의 삶과 공생하지 못한 데 있다. 서민 업종이던 동네 빵집과 구멍가게까지 돈을 앞세워 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대한제과협회에 따르면 2007년 대기업 계열 빵집의 수는 3,489개였는데, 2011년에는 5,290개가 되었다. 반면 같은 기간 동네 빵집은 8,034개였는데 5,184개로 줄어들었다. 막강하게 몸을 불린 대기업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게 아니라 동네 구멍가게로 밀고 들어오는데 시민들은 분노한 것이다.

일자리를 만들라고 이명박 정부는 기업에 감세 정책을 폈다. 하지만 이 감세 혜택은 최대 수혜자는 영세 상인이나 중소기업이 아니라 대기업이다. 2010년 기준으로 재벌과 대기업 집단의 법인세 감면 금액이 3조 8,068억 원으로 전체 감면 세액의 51.4%를 차지했다.

이런 이명박 정부의 ‘기업 프렌들리’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이 일자 박근혜 후보는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해 ‘경제민주화’를 앞세울 수밖에 없었다.

김종인 위원장과 박근혜 후보의 만남은 우연만은 아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어떤 정당이나 이념과 상관없이 정부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이력을 쌓아왔다. 지금은 ‘경제민주화’의 선두주자로 알려져 있지만 박정희 유신 정권 때인 1976년에는 ‘제4차 경제개발계획 실무위원’을 맡아 ‘개발독재’ 시절에도 이름을 올렸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대권 주자의 손익계산서

박근혜 후보는 출자총액제한제 재도입에 대해 “실효성이 대한 확신이 서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든다”며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또한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보다는 재벌의 경제력 남용을 막고 불공정 행위를 바로 잡도록 하는데 방점을 찍었다.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기존에 이뤄진 것은 허용하고 새롭게 순환출자를 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경제민주화의 핵심으로 본다. 지난 7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 출자총액제한제 재도입은 물론 순환출자 전면 금지를 내세웠다. 또한 대기업 법인세의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높이고, 소득세도 최고세율인 38%의 과표구간을 3억원 초과에서 1억5천만원 초과로 확대하는 ‘1% 슈퍼 부자 증세’도 추진 중이다.

안철수 전 원장도 경제민주화의 핵심을 ‘재벌개혁’으로 본다. 출자총액제한제에 대해서는 정권에 따라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제도보다는 새로운 방안을 찾자는 입장이다. 안 전 원장은 기업집단법을 주장한다. 재벌 그룹은 현행법에 존재하지 않는 초법적인 존재라며, 재벌이 지닌 경쟁력을 살리되 단점과 폐해를 최소화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문재인 후보와 같이 전면금지를 말한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김 위원장과 이 원내대표를 앞세워 경제민주화로 표를 저울질하며 선거를 맞이하면 된다.

하지만 이에 맞설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경우는 복잡하다. 당내 경선이 끝나 박근혜 후보에 맞설 대선 후보도 결정됐지만 안철수 전 원장이라는 커다란 산과 또다시 일전을 치러야 한다. 당내 경선에서도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했듯 안철수 전 원장과 후보단일화에서도 경제민주화를 중심으로 국민의 맘을 사로잡지는 못할 것이다. 경제민주화에 대해 박근혜 후보와는 명확한 대립선을 찾을 수 있지만 안철수 전 원장과는 큰 차별성을 부각시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대통령선거는 석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경제민주화는 재벌의 성장 때문에 화두가 된 것이 아니라 서민들 삶의 궁핍 때문이다. 선거 전까지는 표를 의식해 경제민주화의 방향도 정책의 실현여부보다는 표심 모으기에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다. 궁핍한 서민의 삶에 경제민주화가 따사로운 햇빛으로 비추려면 해를 넘겨 봄이 와야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한다.

물론 내년 청와대의 주인이 정해진다고 해서 경제민주화가 실현된다는 보장은 없다. 공약은 공약일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통령의 의지와 무관하게 재벌을 중심으로한 전경련과 같은 경제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미 전경련은 경제민주화가 부각되자 헌법 119조 2항을 아예 없애자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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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와 서민 살림

사실 경제민주화는 논쟁거리도 되지 않는 문제일 도 있다. 헌법 119조 2항의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는 법 이전에 상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는 일도 국가의 당연한 역할이다.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이루는 일 또한 국가가 마땅히 할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자살율이 여전히 OECD 국가 가운데 1위라고 한다. 자살의 이유는 경쟁 사회가 주는 압박감과 경제적 어려움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양극화가 확대될수록 커져가는 상대적 박탈감이 경제력 이상으로 사람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경제민주화는 단순히 재벌개혁을 할 거냐 말 거냐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의 생계만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과제이기도 하다.

재벌이나 대기업집단의 성장을 반대하는 시민은 없을 거다. 문제는 그 성장이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력보다는 경제력을 앞세운 힘의 지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공생보다는 홀로 곳간을 채우려는 욕심만이 보인다. 경제민주화는 함께 살기와 같은 말일 수 있다. 기업의 성장이 서민 살림의 성장과 함께 맞물려 돌아가야 하고, 그래서 서민의 살림이 펴야 기업의 곳간도 더욱 튼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독식은 언젠가는 파국을 맞게 된다. 국민 경제의 파국을 막으려는 최소의 노력이자 예방조치가 바로 경제민주화다. 반짝 선거공약이 아닌 나라 경제의 살 길이자 나아갈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