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 어둠 속 희망의 빛을 더듬다
‘실업’ 어둠 속 희망의 빛을 더듬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06.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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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 일자리 찾아주는 게 내 일”


‘올해의 고용서비스 상’수상자

이승구 책임상담원 <동인천고용안정센터>

 

전날 밤 내린 비로 땅은 질퍽거리고, 안개가 잔뜩 끼어 습한 날씨에도 동인천고용안정센터는 실업급여나 구직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날씨만큼이나 무겁고 어두운 표정을 한 그들에게서 작은 희망의 빛을 찾는 사람이 보인다. ‘올해의 고용서비스 상’을 수상한 동인천고용안정센터 이승구 취업지원팀장(책임상담원).


올해로 3회째를 맞고 있는 ‘올해의 고용서비스 상’은 지방노동관서와 고용안정센터 등에서 우수한 고용서비스를 제공한 직원에게 수여되는 것으로 올해는 이승구 팀장을 비롯해 5명의 직업상담원과 3명의 7급 이상 공무원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인사담당자에서 직업상담원으로
이 팀장은 직업상담원이 되기 전 일반기업에서 인력 채용과 교육 등을 담당하는 인사업무를 맡았다. 회사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떠난다고 할 때면 그들을 붙잡고 얘기를 나누고 설득하기도 했다.


그렇게 알맞은 인재를 뽑기 위해, 때로는 붙잡아 두기 위해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게 일이다 보니 자연스레 ‘상담’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는 관심에서 그치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해 ‘상담’ 공부를 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그리고 1997년, 직업상담원에 입문하면서 이제는 8년차 직업상담원이 됐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인사담당자로 일하면서 사람을 채용한 경험이 실직자들에게 일자리를 찾도록 돕는 일에 큰 도움이 됐다.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으니 때로 더 따끔하게 충고를 할 수 있다”는 이 팀장은 ‘마음을 나누고 눈높이를 맞춰갔던’ 한 구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선생님은 구직이 곧 직업입니다”
2년 전의 일이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50대 중년 남성이 구조조정으로 실직하고 고용안정센터를 찾았다. 실직은, 그것도 자발적인 의사가 아닌 타의에 의해 퇴직당하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실직으로 마음이 무너지면서 생활이 불규칙해지고, 덩달아 건강도 무너질 게 뻔했다. 이 팀장은 그와 상담을 하던 도중 ‘함께 출근하고 퇴근하자’는 제안을 했다. 직장은 아니지만 긴장을 풀지 않고 9시에 고용안정센터로 출근해 구인정보를 찾고, 면접 준비를 하는 ‘구직활동이 곧 일’이라고 설득한 것.


처음에는 “구인정보만 알려주면 되지 않냐”며 불편해하던 그는 점점 달라졌다. 이 팀장은 적절한 일자리를 찾는 한편으로 그에게 자신감을 찾아주기 위해 함께 염색을 하러가기도 하는 등 마음을 나눠줬다.
6개월 동안의 재취업 준비를 통해 결국 다시 일을 찾게 된 그를 얼마 전 다시 만나게 됐다. 한 기업의 어엿한 인사담당자가 되어 다시 고용안정센터를 찾은 그에게서 축 처진 어깨로 고용안정센터로 출근(?)하던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로또 당첨돼도 일 해야죠”
그가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사람은 건강을 위해서, 또 삶을 위해서 꼭 일은 해야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경제적 조건만을 기준으로 일자리를 구하면 이내 이직을 고민하게 되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란다.


실업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패배감에 젖어있는 사람에게서 그는 희망을 찾아 더듬어간다. 이 팀장은 “실직은 인생에서의 탈락이 아니라 그저 궤도 수정의 기회일 뿐”이라며 새로운 일에 미숙하다는 선입견을 넘어 일자리를 구하는 데 성공한 한 아주머니의 얘기를 들려준다.


간병인을 구하는 곳에 면접을 보러 간 한 아주머니가 엉뚱하게도 아이들의 성적표를 꺼내 들었다는 것. “아이를 이렇게 잘 키울 수 있는 엄마라면 환자 또한 잘 돌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준 덕에 좋은 일자리를 구했다고 한다.


‘사회적인 지위, 물질적인 풍요 때문에’ 좋은 일자리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재밌게, 잘 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에서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로또 1등이 당첨되어도 일은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 팀장.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찾아주는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훌륭한 구직자가 훌륭한 직장인이 된다
인천시 중구 일대는 구시가지로, 여성 가장이나 고령자 등 사회 취약계층이 많은 편이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IMF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던 실직자들은 외형적으로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직접 구직자들을 만나는 그가 보기에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사회 양극화라는 칼날이 이곳에도 여지없이 들이닥친 것.


흔히 사람들이 얘기하는 대기업에서 남부럽지 않게 일하다가 다른 일을 구하려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60세가 넘은 노인이 당장의 생계를 위해 찾아오기도 한다. 이 팀장은 “오시는 분들은 줄어들었지만, 찾아오시는 분들이 고령자, 여성 가장 등이 많아져서 구직자의 생활의 질은 훨씬 떨어진다”며 “취약계층의 구직을 위한 전문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고용 정책에 대해 “양적인 측면의 고용정책뿐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도 주력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과 함께 구직자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는다. “훌륭한 구직자가 훌륭한 직장인이 될 수 있어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뭐든지 할 수 없는 사람이죠. 기업은 자신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 준비된 사람을 원하기 마련이죠.”


선진국에 비해 구직자 대비 직업상담원이 부족한 현실 속에서 상담업무를 처리하기에도 벅차지만 이 팀장은 2년째 직업상담원과 노동부 공무원으로 구성된 ‘심층직업상담 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머물지 말고 주도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은 구직자들을 위한 조언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기도 하다.

김경아 기자 kakim@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