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삶의 헤드라이트
꺼지지 않는 삶의 헤드라이트
  • 승인 2006.03.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민국의 발, 화물차가 지쳐간다

 

봄이 찾아왔다지만 여전히 긴 밤, 어둠이 내려앉은 고속도로 위 아스팔트는 끝이 없을 것만 같다. 앞서거니, 나와 같은 모습을 가진 커다란 몸뚱이의 화물차들은 서로를 지나치며 피곤에 흔들린다.


나는, 내 기침소리조차 낯선 먹먹한 고요 속에 울리는 차체의 진동소리만 가득한 이 공간에서 핸들을 쥐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상상과 공상의 세계에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견딜 수 있는 순간에도, 그렇지 않은 순간에도 앞으로 내달리는 시간. 달력의 붉은 날을 제외하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이 낯선 시간들은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다.


깊은 밤, 외로움과 싸우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들.
매일 밤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서울에서 대전을 오가는 택배화물기사 이재준(42)씨를 만나 함께 고속도로를 달렸다.

 

내가 ‘사장님’ 이라고?
늦은 저녁, 11톤 트럭에 짐이 가득 실리고 높다란 계단을 두 개나 밟고 올라가야 하는 운전석에 올라앉는다.


택배회사와 운수업체, 그리고 화물차를 갖고 있는 기사는 명목상으로 동등한 ‘사업자’이다.  하지만, 이재준 기사는 이에 대해 “누가 나에게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다시는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화를 낸다”며 “사장님이라는 호칭 이외에 사업자등록증이라는 종이쪽지가 나에게 가져다주는 이익은 단 하나도 없다”고 강조한다.


일례로 모든 화물차는 ‘과적’단속을 하는데 단속 대상이 되면 화주(화물주)와 운송사업자(기사)가 절반씩 벌금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한 회사에 월대로 고정 수입을 두고 있는 운전자의 경우 화주가 벌금을 내는 경우는 드물다.
하다못해 피로 누적으로 인한 사고나 고장, 결근으로 인한 손해배상까지 모두 ‘일괄책임’이 부여되는 것이 현실.


이틀을 달리는 데 20여만 원이 훌쩍 넘는 기름값 때문에 고속도로에서도 경제속도라는 80km를 넘기지 않는다. 지정된 금액이 넘어가면 기름값 또한 자비로 충당해야 하고, 제한된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해도 또 벌금이 부여된다. 이래저래 ‘돈이 깨지는’ 일이라 화장실 가는 시간, 쉬는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다.


“책임뿐인가요, 의무사항은 더더욱 그렇죠. 물품을 싣는 일부터 바코드 찍는 일까지 덤으로 해야 합니다. 이제 ‘사장’ 소리만 들어도 지긋지긋해요. 사장하기 싫으니까 제발 노동자 하게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같잖은 사장소리 하나 해 주면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네요.”

 

혼자 밥 먹는 아이들과 홀로 잠드는 아버지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 하나,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아이 하나, 남자애만 둘이에요. 아버지가 밤에 일을 나가다 보니 지들 둘이 저녁 챙겨먹고 잘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죠.”


얼마 전부터 홀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이재준 씨에게는 지금, 모든 것이 벅차다. 하지만, 비단 이것이 그만의 일은 아니다.


“부인이 일을 나가는 사람들의 경우에, 아내가 있어도 일주일 내내 얼굴 한 번 못 마주치는 경우도 있죠. 남편이 들어오면 아내가 나가고, 아내가 들어오면 남편이 나가는 식이에요. 이게 사는 겁니까? 그만큼 보상이 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죠. 가족은 가족대로, 자신은 자신대로 고립시키는 게 바로 이 직업입니다. 일하는 동안에도, 일하고 나서도 늘 외롭기는 마찬가지죠.”


이재준 씨는 아들이 이번 주에 수학여행을 가는데 아직 대금 납입조차 하지 못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들에게 잘 다녀오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해 줄 수 있을까?


화물차의 앞 유리 한 가운데는 아직 카네이션과 장미 네 송이가 가지런히 꽂혀있다. 두 아들의 마음이 담긴 선물이다. 택배회사의 박스테이프로 정성스레 둘레를 감싸 매일매일 쳐다보는 눈길 속에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담겨 있다

 

나 자신과의 싸움, 목숨 내놓고 달려야
대전에 짐을 내리고 서울로 올라오는 화물을 받아 다시 출발하는 시각은 새벽 2시 30분. 이때쯤 되면 졸음운전을 하는 사람이나,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잠을 자는 차량이 쉽게 눈에 띈다.


이재준 씨의 차량에는 확성기 한 대가 설치돼 있다.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다.
“아, 아, 2314번, 2314번 잠 깨시고 운전에 집중하세요. 졸음운전 하지 마세요. 큰일납니다. 2314번! ”


차선의 가운데에서 이리저리 갈팡질팡하던 한 대형 화물차가 비로소 자리를 잡고 속력을 낸다. 곧 도로와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좁은 갓길에 크고 작은 화물차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것이 보인다.


“아까 그 졸음운전 하던 차하고, 저기 갓길에 서 있는 차하고 부딪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디다가 하소연 할 데도 없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요. 무릎을 찌르고 혼자 내 뺨을 때리고 별 짓을 다 해도 소용없어요.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서 보면 중앙선을 넘어가고 있는 거에요. 끔찍하죠.”


대화를 잃고, 자신을 잃고, 생활의 리듬을 잃고 달리는 도로는 긴 아스팔트와 사람 단 둘이 하는 외로운 싸움이다. 매일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달리는 듯한 생각에 하루하루가 힘겨울 때가 많다.


“한번은 부산까지 일주일에 세 번을 왕복한 적이 있어요. 차 뒤에서 새우잠을 자 가며 8시간을 내리 운전하는데, 고속도로 한 가운데 사람이 서 있어요. 브레이크를 밟고 보면 옆에 심어진 나무일 때도 있고, 도로 가에 서 있는 가드레일일 때도 있죠”


그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고정된 수입이 없는 ‘용차’(1회당 수당을 받고 물건을 실어 나르는 차량)의 경우는 더 해요. 돈은 벌어야겠고 하니 하루에 몇 탕씩 잠을 안자고 나르는 거에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내 차 아닙니까. 일 년에 소모량을 따지면 차 값이 약 1500만원씩 떨어지죠. 얼마를 벌어야 그게 감당이 되겠습니까.”


나만의 호텔이기에, 그래도 운전대에 희망은 있다
그만하면 화물차는 쳐다보고 싶지 않을 만도 하지만, 그에게 11톤 화물차는 움직이는 자신만의 ‘호텔’이다.
그 동안 쌓아왔던 정이 있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있기에 운전대를 잡고 다시 길을 나선다.


“저는 맨발로 차를 탑니다. 옆에 신발장도 만들어 놨어요.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방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차를 타는 거죠. 자기 집에 들어가는데 신발을 신고 들어가지는 않잖아요. 계속해서 불리해져만 가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는 것이 고단하지만, 그래도 이 차는 저의 꿈이며 안식처입니다.”


잠시 쉬어기기 위해 대전에 모인 화물차 운전자들은 커피를 한 잔씩 뽑아들고 이야기를 나눈다.
“세금이라도 좀 줄여주면 좋겠어요. 추운 겨울에 먼 길 와서 잠시 몸을 녹일 공간이나,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장소라도 있었으면 합니다. 가뜩이나 떼일 것도 많은데 정부에서라도 보조를 해 줘야지요.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저 소박하게, 내 몸으로 열심히 살면 그만큼의 보상은 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처음에 차를 살 때는 이놈만 하나 장만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죠. 사는 게 팍팍하지만 이놈과 함께 열심히 싸워서 살아나가야죠.”

 

하루하루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화물 노동자의 헤드라이트는 꺼지지 않았다. 하지만 ‘특수고용자’라 불리는 이들의 노동과 삶이 개선되기까지 넘어야 할 길은 멀고 또 험하다.

 

“우리가 없으면 대한민국이 멈춥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 일에 대한 자부심은 누구 못지 않아요.”


‘운전 조심하고 고생해요’
길게 늘어선 화물차의 행렬에 하나하나 눈인사를 하고 다시 올라선 도로. 아직은 고될 그의 길에 좀 더 밝고 환한 빛이 켜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