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조합원들의 표심을 잡아라
한국노총 조합원들의 표심을 잡아라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2.12.05 14:06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총연맹 차원 지지 후보 결의는 여전히 논란 중
산별, 지역 조직의 잇단 文지지 … 글쎄?
[분석 1]대선 앞둔 한국노총의 선택

“사회양극화를 해소하고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한국노총과 함께 노력”
- 박근혜 후보

“초기업별 노조의 교섭을 확장하고 노동조합 활동의 폭을 크게 늘릴 것이며”
- 문재인 후보

“노동기본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법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의 노동철학이 바뀌어야”
- 안철수 후보

 
지난 11월 17일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한 세 명의 대통령 후보는 3만여 명의 조합원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단상에 올라 각기 십여 분씩 자신의 뜻을 밝혔다. 이들은 저마다 한국노총의 핵심 노동정책 제안에 대해서 언급하며 이를 반드시 실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노동계 전반에 대해 평소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며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가히 ‘정치의 계절’이라고 할 만 하다. 비록 군소 후보들이 빠지기는 했지만, 대선후보 합동연설회를 방불케 했던 노동자대회를 지켜봐도 올해 한국노총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었느냐가 드러난다.

ⓒ 한국노총

파국으로 치달았던 정치방침

익히 알다시피 올해 한국노총은 대의원대회를 비롯한 조직 내 의결기구가 잇단 파행을 거듭했다. 또한 임기의 절반을 남겨둔 이용득 위원장이 지난 7월 사퇴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한 내부 갈등의 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지목되지만 그 중 하나가 정치방침을 둘러싼 이견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진행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민주통합당 창당의 한 축으로 참여하기로 한 한국노총은 산별과 지역단위에서 이를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의견이 갈렸다. 단순히 정치적 성향 차이에서 이견을 보였던 것뿐만이 아니라, 의결기구를 통해 이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는 축도 있었다.

새로 당선된 문진국 집행부는 이와 같은 갈등을 봉합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보고 있다. 기존의 정치방침은 ‘현행 유지’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간의 방침과는 아무래도 온도차가 클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문진국 위원장은 당선 후 열린 중앙집행위원회 자리에서 대선 이후까지 기존의 회의 인터넷 생중계를 중단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특히 대선 방침의 결정을 놓고 벌어질 대표자들 간 설전을 노출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규약 상 한국노총은 정당 창당이나 대정당 관계 설정, 대통령선거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데 대의원대회의 결의를 필요로 한다. 정치방침에 대한 한국노총의 대의원대회 결의는 지난해 11월에 열린 임시대의원대회 때 있었다.

당시 마지막 안건이었던 파견전임자 임금 지급과 관련된 안은 성원 부족으로 유회된 바 있다. 게다가 일부 산별에서 동원한 이들의 대의원 자격 문제가 언급되면서 법정 소송으로까지 번졌다. 정치방침에 대한 결의도 무효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사법부는 “노동조합의 문제는 내부적으로 해결할 것”이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또 당시 결의된 정치방침은 구 민주당, 혁신과통합, 한국노총 삼자 간에 논의되던 야권통합정당(민주통합당)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결정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결의 내용과 대선 지지후보를 결정하는 부분은 별개로 다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통합당과의 관계를 돈독히 가져가는 쪽에서는 이미 깊숙이 발을 담글 대로 담근 형국에서 신뢰의 문제를 생각할 때 대선 지지후보를 재삼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 한국노총

석연찮은 지지선언

지난해부터 지속된 정치방침 논의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두드러진 모습을 보였던 조직은 금융노조다. 우리금융 매각과 농협 신경분리 등 굵직한 내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금융노조는 정치권과의 긴밀한 공조가 필요했다. 김문호 금융노조 위원장은 한시적이지만 통합 과정에서 최고위원직을 맡기도 했으며, 지난 총선 과정에서 공천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금융노조 출신인 김기준 의원이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기도 했다.

대선 국면을 앞두고 음으로 양으로 민주통합당과의 스킨십에 가장 적극적인 것도 금융노조이다. 아직 총연맹 차원의 방침이 오리무중인 가운데, 금융노조는 중앙위원회를 거쳐 11월 19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한국노총 산하 26개 회원조합들 중 해상노련과 화학노련에 뒤이어 세 번째의 지지 선언이다.

하지만 금융노조의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은 석연치 않은 점이 존재한다. 통상 금융노조의 성명은, 특히 이와 같이 정치적 지지를 밝히는 선언이라면 산하 36개 지부의 공동 명의로 발표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지지 선언은 김문호 위원장의 명의로 발표됐다. 흡사 김 위원장의 개인적 지지 선언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는 금융노조 내부에서도 대선을 앞둔 정치방침 결정에 대한 이견이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을 위한 지난 금융노조 대표자회의에서는 참석한 대표자들간 의견차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 바 있다. 그것을 재차 중앙위원회를 통해 확정한 것이다.

금융노조 내부에서도 정치방침을 두고 이와 같은 의견차가 표출되는 것은 큰 맥락에서 한국노총 전체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금융노조 산하 지부의 한 대표자는 “일부 조직, 특히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조직에서는 정치적 성향이 지역색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며 “이는 단순히 대표자의 성향을 갖고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조직 내외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충분히 수긍할만 하다”고 밝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새누리당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경북, 경남 지역 기반의 은행은 지자체의 금고 역할을 하고 있는데, 노동조합 뿐 아니라 은행 조직 전체의 사활에 막대한 의미를 갖고 있는 사업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지역 내 정치적 상황에 둔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대표자들은 지지 선언에서 자신들의 조직은 빼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수준에서 논의가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금융노조와 마찬가지로 지난 총선과 그 이전 재보선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했던 조직으로 공공연맹을 꼽을 수 있다. 공공연맹 역시 그간의 행보를 감안할 때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인상 공공연맹 위원장은 “대표자 개인의 정치 성향에 따라 거취를 정할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공식적인 결의기구를 거쳐 절차적으로 지지 후보가 결의된다면 이 내용을 발표하는 것은 물론이고, 선거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도움도 계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총연맹이 주도했던 과정에서 일련의 절차적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고 이와 같은 전철을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의미다. 공공연맹은 11월 23일 대의원대회를 열고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한편, 지지 선언을 발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연맹 차원의 공식적인 지지 후보가 결정되지 않은 가운데 지난 11월 8일 연맹 산하 소산별노조인 노동부유관기관노조의 11개 지부 대표자들이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을 한 바 있다. 이들은 문 후보가 공약한 노조의 공공기관 운영에 참여 보장, 공공기관 사유화 방지, 기관 자율경영 보장,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 등의 내용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노동부유관기관노조의 이와 같은 독자적인 행보는 총연맹이나 산별연맹 단위의 정치방침 결정과 별개로 각 단위노조 대표자들이 개별적으로 정치권과 이런저런 관계를 맺고 활동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지역 단위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는 13일, 부천지역지부는 14일 문재인 후보의 지지 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 한국노총

조합원의 표심은 어디로

앞서 살펴본 조직 외에도 지역이나 업종별 단위로 문재인 후보의 지지 선언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이는 현재 추진 중인 문재인-안철수 후보 간의 단일화 과정의 향배에 따라 변화가 예상된다. 그에 반해 한국노총 내 친여권 성향의 지역, 산별 조직의 공식적인 움직임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한국노총 소속의 조합원들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는 알 수 없다. 한국노총은 중앙정치위원회를 조속한 시일 내 열어서 조직의 정치방침에 대한 논의를 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지만, 여기서 뾰족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지, 그리고 조직의 결정에 따라 조합원들의 표심이 움직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