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세력화’로 날개 다나, 발목 잡히나?
‘정치세력화’로 날개 다나, 발목 잡히나?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2.12.05 14:07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치권 스킨십 농도 짙던 2012년, 실속은?
투쟁사업장, 현장조직은 시름시름
[특집1] 2012 밥줄 이야기 ③ 박종훈 기자가 돌아본 2012

ⓒ 참여와혁신 포토DB
2012년 한 해 동안 한국노총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슈는 다름 아닌 ‘정치’였습니다. 총선과 대선이 맞물린 대목이니만큼 어쩔 수 없었던 거 같습니다. 한국의 대통령 임기는 5년, 국회의원 임기는 4년이니 20년만에 돌아오는 ‘그랜드 크로스’니까요.

한국노총을 포함한 노동계는 물론, 사회 각계각층에선 올 한 해를 대단히 중요한 선택의 시기라고 규정했습니다. 일거에 상황을 변화시킬 다시 없는 기회라고 장미빛 시각을 갖는 이가 있었는가 하면, 그간 정치권의 작태를 생각해 볼 때 실망과 회의를 넘어서 권태롭다고까지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여하간에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수단으로 노조법 재개정을 비롯한 조직 현안을 풀기 위해 달려온 한국노총의 올 한 해 성적은 어땠을까요?

양날의 검, 정치

지난해 말부터 추진된 민주통합당 창당 과정에 참여하는 문제는 한국노총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당시 이용득 전 위원장은 이를 두고 “백년에 한번 찾아올까 말까 한 좋은 기회”라고 입장을 밝히며 이를 강력히 추진해 왔고, 특정 회원조합에서는 적극적으로 이 과정에 참여하며 힘을 보탰습니다.

물론 반대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간의 역사와 전통(?)에 따라 친 여권 성향의 회원조합, 지역에서는 반발이 있었죠. 하지만 파견전임자 임금 문제 등 재정 현안이 산적해 있었던 터라 조직의 정치 방침에 대한 논의는 적어도 공식 의결기구 상에서 생각만큼 심도 깊게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한국노총의 사정이 어떻든 간에 정치권의 스케줄은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이제와 발을 빼기엔 조금 늦지 않을까 싶을 무렵, 집행부의 ‘의지’와 결을 달리 하는 조직에선 단체불참을 통해 의결기구를 무력화시키기에 이릅니다. 12월 열린 임시대의원대회가 상정 안건 전부를 다루지 못하고 유회된 것에 이어, 2월 열린 올해 정기대의원대회 역시 성원 미달로 열리지 못하게 됩니다. 한국노총의 전신인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이 설립된지 66년 만에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년 말까지 임기 절반을 남겨둔 상태에서 이용득 위원장 역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여차저차 ‘정’치권과의 스킨십은 기호와 편향에 따라 늘어났다지만, ‘정’부와의 관계는 그야말로 불통이 아니었나싶습니다. 이는 비단 총연맹 차원에서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부부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시름이 깊어졌습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고용노동부와의 관계악화는 점점 더 심각해집니다. 현 정권 들어 세 명의 장관이 거쳐가는 동안, 음악시간에 배운 크레센도로 노정관계는 목소리만 높아집니다.

노동계 못지 않게 ‘강성’인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인상 한국노총 공공연맹 위원장을 고소고발하는 등 맞불을 지핍니다. 지난 2010년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열리고 있을 때 이를 방해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농성 중이었던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조간부들이 공단노조 위원장 출신인 이 위원장의 이름을 대고 들어갔다는 건데요. 이미 2년 전 사안이니만큼 당시 농성에 참여했던 간부들이 무혐의로 풀려난 가운데 이인상 위원장의 ‘미필적고의에 의한 업무방해’역시 혐의가 없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노조에 당하지만 않겠다?

총연맹과 산별연맹 단위에서 이른바 정치 이슈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동안, 조직의 근간이 되는 단위노조들의 사정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올해는 장기 파업까지 불사하는 사업장들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전택노련 재경택시분회는 지난해 여름부터 올해까지 200일 넘게 파업을 지속했으며 회사는 직장폐쇄로 맞섰습니다. 임단협 잠정합의 이후 사측은 돌연 20여 개 조항에 대해서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며 합의서 체결을 거부하고 나섰습니다. 노조가 파업을 결의하자 7월부터 설립된 복수노조 조합원들과 신규채용 직원들을 동원해 대체운행에 나섰습니다. 파업을 지속하는 동안 조합원들은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돈을 모아 식당을 개업하기도 했습니다.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생산 하청업체인 서희산업노조의 86일간 파업도 여름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이들은 조합원 대다수가 서울로 상경해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단체로 숙식을 해결하며 두 달 가까이 투쟁을 지속했습니다. 원래 원청인 비알코리아의 정직원이었던 이들 서희산업 조합원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고용불안에 떨었고 원청 직원들과의 차별에 속앓이를 했습니다. 당초 노동조합이 요구했던 직접고용 부분은 얻어내지 못했지만, 11월 중순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하고자 오랜만에 다시 여의도를 찾은 조합원들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습니다.

그에 반해 경남 진주의 무림페이퍼노조는 70일 넘게 투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곳 역시 노사가 파업과 직장폐쇄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2일부터 노조는 3일간 한시 파업에 들어갔는데, 사측은 5일 전면 직장폐쇄를 선언하고 원자재와 집기로 담벼락을 쌓았습니다. 그밖에도 1만여 명에 달하는 외기노련 전국주한미군노동조합이 설립 60년 만에 총파업 수순을 밟고 있으며, 관광서비스노련 무주덕유산리조트노조 역시 모회사 부영의 노골적인 노조 죽이기에 맞서 파업 중입니다. 그에 반해 출정식까지 마치고도 총파업 돌입을 하루 앞두고 이를 철회한 금융노조의 경우, 미리 준비했던 유인물과 도시락 등 집회 비용으로 상당 액수를 공중에 날렸다는 군요.

대강의 정황들을 훑어 보더라도 올해 한국노총은 그다지 실속을 차린 게 없지 않냐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물론 이런 평은 아직 이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노총의 사회적 영향력이 정치 이슈를 타고 얼마나 ‘포텐’ 터질 수 있을지는 아직 좀 더 지켜봐야하기 때문입니다.

문진국 보궐 집행부가 들어선 이후 조직을 추스리며 그간 한국노총의 핵심 노동현안들에 목소리를 집중하는 것도 올해 이후(혹은 대선 이후?)를 바라보기 위한 복안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놈의 ‘정치’ 이슈를 둘러싸고 갈등 소지가 남아 있다는 점, 게다가 그놈의 ‘정치’라는 불확실성에 이미 꽤나 많이 베팅했다는 점을 염두할 때 한국노총의 시련이 올해로 끝날지, 아니면 내년부터 진짜 시련이 시작될지 관심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