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고 살아야 더 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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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여와혁신
  • 승인 2013.01.0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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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화학물질 신호 이용하는 자연생태계 속 공생들
동식물도 찾아나선 함께 살기, 인간들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2013년 새해가 열린다. 매년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한 해를 어떻게 살자는 각오를 다진다. 새로운 대통령이 뽑히고 지금과는 다른 정권이 시작되는 시점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는 마음가짐도 달라질 것이다. 변화와 함께 시작하는 새해 계획에 ‘함께 살기’라는 계획을 하나 추가하면 어떨까 한다. 자연 속에서 수많은 생물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공생’이라는 방식처럼 말이다.

헌혈하는 흡혈박쥐?

중남미 열대에 가면 소나 말 같은 큰 동물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흡혈박쥐’가 있다. 이들은 사흘만 굶어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부지런히 피를 구하러 다닌다. 하지만 늘 좋은 먹이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방식은 ‘헌혈’이다. 서로의 피를 나눠먹는 것이다. 친척이나 가까운 이웃에게 피를 나눠주고 나중에는 얻어먹기도 한다. 그 덕분에 흡혈박쥐는 야생에서 15년 이상 살기도 한다. 혼자만 살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대신 ‘함께 살기’를 선택해 생존확률을 훨씬 높인 셈이다.

이처럼 같은 종끼리 도움을 주고받는 일은 동물은 물론 인간에게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각자 자신의 종족이 오랫동안 지구상에 머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도움은 다른 종 사이에도 일어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종끼리 이익을 주고받으며 사는 관계를 ‘공생(symbiosis)’이라고 한다. 최근 이런 재미있는 공생의 사례가 몇  개 더 밝혀져 주목을 끌고 있다.

식물과 동물의 잘 알려진 공생 관계

주로 뿌리를 땅속에 내리고 있어 움직일 수 없는 생물이 움직일 수 있는 생물과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다. 이미 이런 사례로 잘 알려진 경우는 쇠뿔아카시아 나무와 슈도머멕스 개미다.

쇠뿔아카시아 나무는 소의 뿔처럼 생긴 거대한 가시를 가지고 있는데, 이 안에 개미가 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이파리 끝에서 개미가 먹을 수 있는 물질도 분비한다. 집과 먹이를 구한 슈도머멕스 개미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쇠뿔아카시아 나무를 경호한다. 그 덕분에 이 나무의 잎을 먹는 초식곤충은 물론 초식동물까지도 이 나무 근처에 얼씬하지 못한다. 사나운 슈도머멕스 개미가 공격하기 때문이다.

최근 밝혀진 두 종류의 공생관계는 ‘화학물질’로 소통한다는 게 밝혀져 주목받았다. 먼저 산호와 막둥어류 물고기 사이의 공생관계다.

깨끗한 바다에 사는 산호는 소화기관을 가진 ‘동물’이지만 땅에 박혀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영양분의 80∼90%는 미세조류인 심바이오디니움이 광합성한 것에서 얻어야 하고, 위험에 처해도 도망가지 못한다. 특히 산호 주변에 독성을 가진 해초가 자라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이때 산호는 자신만의 ‘보디가드 물고기’를 불러 독성 해초를 물리친다.

미국 조지아공대 생물학부 마크 헤이 교수팀이 지난 11월 9일 ‘사이언스’에 소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피지 섬에 사는 산호는 망둑어류로 알려진 길이 약 2.5cm의 작은 물고기의 보호를 받는다. 이 물고기는 평생을 ‘아크로포라 나수타’ 산호 틈에서 살며, 산호 주변에 독성 해초가 자라면 출동해 깎아버린다. 산호에게서 서식지를 제공 받고 먹이도 구할 수 있는 대신 산호를 지키는 것이다.

연구진이 이를 확인하기 위해 아크로포라 나수타 산호 주변에 화학적인 독성을 가진 해조류를 두자, 잠시 후 두 종류의 망둑어류 물고기가 나타나 해조류를 깔끔하게 깎아버렸다. 독성 해조류의 독이 산호에 닿으면 산호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 빠른 내에 처리해야 하는데, 물고기들은 매우 빨리 반응해 독성 해조류가 산호에 닿지 않도록 했다. 

헤이 교수와 동료들은 물고기가 반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히 하기 위해 물고기 근처에 해조류를 뒀지만 이때 물고기들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또 물고기가 원래 살던 산호가 아니면 산호 주변에 독성 해조류가 나타나도 반응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이는 산호와 공생 물고기가 특별한 화학신호로 소통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독성 해조류가 산호에 닿을 때 특별한 화학물질을 뿜어내 냄새를 풍기고 이를 알아챈 공생 물고기들이 출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화학물질로 소통하는 육지의 공생관계

땅에 뿌리박고 평생을 꼼짝 없이 사는 채소 중에도 산호와 비슷한 방식으로 위험에 대처하는 게 있다. 바로 ‘흑겨자’다. 흑겨자는 자신의 잎을 갉아먹는 해충을 막기 위해 해충이 낳은 알을 잡아먹고 사는 ‘말벌’을 동원한다.

네덜란드 바헤닝언대 니나 파토우로스 박사팀이 지난 9월 5일 미국 공공과학도서관회지(PLoS ONE)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흑겨자는 자신의 잎에 알을 낳는 양배추나방을 해치우기 위해 기생일벌을 부른다.

흑겨자 잎에 양배추나방이 알을 낳으면 잎과 알이 만난 부분에서 특정 화학물질이 만들어진다. 이는 기생일벌에게 ‘먹이가 있다’는 신호가 되며, 냄새를 맡고 찾아온 기생일벌이 양배추나방의 알에 다시 알을 낳게 된다. 양배추나방의 알은 기생일벌의 알이 부화해 먹고 살 양식이 되는 셈이다.

흑겨자는 기생일벌을 통해 향후 자신을 공격할 애벌레를 막게 되고, 기생일벌은 자손을 번식시킬 수 있는 먹이를 미리 얻을 수 있는 상부상조인 셈이다. 비록 움직일 수는 없지만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 얼마든지 위험에 대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에 따르면 자연은 적응할 수 있는 강한 자만 살아남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공간이라 생명은 진화하기고 하고 멸종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은 인간 사회로 이어져 경쟁에서 이긴 자만 살아남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자연 속에 사는 생물들은 각각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경쟁하기보다 더불어 사는 방법을 선택해 더 오래 같이 사는 상생을 선택하고 있다. 더 잘 살기 위해 ‘함께 살기’를 선택한 생물들을 보며 우리도 새해에는 경쟁 대신 협력의 길을 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