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리조트 노사관계는 ‘무주공산’
무주리조트 노사관계는 ‘무주공산’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3.01.0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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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은 얕고, 감정 골은 깊고…소모전만 계속돼
리조트, 호텔사업 진출 천명한 부영, 준비는 있었나?
[현장] 무주덕유산리조트노조 파업

스키나 스노보드 광이라면 일 년 내내 하얀 설원을 고대했을 것이다. 지난 1990년 덕유산 국립공원 무주구천동 안에 개장한 무주리조트 역시 매년 겨울 슬로프 개장 시즌에 맞춰 만반의 준비를 갖춰왔다. 그런데 올해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노동조합은 설립 18년 만에 파업에 들어갔으며 회사는 직장폐쇄로 맞섰다. 무주리조트는 비조합원들과 일부 파업 불참자들, 아르바이트생으로 간신히 슬로프를 정비해 올해 개장 시기를 맞췄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무주덕유산리조트노조

대목 시즌에 40일 넘게 파업 장기화

지난해 4월 부영주택은 무주리조트의 지분 74.5%를 인수하며 대주주가 됐다. 부채 900억 원을 포함해 인수비용은 2,260억 원 상당이었다. 부영주택은 부영그룹이 100%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이다. 무주리조트를 인수한 재계 19위 부영그룹은 ‘부영덕유산리조트’로 이름을 바꾸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지만, 지역사회 등의 반발로 ‘무주덕유산리조트’로 다시 개명한다. 19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개최했고 아태 재무장관회의 등 각종 국내외 행사가 열렸기 때문에 지역을 대표하는 얼굴로 자리 잡은 만큼 이름을 바꾸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다.

노사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부영이 리조트를 인수하면서부터다. 한국노총 관광서비스노련 산하 조직인 무주덕유산리조트노조(위원장 김호영)는 지난 1994년 설립됐으며, 그간 비교적 사측과 원만한 관계를 가져왔다. 2012년 임단협 교섭을 둘러싸고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노조는 조정절차를 거쳐 지난 11월 1일 간부 파업을 시작으로 3일부터는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회사는 이에 맞서 7일부로 직장폐쇄를 공고했다.

대목 시즌을 앞두고 파업이 40일 넘게 길어지고 있지만, 노사가 제시하는 의견차는 간극이 심하게 벌어져 있지는 않다. 노조는 기본급 대비 3%의 임금인상과 기존의 단체협약을 승계해 경조사비와 휴가비, 호봉 미승급 분을 지급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사측은 임금을 동결하고 여타 수당이나 복리후생을 부영그룹 내 계열사 수준으로 맞출 것을 주장하고 있다.

임금인상률은 사실상 노사가 교섭을 통해 조정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반면, 올해 만료되는 단체협약의 갱신을 둘러싸고 의견 대립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으로만 그렇다. 노조가 요구하는 경조사비, 휴가비, 호봉 미승급 분 등의 수당을 모두 합하면 3억2천만 원 규모의 액수이다. 회사는 학자금지원과 의료비 등 기존 부영 계열사 수준의 복지만 제공하겠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전체 액수 면에서 노조가 요구하는 부분과 큰 차이가 없다. 이번 노사 갈등이 특정 사안이나 쟁점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상호간 불신이 깊어지면서 결국 감정대립이 심해지고 있다는 지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무주덕유산리조트노조

쟁점 없이 감정의 골만 깊어져

무주리조트는 첫 주인인 쌍방울개발이 1997년 IMF 파고를 넘지 못하고 부도를 낸 이후, 2002년에는 대한전선에 팔린다. 그런데 2004년 설원량 전 대한전선 회장이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위탁경영 체제로 들어가게 된다. 남편의 사후 경영권을 이어 받은 양귀애 대한전선 명예회장이 ‘경험 부족’을 이유로 전문업체와 전문경영인에게 운영을 맡긴 것이다.

부영 인수 전까지 무주리조트의 경영은 전문경영인인 장해석 대표의 손에 달려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1996년 에버랜드에서 한솔오크밸리로 자리를 옮기며 리조트 사업과 인연을 맺게 됐다. 특히 골프 리조트 업계에서는 ‘미다스의 손’으로 불릴 만큼 탁월한 성과를 냈다고 평가 받는다.

무주리조트에서도 소기의 성과를 보였다. 특히 서비스업종에서 잔뼈가 굵은 만큼 리조트 직원들의 서비스 마인드를 제고시키기 위해 각종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활발히 벌였다. 내부 직원들에게도 이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당시부터 근무하고 있는 무주덕유산리조트노조 조합원들 대부분은 “이전에는 고객을 대하는 태도나 업무를 대하는 자세가 타의적이고 구태의연한 모습이 있었다면,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노동조합 역시 경영자의 ‘변화 의지’에 일부 공감하고 있었다. 1,400여 명이 근무하던 2009년에는 리조트 운영비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35%를 넘어서는 등 경영 상황이 우려되었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회사는 노동조합과 논의를 거쳐 구조조정 인원을 30명 규모로 최소화하고, 구조조정 대상자들의 뒤를 안배하는 방향을 설정했다. 희망퇴직의 형태로 인원을 줄이되, 나가는 이들은 위로금을 받거나 리조트 내 수수료 업장을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해 무주리조트는 노사상생 사업장으로 선정돼 지자체의 지원금도 받게 된다.

▲ 김호영 무주덕유산리조트노조 위원장 ⓒ 무주덕유산리조트노조

전문경영인 체제와 달라진 점은?

다른 것보다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문화’의 차이다. 임대주택 건설이 주력 사업이었던 부영이 서비스업 중심의 리조트 사업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는 부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또 그룹 산하 18개 계열사 모두가 무노조 사업장인 부영의 입장에선 노사관계 역시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문화임도 분명하다.

취재 중 만나본 무주덕유산리조트노조 조합원들은 “임금도 그렇지만 그간에 쌓였던 불만들이 터져 나온 것”이라고 밝히는 이들이 많았다. 그간의 불만이라고 하면 단연 “서비스업인 리조트 사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가운데 건설업체인 부영의 방식을 무작정 도입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압도적이었다.

정연진 무주덕유산리조트노조 부위원장은 “리조트 운영은 여러 가지 조건의 영향을 받아 변동이 심하고 예측이 어렵다”며 “상황 변화에 따라 즉시 대응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도 모기업의 기본 입장이 매우 경직돼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성수기의 경우, 이용객 수를 미리 예측하긴 하지만 정확하게 산정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식자재 구입을 비롯해 각종 소모비용이 그때그때 들어가는 액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무주리조트 내에서 이런 비용 결재와 같은 부분이 즉각적으로 처리되지 않고, 그룹 본사까지 올라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대응이 늦어진다는 것이다. 모기업의 입장에선 당연히 비용절감을 위해 결재 비용에 대해 깐깐하게 검토하기 때문에, 차라리 결재를 올리지 않고 만다는 분위기도 직원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조직과 구성원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손발이 맞아 돌아가야 하는데 쉽지 않다는 의미다.

인적자원을 양성하기 위한 체계도 부재하다는 것 역시 큰 불만이다. 학생시절부터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다가 자리를 잡게 된 한 조합원은 “예전에는 의례적으로 고객을 대해 왔지만 서비스 마인드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접하고 나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내 일에 대한 자부심이나 감명을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또 “부영 인수 이후에는 그런 것들이 없어졌기 때문에 아쉬움이 있는가 하면, 경쟁에서 도태되고 혹시 일자리를 잃을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조합원들도 “오랫동안 봐 왔던 단골 이용객들이 최근의 서비스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에는 참 답답할 노릇”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오너 중심의 그룹 문화 역시 노조와 조합원들에게 이질적이다. 노조는 “이중근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에 그룹 본사는 물론이고 계열사가 몸살을 앓을 지경”이라고 주장했다.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속출하고 있다.

닭고기를 좋아하는 이 회장은 지난여름 닭 600마리를 사서 리조트를 방문했다. 복날에 직원들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점심과 저녁에 걸쳐서 나눠 먹었다고 한다. 이 보고를 접한 이 회장은 “닭이 왜 남았냐”며 “근무인원과 식수인원에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것 아니냐”고 보고자를 질책했다. 이에 대한 사후조치로 리조트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을 비롯해 근무상태 보고가 지나치게 빡빡해졌다.

오너의 말 한 마디에 직장을 관둔 사람도 있다. 한번은 리조트를 방문한 이 회장이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데 음식이 짜다고 평을 했다고 한다. 직후 호텔 한식당 주방장은 슬로프 산꼭대기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인사이동 됐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었다.

무주리조트가 지역의 대표 사업장이며 지역사회와 얼마나 밀접히 연계돼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앞서 말했듯 리조트 이름을 변경한 것에 대해 시민사회단체 40여 개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서는 등 거부감이 심했다. 결국 야심차게 부영이란 이름을 앞세울 수 없었다. 이와 같은 갈지자 행보는 내수 주택건설 시장이 침체되자 리조트 사업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무작정 뛰어든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특히 지난 10월 말 이중근 회장은 앞으로는 국내 주택시장이 신규 건설, 분양보다는 교체 수요를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따라서 주력인 주택건설 사업은 동남아 등 해외에서 시장을 찾고, 국내에선 리조트, 호텔 등 신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 무주덕유산리조트노조

부영, 리조트 사업에 준비는 있었나?

노사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부영의 인수 이후 리조트의 대표이사는 무려 다섯 차례나 바뀌었다. 공동 대표이던 이중근 회장은 지난 11월 노조의 파업 이후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노동조합은 현 대표이사인 류주원 부영그룹 상무가 독자적으로 리조트를 경영하고 사측 대표자로서 노동조합과 협의를 이끌어나갈 권한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러워하고 있다.

8차례에 걸친 올해 임단협 교섭이 파행으로 치닫자 지난 10월 15일 노조는 전북지노위에 조정을 신청했다. 보름간 3차에 걸친 연장 조정 끝에 류 대표는 “회사(부영)의 방침은 학자금과 의료비, 경조사비만 지급하는 것이다”라고 일축하며 노조의 요구안은 물론, 조정안에 대해서도 확고한 거부의 입장을 보였다. 또한 “적자가 나고 있는 회사에서 기득권만 취하려는 노조”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부영그룹의 관계자는 “무주리조트의 적자폭은 2009년 65억, 2010년 75억, 2011년 107억으로 3년 동안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경영 상의 이러한 어려움을 고려하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회사의 부당노동행위 여부가 문제제기 되면서 가뜩이나 난관에 봉착한 노사관계가 더욱 급랭하는 데 일조했다. 무주덕유산리조트 노사의 올해 임단협 교섭은 지난 7월 26일에 시작됐다. 상견례를 마치고 30일에는 회사 인사팀장이 노조를 통해서 김호영 위원장을 급하게 찾았다. 이유는 특별승진 인사발령을 급히 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부영이 리조트를 인수하고 올해 1월 정기 호봉 승급도 시행하지 않은 마당에 뜬금없는 승진 인사였다. 문제는 승진 대상자 13명 중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는 인원 8명이 조합원이었다. 무주덕유산리조트노조의 노조 가입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조합원 자격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중 한 조합원은 노조 상집 간부이자 교섭위원이었다.

노조는 단협 상 조합원의 인사 조치는 물론 임원 및 대의원, 간부들의 인사 조치 역시 노사 협의 대상이기 때문에 회의 일정을 우선 잡으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그날 밤 일방적으로 인사발령을 단행했다.

당초 노동조합은 1월부터 회사에 교섭 요청 공문을 계속 보내왔다. 통상 겨울 피크 시즌을 피해서 3, 4월에 본격적인 교섭이 시작되는 것에 비하면 올해에는 매우 시작이 늦었다고 볼 수 있다. 원래 상견례 일자는 7월 6일로 잡고 있었는데, 교섭이 시작되기 30분 전에 회사는 연기를 요청해 왔다. 이 역시 기존 단체협약에 따르면 교섭 연기 요청은 약속된 날짜에서 3일 이전에 일주일 이내 기간 안에서 연기가 가능하다고 돼 있다.

사측의 처사가 무분별하다고 판단한 노조는 약속된 시간에 교섭 석상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사측 대표 격인 박현순 총괄이사는 “연기 통보를 했음에도 노조가 실력 행사를 하는 것이냐”며 강하게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는 “단협 상 명시돼 있는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교섭을 해태하려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이후 박 이사는 직원들 중 노조 대의원만을 따로 본인이 소집해 노조의 태도에 대한 불만과 함께 비방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참석했던 한 대의원에 의해 해당 발언이 녹취되었다. 노동조합은 앞서 언급한 승진인사 건과 함께 고용노동부 전주지청에 부당노동행위 건으로 진정을 제기했다.

18개 계열사 모두 무노조 사업장, 노사관계 경험 부족

인구 약 3만 명의 무주군을 대표하는 사업장은 단연 무주덕유산리조트다. 대부분의 지역기반 사업장이 그렇듯 무주리조트에도 무주군 인근 출신의 직원들이 다수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친인척 혈연관계는 물론, 학교 동문, 친구, 이웃 등 다양한 지역사회의 인간관계 속에서 이리저리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노사간 갈등을 겪고 있는 현 상황 때문에 훗날 이들은 인간관계에서도 재삼 갈등을 겪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외삼촌이 리조트에서 관리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밝힌 한 조합원은 파업에 참여하기 위해 회사 밖으로 나오며 외가와 의절을 했다고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기도 했다.

노사 당사자만 근심하는 것이 아니다. 리조트가 위치한 무주구천동 인근에는 펜션 등의 숙박시설과 스키 장비 숍, 식당 등 주민 대부분이 리조트와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따라서 파업이 장기화되는 것이 리조트의 이용객 감소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무주군의회 역시 11월 16일 무주덕유산리조트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노사가 노력해 달라는 촉구 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무주덕유산리조트의 갈등 상황은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무주공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