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조명 아래에는 눈물이 빛난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는 눈물이 빛난다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3.01.08 16:05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화점 노동자 열 가운데 아홉은 백화점 직원이 아니다
일-가정 양립이 아니라 일-가정 택일 강요받는 노동자
[기획] 유통노동자 건강권

서비스산업은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산업구조의 변화와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서비스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직종이 등장하고 있다. 제조업 중심의 공단은 비어가고, 그곳에 유통물류센터가 들어서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더불어 감정노동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서비스산업의 발전과 함께 자연히 서비스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늘어났다. 이처럼 제조업 중심의 고용구조가 서비스산업으로 옮겨지며 새로운 사회문제가 등장한다. 서비스산업은 여성, 비정규직, 청년, 취약계층의 일자리로 채워져 고용의 질을 떨어뜨리는데 큰 몫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저임금으로 지탱하는 서비스산업
당신의 직장생활 만족도는 몇 점인가?


서비스산업 노동자의 직장생활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52점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지역 유통 여성 판매직 노동자의 직장생활 만족도는 이보다 10점 가까이 낮은 42.6점에 불과했다. 특히 노동시간과 산업안전건강에 대한 점수가 낮았는데, 각각 25.5점, 37.5점으로 이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았다. 고용안정, 임금수준 등 10가지 조사 항목 가운데 낙제점을 면한 것은 직장분위기 하나뿐인데, 62.2점이었다.
 

<표1> 서울지역 유통 여성판매직 노동자 직장생활 만족도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서비스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3/5은 여성이다. 여성의 일자리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업종은 도소매업이나 유통업으로 35% 이상이다.

2012년 11월 30일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39%로 OECD 28개 회원국 가운데 1위다. 2000년 남녀 임금격차가 40%였는데, 10년이 지나도 전혀 개선이 되지 않았다. OECD 평균은 15%인데, 한국은 이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여성의 임금은 남성에 비해 월등히 낮은데, 여성 일자리의 다수는 서비스산업이다.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고용구조가 바뀌면서 저임금 여성 노동자가 늘어나고, 이는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남녀 임금 격차를 고착화시키는데, 서비스산업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엿볼 수도 있다.

한국의 유통산업은 1990년대 유통시장 개방과 함께 초국적 자본이 들어오며 재편된다. 또한 재벌 대기업이 유통업에 진출하면서 대규모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2000년 66%를 차지했던 재래소매업은 2012년 42%로 급감한다. 중소유통업은 몰락하고, 그 자리를 재벌 유통기업이 차지한다. 재래시장은 위축되고, 백화점 및 할인점 중심으로 소비패턴이 변화되었다.

유통 재벌 빅4라 불리는 롯데, 현대, 신세계, 홈플러스 테스코의 시장점유율이 80%에 달한다. 통계청의 <대형유통업이 중소유통업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중소유통업의 매출액 감소가 평균 45%에 달했다. 백화점과 할인점의 틈새에서 그나마 살아남은 중소영세 유통업체의 영역도 국내외 대기업들의 사업다각화로 기업형 슈퍼체인(SSM), 미니 점포 등이 진출하며 쪼그라들고 있다. 그야말로 골목상권의 몰살 위기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질 나쁜 일자리 만드는 유통 기업

백화점에서 일하는 노동자 열 가운데 아홉 명은 백화점의 직원이 아니다.

백화점과 할인점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고용형태는 직접 고용된 백화점 직영노동자, 간접 고용된 파견용역 노동자, 입점 협력업체 노동자로 나뉜다. 2012년 현재 백화점, 할인점, 면세점 수는 513개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43만7천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가운데 백화점이 69개인데, 백화점 직영 노동자는 10%에 불과하다. 90%는 입점 업체 노동자이다. 이중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는 17만2천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서비스산업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직접고용 인원은 갈수록 줄어들고, 그 자리는 간접고용 및 협력업체로 채워지고 있다. 또한 사업부 자체를 외주, 용역, 분사시켜 같은 일을 하지만 고용의 질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실정이다. 유통업에서 사내하청의 비율은 30%에 이른다. 2007년 ‘비정규직법’이 시행되자 대부분의 기업에서 계산직과 후선업무 등을 외주화하고 있는 추세다.

신세계 계열 업체의 사내하도급업체는 10개다. 롯데 계열은 60개, 현대백화점 60개, 홈플러스 계열은 20개, 농협유통 계열은 43개다.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서비스산업의 원하청구조도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고용을 증가시킨다. 또한 원청 노동자에 비해 하청업체 노동자는 임금, 복리후생이 열악해 사회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표2> 국내 서비스산업 주요 직종별 감정노동 실태 (단위: %)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굴뚝에서 빌딩으로 옮겨간 노동자

서비스산업의 발전은 노동자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었을까? 시커먼 연기를 뿜는 굴뚝 중심의 일터가 화려한 빌딩으로 옮겨갔지만 삶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알다시피 한국의 노동자는 세계 최장시간 일한다. 유통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유통업의 주당 노동시간은 43.7시간이다. 5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노동자는 41만5천 명으로 19.8%에 달한다. 제조업은 52시간 초과해 일하는 노동자가 10.7%이다. 이처럼 유통업 장시간 노동자 비율이 제조업보다 2배 가까이 높다.

제조업의 주5일제 적용비율은 67.3%다. 반면 유통업 노동자 가운데 주5일제 적용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75만 명으로 35.8%에 불과하다. 유통업 노동자 셋 가운데 두 명은 한 주에 닷새를 초과해 일한다는 말이다.

통계청 <사업체노동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1년 사이에 월 노동시간이 24.5시간이 단축되었다. 제조업은 같은 기간 23.5시간이 줄었다. 그에 반해 유통업 노동자의 노동시간 감소폭은 20.3시간에 불과했다.
 

<표4> 서울지역 유통 여성 판매직 노동자 건강 이상 증상 (단위: %)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실장의 <서울지역 유통업 여성 노동 및 건강권 실태> 자료에 따르면, 서울지역 유통업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1주일 평균 44.4시간으로 전국 평균보다 길다. 정규직은 46.5시간이고, 비정규직은 41.2시간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짧은데, 이는 단시간 노동자들 때문이다. 단시간 노동자를 제외하면 1주일 평균 노동시간이 48.13시간으로 대폭 늘어난다.

앞에서 봤듯이 서비스산업 노동자의 다수가 여성이다. 장시간 노동은 여성의 사회진출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일-가정 양립에 성공하는 슈퍼우먼 신화의 본질은 일과 가정 양쪽에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는 길밖에 없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경쟁처럼 ‘연중무휴 영업’, ‘24시간 영업’, ‘연장 영업’에 목을 매고 있다. 특히 명절날조차 쉬지 못하게 하는 유통업체의 ‘연중무휴 영업’ 방침은 일-가정 양립이 아니라 가족을 버리고 일하든지,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든지를 선택해야 하는 일-가정 택일이다.

유통산업 여성노동자의 노동시간 만족도는 25.5점에 머문다.

김종진 연구실장의 자료에 따르면 서울지역 유통 여성 판매직 노동자의 1주 평균 2.9회 연장근무를 하고, 휴일근로가 월 평균 6.2회다. 1주일에 3일 잔업을 하고, 그것도 부족해 1.5일씩 특근을 한다는 말이다.

또한 서울지역 유통 여성 판매직 노동자의 점심시간은 37.6분이다. 하루 6시간 자고,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1.9시간에 불과하다.
 

<표5> 서울지역 유통 여성 판매직 노동자 업무상 질병 유경험 (단위: %)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몸과 맘에 멍드는 서비스 노동자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하는 서비스산업 노동자는 몸과 함께 마음까지 멍들고 있다.

한국 서비스산업 노동자의 감동노동 수행은 52.3%로 앨리 러셀 혹쉴드의 감정노동 수행 기준 40%를 넘는다. 유통 식품 판매 노동자의 경우 이 수치가 86.8%에 이른다.

2012년 10월 서울지역 유통 여성 판매직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 사이 고객에게 폭언을 들은 경험이 있는 노동자는 42.4%에 달했다. 98.3%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며 일하고, 98.9%는 자신의 감정과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이와 같은 감정노동은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한다. 이들의 건강 이상 증상을 조사한 결과 86.9%가 음주와 흡연, 64.9%가 거식이나 폭식, 59.3%, 47.5%는 조울증, 44.1%는 탈모의 경험이 있었다.

서비스산업 노동자의 업무상 질병은 주로 장시간 노동과 감정노동에서 비롯한다. 장시간 서서 일하다 보니 근육이나 발과 관련한 질환이 많고, 감정노동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을 겪는 비율이 높다.

근육질환이나 발질환은 85.7%와 80.7%로 대부분의 서비스산업 노동자들이 겪었다. 또한 정신질환도 76.4%에 달한다. 실내에서 장시간 일하니 호흡기 계통 질환을 겪은 사람도 76%에 이르고, 장시간 서서 일해서 생기는 무릎 및 관절 질환(73.9%)이나 여성 산부인과 질환(73.3%)을 겪은 경우도 많다. 유산 경험이 있는 경우는 7.5%로 나타났는데, 이는 조사대상 노동자의 82.2%가 미혼인 점을 고려하면 굉장히 높은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을 술로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다. 서울지역 유통 여성 판매직 노동자들의 ‘고위험 음주’ 비율은 58.3%에 이른다. 술을 한 번 마실 때 소주를 8.9잔 가까이 마시고 있으며, 흡연도 1일 평균 10개비다. 백화점 판매직의 경우는 ‘고위험 음주자’가 60.5%였고, 1회 음주 시 소주 9잔을 마시는 것으로 조사됐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서비스산업 확대 맞춰 적극적 노동정책 필요

산업구조는 이미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갈수록 그 비중은 높아질 것이다. 덩달아 서비스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비중도 늘어나고 있다. 서비스산업에서 직접고용 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그만큼 고용형태도 불안하다. 간접고용이나 하청외주화가 늘어나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여성의 일자리의 많은 부분이 서비스산업에서 만들어지고, 서비스산업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직업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데 밑받침이 되지 못하고 있다.

앞의 김종진 연구실장의 조사에 따르면 93.3%가 가족과 보낼 시간이 없다고 답했다. 9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의 92.5%는 자녀를 돌볼 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직장이 일-가정 양립은커녕 걸림돌이 되고 있다. 조사대상 노동자의 88%는 잠이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이는 94.1%에 달한다. 여기에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고통을 받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음주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아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일본의 경우 1999년에 이미 정신질환에 대한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이 마련되었다. 2010년 정신질환을 산재로 인정한 건수가 일본은 308건이다. (이 가운데 79건이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질환 유형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수치는 한국의 정신질환에 대한 산재 인정 건수의 15배에 이르는 수치다. 한국이 서비스산업 노동자에 대한 정책적 준비 및 이해가 미흡하다는 말이자 또한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농업 중심에서 제조업 중심으로 경제구조가 재편되던 1960년대 숱한 사회문제가 일어났고,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를 외치며 분신 항거했다. 이제 산업의 중심이 서비스산업으로 옮겨갔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다수는 여성이고, 청년이고, 비정규직이다. 이제 정부와 국회가 앞장서서 서비스산업 노동자 행복한 노동과 안전한 일터를 위한 노동정책과 법제도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때이다.

또한 서비스산업 노동자의 권리는 조직된 노동운동의 중심에서 아직 한 발짝 옆으로 비껴나 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받아 안지 못한다면 노동조합운동의 앞날은 그리 밝지 못할 것이다.

민간부문 서비스산업 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2%도 되지 않는다. 이마저도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방법이 복잡해서 그런 게 아니다. 눈이 미치지 못해서고 마음이 다가가지 않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