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산별 통합이 한국노총 내부정비의 핵심
유사산별 통합이 한국노총 내부정비의 핵심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3.02.0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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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현안 해결에 정치권 활용은 “적절한 공략”
‘중간’ 노조, 적극적으로 포용해야
[기획 인터뷰 2] 이병균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지난 2년간 한국노총은 바람 잘 날 없는 시간을 보냈다.

2010년 말부터 3파전으로 경합을 벌인 위원장 선거레이스가 주목을 받았는가 하면, 이용득 위원장의 당선 이후 노조법 재개정 투쟁의 기치를 높이 들기도 했다. 총선과 대선이 맞물린 2012년에는 민주통합당 창당 과정에 한 축으로 참여하는 문제가 화두로 던져졌으며, 그 와중에 크고 작은 불신들이 조직 갈등으로 깊어져 급기야는 임기의 절반을 남겨두고 위원장이 사퇴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총연맹을 둘러싸고 안팎의 상황이 분주한 가운데, 유난히 투쟁사업장들도 많아졌다. SC제일은행지부와 서희산업노조, 무림페이퍼노조, 재경택시분회, 가장 최근의 무주덕유산리조트노조까지 파업에 들어갔다 하면 두 달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난 이용득 집행부에 이어서 현 문진국 보궐집행부에서도 조직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이병균 상임부위원장의 시름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이 상임부위원장에게 그간의 소회와 앞으로 한국노총 조직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얼마 전 무주덕유산리조트노조의 투쟁이 성과를 내고 마무리됐다.

“서희산업, 무림페이퍼처럼 이번에도 아주 애를 먹었다. 결국 마지막에는 정치권을 끌어들여 문제를 풀었다. 처음에는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는데 결론이 나지 않았고,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이 이중근 부영 회장에게 전화를 했으며, 야당에서는 노동대책위를 구성해서 그 인원들이 대거 내려갔던 거다. 또 고용노동부에서는 특별근로감독이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노조로서도 그 타이밍이 마지막 막후교섭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곧 겨울 성수기도 끝나고 리조트 사업장임을 감안할 때 노동조합의 동력도 떨어져 간다고 볼 수 있었던 거다. 회사 쪽의 노무담당 임원과 통화를 할 때 이렇게 말했다. ‘야당은 여당과는 다를 것이다. 한번 물면 세게 물것이다. 유성기업,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KEC 등 노동계가 꼽은 악덕기업 중에 무주리조트가 들어갈 이유가 뭐가 있겠냐. 오늘 마무리를 짓도록 하자.’

총연맹이 문제에 개입하게 되면서부터 정치권을 비롯해 전 방위적으로 압박을 해 오니까 아무래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본다. 체불임금, 불법대체근로, 부당노동행위 등의 확실한 건수를 고소 고발했으며 사측에선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막상 전주지청에서 특별근로감독이 나오고 정치권에선 압박이 들어오고 했을 테니까. 또 당시에는 프로야구 10구단 선정이 아직 결정되지 않을 시점이었는데, 우리가 심사하는 날 아침부터 그 앞에 집회신고를 내 놓기도 했다. 아무래도 회사 쪽에서는 이걸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이야기를 해 줬더니 펄쩍펄쩍 뛰더라. 어쩔 수 없지 않나?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불행한 사태를 야기하지 말고 잘 해결이 될 경우 그날 부로 전면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정치권은 약자의 눈물 닦아 줘야”

애를 먹었다는 부분은 어떤 점인가?

“일단 보니까 처음에는 무주리조트 때문에 먹고 사는 지역 주민들, 예를 들면 리조트 근방의 스키 렌탈 가게라든지, 이런 지역 주민들이 전부 회사 편을 들었다.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지 못하게 자신들이 먼저 나서더라.

또 보니까 회사에서는 손배가압류부터 시작해서 노동조합을 법으로 옭아맬 수 있는 함정을 많이 준비해 놨었다. 단 한 발자국만 넘어오면 바로 엮일 수 있도록 말이다. 노조 위원장이 마음고생이 심했겠지만 절대 법을 안 어기고 투쟁을 가져가려고 했던 것이 바로 그것 때문이다. 사실 리조트 안으로 들어가서 스키장 리프트를 점거한다든지, 보다 강경한 투쟁 방법이 제시되기도 했는데, 회사에서 미리 다 덫을 쳐놨던 부분이었다. 그래서 좀 더 투쟁이 길어졌던 것이다.

부영그룹은 근본적으로 무노조 경영에 대한 신봉이 대단했다. 민주노총의 건설 쪽 조직들과 그동안 부딪쳐 본 경험이 많았다는 거다. 그쪽을 그동안 자기들이 다 굴복시켰고 그래서 노조를 우습게 아는 경향이 있었다. 이렇게 밀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조직 대 조직의 싸움에서, 정치권은 물론 단결된 자체 동력,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고소고발 사안, 이런 것들이 상급단체의 개입으로 효과가 상승되면서 전 방위로 조여들어갔으니까.

여름에 시끄러웠던 서희산업노조와는 조금 다른 방향의 얘기인데, 무주리조트의 경우엔 궁극적으로 무노조 경영을 위한 노조 와해를 목표로 두고 시비를 건 거다. 기존의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면서 보장돼 있는 임금이나 수당을 미지급하거나 깎았고. 노조의 파업을 유도한 거라고 볼 수 있지 않겠나? 어떤 노조가 이를 가만히 묵과할 수 있을까.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직장폐쇄 공고하고, 관리자노조 결성하고, 손해배상 등 법적 분쟁 준비하고 그랬던 거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단위 조직의 분규를 정치권을 통해 해결하는 경우가 최근 대부분이다.

“제대로 된 공략이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한국노총이 개입되는 사업장은 기본적으로 한 달 이상 경과된 악성 사업장이라고 봐야 한다. 난해한 문제를 놓고 노사 당사자들이 자체적으로 풀어나가다가 하다하다 안 되면 산별연맹을 통해 노총으로 넘어온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들은, 무주 때도 그랬고 서희산업도 마찬가지였고, 정치권이 개입하면 문제가 안 풀린다고 말한다. 그런데 노총이나 노동조합 입장에선 당사자들끼리 도저히 해결이 되지 않으니까 정치권을 개입시키는 거 아닌가. 정치권이 개입하는 것에 대해 이들은 굉장히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이들의 반응을 보고 역으로 생각해 보자면 이런 부분에서 제대로 된 공략이라는 말이다.

나는 정치권이 약자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권을 잡게 되면 조금 성격이 달라지겠지만, 노동현안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약자인 노동자의 편에 서 주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인 흐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MB정권 들어서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구호 아래 노동정책을 친기업적으로 밀어부쳤다. 그러다보니 정치권도 골치 아프다며 노동현안에 대해선 방관하는 현상이 생기는 거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현안도 안 풀리고 이렇게 꼬이는 거다. 실제로는 그 사람들이 들어가서 해야 한다. 노사 당사자가 하다하다 안 풀리면 중재를 놓고, 원만히 협상이 진행될 수 있도록 나서줄 만한 세력이 지금은 정치권밖에 없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내부는 정리하고 외연은 넓히고

조직담당 부위원장으로서 한국노총 내 조직 강화와 확대에 대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나?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겠다. 하나는 한국노총 내부 혁신을 통한 조직 강화와 확대가 있을 수 있겠고, 나머지 하나는 복수노조 시대에 말 그대로 양대 노총에 속하지 않은 중간 노조들에 대한 방향 제시다.

전자의 경우엔 한국노총의 새로운 집행부가 내년 1월 경 선거를 통해 출범하게 될 텐데, 어쨌든 지금의 상황을 보면 의사결정 구조가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한국노총은 정책 사업으로 유사 소규모 산별의 통합을 꾀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보면 여러 가지 이유에서 산별조직이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우선 한국노총의 변화와 혁신의 중심에 설 수 있는 16개 산별 정도로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고 본다(현재 한국노총은 26개 회원조합으로 구성돼 있다). 문제는 그것을 누가 어떻게 하느냐는 거다. 앞으로 내가 어디 어떤 자리에 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부분의 정리를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조직과는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소통의 과정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의 흐름은 좋다고 생각한다. 최근 공기업연맹과 전력노조가 조직을 합쳐 통합연맹을 출범시켰다. 특히나 공공연맹을 포함하여, 공공부문은 하나의 산별연맹으로 묶여야 한다는 의견이 이인상 위원장과 김주영 위원장, 박해철 위원장 등 공공부문 대표자들로부터 제시될 때 참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과거의 제조연대 추진과 같은 부분 역시 가는 방향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본의 아니게 여러 조직으로부터 견제를 받으면서 시도가 좌초해 비운의 제조연대가 됐지만 말이다. 이제 다시 제조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새로운 모습을 태동시킬 수 있어야겠다.

실제로 이러한 내용들이 내년에 출범할 새 집행부가 내세운 공약들로 구체화될 수 있도록 주변의 많은 협조와 의견개진이 필요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쉽지 않은 조직 통합의 과정을 이끌어가려면 지도부의 리더십도 필요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백만 조직의 중심으로서 한국노총이 짜임새 있게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산별 조직 정비와 함께 얘기해야 하는 것이 지방자치 시대에 맞는 시도지역본부의 운용이다. 나는 각 지역본부에 보다 많은 권한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새는 세상이 빨리 바뀌는 만큼 노동계도 이를 바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해당 지역의 의장이 지역의 노동 현안을 풀어가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거기에 좀 더 힘을 실을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산별과 지역의 관계 역시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외부적 차원의 문제인데, 이른바 중간 노조를 우리가 끌어안아야 한다는 점이다. 양대 노총에 속하지 않은 중간 노조들이 그동안엔 한국노총으로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지난 5년, MB정권 아래에선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동이라는 걸 폄하하고 양대 노총을 무시하는 정권 때문에 오히려 중간자적 입장에 있는 게 더 많은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지금은 당선자가 정해졌지만, 대선 국면에서 양대 후보가 경합을 벌일 때 공약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부분이다. 노동 부문은 그 일환의 내용인데, 결국 노동기본권의 강화로 귀결된다. 그런 국면이니 중간에 머물던 노조들이 이제 우산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그런 조직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공간을 배려하고, 또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정연수 국민노총 위원장과도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노총으로 들어오라는 거다. 국민노총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노선을 공감하는 조직이 한국노총 내에도 많다. 들어와서 그런 세력들과 힘을 합쳐 노동운동의 방향을 이끌어나갈 수 있지 않겠냐는 거다. 그 또한 한국노총의 변화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새로 제3의 노총을 만들어서 공간을 나누는 것은 잘못하면 노동자들의 분열만 야기하는 게 아니냐는 거다. 한국노총으로 들어와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들과 정파로 묶던지, 아니면 독자적인 의견을 낼 수 있는 하나의 세력이나 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그렇게 되면 집권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어쨌든 분명한 건 지난 정권과 비교해 중간노조가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매우 협소할 거라는 거다. 그런 조직들을 노총으로 흡수하는 작업들을 조직본부에서 해나가는 것을 올해 사업계획을 수립함에 있어서 적극 반영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