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붕붕, 사랑의 버스 명랑 운전기사
붕붕붕, 사랑의 버스 명랑 운전기사
  • 이가람 기자
  • 승인 2013.04.0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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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행동이 승객들에게 행복을 전해준다
못난 내 얼굴 화나지만 거울 보며 스마일
[사람향기] 서울시 272번 버스 라원일 기사

서울시 272번 버스는 명지대, 연세대, 이화여대, 경복궁, 경동시장, 약령시, 청량리, 면목동 등을 거치며 강북 시민들의 다리가 되어주는 대표 노선이다. 272번 라원일 버스기사는 승객들에게 친절기사로 소문났다. 승객이 버스에 탈 때부터 내릴 때까지 친절멘트가 쉼 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라원일 씨는 승객뿐만 아니라 국가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서울시장 명의의 표창을 두 차례 받았으며 G20 정상회의 당시 파견 버스기사로 선발되어 외국 취재진들을 태운 경험도 있다.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사랑의 버스를 운행한다는 라원일 씨를 만났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금 출발합니다”

“급커브 길 공사 중이라 노면이 안 좋아요. 미리 일어나지 마세요.”
“좋은 하루 되시고 안녕히 가세요.”
“신호 바뀌었네요. 이제 차 움직여요.”

라원일 씨의 272번 버스를 타면 버스 중계 아나운서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라 씨는 마이크도 없이 육성으로 승객들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말한다. 몇몇 아주머니 승객들은 ‘친절하다, 섬세하다’고 감사의 표시를 하지만 대부분의 승객들은 부끄러운지 미소로만 답한다. 라 씨에겐 친절기사가 되기로 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할머니, 짐이 많아서 버스 타기 힘드시죠. 제가 들어드릴게요’ 경동시장에서 짐을 한 가득 들고 제 버스에 타서 경복궁역 노점까지 가시는 할머니가 계셨어요. 매번 버스 요금 800원(2004년 기준)이 아까우신지 600원만 내셨어요. 어느 날은 할머니께서 나에게 짐 들어줘서 고맙다며 3,000원을 덥석 제 손에 쥐여 주시는 거예요. 버스 요금도 아끼시는 분에게 3,000원은 엄청난 금액일 텐데 말이죠. 순간 버스에 탄 승객들로부터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오는데 제가 칭찬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싶더라고요. 실은 제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은 할머니가 아니라 저를 위한 게 더 컸거든요. 출근시간에는 버스 배차간격을 맞추는 게 어려운데 할머니는 행동이 느리시니까 급한 마음에 도와드렸죠. 그때 저의 작은 행동이 승객들에게 행복을 전해준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 후로 사랑과 웃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랑의 버스’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사랑의 버스 기사라도 365일 늘 컨디션이 좋은 건 아니다. 지금은 반사적으로 행동이 나올 만큼 습관화가 됐다고 하지만, 꾸준한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저는 매일 거울을 보고 자기 최면을 걸어요. 이게 내 모습이구나. 사실은 못난 제 얼굴을 보면 너무 화가 나지만 그래도 거울보고 인사해 봐요. 그러면 그 하루가 확연히 달라져요. 또한 옛날 사람들이 말이나 강아지들과 대화를 했잖아요. 저는 버스랑 대화를 합니다. ‘오늘 수고 좀 해줘라. 나도 좀 도와주고 승객들 힘들지 않게 우당탕탕 하지 말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요. 또한 유리에 먼지가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닦아요. 그러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아세요? 승객들이 신기하게 휴지를 안 버려요. 내가 운전하는 차를 내 스스로 등한시 하면 승객도 똑같이 행동하게 돼요. 제가 청결하게 함으로써 승객들이 제 차에 탈 때 기분도 좋아지시고, 휴지를 안 버리시니 저 역시도 좋습니다.”

3S와 눈높이를 갖추다

승객을 대할 때 라원일 씨가 정한 공식이 있다. 아이슈타인이나 뉴턴이 만든 수학적인 공식이 아니라 10년 넘게 버스를 운행하며 몸소 깨달은 산지식이다. 그는 모든 업종에선 3S와 눈높이가 필요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웃으면서(Smile) 고객을 대하되 고객의 생각을 빠르게(Speed) 알아채는 게 서비스(Service)에요. 버스를 예로 들면 승객이 ‘이 버스 홍대입구역가요?’ 라고 물으면 ‘아니요 271번이 갑니다’ 라고 빠르게 알려주는 게 우리가 할 일이에요.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에요. 이 기반에는 ‘긍정적 마인드’가 있어야 돼요. 다음으로 승객들에게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데요. 예를 들면 저는 유치원생 꼬맹이가 탈 때 웃으면서 ‘안녕!’ 살갑게 인사해요. 어르신들 타면 ‘아유 할머님 어서오세요’ 라고 하고요.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인사를 안 하는 기사가 대부분이어서 인사만 해도 친절하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승객들이 형식적인 인사인지 아닌지 다 구분 하세요. 승객들에게 자연스럽게 3S와 눈높이를 갖춰 대하는 것이 제 노하우 같아요.”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일을 즐기면서 하는 사람 같아 보였다. 어떻게 보면 오지랖이라고 볼 수도 있을 만큼 승객들과 삶을 공유하려는 의지도 느껴진다.

“버스를 운전하다보면 재밌는 일들이 많아요. 매일 아침 어떤 승객들과 마주할까 기대하면서 잠에서 깨어나요. 오래 봐온 승객들은 서로 안면을 텄기 때문에 그 분들이 제 차에 타나 안 타나 기다리고요. 승객 분들이 주시는 선물들도 셀 수 없이 많아요.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경찰 분들께 에스코트를 받았던 건데요. 실화인데 주변에서 안 믿더라고요. 제가 초보 기사일 때 여러 버스를 운행했었는데 노선이 헷갈려서 이탈을 한 겁니다. 돌아가려다 시간이 지체되어 신호위반을 했더니 경찰이 다가오더라고요. 경찰 분께서 제 신분증을 보고는 예전에 제 버스를 인상 깊게 탔었다면서 넘어가 주시는 거예요. 그것도 모자라 경찰차 두 대가 제 버스를 에스코트해서 원래 노선으로 신속히 갈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참 감사하죠.”

라원일 씨의 행동이 현재로서는 유별나고 특이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동료 기사들과 승객 모두가 함께 변화해야한다고 역설했다.

“안타깝지만 대부분의 버스 기사나 승객들이 옛날의 사고방식에서 머물러 있어요. 하루아침에 의식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저도 변화에 일조를 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서울시가 선진화 사업을 위해서 버스 기사들에게 친절 교육을 시키는데요. 저희 회사 교육하는 날에 친절도우미 강사가 못 오신 거예요. 달리 방법이 없었는지 윗분들께서 저에게 강의를 할 수 있냐고 그러시더라고요. 저는 모두가 그런 문화를 만들어 가고 싶은 마음에 즉석에서 저의 경험들을 강의에서 말한 적이 있어요. 제가 저렇게 하니까 동료들이 다 좋아할 거야 그러는데요.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정착이 안 되어서 인사도 억지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요. 나부터 바뀌자는 마인드로 꾸준히 전파하고 있습니다. 기사들이 친절해지면 경험상 사고 확률도 낮아져요. 기사가 변해도 승객이 변하지 않으면 안 돼요. 저는 버스를 최대한 원칙대로 운행 하는데요.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신호등도 무시하고 달려오는 승객들이 있어요. 저는 사고 위험 때문에 절대 태우지 않는데요. 간혹 회사에 어느 기사가 자기를 안 태웠다고 항의 전화를 하는 분들이 계세요. 자신이 유리한대로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요즘은 버스에 CCTV가 발달해서 제 탓이 아닌 게 판명이 바로 나지만 그 전에 승객들의 의식도 바뀔 필요가 있어요.”

라원일 씨는 자신을 일하게 해준 북부운수에 애사심이 가득하다. IMF로 사업이 부도나 거리에 나앉을 위기에서 돌고 돌아 2001년 버스업계에 정착했다. 처음부터 북부운수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 다니던 버스 회사에서는 라원일 씨의 친절한 행동들을 못 마땅히 여겨 해고했다. 버스 기사면 배차나 잘 맞춰야지,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라는 거였다. 그 회사 지부장이 이곳 북부운수를 알려주어 어쩔 수 없이 오게 됐다. 전화위복이었다. 라원일 씨는 북부운수에 2002년에 입사한 뒤 결근 없이 10년 넘게 근속해오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북부운수 본사 건물에는 예배당이 있다. 라원일 씨는 크리스천이라 예배당에 자주 들려 예배를 드린다. 또한 인터넷에 라원일 씨에 대한 승객들의 칭찬 글이 올라오자 사측은 한 해 목표 건수를 정해보라고 할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다.

라원일 씨는 잠을 자면서도 버스 생각을 할 정도로 열정이 가득한 버스 기사다.

“제가 인생의 목표로 삼는 건 버스 이외에 다른 게 아닙니다. 어느 날 잠을 자다가 제 꿈에서 나왔던 것이 현실화 되는 것이 목표인데요. 대한민국 서울시 북부운수가 세계적으로 대중교통의 중심이 되는 거예요. 세계 유명 방송사 CNN, NHK, BBC에서 촬영도 오고요. 서울시가 중앙버스전용차로 만든 것과 북부운수의 모범운전 사례를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는 거지요. 그 꿈을 꾼 이후로 이렇게 변화되기를 매일 기도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