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계약직 전환해도 여전히 ‘해고’는 쉽다
무기계약직 전환해도 여전히 ‘해고’는 쉽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3.05.0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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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 실적 부풀리기 논란
고용불안·근로조건 차별은 변화 없다
[기획 1] 공공부문 정규직화 어디까지 왔나

4월 18일 국가인권위원회에 기간제 및 무기계약직노조가 설립됐다. 조합원은 19명, 인권위 전체 직원들의 10%에 불과하다. 상담원, 사무보조원, 홍보보조원, 운전원이라는 이름으로 각자 주어진 몫의 일을 해내는 엄연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구성원들이다.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에 대한 권리 침해를 구제하고 차별 구조를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설립된 인권위는 행정, 입법, 사법 어느 쪽에도 구속받지 않는 독립적인 기관이다. 그동안 인권위의 비정규직 구성원들은 다른 기관에 차별 시정을 권고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한편 스스로 처한 위치에 대해 씁쓸함을 삼켜야 했다.

정부는 2012년 현재 공공부문에서 직접고용하고 있는 비정규직 규모가 25만여 명이라고 밝혔다. 노동계에서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간접고용 인원까지 합하면 백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규모도 문제지만 실질적인 차별적 처우를 어떻게 개선해 나가느냐도 관건이다. 그런 와중에 최근 고용노동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을 확대 보완하여 2015년까지 단계적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순조롭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4월 10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상시 지속적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2만2,069명이 지난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고 밝혔다. 이는 2011년 말부터 지난해 초까지 정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 및 추진지침’에 따라 각 기관이 추진한 내용이다.

당초 목표했던 전환 인원이 2만2,914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96.3%의 달성률을 보이고 있다고 고용노동부는 자평했다. 또한 일부 기관에서 올해 1월 1일자로 700여 명이 추가로 무기계약직 전환된 점을 감안하면 계획이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중앙행정기관 46곳, 자치단체 246곳, 공공기관 430곳, 교육기관 77곳 등 총 799곳에 달하는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 근로자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고용노동부는 당초에는 각 기관별로 올해 안에 무기계약직 전환계획을 수립해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발표 이후에 신규 채용된 근로자를 포함해 2015년까지 전환계획을 새로 수립해 제출하기로 했다. 아울러 이들의 처우 개선과 관련된 방안도 관계부처와 협의해 마련해 나갈 예정이다.

지난 2011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현황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 공공부문 종사자 169만856명 중 비정규직은 24만993명으로 14.3%를 차지하고 있었다. 파견이나 용역근로자는 9만9,643명으로 5.9%였다. 2012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175만4,144명 중 비정규직은 24만9,614명, 파견이나 용역직은 11만641명이었다. 2만 명 이상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음에도 오히려 숫자는 늘어났다. 전체 인원 대비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도 14.3%에서 14.2%로 거의 변화가 없다. 파견, 용역직은 5.9%에서 6.3%로 증가했다.

고용노동부는 2011년 실태조사와 동일한 기관 및 대상을 기준으로 할 때, 공공부문 비정규직 규모는 대략 2만 명 정도 감소한 것으로 추산한다고 밝혔다. 다만 공립대학이나 신규 공공기관 등 조사기관이 40곳(2,600여 명) 추가되었고, 배움터지킴이, 방문간호사 등 재정지원 일자리사업 종사자 3만여 명이 지난해 조사에서 추가되었기 때문에 비정규직 인원이 오히려 늘었다는 의미다.

▲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 참여와혁신 포토DB

근무평가에 따라 계약해지 가능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상시 지속적인 업무에 정규직을 채용하는 고용관행을 공공부문부터 정착시켜, 이런 관행이 민간부문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최선을 다하겠다”며 “비정규직 문제는 상생 화합으로 가는 우리 시대의 화두이자 새 정부의 중요한 국정과제이므로 공공부문 기관장들이 의지를 갖고 비정규직 고용개선을 적극 추진해달라”고 당부했다.

주무부처 장관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에 대한 시선은 싸늘하다. 수치상으로 실적을 달성했는지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실질적인 처우 개선이 있었는지에 대해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야당 환노위원들을 중심으로 정치권에서도 “말로는 정규직 전환인데 실제로 해당 기관에서는 차별이 여전하다”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장하나 민주통합당 의원실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정부 각 부처의 ‘무기계약직 및 기간제근로자 관리규정’을 분석해 그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기존 정규직의 인사평가 항목에는 없는 ‘근무성적평가에 따른 해고조항’이 무기계약직에게는 적용되는 실질적인 차별이 가해지고 있다는 문제제기다.

지난 정부의 15개 부처 가운데 법무부, 교육부, 농축산부, 문광부, 통일부, 안행부, 국토부, 산자부, 환경부 등 9개 부가 근무성적평가에 따라 무기계약직을 해고할 수 있다는 규정을 갖고 있었다.

장하나 의원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이 무기계약직 전환 실적 부풀리기에만 매달리고 있을 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과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후 고용노동부는 국정감사 처리결과 보고서를 통해 “합리적인 무기계약직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 그러나 2013년 4월 현재, 새 정부의 17개 부를 대상으로 다시 분석한 결과 작년과 달라진 내용은 전혀 없었다.

문제는 국가공무원법 상 근무성적평가가 부서의 장, 기관장 등 상급자들에 의해서 주관적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성과에 대한 평가로만 활용되어야지 이를 징계나 해고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매우 자의적이라는 의미다.

한정애 민주통합당 의원 역시 고용노동부의 국회 업무보고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함에 있어 다른 행정부처를 선도해야 할 고용노동부가 오히려 무기계약직의 고용불안을 선도하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일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추진지침을 하달하면서 평가 후 일정기준 해당자만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전환되더라도 기관별로 실정에 맞게 (가칭) 무기계약직 근로자 관리규정을 마련하여 운용하라고 지시한 부분에 대한 비판이다. 특히 이 관리규정에는 근무실적이 불량하거나 사업, 예산의 축소 또는 폐지시 고용관계 종료가 가능하도록 명기하라고 적시돼 있었다.

고용노동부 역시 무기계약근로자 관리규정을 만들었다. 무기계약근로자의 정년은 만 57세에 도달한 날로 하며, 채용권자는 행정수요 감소로 인한 업무량의 축소, 직제 개편 등으로 인원 감축이 불가피하여 무기계약근로자와의 근로계약을 해지하는 경우에 근로기준법의 관련 규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른 기관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경찰청 무기계약 및 기간제 근로자 등 관리규칙, 국회 무기계약근로자 관리규정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행정기관, 공공기관, 교육기관, 지자체를 막론하고 여러 가지 사유로 사실상 해고나 다름 없는 계약해지를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있다.

한정애 의원은 “무기계약근로자 관리규정은 행정내규에 불과하여 법적 근거가 없으며, 계약해지 조항은 근로기준법상의 해고제한에 위배된다”며 “새로 마련될 무기계약직 관련 지침에는 직무전환이나 타 사업 재배치 등 해고회피 노력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고용안정과 관련된 내용이 이처럼 밑빠진 독이라면, 임금이나 수당은 드러내 놓고 차별이 고착화돼 있다. 공공운수노조가 조사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임금실태 조사에 따르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체 평균 임금은 월 126만9천 원이다. 비정규직과 동종의 유사업무를 하는 무기계약직은 127만 원, 정규직은 211만4천 원을 받는다. 정규직의 60% 수준에 그친다는 의미다. 이와 같은 격차는 각 주무부처별, 기관별로 그 차이가 들쭉날쭉이며 정부는 이에 대한 실태파악조차 안 되어 있는 상태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공공부문 비정규 연대회의 출범

그런 와중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중앙행정기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교육기관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4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공공부문 비정규 연대회의를 출범시켰다. 20여 개 기관 250여 개의 조직이 연대체를 꾸렸으며, 10만여 명에 달하는 규모다. 경찰청주무관노조, 국토교통부민주통합노조,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공공운수노조 고용노동부사무원지부, 전국민주연합노조, 국민체육진흥공단 KSPO노조 등 11개 조직이 공동대표단을 구성해 운영하게 된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이들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실제로 정규직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종 연대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특히 무기계약직을 포함한 전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실질적인 비정규직의 실태조사가 이루어지고 개선 계획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정책적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여론 홍보와 토론회 등을 개최하면서, 현재도 진행 중인 각 기관, 조직 단위에서의 해고를 금지하고 투쟁 상황에 대해 연대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아울러 정부가 새로이 2015년까지 정규직화를 위한 제도 틀을 만들어 가는 데 당사자들의 요구 사항을 적극 반영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