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며 피는 꽃
  • 참여와혁신
  • 승인 2013.05.0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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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입니다.
오월입니다.
노동절입니다.

꽃들은 환하게 웃고 새순들은 푸릇한데 마냥 즐거워할 수 없습니다.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가 또 다시 무산되었습니다. 아니 무산시켰는지 모릅니다. 아직도 추락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데 위안을 가지며 씁쓸한 웃음을 짓습니다.

도종환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읽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어떤 빛나는 꽃들도 /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꽃도 다 젖으며 피었고,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습니다. 하지만 뿌리가 뽑힌 채 핀 꽃은 없습니다. 꿋꿋하게 땅에 뿌리내렸기에 온 몸 적시며 꽃망울이 맺히고, 흔들려도 꽃을 피운 겁니다. 그 찬란했던, 목숨으로 지키고, 두들겨 맞으며 버티고, 감옥에 가면서도 놓지 않았던 민주의 이름은 꽃의 흔들림이 아니라 뿌리의 방황인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합원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 대중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양지만을 바라며 흙 위 세상에 기웃거리거나 허공에 붕 뜬 헛꿈이 민주노총의 위기를 자초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현장은 어둡고 습할 수 있습니다. 밥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합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소금꽃이 피어나는 그곳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서는 노동조합운동의 양분을 흡수할 수 없습니다. 민주노총이 제 모습을 찾고, 노동운동의 건강한 주력이 되고 싶다면 노동자가 있는 현장에 깊숙이 뿌리내려야 합니다.

이생진의 시 ‘벌레 먹은 나뭇잎’을 아십니까? “나뭇잎이 / 벌레 먹어서 예쁘다 /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이 잘못인 줄 안다 / 그러나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 별처럼 아름답다”

벌레 먹어 구멍이 숭숭 뚫린 나뭇잎이 되어야 합니다. 제 몸 내어주어 상처 입은 나뭇잎이 아름답습니다. 그냥 아름다운 게 아니라 별처럼 아름답습니다. 되돌아 봐야 할 때입니다. 혹시 노동조합운동을 귀족의 손처럼 매끈하게만 가꾸려고 하지는 않았는지를.

지금 가장 아프고 가장 성나고 가장 상처 받은 이들은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자리를 차지하거나 손가락질을 한 사람이 아닐 겁니다. 민주노총을 지키려고 흙 밑 음지에서 지금도 열심히 뿌리내리려는 사람, 그래서 매끈하기는커녕 제 몸 내어주어 온몸에 구멍 뚫린 사람들입니다. 아픈 이에게 어떤 이유로 병에 걸렸는지 ‘지적질’을 한다고 병이 낫질 않습니다. 지적질은 건강할 때 하는 겁니다. 지금은 병을 이겨내도록 기운과 용기를 북돋아 줄 때입니다.

엊그제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던 강원도 낙산사에 갔더니 그 화마에도 씨를 뿌린 생명이 있어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고 연둣빛 새순을 피웠더이다.

홍대 언저리에서 <참여와혁신> 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