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닝 포인트에 선 한국노총
터닝 포인트에 선 한국노총
  • 승인 2006.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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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살 ‘한국노총’호, 참여와 대화·조직 확대 ‘돛’ 올려

상층 중심 사업 방식, 재정자립도 해결 과제로

 

‘환갑’을 맞은 한국노총이 ‘터닝 포인트’에 섰다. 창립 60주년을 맞아 노동운동의 이념과 발전전략을 새롭게 세우고 조직 확대에 매진한다는 계획은 이제 막 출발선에 섰지만 여전히 해결 과제도 많이 안고 있다.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노동조합 조직률과 2008년 복수노조 시대를 앞두고 ‘내셔널센터’로서의 리더십 확보가 중요한 시점에서 나온 한국노총의 새 운동이념은 민주노총과의 확실한 차별성을 가지면서도 노사정 대화 등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한국노총이 지난 2월 28일 대의원대회에서 통과시킨 운동이념과 기조, 발전전략은 ‘평등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참여와 사회연대적 노동조합주의’라는 새로운 운동이념과 △조직 강화 및 확대 △노동의 유연화에 대항하는 신자유주의 연대투쟁을 운동 전략으로 세웠다. 그 속에서 △산별노조 건설을 통한 조직 확대 및 강화 △사회개혁 투쟁의 강화 △사회적 대화체제 구축 등 3대 운동방향을 제시했다.

 

한국노총이 운동이념과 발전전략을 새로이 한 것은 2001년 이후 5년 만의 일인데 1991년에 발표된 운동이념은 ‘민주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노동조합주의’, 2001년에 발표된 이념은 ‘힘·연대·정책·희망’을 표방했다. 2001년 발표된 이념이 처음으로 반신자유주의 투쟁과 연대를 제시했다면 이번에 발표된 발전전략은 조직 확대에 조금 더 무게를 싣고 있다.

 

발전전략 마련을 위해 구성된 사무총국 내 이념기조팀에서 활동했던 이민우 정책국장은 “조직력을 강화하고 사회적 변혁과제를 실천할 수 있도록 20%에 머물렀던 현장 조직력 강화와 노동 및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조직운동체로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데 초점을 뒀다”고 밝혔다.

 

복수노조 시대 앞두고 ‘조직확대’ 매진
현재 한국노총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5.4%(한국 전체 노조직률 10.6%)로, 최고 조직률을 기록했던 89년의 19.8%에 비해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7년 복수노조 시대를 앞두고 노동조합들의 활발한 분화, 제 3노총 건설 등이 점쳐지는 상황에서 조직 확대는 가장 큰 과제일 수밖에 없다.

 

조직강화를 위한 3대 핵심 사업으로 제시된 것은 △전임자 임금 노사자율 쟁취 △산별노조 건설 △유사산별 통합이다. 4월 총력 투쟁을 통해 전임자 임금 노사자율을 쟁취하고 10월까지 단위노조 산별전환 및 가입 결의를 완료, 오는 2007년 12월 20개 산별, 2010년 12월 8개 산별을 목표로 전 조직적 역량을 모을 방침이다.

 

한국노총 조직본부 조기두 본부장은 “노동운동의 위기로 제시되고 있는 조직률 하락과 대표성의 위기는 산별노조 전환을 통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업종별 교섭을 통한 단체협약 적용률의 확대 없이는 극복하기 어렵다”며 “특히 복수노조 시대를 앞두고 있는 만큼 산별노조 전환은 사활을 걸고 매진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노총의 조직 확대 및 산별 전환 방안에 대해 여전히 상층 중심의 사업 방식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노총 소속 최대 산업별 연맹 중 하나인 자동차노련 오맹근 정책실장은 “산별노조 전환은 단위노조 입장에서는 기득권을 내놔야 하는 중요한 결정”이라며 “상급단체가 구체적인 계획 없이 당위만 가지고 이들을 설득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직 확대에 있어 한국노총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고민은 중소사업장 중심의 조직 구조다. 현재 한국노총 소속 사업장 중 300인 미만 사업장의 비중이 88%에 달하고 전체 조합원 1만 명 미만의 영세 산별은 24개 연맹 중 8개에 이른다.

 

중소사업장 중심의 구조는 ‘자사 이기주의’라는 대기업 중심의 구조와는 또 다른 약점을 갖는다. 한국노총 백헌기 사무총장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구조적으로 노사협력적 경향을 지니는 데다 투쟁보다는 상급단체의 협상력에 의존하는 경향을 갖는 반면 산업구조·사회개혁 투쟁을 수행할 산별노조보다 기업별 노조에 더 익숙하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정자립도·지역조직 활성화 미흡
지난해 재정 비리 문제로 불거진 재정 건전성 문제와 맞물려 있는 재정 구조의 취약성도 여전히 해결 과제다. 외부 회계감사제를 실시한 이후, 복식부기와 새로운 전산회계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회계 관련 업무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만성 적자와 저조한 의무금 납부율은 여전한 문제로 지적됐다. 노총의 자주성 확보 선언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으로 국고에 과다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의 ‘지역조직 실태 및 활성화 방안’보고서에 따르면 한국노총 16개 지역본부의 2004년 예산은 65억6200만원이다. 하지만 이 중 62%인 40억3900만원은 지자체로부터 받은 지원금이다. 또 지역본부 직원 45명 중 10명은 노조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가 임금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 인천본부의 한 관계자는 “지역 노동시장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는 가운데 한국노총이 지역운동 활성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지역 조직의 재정 자립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지역주체들보다는 상급단체의 지역에 대한 전략 부재가 결국 지역운동의 강화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와 ‘대화’강조, 민주노총과 선긋기 나서나
새로운 운동이념과 발전전략에서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참여’와 ‘대화’의 강조다. 그간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화를 주도하고 투쟁보다는 대화에 무게를 두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새로운 변화는 아니다. 하지만 지난 비정규직법안 환노위 통과 과정과 노사정 대표자 회의 복원에서의 주도적 역할을 고려할 때, 한국노총이 ‘투쟁보다는 대화와 참여’라는 기존의 기조를 더욱 굳히면서 민주노총과의 연대보다는 차별성을 더욱 부각하려고 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은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세력으로서 조직과 사회연대를 확대·강화하고 사회적 대화와 투쟁을 병행하면서 평등복지사회를 건설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더욱 심화된 고용불안으로 인해 현장의 투쟁 심리가 고조되고 있다는 고민도 안고 있다. 한국노총 사무총국 관계자는 “대화에 더 무게를 둔다는 우리의 전략은 유효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한국노총이 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다”면서 “투쟁과 대화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한국노총에서 오랫동안 정책 ‘브레인’ 역할을 해왔던 노진귀 전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정부 종속과 의존 속에 형성된 한국노총의 관성이 완전히 깨진 것은 아니”라며 “이 때문에 변화와 개혁의 의지 속에서도 후퇴와 개혁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한국노총의 개혁과 새로운 운동이념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한국노총의 역사를 지배해 온 ‘관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현장의 노조간부들과 조합원들은 한국노총의 개혁 완성과 발전을 위한 조건으로 상층 중심의 사업 관행 극복, 정부 의존도 탈피와 확고한 자주성 확보, 복수노조 시대에 대한 현실적 대안 제시 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조합원들이 말하는 한국노총

 

한국노총의 가장 큰 장점은 실익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반면 단위사업장들의 위원장 및 간부들이 그에 발맞춰 가지 못하고 있다. 이럴수록 교육의 부재를 실감하게 되는데, 상급단체에서 관련 사안들을 교육하여 능동적인 대처를 할 수 있도록 힘써줬으면 한다.
또 좀더 현실에 부합하는 정책을 내 주었으면 좋겠다. 한국노총에서 매년 발표하는 임금투쟁 지침이 실제로 회사와의 협상에서는 반영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농심켈로그 노동조합 정하영 위원장

 

새로운 운동이념이나 기조 같은 것은 ‘얼마나 피부에 와 닿는가’가 문제라 할 수 있다. 지역적 특성 때문에 중앙의 정책을 접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조합원이 보기에 한국노총의 타협주의적인 측면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에 의해 스리슬쩍 넘어가는 일을 없애야 한다. 또,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노동계 후보 배출에도 힘을 써야 한다. 법 제정과 정책 실행 과정에 직접적인 참여 없이는 언제나 피동적인 활동이 될 수밖에 없다.                                        
고려아연 노동조합 박영진 사무국장

 

한국노총의 조직력이나 현장성이 약화된 건 사실이다. 노총과 연맹차원에서의 지침은 잘 전달되고 있지만 노동조합 자체에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한 예로 산별정책을 보면, 산별 전환에 대한 지침과 추진 방향 등을 알리는 내용을 보고 단위사업장들은 나 몰라라 한다. 길들여진 노사문화에 익숙해진 노동조합은 산별전환, 즉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나 하나 정도는 안 해도 되겠지’하는 생각과 무임승차하려는 안일한 태도들, 해결하는 방법은 반복적인 교육을 통해서 의식의 변화를 꾀하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광주시본부 심봉우 본부장

 

기본적으로 노사는 상생의 관계, 즉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다. 그런 점에서 과격한 투쟁보다는 협상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한국노총의 자세가 가장 마음에 든다.

앞으로의 과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성의 문제인데, 투명성에 대한 조합원들의 관심은 대단히 높다. 믿음을 심어주려는 노력이 조합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노총도 투명성과 관련된 내부 정책과 지침을 바로 세웠으면 한다. 그리고 전임자 임금 지급금지 문제처럼 단위사업장에서 다루기 힘든 논제들에 대해서 힘써주기를 바란다.                         
전국체신노동조합 서울은평우체국연합지부 황문영 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