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리는 절망과 희망 두 개의 대한민국
엇갈리는 절망과 희망 두 개의 대한민국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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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우리사회의 화두는 단연 양극화다. ‘양극화’가 우리 경제의 특징을 설명하는 단어를 뛰어 넘어 정치·경제·문화·생활 전반에 걸친 사회 문제의 진원지로 지목을 받고 있지만 좀처럼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해법은커녕 양극화 논란으로 다시 사회가 양분되는 모양새마저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은 신년 연설에서 ‘양극화 해소’를 최고의 국정 과제로 꼽았고 대통령령으로 청와대 직속의 ‘빈부격차·차별시정 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당내에 양극화 해소를 위한 위원회를 설치했고, 136개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가 모여 ‘사회양극화해소 국민연대’를 결성했다.


외형적으로는 양극화에 관한한 보수와 진보, 구세대와 신세대,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그 심각성과 해결 필요성에 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넓게 형성된 ‘양극화의 공감대’는 역설적으로 사회의 각 이해집단 간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패고 있다.


‘양극화 해소에 올인하겠다’는 대통령의 신년연설은 발표 즉시 양극화 책임을 둘러싼 공방으로 이어졌다. 특히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는 양극화 해소를 최대의 공약으로 내세우면서도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기 바쁘다. 노동계와 시민사회 단체는 비정규직법안 입법 등의 정부 정책이 사회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재계는 ‘대기업 노동자 이기주의’도 한몫하고 있다며 논란에 가세했다. 종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대책을 내놓고 있는 정부도 정부의 정책을 믿고 따르는 것이 능사며 이를 정치적인 공격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어디를 둘러봐도 극과 극, ‘양극화 공화국’
양극화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서로 다른 진단과 논의, 갈등과 반목이 진행 중이지만 경제적 지표로 잡히는 양극화의 실태는 분명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중산층의 감소 수준에서 논의되던 양극화가 산업, 기업, 노동시장, 소득의 부문에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 산업간 양극화 = 산업간 양극화는 수출 위주의 제조업과 내수 위주의 서비스업 사이에서 가장 크게 나타난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제조업의 부가가치 증가율 비중은 2001년 2.2%에서 2004년 11.4%로 증가했지만 서비스업의 부가가치 증가율은 같은 기간 4.8%에서 1.3%로 하락했다.


IT산업과 전통산업(비IT산업) 간의 부가가치 생산 격차도 확대일로다. IT산업의 부가가치 증가율은 2002년 17.6%, 2003년 14.2%, 2004년 20.4%를 나타내고 있는 반면, 전통산업은 각각 5.8%, 1.7%, 2.5%로 미미하다.


성장 유망 서비스업과 영세 서비스업의 명암도 엇갈린다. 성장 유망 서비스업의 하나인 컨설팅업은 외국계 15개 업체가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컴퓨터관련 S/W업도 1%의 대기업이 생산의 40%를, 게임시장은 상위 1개사가 전체 매출액의 34%를 차지하는 형편. 생활형 서비스업의 대표적인 형태인 소매업은 재래시장과 슈퍼마켓은 퇴조 단계에 와있고 숙박업 또한 영세업소가 침체되면서 대형호텔이 호황을 이루고 있다. 음식업종은 과당경쟁의 차원을 넘어 국민 80명당 1개소가 있을 정도여서 이미 포화상태를 훨씬 지나쳤다.

 

■ 기업간 양극화 =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양극화도 심각하다. 2004년 말을 기준으로 대기업의 부채비율은 91.7%로 2003년 말의 113.5%에 비해 크게 개선된 반면 중소기업은 138.7%로 대기업의 1.5배에 달하고 있다. 2004년 대기업의 영업이익률 역시 전년의 8.2%보다 개선된 9.4%를 나타낸 반면, 중소기업은 전년에 비해 하락한 4.1%에 그쳤다. 중소기업 내에서도 규모별 양극화는 더욱 촘촘하다. 


중소기업 중 매출액 500억 원 이상의 기업은 2004년의 경우 부채비율 112.8%, 영업이익률 6.1%, 매출액증가율 22.3%에 달하지만 매출액 500억 원 미만의 기업은 각각 152.6%, 3.1% 및 7.9%를 기록해 재무구조와 수익성, 성장성 등 모든 측면에서 규모가 작을수록 열악한 조건에 놓여있다. 

 

■ 노동시장 양극화 =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간의 소득 격차도 점점 벌어지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04년 기준으로 상용직 대비 임시일용직 임금 비율은 48.6% 수준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절반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용직 대비 임시일용직 임금 비율은 2000년 51.3%였으나 2001년 51.1%, 2002년 51.0% 등으로 꾸준히 낮아졌고 2003년부터는 50% 이하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간 임금격차도 확대되고 있다. 대기업(300인 이상) 대비 중소기업(300인 미만) 노동자의 임금 비중은 2000년 64.9% 수준이었으나 2001년 62.8%, 2002년 61.6%, 2003년 60.1% 등으로 계속 낮아졌고, 2004년에는 59.8%를 기록하며 결국 60%선이 무너졌다.


중위임금(전체 임금노동자 임금의 중간 값)의 3분의 2 이하를 받는 저임금노동자의 비율도 계속 높아져 고용의 질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저임금노동자의 비율은 2003년 27.5%에서 2004년에는 26.3%로 떨어져 다소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2005년에는 26.8%로 다시 높아졌다.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결국 소득과 소비, 지출의 양극화로도 이어졌다.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
이런 양극화 현상은 이미 참여정부의 국정 목표인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등장했다. 이상한 점은 ‘오랜만에’ 계층과 세대, 성향을 막론하고 모두가 동의하는 이 이슈가 오히려 분열의 핵심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현상에는 동의하지만 진단은 모두 다르고, 진단은 같아도 처방은 모두 다르다. 책임 소재의 문제로 넘어가면 본래는 경제 문제인 ‘양극화’는 더욱더 정치적인 색깔을 띤다.


난무하는 대책과 논란 속에 사회를 반으로 쪼개놓고 있는 ‘양극화.’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또 다른 극을 향해 달리는 양극화가 우리 사회의 ‘시한폭탄’이 될 것이라는 우려만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