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뛰는 상담소, “다이렉트로 처리해 드립니다”
발로 뛰는 상담소, “다이렉트로 처리해 드립니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3.08.06 15:13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용노동청 제집 드나들듯
부족한 여건에도 보람과 기쁨 가득
[법률상담소를 가다] 대전상담소

“자랑할 것도 많고, 아쉬운 점도 많고.”

이상원 대전상담소장과 지역상담소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은 즐거웠다. 이야기 한 마디 한 마디 속에 지역상담소에 품고 있는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공교롭게도 지방고용노동청과 나란히 위치한 대전상담소가 가진 ‘거리적 이점’ 때문에 어떤 에피소드가 벌어지고 있는지를 설명할 때는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다. 대전상담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자.

ⓒ 대전상담소
상담소에서 발로 뛴다? 가까우니까

대전상담소(소장 이상원)가 위치한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동은 그야말로 행정 기능의 중추 지역이다. 상담소 바로 옆에는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이 위치해 있으며, 지방노동위원회를 포함한 대전 정부청사 역시 인근에 있다. 이상원 소장은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노동법률 상담은 물론 서류 작성에서 접수까지, 상담소에서 다이렉트로 처리 가능하다”고 말했다.

개별 노동자들이 부당하거나 억울한 처우를 받았을 때 스스로 이를 바로잡아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지역상담소가 20년 넘게 활동해 왔던 것도 이런 점을 돕기 위해서다. 상담자가 내방했을 때 자세한 사정을 듣고 상황에 적합한 조치 방법을 설명해 주는 것이 다른 상담소에서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상담업무일 것이다.

물리적인 거리가 가깝다보니 대전상담소는 그야말로 ‘발로 뛰는’ 상담이 가능하다.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서 바로 담당 부서에 제출하고, 사건의 처리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수시로 확인하면서, 잘못된 점이 있거나 보충 자료가 필요할 경우 바로 시정한다. 담당 공무원들과도 자주 마주치며 호흡을 맞출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 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도 많다. 건물이 나란히 위치해 있기 때문에, 고용노동청에 볼일이 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왕왕 상담소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 하루에 많게는 십여 명씩 이처럼 잘못 알고 찾아온다.

ⓒ 대전상담소
상담소의 사업은 꾸준히 연계성 가져야

이상원 대전상담소장은 지역상담소협의회 회장을 겸하고 있다. 지역상담소의 근무조건 개선과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당연한 얘기지만 총연맹에 매번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매달 각 지역상담소마다 들을 수 있었던 애로사항들 대부분은 재정 기반이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롯되는 문제였다. 이상원 소장 역시 이와 같은 부분에 공감했다.

특히 예비직장인교육 등 정부 재정지원 사업의 경우, 한국노총을 바라보는 정권의 시각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예산의 규모가 달라진다. 특히 한국노총이 대립각을 세웠던 지난 MB정권 동안 지원예산 삭감으로 각 지역상담소의 사업 진행은 대단히 위축됐다.

이상원 소장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한국노총과 정권과의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사정이 한결 나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예산의 드나듦이 커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이 소장의 생각이다. 연계성을 가지고 기존의 사업들을 꾸준히 진행할 수 있되, 조금씩 그 폭과 깊이를 넓혀갈 수 있는 구조가 바람직하다는 의미다.

한국노총이 지금과 같이 발전할 수 있도록 지역상담소가 역할을 다해 왔다는 점을 이 소장은 강조했다. 법률상담을 비롯한 각종 사건·민원 처리는 물론, 지역의 노동조합 조직화 사업에도 그 역할이 컸다는 것이다. 대전지역만 해도 지난해 통계청노조, 계룡스파텔노조 등 천 명 이상을 조직하는 데 상담소가 역할을 다했다.

▲ 이상원 대전상담소장(사진 오른쪽)과 방우경 실장(사진 왼쪽)
누가 알아주길 바라고 일하는 것은 아냐

상담소의 업무 대부분이 사람을 대면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감정적 소모가 크다고 이상원 소장은 밝혔다. 그나마 폭언을 퍼붓는다든지 하는 ‘진상 상담자’가 없는 게 다행이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경우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실망감이나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이 소장은 밝혔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지역상담소에서 어떤 일을 처리할 때는 내방한 상담자, 즉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사태를 바라보려고 한다. 여타의 법률상담소가 비교적 중립적인 시각을 유지하면서 사태를 바라보려고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개별의 노동자들은 사용자들에 비해 상대적 약자이고, 이들의 억울한 사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문제가 비교적 순조롭게 해결되어 상담자도 상담소도 기분 좋게 끝나는 경우야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조금 불리하게 전개된다거나, 사용자들의 회유나 위협으로 인해 애써 진행시켜온 사건이 허사로 돌아갈 경우에는 정말 허탈해진다고 이 소장은 설명한다. 그나마 사정을 얘기하고 양해를 구하는 식이면 양호하다. 조사 심문이 예정돼 있는 날 연락이 두절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입장이 불리해질 때면 다시 상담소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도 있다. 누가 알아주길 바라고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최악의 사례가 드문 일이라는 게 조금 위안일까. 조심스레 상담소 문을 두드렸던 사람들이 활짝 웃는 얼굴로 찾아왔을 때 그동안의 피로가 싹 날아간다고 한다. 사례를 받지 않는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꼭 보답을 해야겠다면서 양말 한 켤레를 건네고 가는 상담자를 보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 일을 하는 보람을 정말 진하게 느낀다고 이 소장은 밝혔다.

그간 전국 각지의 지역상담소 일꾼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빠지지 않고 나오던 애로사항 중 하나가 부족한 인력에 대한 문제이다. 지역상담소협의회 회장이기도 한 이상원 소장은 기존의 부족한 인력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1~2년 안에 정년을 맞게 되는 상담소장들이 많다는 점이 현실적으로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보통 많아야 두 명이 근무하고 있는 상담소에서 한 명이 일을 그만두게 되면, 혼자 남는 것이다. 당연히 상담소 본연의 기능이나 역할이 대폭 위축될 수밖에 없어 이상원 소장의 우려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