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로 쌓은’ 교단에 서는 기간제 교사의 일상
‘모래로 쌓은’ 교단에 서는 기간제 교사의 일상
  • 참여와혁신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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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신분보다

아이들과 함께 꿈꿀 수 없어 힘들다

김경아 기자 kakim@laborplus.co.kr

윤종혁 기자 jhyun@laborplus.co.kr

 

노동시장 양극화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지 이미 오래, 교육의 현장인 학교에서도 현실은 예외가 아니다. 한국교육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2005년 4월말 기준으로 전체 교원 38만1412명 중에서 기간제 교사는 1만3294명으로 약 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학교에서 체감하는 비율은 훨씬 높다.


‘수요자 중심 교육’을 비전으로 제시한 7차 교육과정은 선택과목을 늘리고 특기적성 교육을 실시하는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자연스레 교원들의 수업시수를 분산시키면서 비정규직 교원 채용을 늘어나게 만들었다. 또 사회 전반적으로 일고 있는 노동시장 유연화 바람이 학교에도 불어닥쳐 학교 운영비를 줄이는 방법으로 정규직 교원 대신 비정규직 교원을 교단에 세우는 방법을 택했다. 계약직 교원에 대한 개념이 잠시 빈자리를 채우는 임시 교사에서 매년 정해진 자리에 선생님만 ‘교체’되는 개념으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부천 W고교 김 모 교사는 “예전에 비해 확실히 기간제 교사들이 많아졌다. 교무실을 둘러보면 10%에서 많게는 20%까지 기간제 교사들”이라며 “학교 재정문제나 정교사에게 경쟁심리를 유도하느라 그런 것 같다”고 덧붙인다.


수원 D고교 박 모 교사는 “사립학교들은 특히 학생수가 줄어들면서 학교 운영이 어려워졌고 7차 교육과정으로 바뀌면서 세계사 같은 선택과목은 수업시수가 주요 과목에 비해 적어서 기간제 교사를 임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 학교의 경우 92명 중 12명이 기간제 교사”라고 얘기했다.

 

선생님에도 ‘종류’가 있다
보통 계약제 교원을 ‘기간제 교사’로 통칭해 부른다. 하지만 ‘기간제 교사’로 불려도 모두 같은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같은 선생님이지만 선생님도 ‘종류’가 있다.


계약제 교원은 크게 기간제 교사, 전일제 강사, 시간 강사로 나눌 수 있는데, 기간제 교사와 전일제 강사는 업무상으로나 호봉상 차이가 없다. 문제는 기간제 교사의 경우 교원 정원 내에서 뽑기 때문에 교사로 인정, ‘교육경력’이 인정되지만 전일제 강사는 학교 사정에 따라 정원 외로 채용하므로 ‘교사’로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같은 임금을 받더라도 학교를 옮길 때마다 경력을 새로 쌓는 셈이다. 호봉은 인정하지만 경력은 인정해주지 않는 모순이다. 여기에 더해 보통 학교에서는 ‘전일제 강사’를 채용한다고 따로 명시하지 않고 ‘기간제 교사’로 통칭해 채용공고를 낸다. 박 모 교사는 자기에게 하소연하던 전일제 강사의 사연을 들려준다.


“때로 자기가 전일제 강사였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기간제 교사 채용한다고 공고를 냈으니 기간제인줄 알았던 거죠. 그런데 나중에 경력 증명서 떼려고 보면 자기가 전일제 강사인거죠. 당황스럽죠.” 


기간제 교사의 경우 14호봉까지는 정규 교사와 똑같이 받지만 14호봉(5~6년 경력) 이상은 승급되지 않는다. 8년 동안 기간제 교사로 일한 김 모 교사. “똑같이 일하고 정말 최선을 다하는데도 호봉이 제자리걸음 하는 것이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물론 다른 비정규직에 비해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속상하죠.”


기간제 교사와 전일제 강사가 정규 교사와 비슷한 호봉을 받고 있다면 시간강사는 조금 다르다.
시간강사는 말 그대로 수업한 시간대로 임금을 받고 보통 시간당 1만1000원에서 2만원을 받게 되는데 한 주에 16시간~18시간 정도 수업을 하게 된다. 실제 수업시간은 비슷한데 비해 한 달 급여가 100만원 내외로 정규 교원들과의 차이는 크다. 무엇보다 시간단위로 움직이는 시간강사의 경우 1년 진도를 마치지 못하는 등 학생들에게 직접적 피해가 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도 문제이다.

 

교사가 철밥통? 하루가 불안한 ‘기간제’
보통 1년을 계약기간으로 하는 기간제 교사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불안함’이다.
노동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교사’와 ‘공무원’에 대한 선호도는 급격히 높아졌다. 이는 임용고사 응시율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중등교사 임용고사의 경우 2002년 3만2645명, 2006년 5만9090명이 응시해 응시인원은 대폭 늘어났지만 중등교사 채용인원은 7301명에서 5245명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결국 임용고사를 통과하지 못한 예비교사들은 다음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동안 기간제 교사의 길을 택한다.


5년째 정교사로 일하고 있는 부천 W고교 이 모 교사는 기간제 교사를 예비 정교사로 보는 것이 일상적이라고 얘기한다. 결국 기간제 교사가 되는 일조차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워지는 것이다.


서울 M고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강 모 교사는 스무 군데 이상 이력서를 넣었다고 했다. “면접본 곳은 서너 군데 되나? 거기다 가끔 이미 채용 내정자가 있는 경우도 있는데 절차상 면접을 보는 거죠. 이미 뽑힐 사람은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뿐 아니다. 소문이 빠르다는 교직 사회에서 좋지 않은 인상을 줄 경우 계약이 끝나고 다른 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이력서를 보고 전에 있던 학교에 전화를 하기도 하고, 원래 있던 학교에서 옮긴다는 학교로 전화를 하기도 해요. 교감이나 교장끼리 교사에 대한 평가를 전하는 거죠”
형편이 이렇다 보니 기본적인 근로기준에 대한 의견조차 조심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다. 채용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조목조목 살피라고 충고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상 계약서를 두고 실랑이를 벌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강 교사는 출근 초기를 이렇게 전한다.
 “출근한지 3일이 지났는데도 채용계약서를 쓰자고 안하는 거예요. 조심스럽게 물어봤더니 계약서를 주면서 도장 찍어주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D고교 박 모 교사는 회식에 한번 빠졌다가 곤혹스러웠던 적도 있다.
“한 번은 회식자리에 빠진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다음날 한 선생님이 와서 없어서 아쉬웠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얘기를 사나흘 동안 계속하니까 아무래도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다음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회식은 꼭 가게 되던데요.”

쉬이 무너질 수 있는 교단 위에 서 있는 입장에서는 가벼운 한마디조차 지나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공부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짧은 시간 아이들 앞에 서더라도 ‘좋은 선생님’, ‘실력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교육 연수에서 배제된다는 거예요. 공부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데….”


정교사들은 방학 중에 교과목 등에 대해 교원연수를 받는다. 방학 중에는 선생님이 학생이 되어 공부를 하고 학기가 시작되면 더 풍부한 내용으로 아이들과 만나는 것이다.
정교사의 경우 연수비용 일체가 지급되지만 기간제 교사의 경우는 연수비를 내고 연수를 받는다고 해도 받을 수가 없다. 기간제 교사를 연수대상에 포함하라고 연수주최 대학에 권고해도 그대로 ‘권고’사항일 뿐이지 의무사항은 아니다. 연수주최 대학에서 기간제 교사를 연수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해도 문제되지 않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방학 기간 동안 사설학원에 다니는 선생님도 있다. 영어 교과처럼 꾸준한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과목은 특히 심하다. 체계적인 교원 연수를 통해 실력을 쌓고 아이들과 만나고 싶은 바람은 아직도 ‘희망사항’일 뿐이다.
박 모 교사는 교사의 자질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도 기간제 교사의 연수는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이들 있어 울고 웃는 ‘천상’ 선생님
취재과정에서 만난 기간제 교사들은 ‘선생님을 왜 하세요?’라는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아이들과의 교감’이라고 말한다.


W고교 김 모 교사는 “올해 맡은 반 아이들이 좀 힘들었거든요. 근데 어디서 그런 얘길 들었는지 작년에 가르쳤던 아이들이 교무실로 찾아왔더라고요. 감동이었죠”라며 아이들이 있어 교단에 선다고 말한다. 또 M고교 강 모 교사는 아이들이 질문하러 올 때가 가장 좋다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때로 내가 잘 가르치고 있나,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제가 전하는 것들을 머리에 담고 있다는 게 보이면 정말….”


D고교 박 모 교사는 첫 학교에서 만났던 아이를 지울 수 없다고 했다.
“공고였는데 담배를 피우다 걸려서 반성문을 쓰라고 했는데 얘가 하루 종일 종이만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반항하나, 하고 혼내려는데 그 반 반장이 와서 얘기하길 그 아이가 한글을 못 쓴다는 거예요. 그때까지 아무도 얘길 안 해줘서 몰랐던 거죠. 그래서 그때부터 ㄱ, ㄴ, ㄷ을 가르쳤어요. 지금은 그 친구 전문대에 진학했어요. 지금도 종종 찾아와요.”

‘그렇게 찾아오는 게 얼마나 갈지 누가 아냐’며 머쓱해했지만 박 교사의 얼굴에는 분명 뿌듯함이 내비쳤다.


기간제 교사이지만 이들도 ‘선생님’으로서의 꿈을 꾼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마음을 다해 아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김모  교사, 공부에 치인 아이들과 더 많은 얘길 나누고 싶어 ‘상담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박 모 교사, 내년에는 정교사가 되어 올바른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강 모 교사.
저마다의 꿈을 가지고 교단에 서는 비정규 선생님들. 칠판에 내려앉은 뽀얀 분필가루처럼 이들의 어깨에 무거운 한숨이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