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무게감
‘노동자’의 무게감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3.11.1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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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전, 고등학생이던 저는 ‘노동자’라는 말의 무게감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습니다.
존경했던 선생님들이 “교사도 노동자”라고 외치다가 대량으로 해직되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할 ‘선생님’들로만 생각했는데, 그들은 ‘노동자’라는 말을 끝내 놓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이 ‘노동자’라는 말을 놓지 않았듯이, 저도 ‘노동자’라는 말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4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 당시 선생님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노동자’라는 말에서 당시만큼의 무게감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노동자’는 여전히 제 고민의 중심입니다.

전교조에 법외노조가 통보됐습니다. 해직된 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했다는 이유입니다.
단 9명의 해직 교사들이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해서 6만여 명에 이르는 조합원들로부터 법적 지위를 박탈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고용노동부는 기어이 전교조를 법적 보호의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정부가 이런 무리수를 둔 속내는 알 수 없습니다.
일부에서 의심하듯이 국가정보원과 군의 대선 개입과 관련해 궁지에 몰린 정부가 전교조를 희생양으로 삼아 돌파구를 찾으려 한 것일 수도 있고,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다는 호사가들의 말처럼 전교조와의 대척점에 서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전교조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전국공무원노조의 설립신고를 반려하고 전교조를 법의 테두리 밖으로 밀어내면서, 정부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이들과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24년 전 군사정권이 ‘노동자’라는 말을 싫어했듯이, 현 정부도 ‘노동자’라는 말을 싫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점에서, 전교조는 과연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인지 짚어봤습니다.
지난 24년간 전교조는 수많은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의 교육을 바꾸는 데 커다란 족적을 남겼습니다. 다만 그 공과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만큼 전교조에는 ‘안티 팬’들도 많습니다. 이번에 정부가 전교조에 법외노조를 통보함으로써, 현 정부도 전교조의 확실한 안티 팬으로 자리매김 한 것 같습니다.

<참여와혁신>이 준비하고 있는 특별호가 곧 독자 여러분을 찾아뵐 예정입니다.
시리즈로 발행될 특별호를 통해 <참여와혁신>은 독자 여러분과 함께 ‘노동’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고민하고자 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독자 여러분의 건강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