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대리의 시계는 오늘도 쉼 없이 돌아간다
서 대리의 시계는 오늘도 쉼 없이 돌아간다
  • 박현성 기자
  • 승인 2014.01.0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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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실수? 광고업계선 절대금물!
내 손 거친 광고, 하루 피로 씻어주는 비타민

ⓒ 서재철
종로 근방의 지하철역을 본 적이 있는가? 수많은 사람들의 바쁜 걸음이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한다. 종합광고회사 ‘중앙애드컴’에 근무하는 서재철 대리의 발걸음은 그 중에서도 가장 바쁜 축에 속한다.
광고기획 일을 시작한 지 이제 4년째인 서 대리의 시계는 다른 사람의 그것보다 더 바삐 돌아간다.

“자유로운 일정이기에 스스로 관리가 중요해요”

오전 5시. 잠에서 깨어나는 이 순간이 서 대리에게는 가장 힘겨운 시간이다. 클라이언트를 접대하느라 새벽까지 술을 마신 날에는 특히 몸이 무겁다. 알람 소리를 원망도 해보지만, 마음을 다잡으며 애써 몸을 일으킨다.

정해진 출근 시간은 8시지만 서 대리가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은 그보다 1시간 빠른 7시다.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유연한 사고로 하루 업무를 시작하려는 이유가 더 크다. 시간에 쫓겨 여유 없이 출근하면 생각도 딱딱해지기 때문이다. 1시간 빠른 출근은 서 대리가 자신에게 한 약속이기도 하다.

사실 광고업계는 다른 회사보다 일정이 자유로운 편이다. 조금 늦게 출근해도 그렇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반면 정해진 퇴근 시간이 없다. 스스로 시간을 관리하지 않으면 업무시간은 무한정 늘어난다.

“감각 향상을 위한 독서는 저의 습관입니다”

서 대리의 일은 AE(Account Executive, 광고기획자)라고 불린다. 광고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총괄하는 역할이다. 광고의 방향을 수립하고, 제작하며,매체에 내보내고, 정산하는 일까지, 모든 일을 하나하나 챙겨야 한다.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은 광고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숙명이다. 그래서 광고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사람에 대한 이해와 열린 마음은 필수다.

서 대리는 사회와 문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많은 책을 읽는다. 전날 과음을 하거나 숙면을 취하지 못해 피로가 누적돼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려 애쓴다. 서 대리가 최근 읽고 있는 책은 <심리학의 즐거움>이다. 선택한 책 제목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는 서 대리의 의지가 읽힌다.

“세심한 관찰력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필수 덕목이죠”

업무의 시작은 주간회의록을 작성하는 일이다. 그냥 회의 일정을 나열하는 것 같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다. 신경 써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다. 글씨 하나, 맞춤법 하나도 중요하다. ‘회의록에까지 무슨 맞춤법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작은 맞춤법의 오류도 절대 금물이다. 한 번은 광고 기획 시안에서 ‘님’을 ‘남’으로 작성한 적이 있었다. 혼난 것은 물론이고 하마터면 회사와 ‘남’이 될 뻔했다.

주간회의록 작성과 동시에 광고 외주업체에 전화해서 일정을 조율한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 외주업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다. 하지만 통화 목소리는 부드러움과 애정이 넘친다.

예전에 한 외주업체 담당자가 술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 대리님의 ‘늦어도 괜찮아요. 하지만 확실하게 해주세요’란 말은 저에게 따스하게 다가왔습니다. 보통은 호통이 떨어지거든요. 그래서 서 대리님이 부탁한 광고는 더욱 신경을 쓰려 노력합니다.” 이후 그는 스스로에 다짐했다. ‘절대 상대방에게 화가 난 모습을 보이지 말자.’

ⓒ 서재철
“광고주의 취향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의 점심은 언제나 시간 단축을 위한 국밥 아니면 햄버거다. 번개 같은 점심을 끝내고 광고주 미팅을 위해 회사를 나섰다. 겨울이 되자 날씨가 매섭다. 그의 옆으로 운동화에 두툼한 점퍼를 입은 학생이 지나간다. 따뜻하고 편한 복장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만 서 대리는 점퍼를 입을 수 없다. 왜냐고? 그는 ‘광고장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옷이나 형상을 보면 그가 누군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누가 봐도 광고인처럼 보이기 위해 애쓴다. 깔끔하며 정중하고 세련된 느낌의 복장, 사실 이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정중한 복장을 찾다 보면 세련됨을 놓치기 일쑤다. 그래서 그는 틈날 때마다 남성 패션잡지를 보며 최신 유행하는 의복을 꼼꼼히 살핀다.

오늘 만나게 될 광고주는 여성이다. 와인색의 행커칩과 조금은 화려한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예전 미팅에서 남자가 화려한 의복을 입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 그녀의 얘기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속시각 20분 전 도착은 엄수죠”

“지금 내리실 역은 신길역입니다.”
큰일이다. 서 대리는 졸다가 결국 내릴 역을 지나쳤다. 미팅 시간은 채 40여 분도 안 남았다. 큰소리로 택시를 외쳐본다.

그래도 늦지 않게 미팅시간에 도착했다. 약속시각 20분 전 도착은 기본이다. 늦지 않게 도착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지만 미팅 전 점검할 상황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광고 일을 하다 보니 기발한 아이디어도 상대의 기분 또는 분위기에 따라 도루묵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에 미팅 전 화장실에 들어서서 세세한 것에 신경을 쓴다. ‘프르르르’ 혀를 굴려서 입을 풀기도 하고 향수를 뿌려 아까 국밥집에서 실컷 먹었던 양파 냄새를 죽여 보기도 한다. 챙겨온 USB의 파워포인트 파일을 재점검하는 것도 필수다. 물론 USB가 고장 날 것을 대비해 이메일과 휴대폰 등 모든 수단에 발표 파일을 챙기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물론 광고주와 그와의 관계는 동등한 관계라고 할 수 있지만, 미묘하게는 갑과 을의 위치이기도 하다. 광고주는 서 대리에게 광고의 제작을 맡기며 금액을 지급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광고는 회사를 돋보이기 위한 전략이다. 그렇기에 광고주의 요구사항은 언제나 많아지고 이를 제작부와 잘 조율하는 것이 그의 업무이기도 하다. 다행히 오늘은 그렇게 많은 수정 요구는 없었다.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다.

광고 기획의 순서

1. 기업이 광고에 대한 공개 입찰 진행
2. 광고주가 광고가 나갈 방향에 대해 광고회사에 오리엔테이션 진행
3. 광고의 방향과 가설 수립 및 소비자 조사에 착수
4. 광고 시안 제작 및 광고주에게 프레젠테이션 진행
5. 광고 제작과 촬영 및 언론매체에 광고 게재
6. 소비자 반응 체크 및 그에 따른 수정

“남들이 정시에 퇴근해서 소주 한 잔 하는 게 부럽죠”

“서 대리님 5시입니다. 오시자마자 주간 회의 들어갑니다.”
회사에 도착하기 직전 택시에서 내리며 서 대리가 직원에게 받은 문자다. 도착하자마자 쉴 틈 없이 주간 회의록을 받아 들고 회의실로 향한다. 키워드 광고 및 배너 광고, 바이럴 마케팅 현황, 그리고 포털사이트에서 검색 횟수 관련 보고를 한다.

아까 미팅은 그렇게도 물 흐르듯 해결되더니 지금 회의 분위기는 밝지 않다. 결과가 썩 좋지 않아서 광고주에게서 약간의 항의가 있었던 모양이다. 상사의 호통에 귀가 먹먹하고 가슴은 쓰라리다. 하지만 다음에는 더 좋은 결과를 만들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가 회의를 마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자리로 돌아오니 문자가 와 있다. ‘오늘 소주 한잔? 7시 강남역?’ 공무원인 대학동기의 문자다. 가고 싶은 마음이 요동치지만, 그의 업무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저녁을 먹으러 회사를 나섰다. 거리에는 퇴근길의 많은 회사원으로 분주하다. 식당에 들어갔더니 업무를 끝내고 술자리가 한창인 테이블도 여럿 보인다. 그 역시 이놈의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아줌마 여기 소주 한 병이요” 외치고 싶다.

ⓒ 서재철
“광고인이 되고 싶다면 광고인이 된 이후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라”

밥을 한 술 뜨고 있는 그에게 전화가 왔다. 대학교 후배다. 졸업 후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는 후배였다. 서 대리는 조금은 특이한 케이스다. 대학 시절 미술을 전공하다가 모 회사 에너지음료 광고를 보고 ‘나도 저런 광고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광고회사에 도전한 그였다. 그래서 남들에 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복수전공으로 경영학을 이수하고 미술학과 수업은 물론 여러 취업 준비를 하느라 남들 이상의 노력을 했다.

전화기 넘어 ‘광고인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묻는 후배의 질문에 그는 말한다.

“기획력이다. 물론 이 기획력이라는 말 자체가 애매하고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쉽게 생각하면 머릿속 생각을 잘 정리해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기획이라 할 수 있다.

다음 중요한 점은 문제 해결 능력이다. 사실 광고란, 광고주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 중 대화와 소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찾아내 해결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자신의 아이디어와 기획물을 남에게 설득할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 능력과 광고주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대인관리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창의력까지 가지고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정말 이 업무를 하고 싶으냐다. 광고 업무는 즐길 수 없다면 절대 버틸 수 없는 업종이기도 하다. 광고인이 되고 난 다음 정말 이루고자 하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화려하고 돈을 많이 벌 것’이라는 생각으로 도전한다면 그 발걸음은 지옥문으로 가는 길이 된다.”

“아무리 힘들고 정신없어도 제가 제작한 광고를 보면 살맛납니다”

저녁 식사 후 회사에 들어오니 시계는 오후 8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몇 시간 전 주간 회의에서 나온 대로 미진한 광고의 활성화 방안에 대한 제안서를 쓰려고 자리에 앉았다. 많은 얘기가 오고 갔지만 결국 눈에 끄는 카피라이트로 승부를 보기로 확정했다. 그에 따른 수정 사항을 유연하게 정리해서 제안서를 만들고 제작부에 넘긴다.

이제 오후 10시. 하지만 아직 업무가 끝난 것은 아니다. 서 대리의 업무는 광고 기획의 큰 틀을 지휘하는 일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도 필요하지만 다른 여러 세세한 업무도 그의 손을 거친다. 특히 여러 매체의 광고비를 확인하고 광고주에게 광고 견적을 전달하는 것도 그의 업무다. 모 잡지 전면 광고 패키지를 가격매체팀으로부터 확인한 후 광고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회사를 나선다. 아침 6시에 나와서 집에 들어가는 시각은 오후 11시. 그의 눈앞에 옥외 전광판 광고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그의 손길을 거쳐 갔던 쓰린 속을 편안하게 달래 준다는 위장약 광고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아 너 이번 ○○○광고 봤냐? 위장약 말이지. 너 술 마시고 ○○○ 알지? 그래. 내가 만든 광고.”

그의 손을 거친 광고를 바라보는 것. 이것이 피로를 씻어 주는 그만의 비타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