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철도 앞날은 오리무중
국민철도 앞날은 오리무중
  • 이가람 기자
  • 승인 2014.01.0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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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보는 시각 차이 있어
끝없는 민영화 논란, 해결점 찾아야
[현장 1] 철도노조 파업

ⓒ 참여와혁신 포토DB
철도 경쟁체제 도입을 놓고 코레일과 정부를 한 편으로 하고, 철도노조를 비롯한 노동·시민사회단체를 다른 한 편으로 하는 양측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급기야 지난 12월 22일에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철도노조 지도부를 검거하기 위해 경찰이 민주노총에 ‘난입’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그러나 경찰은 압수·수색영장도 없이 민주노총 본부 건물에 들어가는 무리수까지 두고도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는 데 실패했고, 거센 비난을 자초했다.

지난해 12월 10일 코레일은 임시이사회를 열고 수서발 KTX 법인 설립·출자 계획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하루 전인 9일 전국철도노조는 파업에 돌입했으나, 임시이사회 저지는 무산됐다. 철도노조는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은 민영화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코레일과 국토교통부 민영화가 아니라 철도의 효율적인 경영을 위한 조치라고 한다. 그동안 코레일의 비효율적인 경영으로 부채가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정부와 코레일은 한사코 민영화가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철도노조는 ‘주식회사’를 설립해 국민이 아닌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경영을 하는 게 민영화 아니면 뭐냐고 묻는다. 백 번 양보해 지금 당장은 정부 주장처럼 ‘민간’이 들어올 수 없다 하더라도, 그동안의 전례를 봤을 때 공공기관에서의 주식회사 설립은 민영화의 전 단계였다는 것이 철도노조의 주장이다.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이 민영화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전에 한 가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코레일이 굳이 자회사를 설립하려는 이유가 효율적인 경영이라면, 과연 철도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효율적이냐는 것이다. 코레일이 철도 운영을 독점하는 것보다 경쟁체제가 국민들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느냐는 물음에 우선 답해야 한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적자 감수한 경쟁체제 도입

국토교통부는 경쟁체제 도입을 통해 철도서비스에 대한 선택권 확대가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현재 서울에서 출발하는 KTX는 서울역과 용산역 두 곳에서 출발한다. 두 곳은 한강 이북 지역에 위치해 있다. 국토교통부는 한강 이남에 KTX가 출발하는 수서역을 설립해 서울역 대비 10% 인하된 운임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선택권이 생기면 국민들이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역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고 있다. 또한 국토교통부는 철도시장이 확대되어 일자리 창출 기반이 조성된다고도 보고 있다.

문제는 현재 코레일에서 흑자를 내는 부분은 KTX 노선뿐이라는 점이다. 부채 문제를 지적받는 코레일이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KTX 노선을 수서발 KTX 별도법인에 분할하게 될 경우 더욱 심각한 적자 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실이 제공한 코레일 내부문건인 ‘수서발 신규사업자 법인 설립 시 추가 비용’에는 “수서발 KTX 별도법인 설립 운영 시 인적 물적 추가비용이 발생”하고 “공사 출자로 자산을 공동 사용하더라도 일정 규모의 중복비용 불가피할 것”이라고 적시돼 있다.

문건에는 인적 측면에서 연간 241억 원의 인건비 추가부담이 발생한다고 적혀 있다. 현 체제에서는 별도의 인력 충원 없이 충당할 수도 있지만 별도법인의 경우 전 직원 신규채용을 하기 때문이다. 코레일은 이 문건에서 인력을 중복채용 함으로써, 철도산업 전체의 비효율을 초래한다고도 밝혔다.

물적 측면에서는 연간 최소 220억 원 수준의 경비 추가부담이 발생한다고 코레일은 예상했다. 그러면서 별도법인은 공사 운영 시 불필요한 추가비용 발생이 불가피하여 국가재정 낭비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본사사옥에서부터 각종 정보시스템, 차량 시설 유지보수 설비 등을 하나하나 구축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별도법인에서는 연간 약 460억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코레일은 자신들이 운영하면 기존 보유차량과 신규차량,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용, 최적의 좌석공급 및 운영효율 극대화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하지만 이 문건과는 별개로 결국 코레일은 수서발 KTX 별도법인을 설립해 41%의 지분을 보유하는 안을 의결했다. 당초 지난 6월 국토교통부가 제시한 철도산업 발전방안의 지분율인 코레일 30%, 공적자금 70%에서 11%가 늘어났다. 민영화 논란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 나름의 조치였다.

여기에 코레일과 국토교통부는 민영화 논란을 막기 위한 좀 더 강력한 카드를 꺼냈다. 공적자금 지분율 59%를 공공기관이나 지방공기업의 공적자금 공모를 통해 유치하고, 부족분은 정부 운영기금에서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간매각 방지 장치로써 ▲ 민간매각 제한에 동의하는 공공부문 자금만 유치 ▲ 정관에 민간매각 제한을 명시해 공공부문의 지분을 매각할 경우 이사회의 특별결의(2/3출석, 4/5찬성)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코레일 동의 없이는 승인 불가능 ▲ 매각제한과 관련된 정관내용을 변경할 경우 주주총회에서 특별결의(2/3출석, 4/5찬성)토록 하는 등 정관개정을 통해 지분을 매각할 것이란 우려에 대해 추가 안전장치 마련 ▲ 이사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 임의로 지분을 매각할 경우 주주협약에 따라 매각자에게 위약벌금이 부과됨은 물론, 정관의 규정에 따라 매매 자체가 무효가 되도록 해 새로 주식을 매입한 사람은 원천적으로 주주권 행사 불가능 ▲ 정부에서 철도사업 면허 부여 시 지분매각은 이사회 승인을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면허 정지 또는 취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도노조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놓은 형국이라며 믿지 못하고 있다. 코레일이 향후 민간매각 방지장치를 변경해 민간에 승인을 해줄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KT나 두산중공업(옛 한국중공업)이 민간에 매각될 때에도 주식회사를 설립해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것도 이들이 우려하는 이유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코레일 홈페이지에 “코레일 자회사는 민간회사가 아닙니다. 혁신을 시작하는 회사입니다. 민영화 안 한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저는 코레일의 혁신을 반드시 해내겠습니다”라고 호소문을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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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갈피 못 잡아

지난 달 1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철도 파업 관련 현안보고에서 주승용 국토교통위 위원장이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에게 “여야가 소위(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를 구성해서 민영화를 금지하는 법적 근거를 만드는 것에 반대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은 “소위 구성에 대해 반대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날 철도 파업 관련 현안은 논의되지 못했다. 여야 의원들의 안건 순서를 놓고 다툼을 벌였고, 결국 회의는 정회됐다.

 3일 뒤인 20일 주승용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의 직권 소집으로 2차 현안보고가 있었다. 이날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과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 주승용 위원장은 국회를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이고 국회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사안일 것이라며 이들을 비판했다. 그렇게 회의는 또다시 정회됐다.

정부와 철도노조가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국회에서 이를 중재해야 마땅하지만, 현재로선 국회의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등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으로 철도 파업 문제가 논의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철도 파업을 바라보는 여야의 시각 자체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를 구성해 사회적 논의를 하자는 철도노조와 야당의 요구 역시 진전될 기미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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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노선 버려질까?

수서발 KTX 법인설립 이외에, 무궁화호와 새마을호 등의 열차가 다니는 노선의 민영화 논란도 제기된다.

지난 10월 25일 박수현 민주당 의원은 코레일이 8개 적자노선의 민간개방 및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서발 KTX 법인 설립으로 코레일의 수입감소 및 적자확대가 예상되면서 적자노선의 민간개방을 국토교통부가 요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박수현 의원실에 따르면 코레일이 민간개방을 고려하고 있는 적자노선은 경북선, 경의선, 경전선, 교외선, 동해남부선, 일산선, 정선선, 진해선이다.

박수현 의원은 “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이 검토하고 있는 적자노선의 민간개방은 결과적으로 노선 폐지로 이어지거나 코레일의 부담만 더욱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코레일은 이에 반박해 8개 일반철도 노선을 민간에 단계적 매각한다는 계획은 사실과 다르다는 해명 글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그러면서 “비수익노선 운영에 대해서 열차운행 조정 및 인력운영 효율화 등 적자개선을 위한 강도 높은 자구노력과 함께 PSO(공익서비스비용) 보상 현실화 등을 통해 안정적인 철도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만일 적자노선이 폐지된다면 국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철도는 사실상 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정선선, 경전선, 경북선 등이 위치한 산간벽지 지역의 주민들은 철도가 아닌 버스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현재 이들이 KTX를 타고 서울역으로 가려면, 거주 지역에서 무궁화호(혹은 새마을호)를 타고 대도시 KTX역에서 갈아타면 된다. 하지만 노선이 폐지될 경우 지역 주민들이 버스 터미널에서 KTX역으로 이동하면서까지 철도를 이용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김경욱 국토교통부 철도국장은 지난 6월 19일 철도산업 발전방안 토론회에서 “서울발 KTX 운영사가 수서발 KTX 손님을 뺏어오는 차원의 경쟁이 아니다. 자가용을 타고 부산을 가는 사람들이 철도를 이용하게 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 그 부분을 유치해 오는 데에 경쟁을 시키려고 한다”고 했지만, 그게 과연 가능한 이야기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정부 정책에서 효율적이라는 것은 투입된 인력이나 비용에 비해 수익이 극대화 되었을 때를 말한다. 하지만 철도노조는 정부가 부채를 핑계 삼아 ‘돈 되는’, 다시 말하면 팔 수 있는 노선을 민영화하기 위해 수서발 KTX 법인을 설립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보이고 있다.

김정한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지난달 21일 철도노조 수도권 결의대회에서 “정부가 떠 안아야 할 부채를 철도공사가 안고 있다. 시설부채와 PSO인 장애인, 학생 등의 요금 할인에서 발생하는 부채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않고 철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신규인력을 채용하지 않고 있어서 철도 노동자의 평균 연령이 47세다. 철도 노동자들은 밤을 새워 일하고 교대근무에 시달리며 임금을 받고 있다. 정부는 임금 수준이 높은데 노조가 파업한다고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도 철도 민영화에 대해 비판의견이 만만치않다. 아룬 디락찻 태국철도노조 총무실장은 지난달 17일 국회에서 열린 국제운수노련 대표단 기자간담회에서 “수익성 악화로 인해 요금을 인상하며 민영화를 추진했던 태국은, 10년 뒤 민영화에 대해 인식이 안 좋게 바뀌었다. 모든 국민들이 철도노조를 지지하고 있다. 국민들은 재국유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민영화는 1995년이나 2000년도였으면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많은 나라가 실패했다. 한국 정부는 실패한 정책을 20년 뒤에 도입하려 하고 노조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노정 대치 해결부터

파업 14일째였던 지난달 22일, 경찰은 김명환 전국철도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철도노조 간부들을 경찰이 체포하기 위해 민주노총 건물에 강제 진입했다. 경찰의 진입을 막으려는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경찰의 극심한 대치 상황이 이날 내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양성윤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포함한 130명 이상의 연행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김명환 위원장을 비롯한 철도노조 간부들은 그곳에 없었다. 민주노총은 이날의 상황을 “경찰의 폭거”라면서 “난입”이었다고 규정했다.

반면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은 이날 철도파업 관련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근로조건과 상관없이 철도 경쟁도입이라는 정부정책에 반대하며 독점에 의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철도노조 파업은 어떠한 명분과 실리도 없는 불법파업”이라고 밝혔다.

민영화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에 대해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설득하기보다는 말 들으라고 윽박지르는 형국이다. 하지만 내부 직원들조차 설득하지 못하는 경쟁체제 도입 정책이 국민들의 공감을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 속에서 국민들은 당장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철도 민영화에 대한 우려로 이중의 피해를 입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