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계 개편이야말로 ‘그들만의 리그’
임금체계 개편이야말로 ‘그들만의 리그’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4.02.0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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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정규직에만 한정된 논의일 뿐
인위적 개편 시도, 현장에서 먹히지 않는다
[특집] 임금체계 개편 ③ 올해 임·단협, 어떻게 될까?

현재 임금체계 개편 주장은 주로 경영계에서 나오고 있다. 노동계에서도 과거에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지금은 그 필요성을 그다지 크게 보지 않고 있는 듯하다. 경영계가 주장하는 임금체계 개편의 방향은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방식, 즉 성과급제도의 도입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급제도가 도입되고 안착되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존재한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임금일체설 법리 깨졌다

과연 임금이란 무엇일까? 근로기준법에서는 임금을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임금, 봉급, 그 밖에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임금이 소득으로서 생활비의 유일한 원천이므로, 가능한 한 많이 받기를 원하며,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생활급임금을 요구한다. 반대로 기업의 입장에서 임금은 비용으로서 생산에 필요한 인건비가 되므로 되도록이면 적게 지급하기를 원하며, 생산성이나 능률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는 제도, 곧 성과급제도와 같은 제도를 추구한다.

한 나라의 입장에서는 임금수준이 너무 높은 것도, 너무 낮은 것도 문제가 된다. 임금이 너무 높으면 기업은 인건비 증가로 인한 생산단가 인상으로 경쟁력 약화를 우려해야 한다.

반대로 임금이 너무 낮으면 노동의욕의 상실은 물론 노동력의 재생산을 불가능하게 해 인적 자원 유지와 개발에 차질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구매력이 낮아져 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한 나라의 입장에서는 임금과 생산성이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임금과 관련해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에 관한 판결은 주목할 만한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과거에 법원은 이른바 ‘임금일체설’에 따라 판결을 내려왔다. 임금일체설이란 노동자가 지급받는 일체의 금품은 모두 ‘근로의 대가’로서 지급되는 임금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법리는 지난 199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에 의해 확정됐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파업 기간의 임금 지급 의무에 관해 판결하면서, 임금이란 근로의 대가로 지급되는 것이지 그 외의 무엇이 아니므로 근로를 제공하지 않는 파업기간에 대해서는 사용자의 임금 지급 의무가 면제된다는 ‘무노동 무임금’ 원리를 확정했다.

당시 노동계는 임금이 근로의 대가로서 지급되는 부분 외에도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는 부분이 있으므로 파업기간이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임금은 그 명칭의 여하에도 불구하고 전부가 다 근로의 대가이므로,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는 부분이라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199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의해 확정된 ‘임금일체설’ 법리는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에 관한 판결에 의해 무너지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임금의 구성항목 중 어떤 부분은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통상임금이지만, 다른 부분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법적으로 소정근로가 아닌 근로는 법정근로시간 외에 행해지는 초과근로밖에 존재할 수 없고, 초과근로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해서 초과근로수당이 지급되므로 초과근로 역시 소정근로의 연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소정근로의 대가가 아니라고 한 그 다른 부분은 과연 무엇일까? 그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최소한 임금의 모든 구성항목이 근로의 대가라는 기존의 임금일체설 법리는 이번 판결로 무너지게 됐다.

아직은 경영계 중심으로 논의 중

법리야 어쨌든 통상임금은 연장근로, 휴일근로 등에 대한 초과근로수당을 산정하기 위한 기준이다. 따라서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임금 구성항목의 범위가 확장되는 것은 초과근로수당의 증가로 연결된다.

물론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 반면, 기존에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던 복리후생적 성격의 수당은 통상임금에서 제외됨으로써 통상임금의 범위가 확대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적 성격의 수당의 규모를 놓고 보면 정기상여금의 규모가 월등히 크므로 통상임금 총액은 늘어나게 됐다.

따라서 이번 판결의 결과로 기업이 부담해야 할 인건비가 늘어난 것만은 틀림없다. 비록 신의칙을 적용해 추가임금의 청구를 제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과거 임금에 대한 청구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며, 다른 사정이 변함없다면 앞으로 기업의 인건비 부담 자체가 늘어나게 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같은 조건에서 경영계는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 직후에 임금체계 개편 주장을 들고 나온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진 직후, 경영계를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즉각 성명을 내고 “성과·직무 중심의 임금체계로 전환하자”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이형준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당장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이 어려울 수는 있다”면서도 “다만 기업과 근로자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고, 그것은 결국 생산성에 걸맞은 임금체계가 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 만큼, 그에 걸맞은 수준으로 노동생산성도 향상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결과가 돼서는 안 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연공급제도 아래서의 임금처럼 연차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인상되는 임금제도가 아니라 직무의 성과에 따라 임금 수준이 결정되는 방식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임금체계 개편 논의는 경영계의 주장으로만 그치지는 않는다. 지난 1월 23일, 노사정위원회와 국민경제자문회의, 한국노동연구원은 은행연합회 국제회의실에서 임금체계 개편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에서는 임금체계를 둘러싼 각종 이슈들을 망라한 임금체계 개편 주장들이 다뤄졌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주로 성과급제도를 도입하는 방안과 그에 따른 각종 우려 사항을 보완하는 내용이 토론됐다.

다만 이 같은 논의들은 아직까지 주로 경영계와 정부,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서 아직까지 본격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노동계에서는 일단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본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안재원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본은 2014년 임·단협에서 임금체계의 대폭 수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화 시켜 내는 것, 추가 소송을 벌이는 것, 법률개정에 대응 하는 것 등을 전체 민주노조운동이 함께 벌여가야 하고 그 힘을 지속적으로 모아가면서 이후 투쟁도 예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영계에서 주장하는 임금체계 개편에 맞서 통상임금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자는 주장이다.

정부에서도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한 안을 준비한 바 있다. 지난해 6월 고용노동부 자문기구인 임금제도개선위원회는 통상임금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는 주로 그동안 고용노동부가 예규로 고수해 왔던 ‘1임금산정기간’을 둘러싼 방안이었다.

1안은 1임금산정기간을 초과해 지급되더라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되, 기업의 부담을 감안해 실제로 수당을 산정할 때는 전체 통상임금의 70%만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방안이다. 2안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원칙적으로 한 달 내에 지급하는 금품으로 제한하는 방안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진 이후 고용노동부가 ‘임금정책 합리화 추진 방안’이라는 연구용역 결과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고용노동부가 현재 20~50%인 기본급 비중을 70%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는 임금체계 개편안을 작성했다는 보도였다. 비록 고용노동부가 즉각 해명자료를 내고 이를 부인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정부의 동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임금체계 개편만이 답일까?

임금체계 개편이 반드시 선일까?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현재 기본급 비중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에 이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이견이 없다.

다만 이는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구성을 변경하는 것이기는 하다. 단 여기에도 단서가 달린다. 정부가 나서서 인위적으로 이를 조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노사가 자율적으로 논의해서 합의점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해서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월 20일 열린 한국노총 정책간담회에서 “요즘 ‘연공임금(호봉급)은 인건비 부담이 크기 때문에 고령화 사회에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직능급이나 직무급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자주 접한다”면서 “하지만 연공급 등의 임금체계가 실제로 임금수준과 고용구조, 경영성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실증연구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임금체계 관련 논의 역시 대부분 대기업 정규직 중심이어서 임금체계조차 없는 중소영세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어떠한 임금체계를 도입하는 게 적합한지에 대한 고려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비판한 바 있다.

김유선 연구위원은 이어 “임금체계가 무엇이냐에 관계없이 직급별 임금수준과 연평균 승급액이 동일하다면, 게다가 임금체계를 개편하더라도 임금수준, 고용구조, 경영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면 굳이 호봉급을 직능급이나 직무급으로 개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반문하고 있다. “호봉급은 악이고 직능급이나 직무급은 선이라는 암묵적 가정 아래 호봉급을 직능급이나 직무급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차라리 산업, 직업, 부문, 고용형태, 기업별로 임금곡선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사회적으로 적정한 임금수준과 승급액을 정하는 데 논의를 집중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유성규 노무법인 참터 노무사 역시 인위적인 임금체계 개편 논의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유성규 노무사는 “한 기업의 임금체계와 임금구성에는 그 기업 노사가 쌓아온 역사가 담겨 있다”며 “정부와 상층 노사가 아무리 임금체계를 개편하려고 시도해도 그런 논의가 현장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인위적으로 개편하려고 시도해서 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현장의 노사가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임금제도에 대해서는 현장의 노사가 최적의 합의점을 찾아가도록 하는 게 옳다”는 의견이다.

▲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최저임금 현실화 캠페인 ⓒ 참여와혁신 포토DB
임금체계 아예 없는 곳도 있다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해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지점이 바로 노조조직률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조조직률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조직된 노동자는 대부분 대기업 정규직 중심이다. 이런 노조조직률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임금체계 개편은 필연적으로 노조가 조직된 사업장, 즉 대기업 정규직 위주의 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유성규 노무사는 “상대적으로 상층에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체계도 중요하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길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흔히 가는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임금체계가 무엇인지 알고, 임금체계에 대해 관심이나 있겠느냐”며 “오히려 시급한 것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조차 받지 못하는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관심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이 같은 의견에는 김유선 연구위원 역시 마찬가지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호봉급이든 직능급이든 직무급이든 나름대로 임금체계를 가지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보다는 임금체계 자체가 없는 중소영세업체 비정규직에게 호봉급이든 직능급이든 직무급이든 구체적 실정에 맞는 임금체계를 도입하는 데 주력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노동계에서도 이 같은 과제에 대해서 마찬가지 인식을 하고 있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과거 노사정위원회 산하 근로시간·임금제도개선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전제조건이자 목표이기도 하다”면서 “중소영세사업체와 대기업 간 임금격차 축소,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 축소, 성별, 학력별, 직종별 임금격차를 적정하게 축소하는 게 개선과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문제는 노동계가 이 같은 인식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실천은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는 데 있다. 대기업 정규직 위주로 조직된 노조의 특성상 자신의 조합원이 아닌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노조운동이 직면한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는 유성규 노무사의 지적은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지면서 경영계를 중심으로 임금체계 개편 논의가 다시 대두되고 있다.

특히 통상임금을 둘러싸고 올해 임·단협에서 노사간 힘겨루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임금체계 개편은 앞서 지적했듯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해답도 없다. 올해 임·단협은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한 갈등요소를 내포한 채 준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