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중심의 노조, 더 이상은 안 된다”
“기득권 중심의 노조, 더 이상은 안 된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4.03.0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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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층부 변질 속에 플랜트 건설 노동자 ‘밥줄’ 위태위태
우여곡절 끝에 새 노조 출범…노-노 갈등은 안정세?
[인터뷰 2] 김택권 한국건설플랜트노조 위원장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산업도시 울산의 기반은 플랜트 건설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다져졌다. 지금도 울산지역은 대규모 공장설비나 항만, 발전설비의 증설 및 유지관리를 위해 가장 많은 플랜트 건설 노동자들이 밀집한 지역이기도 하다.

현재 울산지역은 민주노총 전국플랜트건설노조, 한국노총 한국건설플랜트노조, 국민노총 전국건설기능인노조 등 3개 조직이 활동 중이다. 지난 2011년 설립된 한국건설플랜트노조는 민주노총과 국민노총 조직에 비해 후발 주자다. 지난여름 한국노총 전국건설산업노조에 들어오면서 변화를 모색 중인 김택권 한국건설플랜트노조 위원장을 만나 그간의 얘기를 들었다.

노조 설립의 계기가 궁금하다.

“나도 전국플랜트건설노조의 조합원이었다. 하지만 현장을 통해서 보면 내부적인 문제가 보이는 거다. 조합원이 주인이고 우선되는 노조가 돼야 하는데, 조합원은 뒷전이고 간부들이 주인인 노조가 된 것이다.

직접적인 계기가 됐던 것은 현장에서 불미스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여 명 정도의 플랜트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이 있었는데, 거기에 노조 간부가 몇몇 끼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조례 시간에 조합비 납부를 했는지 여부를 갖고 시비가 벌어졌다. 결국 노조의 간부 한 사람이 조합원을 폭행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다툼을 중재하면서 악화된 감정을 식히느라 현장 소장실에 데리고 가서 화해를 시켜보려 했지만, 잘 안 되더라. 결국 가해자나 피해자나 현장에서 퇴출되기에 이르렀다.

그러고 며칠 뒤에 출근을 하는 데 노조에서 정문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거였다. 백여 명의 인력들은 별 수 없이 앉아서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3일째 같은 일이 계속됐다. 도저히 이래선 안 될 것 같아 당시 노조 수석부지부장에게 대관절 출근을 막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이유인즉, 건설 현장에서 노조 간부라는 이유로 부당해고가 있었기 때문에 실력행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백 명의 눈과 귀가 보고 들은 게 있었고, 또 당시 싸움을 중재했던 당사자로서, 그날 사건에는 분명히 폭력을 휘둘렀던 잘못이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장에서의 폭력은 어떠한 이유로든 용인될 수 없다. 그렇게 힘으로 하자면, 건설 현장이야 맨 쇠붙이이고 무기인데, 망치를 들고 싸우자는 건가?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노조 간부의 말만 듣고 대처를 한 것이었다.

내가 따지고 들자 잠시 얘기를 나누더니 다시 조사를 하겠다고 한다. 그게 더 가관인 얘기 아닌가? 일하겠다고 새벽밥 먹고 나와서 3일을 공친 조합원들의 피해는 어쩔 것인가? 일당을 받고 일하는 건설 노동자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셈인데 말이다. 그러곤 노조의 변명이 이쪽 현장에서 단체교섭 때 좋지 않은 태도를 보여서 본때를 보여주는 거라고 한다.

이건 정말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자리에서 탈퇴를 하겠다고 돌아섰다. 그리고 그날 바로 문의를 해서 노동조합 설립에 대해 알아보게 됐다.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을 14명 모아서 비밀리에 모임을 갖고 노조 설립을 준비했다. 발기인 대회도 숨어서 했다. 노조를 만든다고 협박도 많이 받았다.”

무엇 때문에 노조 설립 과정을 비밀리에 진행한 건가?

“플랜트 건설 노동자들은 일을 가지고 자주 이동하게 된다. 노조는 개별 현장과 단체교섭을 통해 사실상 노무 공급권을 쥐고 있으며, 이를 독점하기 위해서 비조합원은 현장에서 내친다.

정확한 조합원 규모를 산출하기 어렵고, 매번 들쭉날쭉한 것은 이런 현실 때문이다. 조합원들이 일은 해야겠고, 일을 하려면 노조에 가입해야 한다. 대략 한국건설플랜트노조의 조직 규모는 1,500명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 현장에서의 갈등이 심했다. 백안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폭행을 당하거나 아예 출입을 저지당하는 물리적인 충돌도 잦았다. 그래도 지금은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상급단체가 다른 세 노조가 지역에서 경쟁 중이다. 규모 면에서 여전히 주도권을 갖고 있는 민주노총 조직과의 차별점은?

“20여 년을 건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니 실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전국플랜트건설노조가 생기고 나서 공헌한 점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있다.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데에도 많은 역할을 했다. 건강하게 시작됐던 조직이 당시 세대가 물러나고 외부에서 집행부 중앙을 장악하면서 점차 변질됐다. 현장 출신의 간부라고 해 봤자 분회장 정도가 있을까.

노동 환경을 바꾸는 데 노조가 일조를 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어차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했을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먼지 나는 현장에서 ‘가다밥’이나 도시락을 먹어야 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말이다. 가장 큰 애로점은 일거리가 안정치 않다는 것이다. 임금의 수준이나 작업 환경과 같은 부분은 많이 개선이 됐는데, 고용이 불안하다는 문제는 변화가 없다.

노무 공급권을 두고 노동조합이 권력화하고 독점화되는 과정, 그리고 그 와중에 폭력이나 비리 등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은 여전히 고용 문제 해결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조가 힘을 키우고 한데 뭉쳐서 이 문제를 풀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변질된 것이다.

밖에서 볼 때나 조끼 색깔이 다르지 현장에서 일할 때는 다 같은 건설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합원들과 절대로 노조의 구분을 하지 말자고 이야기를 한다. 현장에서 당당하게 일하고 그만큼 요구하자고 말한다. 다른 곳에서 18만 원씩 일당을 받는다고 하면, 우리의 경우 20만 원씩 받고 있다. 그만큼 건설업체에서도 인정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조합원들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임금이 체불되거나, 환경에 문제가 있다면 노조가 맞서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일하지 않으면 하루 수입이 없는 건설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일할 권리를 볼모로 기득권을 위한 투쟁에 들어가는 것은 무책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