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근로 없이 여전히 생활은 빠듯하다
연장근로 없이 여전히 생활은 빠듯하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4.04.0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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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스쳐가는 월급?…여유로운 삶 위해 임금 더 올라야
점점 더 ‘조용한 가족’…“애들이 안 놀아줘요”
[2014 특별기획 ‘한국의 노동과 삶’] (4) 금속노동자

ⓒ 금속노련
한국노총 금속노련은 지난 3월 13일, 전국 단위노조 대표자대회를 열었다. 연맹 산하 300여 조직의 대표자과 간부들이 이날 대회에 모였다.

<참여와혁신>은 이날 금속노련 전국 단위노조 대표자대회에서 금속노동자들의 노동과 삶에 관한 간단한 설문과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노동자들이 일상을 꾸려나가기 위해 기대하고 있는 임금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그리고 현실은 그와 같은 기대를 얼마나 만족시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비는 어떻게 하고 있으며, 삶의 가장 지척에 얽혀 있는 가족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들었다.

금속노련, 시기집중 공동임투 결의

통상임금과 정년연장,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주요 이슈들로 인해 올해 각 단위노조의 임단협 과정이 수월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금속노련은 전국 단위노조 대표자대회를 열고 정보를 공유하는 한편 시기집중 공동 투쟁을 펼치기로 결의했다.

금속노련은 산하 단위노조에 배포한 임단투 지침을 통해 ▲ 실노동시간 단축과 생활임금 쟁취 ▲ 임금제도 개선 및 임금구조 간소화 ▲ 임금 조정 없는 정년연장과 대체휴무제의 확대 시행 ▲ 교섭력 강화와 비정규직 조직화 ▲ 단위노조 조직 및 활동 강화 등을 올해의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올해 임금 요구안은 기본급 대비 8.4%, 13만3,255원 인상을 제시했다. 이는 한국노총 표준생계비의 80.5% 수준에 해당한다. 금속노련이 올해 임단투 지침 마련을 위해 산하 158개 노조에서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조합원들의 임금 수준은 성과급을 제외한 임금 총액 기준으로 평균 346만9,367원이었다. 그중 기본급은 158만2,688원이었고, 기본급과 고정수당, 기타수당, 상여금을 합한 고정 급여는 295만3,175원 수준이었다.

ⓒ 이가람 기자 grlee@laborplus.co.kr
또한 금속노련 조합원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1시간 30분이었다. 이는 이전 년도 조사 결과와 비교해 볼 때 12분 늘어난 수준이다. 특히 주당 5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사업장이 전체 응답 사업장의 44.6%에 달하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64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한 사업장도 9곳으로 6.6%였다.

단위노조들이 올해 임단협 과정에서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사항도 임금인상 및 임금체계 개선이라고 답했다. 전체 응답 사업장의 44.1%가 염두에 두고 있는 만큼, 예나 지금이나 노동조합의 가장 큰 과제임이 분명해 보인다.

올해의 실태조사에서 두드러진 점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불거진 통상임금과 관련한 이슈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가 중요한 사안이라고 꼽은 사업장도 38%에 달했다. 특히 통상임금과 관련한 내용은 노동조합 상급단체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야 할 이슈라고 생각하는 단위노조가 많았다. 이전 해의 경우 노조법 재개정이 한국노총 차원에서 가장 역점에 두고 활동할 사항이라고 답한 경우가 많았는데, 올해에는 통상임금 범위 확대 등 대응 방안 마련을 꼽은 경우가 44.2%로 다수였다.

생활 임금까지 아직 부족

이날 대회에 참석했던 이들 중 대다수가 40~50대 남성 노동자임을 감안할 때, 한 사람의 아버지이자 가장으로서, 가족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이 시대 금속 노동자들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어렴풋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우선 이들이 받고 있는 임금 수준은 경영상황이나 주력 생산 제품 등 사업장의 특성에 따라, 혹은 근속년수의 차이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실제로 손에 쥐는 액수 기준으로 한 달에 평균 200만 원에서 많게는 600만 원 수준까지 다양했다. 개별 사업장들의 임금 격차는 금속이나 화학 등 제조업 부문에서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은 상급단체인 산별연맹 차원에서 일괄적인 교섭 지침을 산출하는 데 어려움이 되고 있다.

현재 받고 있는 임금 수준에 차이가 있는 것과는 무관하게 응답자들 모두가 지금보다는 더 많은 임금을 받길 원하고 있었다. 한 달에 300만 원에서 400만 원 가량을 받는 이들은 적어도 400만 원에서 500만 원은 벌어야 “일상에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 금속노련
“비슷한 다른 사업장도 마찬가지지만 표준생계비의 4인 가족 평균치와 비교해서 월급이 턱없이 모자라요. 부족하다보니까 적금이라든지 신경을 못 써요. 의식주에 보험, 이런 거면 마이너스죠. 월급을 타면 순식간에 빠져나가요. 계속 카드로 새 나가는 거죠. 일단 필요한 것을 사고 후에 결제를 하는 식이니까. 그 패턴이 계속 반복되죠.”
- 40대, 자동차부품 협력업체, 16년차 근무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률이 물가 상승률을 상회하는 것은 이제 여간해선 수월하지 않다. 생활수준이 올라간 만큼 높아진 안목 때문에 기본적인 일상에도 드는 돈이 적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삶의 주기에 따라 결혼자금, 주택마련, 자녀 교육비 등 목돈이 드는 ‘높은 산’들이 버티고 있다. 현재가 다급하니 노후대비는 뒷전으로 밀린다. 불의의 사고로 다치거나 병이 들어 그나마 지금의 임금도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야말로 막막할 노릇이다.

“요즘은 애를 키우는데 사교육이 문화처럼 돼 있어서 거기에 돈이 들어가고. 그런 것들을 다 포함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으려면 실질적으로 근로자들은 노후 대책이라든지 그런 걸 전혀 할 수 없어. 개인연금이나 이런 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나중에 정년퇴직 했을 때 퇴직금이나 보험이나 그런 거 보태서 노후자금으로 쓰려는 근로자들이 
- 40대, 특수기계 제조업체, 8년차 근무

“직접적인 임금 항목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복리후생 쪽에 해당되는 걸 텐데, 자녀 학자금 지원과 관련된 게 제일 커요. 사실 생활이야 월급 수준 맞춰서 굴러 간다고. 가장 많이 들어가는 교육비가 커버 돼 준다면. 대기업들은 대 주잖아 등록금. 한국노총이 자칭 100만이라고 얘기하는데, 대기업은 1%도 안 된다고. 다 중소기업이지. 혜택을 누리는 사람도 1%고.”
- 40대, 자동차 동력전달장치 제조업체, 20년차 근무

“한 달에 한 300만 원 정도 받는데, 집 대출금 갚는 데 제일 큰 목돈이 들어가죠. 애들이 고등학교, 대학교 간다면 물가도 오를 테고, 등록금에 생활비도 있으니까 걱정이 커요. 노후대책은 생각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되네요. 둘째가 쇼트트랙을 하고 있는데, 요새 운동은 돈 없으면 못 시키니까 거기에 들어가는 돈도 많더라고요. 노동조합 하다가 현장 내려가서 일 할 수 있는 조건도 안 되는데, 때려 치고 장사나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 40대,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16년차 근무

가족들과는 여전히 “거리감 느낀다”

‘자녀들과 대화가 거의 없다’ ‘저녁이나 주말 등 가족과 보낼 시간이 없다’ ‘문화생활은 꿈도 못 꾼다’, 금속노련의 단위노조 대표자들과 간부들이 가족과의 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문제가 없다고 답한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많은 응답자들이 자녀들과 소통하고, 가족이 어울릴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의 부족을 지목하고 있다. 이는 장시간근로가 워낙에 만연해 있다는 문제제기로도 이어진다. 부모는 직장에서 자녀들은 학교나 학원에서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마주대할 시간은 아주 짧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해 온 몇몇 응답자들은 스스로 갖고 있는 심리적 문제점에 대해서 털어 놓기도 했다. 직장에서 하고 있는 일 이외에는 따로 관심사를 갖기 어려우며 자연스레 부부간에, 혹은 자녀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화제가 줄어든다든지, 퇴근 후나 주말에는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동료들과 술을 마신다거나 개인적인 취미로 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일 이외의 시간은 휴식을 취하느라 따로 가족을 배려하기가 힘들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가장 친밀해야 할 가족 간의 관계가 점점 간극이 벌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면 일회적인 이벤트로, 금전적인 보상으로 이를 메우려는 경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할 시간이 부족하고 따라서 대화도 별로 없다’고 문제를 인식한 이들이 개선을 위한 노력으로 여행이나 외식, 혹은 가족과 함께하는 문화생활이나 취미 등의 기회를 만들어야겠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이러한 노력을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는 이들도 드물고, “애들이 안 놀아 준다”거나 “나는 한다고 하는데 가족들이 만족해할지 잘 모르겠다”며 쓴웃음을 짓는 노동자들도 많았다.

또한 노동조합 대표자나 간부로서 노조 활동을 하는 것과 관련해 가족들과 갈등을 겪거나,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많은 점도 참고할 만한 점이다. 임금 수준이 열악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경우, 금전적인 부담 때문에 가족들과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한 이들도 있었다.

ⓒ 금속노련
“가족들과 같이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지요. 이해를 해 달라고 얘기는 하지만, 조합 일을 하다 보니깐 가족들이 많이 서운해 합니다. 그래서 토, 일요일은 같이 있으려고 하는데도 이 일이 주말과는 상관없이 터지니깐. 같이하려고 많이 하는데 좀 상황들이 안 맞는 것 같아요.”
- 40대,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16년차 근무

“이혼하자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예전처럼 노동조합 한다고 뒷돈 받고 이런 시대는 아니지 않습니까. 솔직히 위원장에게 월급을 제대로 넣어주는 회사가 없어요. 정말 빚도 많이 지고, 욕은 욕대로 먹고. 기본적인 의지가 없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사람 만나고, 술 마시고. 그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회사에서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조합비를 제대로 쓰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가정불화는 기본적으로 안고 있습니다.”
- 30대, 용접봉 제조업체, 15년차 근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느냐”는 물음을 금속노동자들에게 던졌을 때,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이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하는 일을 자녀들이 이어가겠다면 어떻겠느냐”고 질문을 바꿔보니 손사래를 쳤다. 더 좋은 환경에서 나은 대우를 받으면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표본 수가 한정돼 있고 표본 집단도 노조 간부들이어서 이 같은 조사 결과를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금속노련 단위노조 대표자들과 간부들을 통해 살펴본 금속노동자들의 노동과 삶은, 과거에 비해서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 준다. 노동자들 스스로에게 노동이 존중 받는 세상을 만들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