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해서 손해 볼 일 없다”
“인사해서 손해 볼 일 없다”
  • 박상재 기자
  • 승인 2014.04.0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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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역 앞에서 들리는 명랑한 아침인사
17년간 팔아온 김밥으로 아들 사업 자금까지
[사람향기] 압구정역 김밥 아주머니

지하철로 향하는 도중 어디선가 들려오는 힘찬 목소리.
“좋은 하루 되세요.”
깜짝 놀라 바라보니 3월의 꽃샘추위에도 추운 기색 없이 웃으며 인사한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인사가 사라진 세상 속에서

ⓒ 박상재 기자 sjpark@laborplus.co.kr
이른 아침. 출근을 위해 집 밖으로 나서면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띈다. 한 손엔 아이를 들쳐 메고, 짝 잃은 신발 끌어당기며 유치원 셔틀버스로 뛰어가는 앞집 아줌마, 엘리베이터를 타면 종종 마주치는 위층 할머니, 아파트 단지 입구의 경비 아저씨까지. 모두가 낯익지만 그것이 도시인의 품격인 듯 서로 모른 척 지나친다.

문득 어릴 적이 생각났다. 새로 이사 왔다며 시루떡을 들고 온 아주머니와 어머니가 문 앞에서 한담을 나누던 기억. 이제는 그런 기억들이 박물관의 토기마냥 다른 세상의 일 같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편의점에 들어가면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직원이 무심하게 인사한다.

“어서 오세요.”

대답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간 결국 필요한 것만 챙기곤 조용히 나온다. 언제부터 인사를 가장한 접대만이 가득한 세상이 된 걸까. 하지만 이 사람을 만나면 이런 생각은 세상의 단면만을 보고 있는 것이라 느껴진다.

인사로 맺어진 인연들

지하철 역 앞에서 김밥을 판매하는 최정석 씨는 나른함을 일깨우는 알람이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고개 숙여 “좋은 하루 되세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인사하는 그녀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멋쩍은 듯 웃으며 지나간다. 그녀를 처음 보는 젊은 사람은 화들짝 놀라 두리번거리기도 하지만, 나이 든 할머니들은 반가워하며 “아이고, 고맙습니다” 답례하며 지나가기도 한다.

인터뷰 요청에 최정석 씨는 “에이, 뭔 그런 걸 혀.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 할 말도 없어”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래도 재차 부탁하자 못 이기는 듯 “그럼 내가 시간이 없어서, 여기서 같이 해도 괜찮다면 잠깐 얘기나 혀”라며 수줍게 답한다. 장사하는 데 인터뷰가 방해가 되지 않나 걱정했지만, 어차피 이제는 살 사람들은 먼저 알아보고 찾아온단다.

“이제 자리가 잡혀서 파는 것은 걱정 안 해. 내가 못 봐도 먼저 알아보고 인사도 하고, 우유도 사다 주기도 하고, 귤도 가져다주고.”

옆에서 보니 기다렸다는 듯 최정석 씨에게 뛰어가 김밥을 사는 사람들도 있고, 인터뷰를 하느라 미처 인사를 못한 사람들은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가곤 했다. 아침 인사뿐만 아니라 아침은 먹었는지, 날씨는 언제쯤 풀리는지, 오늘은 무엇을 하는지 등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만나는 사람들에겐 오래된 친구 같은 친숙함이 묻어났다. 익숙하게 ‘매운 김밥’을 찾는 한 50대 회사원은 말한다.

“다른 데서도 김밥은 많이 팔지만, 기분 좋아지는 곳은 여기밖에 없어요.”

김밥 만드는 데만 18시간

이곳의 김밥은 모두 네 가지다. 깻잎 김밥, 매운 김밥, 치즈 김밥, 우엉 김밥. 손수레에 가득 실린 김밥들은 여느 김밥들 보다 굵직하다. ‘왕김밥’이라 크게 써 놓은 스티커에 어울리는 큼직함이다. 직접 만드는 것일까? 최정석 씨는 “일 끝나고 11시쯤 들어가서, 4시쯤 일어나 그때부터 청양고추 씻고, 계란 부치고, 햄 썰고, 맛살 썰고 해서 새벽까지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석 씨는 아침 7시면 어김없이 지하철 역 앞으로 나와 10시까지 김밥을 판다. 그리고 나서도 덜 팔린 김밥은 이곳저곳 동네를 돌며 다 팔고선 집으로 들어간다. 아침에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것들을 정리하고 때 늦은 밥을 먹으면 2시쯤. 이때부터 4시까지 잠깐 잠을 잔 뒤 대형 밥솥 세 개를 이용해 두 번 밥을 짓는다. 밥을 짓는 이 시간에 다시 2시간가량 쪽잠을 청해 부족한 수면을 보충한다. 자고 일어나 그때부터 김밥을 말기 시작하면 새벽 6시가 되고, 부랴부랴 씻고 지하철로 다시 향한다.

듣기만 해도 빡빡한 일정이라 몸이 버티기 힘들 것 같아 보였지만, 최정석 씨는 힘들다는 말 대신 이렇게 말한다.

“테레비 보면 은행 강도들 나오잖어. 정말 불쌍혀. 그렇게 돈을 훔쳐놓곤 쓰지도 못하고 다시 잡혀가는 걸 보면 안타깝고 그래. 거기에 비하면 난 살만한 거여.”

그러면서 그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걱정한다.

“이 정도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겠어. 우리 자식들도 회사 다니고. 여기 지나가는 사람들만 봐도 회사원들은 나보다 더 힘들 거야.”

텃세에 시달리며 버텨온 세월

사실 맨 처음 김밥을 팔기 시작한 건 딸이었다. 당시 회사를 다니던 딸은 어느 날 길거리에서 김밥을 파는 사람들을 보고선 직장생활보다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길로 회사를 그만두고 친한 선배와 김밥을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편이 미국으로 직장을 배정받자 김밥 장사를 친정어머니에게 넘긴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어려움도 많았다. 길 한복판에 서서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김밥을 팔자니 막막함이 앞섰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손님들을 데려와 사 가기도 했지만, 딸이 하던 만큼 팔리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장사에도 적응돼서 딸이 팔던 만큼 다시 팔리기 시작했다. 당시엔 길거리에서 김밥을 파는 게 흔한 일은 아니어서 점차 손님은 늘어갔다. 손님은 늘었지만 이전부터 터를 잡아 일을 하던 다른 이들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됐다.

같은 자리에서 떡을 팔던 할머니에게 옷의 단추가 다 떨어져 나가도록 멱살을 잡힌 적도 있었고, 누군가의 신고로 새벽에 경찰서로 불려간 적도 있었다. 딸이 맡기고 간 손녀를 등에 업고 나오는 최정석 씨를 안타깝게 여긴 경찰은 별 탈 없이 집으로 돌려보냈지만, 이리저리 애를 먹이는 텃세 탓에 그만둘까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미국으로 떠난 딸이 고생하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퇴직하고 함께 집에서 김밥을 말고 있는 남편을 생각하니 차마 그만둘 수 없었다.

이젠 하루에 500줄도 만다

하루, 이틀 그렇게 꾹 참고 버틴 세월이 17년. 요사이는 남편도 같은 시간 집에서 나와 다른 곳에서 김밥을 팔고 있다. 자연스레 이전보다 벌이도 늘었다. 게다가 그 긴 세월동안 일정한 시간, 같은 자리에서 항상 웃으며 인사를 하다 보니 이젠 단체 손님도 생겼다.

봄부터 가을까지 관광객이 많아지면, 최정석 씨를 아는 사람이 먼저 찾아와 300줄에서 500줄까지 주문을 하기도 한다. 평소 150줄 가량을 만들다가 이렇게 갑자기 500줄을 만들어야 할 때는 여유 있는 아들들까지 모여 함께 김밥을 말고, 차로 직접 실어다 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말엔 고정적으로 40줄에서 50줄 가량을 인근 미용실이나 개인사업장에 배달해주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장 힘든 것은 수면 부족이다.

“제일 힘들 때는 김밥을 많이 쌀 때가 힘들지. 저녁에 졸리고 힘들어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도 해.”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 간신히 자는데, 대량 주문이 들어오면 이마저도 쪼갠다. 이런 날이면 어딜 가든 꾸벅꾸벅 졸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침 일찍 나오면 서있기도 힘들 것 같았지만, 그는 “근데 나오면 즐거워. 서 있어도 힘 안 들고 좋아”라며 웃는다.

김밥에 숨겨둔 자식사랑

하지만 이제 예순일곱이 된 최정석 씨의 자녀들은 이런 생활패턴이 어머니의 건강에 문제를 끼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자녀들은 진작부터 그만두라는 말을 했지만, 10년이 넘게 해 오던 일을 손에서 놓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계속되는 만류에 결국 최정석 씨가 손을 들었다. 다음 해 4월까지만 일을 하기로 했단다. 그러면서 겸손하게만 답하던 최정석 씨가 슬그머니 자랑을 한다.

“큰 아들은 공부 잘해서 장학금 받고 학교 다니다가 지금은 대학교 교수여. 막내아들은 사업을 하는데 돈도 많이 벌어. 딸은 사위랑 미국으로 가서 식당을 차려 자리 잡았고.”

하지만 자녀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까지는 어머니의 뒷바라지가 필요했다. 조금씩 차근차근 모은 돈은 미국에 있는 딸의 정착금이 됐고, 막내아들의 사업비용이 됐다.

ⓒ 박상재 기자 sjpark@laborplus.co.kr
한마디 인사가 가져오는 삶의 변화

최정석 씨는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낯익은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놓치지 않았다. 이렇게 인사를 하는 데는 무슨 계기가 있었던 것일까.

“글쎄. 그냥 했어. 그렇게 하다 보니깐 어느 날 ‘아줌마가 인사를 하니깐 내가 기분이 좋다’며 몇 줄 더 사 가더라고. 그래서 인사를 해서 손해 보는 게 없구나, 생각했지.”

인터뷰가 끝날 즈음 최정석 씨는 “기자님 때문에 인사를 절반밖에 못했어”라며 타박 아닌 타박을 한다. 이젠 김밥 몇 줄 더 파는 것보다 사람을 놓치는 것이 더 아쉬운 모양이다. 아니, 사람을 놓치지 않는 것이 ‘왕김밥’의 유일한 판매비결인지도 모른다.

요즘 사람들은 언제부터 인사를 어렵게 생각했던 걸까. 그저 웃으며 “안녕하세요” 한마디 하는 게 전부인데. 낯익은 이웃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도 한 마디 말없이 시선 둘 곳 못 찾는 때가 있다. 그때 먼저 “안녕하세요” 한마디 건넸다면 어땠을까. 아는 척 하기 어색하다는 이유로 계속 불편한 관계들을 이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인사해서 손해 볼 일이 없다”는 최정석 씨의 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진심어린 한마디 인사말이 서로에게 얼마나 힘이 되고, 기쁨이 되는가. 세상의 진리들은 상투적이라고 말하는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