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확대, 고성과 구조 개선으로
통상임금 확대, 고성과 구조 개선으로
  • 이가람 기자
  • 승인 2014.05.0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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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상여금 포함 여부 놓고 노사간 힘겨루기 본격화
피한다고 능사 아니다 … 선순환 구조 고민할 때
[분석 1] 기업들의 통상임금 문제 대응

ⓒ 참여와혁신 포토DB
본격적인 임·단협 시즌의 막이 오르고 있는 지금, 가장 큰 현안은 통상임금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의 요건과 범위를 확정한 가운데, 이의 적용을 둘러싸고 노사간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미 양대 노총은 물론 각 산별노조·연맹들은 통상임금과 관련한 임·단협 지침을 마련한 상태다. 그렇다면 각 기업들과 경영계는 통상임금에 대해 어떤 대비를 하고 있을까?

삼성·LG, 선제적 임금제도 개편

지난 2월 27일,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는 노사협의회를 열어 임금과 관련한 사항들을 결정했다. 그 중에는 통상임금의 범위에 관한 부분도 포함돼 있다.

삼성전자 노사협의회에서는 지금까지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지난해 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이다. 삼성전자 직원 중 연봉제를 적용받지 않는 직원의 경우 정기상여금을, 연봉제를 적용받는 직원의 경우 정기상여금과 동일한 성격의 상여전환급을 통상임금에 포함키로 한 것이다.

삼성전자 노사협의회에서는 이 외에도 올해부터 정년을 만 60세로 연장키로 했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에 따라 60세 정년이 적용되는 것은 오는 2016년부터다. 삼성전자는 이를 앞당겨 올해부터 적용키로 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기존 정년은 만 55세였다. 삼성전자 홍보팀에 따르면 이 같은 정년 60세 조기 적용은 불과 1, 2년 차이로 정년 60세를 적용받지 못하는 1959년생과 1960년생에게도 정년 60세를 적용하기 위한 것이다.

또 정년 60세 연장에 따라 임금피크제도 함께 시행키로 했다. 삼성전자는 만 55세의 연봉을 최고점으로, 이후 매년 전년 연봉의 10%씩을 감액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이렇게 할 경우 만 60세가 되면 피크임금(만 55세의 연봉) 대비 59% 수준이 된다. 다만 임금피크제 시행에도 불구하고 학자금이나 의료비 지원 등 복리후생은 종전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삼성전자는 또 정년연장과 통상임금 범위 확대를 고려해 올해 기본급 인상률을 1.9%로 결정했다. 호봉승급분을 포함할 경우 평균 임금인상률은 4.4% 수준이라고 삼성전자 홍보팀은 밝혔다.

이렇게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 것은 삼성전자뿐만이 아니다. LG전자를 비롯한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LG그룹 계열사 3개사는 노경협의회를 통해 월 기본급의 600% 수준인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키로 결정했다.

이들 LG그룹 3개사는 정기상여금 600%를 사무직의 경우 월할로, 기능직의 경우 격월로 지급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중도퇴직자에게도 정기상여금을 일할로 지급하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통상임금의 판단기준으로 제시했던 고정성 요건을 충족하고 있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또 LG그룹 3개사는 통상임금의 범위를 정기상여금까지 확대함에 따른 임금인상 효과를 고려해 올해 임금을 동결키로 했다. 초과근로가 많은 생산직의 경우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에 따른 임금인상 효과를 감안해 올해 임금을 동결키로 한 것이다. 다만 생산직에 비해 초과근로가 적어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무직의 경우 지난해 성과에 따라 임금인상률을 차등해서 적용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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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확대 피하려 하지만

삼성전자와 LG그룹 3개사는 이처럼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키로 결정했지만, 이는 일부 사업장에 국한되는 것일 뿐 다른 사업장의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다른 사업장들에서는 대법원이 제시한 통상임금의 판단기준에 따라 정기상여금이라 하더라도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대법원은 통상임금의 판단기준으로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갖추고 있는 임금은 그 명칭에 상관없이 통상임금이라는 판단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그 중 특히 논란의 소지를 가지고 있는 요건이 고정성 요건이다. 고정성은 임금 지급일을 기준으로 임금의 지급 여부와 그 크기가 미리 확정돼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고정성 요건에 따르면,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임금은 통상임금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예컨대 매 짝수 달 말일에 기본급의 100%를 재직자에게 정기상여금으로 지급하는 기업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정기상여금이 지급되는 매 짝수 달 말일에 특정 노동자가 계속 재직하고 있을지 여부는 확정할 수 없다. 따라서 그에게 정기상여금이 지급될지 여부가 확정되지 않으므로 이 기업의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같은 요건에 따라 기업들은 정기상여금이라 하더라도 그 지급 요건을 재직자에게만 한정하는 방식으로 통상임금의 확대를 피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정기상여금의 지급 대상을 재직자로 한정하는 조항을 취업규칙에 명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통상임금 확대를 회피하려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사업장도 나오고 있다. 즉, “사용자는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관하여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다만,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94조의 규정을 따르지 않고 일방적으로 변경하고 있는 것이다.

‘재직자 한정’ 조항을 삽입하는 것 외에도 통상임금의 확대를 피하기 위한 기업들의 시도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 2일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금속노조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 같은 사례들을 밝힌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타난 사례를 보면 A회사는 490%의 상여금을 없애고, 휴일근로수당을 200%에서 150%로 변경한다고 일방적으로 공고했다. 이후 A회사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해 금속노조에 가입한 후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B회사는 기본급과 학자금을 인상하는 대신 상여금을 아예 없애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B회사는 노동자들이 상여금 부분에 대해 반발하자 개별면담을 통해 근로계약서와 취업규칙을 변경하기도 했다.

지난해 최저임금인 기본시급 4,860원을 적용하고 400%의 정기상여금을 지급하던 C회사의 경우, 노동자들은 주중 2시간씩의 잔업과 토요일 8시간 근무를 해왔다. C회사는 올해 들어 기본시급을 6,180원으로 올리는 대신 정기상여금을 전액 삭감했다. 장하나 의원실이 계산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처럼 최저임금을 기본시급으로 하고 400%의 정기상여금을 적용할 경우 연장·휴일근로수당을 포함한 월 평균 급여는 약 205만 원이다. 하지만 C회사가 올해 변경한 대로 임금을 계산하면 약 200만 원이 된다.

이처럼 기본급을 약간 인상하면서 정기상여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통상임금의 확대를 회피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통상임금과 관련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일부 사업장에서는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 문제에 대한 교섭을 회피하려 하는 기업도 있다.

임금·노동비용 상승 불가피

이처럼 기업들이 통상임금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로 인해 노동비용의 상승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경총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경우 기업들은 판결 첫해에 13조7,509억 원, 이후 매년 8조8,663억 원의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추가적인 노동비용은 추산하는 주체에 따라 그 격차가 매우 크다. 노동계에서는 대략 5조 원으로 그 크기를 추산하고 있다. 정진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한 논문에서 과거 3년치 소급분을 포함한 첫해 노동비용 증가액을 약 14조6,000억 원으로 추정한 바 있다. 이처럼 노동비용 추가분은 추정하는 주체에 따라 크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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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같은 추가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기업들의 경우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에 따른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지만, 그런 여력이 없는 기업들은 그 영향으로 인해 기업의 존망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에서 추가임금의 청구가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는 경우에는 과거 3년치 소급분에 대한 청구가 신의칙에 위반돼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에 따른 임금인상 효과는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므로, 지급 여력이 없는 기업들의 경우에는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12월 대법원 판결 직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수출 및 FDI 영향 분석’이라는 보고서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경우 제조업의 임금상승률은 2.0%로 나타났다. 그 중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의 경우 임금상승률이 3.0%로 나타났으며, 의복, 의복액세서리 및 모피제품 제조업의 경우 임금상승률은 0.9%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수치는 고용노동부의 2012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자료를 토대로 계산한 결과다. 앞서 소개한 삼성전자가 올해 임금인상률을 1.9%로 결정한 것이나 LG그룹 3개사가 임금을 동결한 것은 모두 이 같은 임금인상 효과 때문이다.

한편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4월에 발표한 ‘통상임금 범위 확대와 임금격차’라는 보고서를 통해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를 더 확대시킬 것으로 추측한 바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정기상여금(고정상여)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1~4인 사업장과 500인 이상 사업장 간의 1인당 연간 임금총액 격차는 현재의 3,447만 원에서 3,865만 원으로 약 418만 원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500인 이상 사업장의 임금은 1~4인 사업장의 임금 대비 기존의 2.57배에서 2.76배로 확대됐다.

또 500인 이상 사업장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연간 임금격차는 384만 원 확대돼, 제조업 평균(88만 원 확대)보다 임금격차의 확대가 더 급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형 사업장 정규직일수록 정기상여금이 임금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이에 따라 한국경제연구원은 통상임금 범위 확대로 인한 연간 임금총액 증가의 혜택이 대기업 정규직에게 집중될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또 통상임금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기존의 논의는 임금 및 노동비용의 증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다양한 형태의 임금격차 확대도 고려하는 종합적이고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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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과 구조 전환 계기로 삼자

아직까지 논란은 계속되고 있지만, 어쨌든 지난해 대법원 판결로 통상임금의 범위는 확대됐다. 또 그에 따라 임금 및 노동비용의 증가도 불가피하다. 즉 기업의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그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가지고 논란을 계속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경영계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노동생산성이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낮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리고 이를 장시간 노동으로 대체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장시간 노동을 유지하기 위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각종 수당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임금제도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지난해 대법원 판결은 이처럼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맞바꾸는 구조에 제동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손쉬운 방식으로 유지해 왔던 구조는 이제 개선이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그 개선의 방향은 ‘저임금-저성과-장시간 노동’에서 ‘고임금-고성과-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마침 노동시간 단축도 주요한 노동 문제로 논의되고 있는 만큼, 통상임금 문제를 계기로 이 같은 개선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방안을 마련해 갈 시점이다.

물론 이 같은 개선이 단기간 내에 이루어지기는 힘들 수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을 연간 1,800시간으로 단축한다는 큰 목표가 설정돼 있는 만큼, 이와 연계해 고성과 구조로 개선하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