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전보, 또다시 파국 부르나?
순환전보, 또다시 파국 부르나?
  • 이가람 기자
  • 승인 2014.05.0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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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탄압 vs 불균형 해소 … 노사 입장 팽팽
소통은 없고 일방통행만 남았다
[현장 1] 코레일 순환전보

ⓒ 전국철도노조
지난해 연말, 전국철도노동조합(이하 철도노조, 위원장 김명환)이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며 벌인 23일간의 파업이 마무리된 이후, 일선 철도 현장에서는 순환전보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철도공사가 지난달 7일, 철도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장 3급 이하 726명에 대한 순환전보 및 정기 인사교류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철도공사는 이번 순환전보가 “장기간 근무자의 고충 해소와 지역 간 인력불균형 등 방만경영으로 지적돼온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철도노조는 여기에 대해 지난해 파업에 대한 ‘보복성 강제전출’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철도노조는 국회에 구성된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가 종료되기도 전에 순환전보가 시작됐을 뿐만 아니라, 노사간 합의도 없이 전보조치가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철도공사는 인력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인사이동이며 시기만 겹쳤을 뿐 보복은 아니라며 철도노조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스트레스로 사람이 죽어간다

순환전보와 관련한 논란은 지난 3월부터 지속되고 있다. 3월 22일에는 철도노조가 서울역 광장에서 순환전보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에서는 기관사를 포함한 수십여 명의 조합원들이 집단으로 삭발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순환전보 시행을 나흘 앞둔 지난달 3일 오후 3시 45분경 철도노조 조합원인 조상만 씨(마산역 신호제어사업소 전기원)가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고 조상만 씨는 마산역 신호제어사업소 소속으로 1995년 입사 이후 마산지구에서 근무하다 지난 3월 4일 진주로 근무지를 이전했다. 철도공사는 조 씨가 동일 소속 내 장기근속자로 순환전보 후보자였으나, 우울증과 노모 병간호를 고려해 업무적 부담이 적은 진주로 배치했다고 밝혔다.

철도노조에 따르면 조 씨는 “이번 강제전보 대상자로 선정돼 사업소장과 면담했다”면서 “진주로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삼랑진으로 가라고 하면 어떡하느냐”고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3월 22일 상경 집회에서 한 대의원이 철도노조 간부들에게 “조상만 조합원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걱정”이라고 한 적도 있다. 고 조상만 씨의 부인도 “(진주에서) 삼랑진으로 갈지, 부산으로 갈지 모르겠다며 전보에 대해 심히 불안해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전국철도노조
고 조상만 씨의 자살 사건에 대해 고창식 철도노조 부산지방본부 교선국장은 “조상만 조합원이 우울증을 앓고 있긴 하지만 강제전출로 인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입장은 철도노조의 공식 입장이기도 하다.

고 조상만 씨의 자살 직후인 지난달 4일 오전 10시, 철도노조는 서울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합원을 죽음으로 모는 보복성 강제전출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부산역에서도 부산지방본부 주최로 동일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이 조합원이 전보 조치를 당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이번에는 빼달라고 요구한 게 잘못된 것이냐”면서 “(진주로 간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7월 전보 대기자에 해당해서 스트레스를 받아 사람이 죽어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명환 위원장은 “위원장이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열차를 멈추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강제전출을 멈추겠다”고 덧붙였다.

철도노조는 기자회견문에서 “최연혜 사장은 시민사회의 면담 요구조차 외면한 채 끝끝내 대규모 전환배치를 강행하여 철도 사태를 파국으로 몰아갔고 결국 한 철도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 전국철도노조
노조 반발, 밥그릇 지키기에 불과

하지만 철도공사는 “이번 인사가 장기간 근무자의 고충 해소와 지역 간 인력 불균형 등 방만경영으로 지적돼온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며 철도노조가 순환전보에 반대하는 것은 ‘밥그릇 지키기’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지난달 4일 철도노조의 기자회견이 열린 장소에서는 철도공사 관계자들이 기자들에게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철도공사는 이 보도자료에서 “지난 4월 1일 노사 현안사항 논의 결과 ‘전 분야 고충 및 인력불균형 해소를 위한 전보와 역·시설·전기 분야의 순환전보는 계획대로 시행’하고 ‘운전 및 차량 분야의 순환전보는 6월말 정년퇴직자를 감안하여 7월에 시행’”하기 때문에 7월에는 고 조상만 씨가 근무하던 전기 분야의 순환전보 계획 자체가 없다고 해명했다.

철도공사는 또 “‘강제전출로 인한 자살’이라는 철도노조의 주장은 현재 진행 중인 ‘철도공사의 순환전보 및 정기 인사교류’ 시행을 왜곡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관계를 호도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임인순 철도공사 홍보부장은 이번 순환전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통근이 가능한 범주 내에서 권역 간 이동이 이뤄진다. 예를 들어 지역 간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하는 경우, 당사자의 고충처리가 아니라면 이동시키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통근이 불가능 할 정도의 인사발령은 고충처리차원에서만 이뤄지는 것이지, 다른 이유로 발령이 나진 않을 것이다. 만일 필요한 이동이라면 대상자와 면담을 하고, 소속장과 합의를 거친다. 또한 인사위원회를 열고, 다시 한 번 검토를 한 후에 인사이동을 결정한다. 이러한 구조이기 때문에 파업 관계자라고 해서 부당한 이동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임인순 홍보부장은 “통근이 가능한 범주에는 특별한 기준이 없다”고 전했다. 철도노조의 민영화 반대 파업에 곧바로 이어지는 순환전보이기에 철도노조는 파업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임인순 홍보부장은 “파업 이전부터 계획하고 있었고 우연찮게 시기가 겹친 것뿐이지 노조를 탄압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

ⓒ 전국철도노조
순환전보, 비효율만 커진다

원래 순환전보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조직의 구성원을 여러 다른 근무지에 전보 또는 배치시키는 것을 말한다. 한 근무지에 장기간 근무할 경우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는 게 순환전보를 실시하는 가장 큰 이유다. 각 근무지의 사정에 따라 인력이 항상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기에, 인력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순환전보가 이뤄지기도 한다. 또 근무자의 고충을 해소하기 위해서 순환전보가 이뤄지기도 한다.

그런데 철도노조는 왜 순환전보에 반발하는 것일까?

첫째, 숙련된 노동과 심리적 안정을 요구하는 철도 현장의 특성을 무시한 처사라고 주장한다. 대규모 수송수단인 철도가 상존하는 대형 사고의 위험 속에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현장 노동자의 숙련된 노동과 심리적 안정이 중요한데 여기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둘째, 상시적인 강제전출 제도는 노동자의 심리적 불안을 고조시켜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강제전출 후보자가 됐다는 것만으로도 걱정과 불안, 공포와 분노를 경험하게 돼 업무에 집중을 할 수 없게 되고, 이것이 사고 유발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소속을 옮길 경우 새로운 환경과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두려움, 문제 직원이라는 낙인으로 더욱 위축되고 고립될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1999년에 철도노조 서울동차지부 부지부장을 지낸 조 모씨는 핵심 검수원이었다. 새마을호 열차의 차축 발열로 빈번하게 고장이 나 조사를 해보니 윤활액이 규정에 미달한다는 것을 발견한 조 씨는 철도청에 품질강화를 요구했다. 철도청은 이러한 요구를 항명으로 받아들여 조 씨를 해고했다. 이후 조 씨의 부당징계철회 운동 등을 이유로 철도청은 서울에서 동해로 전출 시켰다. 동해에서 전보생활을 하던 조 씨는 격리감, 경제적 손실, 가정 문제까지 겹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적이 있다.

셋째,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기관사의 경우 타 사업소로 전출되면 최소 1~2개월의 견습기간을 거쳐야 하고 팀장은 견습 시 첨승을 해야 한다. 10%를 강제전출하면 400여 명의 기관사가 견습으로 운전연습만 해야 하는 인력 낭비가 생긴다는 것이다. 재교육비와 업무공백에 따른 노동 강도가 강화되고 시간외 및 휴일 업무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1년에 2회 전보를 실시하면 철도 현장의 혼란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노조는 밝혔다.
ⓒ 전국철도노조


김선욱 철도노조 서울기관차지부 총무국장은 “기관사들의 경우 부기관사가 기관사 밑에서 일을 계속 배워야 하므로 강제전출이 되면 바뀐 선로에 적응하는 데에 오래 걸리고 위험성도 있어서 비효율적”이라고 말했다.

넷째, 노동조합 활동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진행하는 비인간적인 강제전출이라고 말한다. 철도공사는 조합원들에 대한 보복탄압으로 계획전보라는 이름으로 강제전출을 시행하려 했지만, 노조와 현장의 반발이 심해지자 순환전보 및 정기 인사교류라고 이름만 바꿔 시행한다는 것이다. 우지연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철도공사가 당초 시행하려던 계획전보 시행기준과 현재 시행 중인 인사교류 시행계획은 형식만 달리할 뿐 ‘전보의 적용 범위, 규모, 대상자 선발기준, 시기 등’ 사실상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다섯째, 인사규정을 확대 해석한 불법적 인사권 남용이라는 주장이다. 노동조합과의 협의·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시행하는 강제전출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일 뿐만 아니라 단체협약과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철도공사는 순환전보가 회사의 인사권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철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철도공사가 이번에 순환전보를 단행하기 이전에도 순환전보를 둘러싼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게 KT와 발전자회사 사례다.

KT새노조에 따르면 KT 민영화를 반대한 노동자들을 탄압하기 위한 CP(부진인력퇴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비연고지 인사가 동원됐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결국 사표를 쓰게 됐다는 게 KT새노조의 주장이다.

이해관 KT새노조 위원장은 “KT가 전국적인 사업장을 갖고 있다는 점과 매우 다양한 직무를 갖고 있다는 점을 악용해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시행했다”며 “전주에서 노조 운동을 하다가 해고된 조합원이 복직된 이후 KT는 그 조합원을 포항으로 발령했는데, 지역 간 말투의 차이 때문에 고객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는 상태”라고 소개했다.

발전자회사에서도 사업장 간 직원 교류를 했던 사례가 있다. 이를 두고 발전노조는 강제발령을 내 노동조합을 탄압했다고 주장한다. 발전소 업무 특성상 전문가로 만들기까지 5년 이상이 걸려 과거에는 인사이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전국철도노조
지난 2010년에 발전자회사들은 선호사업장과 비선호사업장 간 교류를 실시한다며 한 사업소에서 10~20년 장기 근속한 직원들을 전출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발전자회사 직원들은 원거리 사업소로 강제발령을 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꼈다고 발전노조는 밝혔다.

발전노조는 “이러한 사측의 조치는 발전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한 데 불만을 가진 사측이 탈퇴를 종용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당시 기업별노조추진위는 민주노총 탈퇴만이 강제발령을 막을 수 있다는 협박도 했다”고 주장했다.

철도공사의 순환전보가 단행된 이후, 이영익 전 철도노조 위원장과 유치상 전 사무국장은 지난달 9일 수색역 철탑에 올라 ‘단 한 명도 못 보낸다 강제전출 철회!’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몇몇 조합원들도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순환전보를 둘러싼 철도공사와 철도노조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더 큰 문제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사간의 대화가 실종됐다는 점이다. 지난해 민영화를 둘러싼 논란과 파업 과정에서 그러했듯이, 이번 순환전보에 따른 갈등에서도 일방통행만 있을 뿐이다. 고충과 인력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순환전보라면 그 필요성을 설득하고 동의를 얻어 시행하는 것이 적절한 절차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순환전보는 일방적인 통보만 있었을 뿐, 대화의 과정은 전무했다. 이런 일방통행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지난해 파업 과정이 보여주고 있다. 또다시 파국으로 치달을 것인지, 아니면 대화를 통한 합리적 대안을 찾을 것인지 그 선택은 철도 노사의 손에 달려 있다.